자치행정과는 인사 및 조직관리, 선거 업무, 주민자치 및 행정구역관리와 같은 행정지원에 관한 일을 하는 과로, 한승교 조직인사팀장은 서천군청에서 20년 넘게 근무하고 있고, 허광무 주무관은 조직인사팀에 재직중이다.
< 구)청사에 관한 기억 자율 이야기 >
한승교 팀장은 군청 뒤 읍성에 대해 얘기해줬다. 읍성의 동문은 복원을 다 마쳤고 서문은 복원 중이라고 한다. 홍성에 있는 홍주성처럼 흔적이 많이 남아 있으면 도전할 가치가 있을 텐데 서천읍성은 아예 터만 남았다. 그래서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의 의미에 대해 생각도 했다고 한다.
< 구)청사 내 공간에 관한 이야기 >
청사 내 힐링공간으로 허광무 주무관은 큰 느티나무 아래 쉼터를 언급하며, 군청이 5~60년대에 지어졌고 나무 크기로 보아 군청이 지어지기 전부터 있었고 존치한 것으로 보인다.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항상 직원들이 모여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장소다.
현재 주차장 일부를 집회 장소로 쓰고 있는데 한승교 팀장은 주변 학교에 소음공해가 되고 좁은 곳에 천막을 치고 집회하는 시위자들도 안타깝다며 주차난 외에도 여러모로 주차장에 배치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신청사로 가게 되면 집회 장소를 따로 마련해야 한다고 얘기를 해놓기도 했다.
허광무 주무관도 직원들의 불편함도 상당하다며 공감했다. 민원인 주차장은 최근에 만들어졌으니 비교적 괜찮다. 하지만 직원주차장이 매우 협소하고 민원인 주차장을 직원이 이용할 수 없는 게 원칙이다 보니, 직원주차장에 주차하려면 오전 8시 전에 출근해도 자리가 거의 없어 근처에 있는 아인빌라 주차장과 그 아래 공간을 이용한다.
한승교 팀장은 서천군청에 오랫동안 근무하며 여러 차례에 걸친 주차장 확장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주차장은 넓을수록 좋다고 여기고 있다. 그래서 신청사의 주차장을 넓게 설계한다고 해도 집회 장소 분리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청사 이전을 하면 주차장 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승교 팀장은 군청이 증축을 못 하는 이유는 뒤에 있는 서천읍성과 함께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묶여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청사 신축 논의가 이루어질 때 현 청사 위치를 그대로 하되 옆에 건물을 만드는 식으로 고려하기도 했었다. 성안마을도 그 이유로 매입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예산실은 과거 군수 관사였지만 20년 전(2002년) 나소열 군수님이 4대 임기를 시작할 때부터 관사로 쓰지 않았다. 예산실 1층은 비정규직 노조 사무실이다. 관사였던 건물이 하나 더 있는데 과거 교육지원청 관사였다. 입구와 가까운 강당은 직원들을 위한 탁구장이 있고 안쪽 방은 보조사무실로 사용 중이라고 한다.
또 직원들의 편의 시설이 부족하다. 휴게실조차 없어 주로 구내식당에서 만난다. 화장실도 남자 화장실은 1층과 2층에 하나씩 있지만, 여성 직원들은 화장실이 본관 1층 한 곳밖에 없어 불편함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 구)청사 연계 사건 >
오래된 청사의 모습을 담고자 드라마, 영화 촬영팀이 몇 번 찾아왔었다. 최근에도 촬영 협조를 한 기억이 난다. 본관 1층 투자유치과와 자치행정과와 군청로 사거리를 촬영했었다.
올해 상반기에 새끼 쥐가 나와서 끈끈이로 잡은 일이 있다.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면 건설과에서 기본적으로 제설작업을 하지만 가파르고 좁은 길의 특성상 제설이 쉽지 않은 경우, 직접 제설에 나서기도 했다.
허광무 주무관은 민원인들이 군청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청사가 증축으로 의도치 않게 미로 같은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주민들이 오시면 원하는 과를 찾지 못하고 항상 물어보신다. 이정표가 있어도 그것만 보고 찾아가기는 어렵다. 농정과나 지역경제과의 경우 후관, 후별관에 있다. 뒤 건물을 못 찾고 다시 나가려고 해도 온 길로 가야 하는데 헷갈려서 갇히는 일이 잦다고 설명했다.
< 청사이전에 관한 감정 >
청사 이전에 대한 느낌이 어떤지 물었다. 허광무 주무관은 청사 이전에 대해 직원들의 반응은 대체로 좋다. 새로운 건물에서 근무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승교 팀장은 개인적으로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군청 사거리에 있는 상가들이 타격을 많이 받을 거고 뒤로 서천여중, 여고의 등하굣길이 매우 어둡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청사가 있으면 불이 켜있어 괜찮은데 이전 직후 건물을 사용하지 않으면 우범지역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문화공간으로 변화할 현청사에 대한 생각 >
한승교 팀장은 군청 이전을 하고 나면 문화공간에 마당 조성을 기획 중이라고 들었다. 좋은 생각이다. 서천군 학교 학생들의 시험 기간을 피해 평상시나 방학에 문화행사를 하면 반응이 좋을 것이라 말했다.
< 공무원으로 생활하면서 지역민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
지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허광무 주무관은 청사 이전 건으로 최종 후보지를 선정할 당시, 공무원들은 군청 근처에 사시는 주민들이 반대를 많이 하실 거라 예상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군청이 나가고 나면 구시가지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반대가 심하지 않았다. 그 덕에 수월하게 후보지를 선정할 수 있었다. 현재 위치에서는 증축의 한계가 있으니까 그 사정을 알고 이해해주신 것 같다며 지역민께 감사함을 전했다.
사진/영상
기록개요
기록명
마을기록단 '기억해유'_구)청사에 관한 기억 인터뷰
기록방법
인터뷰
마을명
-
시대
2022년
주제
구)군청사에 대한 서천군청 직원들의 기억
검색어
#구청사 #기억 #인터뷰 #자치행정과 #한승교 #허광무
수집 및 생산자료
사진 5점
제보자
한승교, 허광무
기록자
지연지
작성연월일
2022년 8월 1일
관련사업
서천읍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
관련기관
-
붙임자료
관련자료 없음
※ 본 내용의 저작권은 서천군 및 1차 저작자(기록자)에게 있습니다. 본 기록의 무단 배포와 변형, 활용을 금지합니다.
김은이 과장은 민원업무의 종합조정과 민원행정뿐만 아니라 지적재조사 업무도 수행하는 민원봉사과의 과장으로 재직 중에 있다.
강미정 민원행정팀장은 읍사무소에서 근무하다가 1995년부터 현 청사에서 근무 중이다. 과거 지역경제과, 안전총괄과를 거쳐 현재 민원봉사과에서 일하고 있다.
< 구)청사 내 공간에 관한 이야기 >
김은이 과장은 "군청사를 읍성이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직원들이 점심식사 후나 휴식을 취할 때 산책로를 걸으며 힐링하는 공간이 되어서 좋다. 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못 걷지만 봄이나 가을은 굉장히 운치가 있다. 가끔은 산책길을 걸어서 출퇴근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강미정 팀장은 "처음에 군청 내 구내식당도 없어서 개인 주택에 식당을 마련해 식사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관사 자리도 사무실로 사용하는 등 여러 증축과정을 거친 것이다. 가장 최근에 증축한 곳은 후관동 4층이다. 그렇다 보니 내부환경이 쾌적한 편이다. 원래 3층 건물인 본관 옥상에 만든 조립식 가설건물이고 안전총괄과랑 재난종합상황실이 배치돼 있다. 얼마 전까지 거기서 근무했는데 올라가는 계단이 오래된 철제 계단이다. 1년에 한 번씩은 직원들이 다치는 사고가 난다. 며칠 전에도 어느 과 팀장이 발목이 삐끗한 일이 있을 정도로 항상 신경 써서 다녀야 하는 곳이다. 비나 눈이 오면 바람이 불면서 계단 안까지 다 들어오기 때문에 막아달라고 요청했지만 어차피 곧 이전한다는 이유로 보완해주지 않는 상황이다. 특이한 점은 청사 내에서 가장 고층에 있는 건물이라 청사 근처에 사는 새소리가 많이 들린다.
강미정 팀장은 2층에는 여자 화장실이 아예 없어 불편하다고 말했다. 1995년부터 군청에서 성별에 상관없이 직원을 뽑기 시작했다. 당시 읍사무소에서 근무하다가 95년에 첫 전입 시험을 봐서 현 청사로 왔기 때문에 정확하게 기억한다고 한다. 여직원이 있긴 했지만 실과 별로 한두 명씩밖에 없었던 그때부터 현재까지 여자 화장실은 1층 한 곳뿐이었다. 증축도 했고 여직원이 늘어나 화장실을 만들고 싶어도 자리가 없는 상황이다.
여성 휴게실이 없어진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탁구장 안쪽에 있는 방을 원래 여성 휴게실로 사용했다. 지금은 비정규직 노조 사무실로 사용한다. 휴게실을 대신하는 공간이 있는데 4층에 위치한 재난종합상황실이다. 냉난방 시설도 잘돼 있어 재난 상황이 아니면 비워두는 회의실이라 평소 직원들끼리 속 이야기를 한다. 또 점심시간에 손님을 모시거나 민원인과 상담할 때 활용하고 있다.
김은이 과장은 조직이 계속 분과, 증가한 것도 증축의 원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공간 배치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사회복지과, 관광축제과, 문화예술과 사무실이 청사 밖으로 나가 있다. 발리 노래주점 건물 2, 3층을 관광축제과와 문화예술과가 임차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직원들이 야근하는 날이면 노래방 소음을 견디며 근무한다고 한다.
대각선으로 사회복지과 건물이 있는데 앞서 말한 두 과의 건물보다 더 오래됐다. 옛날에 농업기반공사과가 임차해서 쓰다가 독립된 건물로 이전하면서 사회복지과가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또 민원봉사과의 경우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부서치고 공간이 좁다. 민원실이 일렬로 배치가 되어있으면 한눈에 들어와서 찾기도 수월할 텐데 ‘ㄱ’ 모양으로 돼 있어 불편해하는 분이 있다. 민원봉사과뿐만 아니라 본관을 포함한 모든 건물을 증축하는 바람에 안쪽으로 들어가는 구조다. 이정표를 보고도 모르셔서 안내할 때도 말로 하는 건 한계가 있다. 어르신은 복잡한 설명을 빨리 외우지 못하시니까 웬만하면 직접 모셔다드린다고 말했다.
강미정 팀장은 비 오면 물이 새는 일이 잦아서 한번은 본관동 2층에 있는 군수실 앞에서도 양동이를 대놓고 있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에어컨 온도 규정이 심하지 않은데 옛날에는 무조건 절약해야 했다. 강미정 팀장은 10년 전 청사 뒤 조립식 가설건물에 있는 지역경제과에서 근무했는데 당시 에너지 절약 기준에 맞추느라 냉난방을 원하는 대로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여름철은 28도에 맞춰야 했고 충청남도청에서 점검을 나오는 사람이 있었다. 28도에 온도를 맞춰놓고 있었는데 건물이 조립식 건물이라 다른 사무실처럼 내부 온도를 28도로 유지할 수 없었다. 에너지를 담당하는 부서도 바로 그 지역경제과였는데 점검하시는 분도 ‘여기는 온도 기준을 지킬 수 없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 구)청사 연계 사건 >
김은이 과장은 군청 근처에 서식하는 철새 문제를 떠올렸다. 성안마을 부근에서 지내던 새들이, 주민들의 민원으로 나무를 베면서 서천여고 올라가는 길가에서 많이 지낸다는 것이다. 요즘은 번식해 무리가 나뉘었는지 사무실 옆으로 와서 똥을 싸놓으니 냄새가 많이 나 창문을 열지 못할 정도로 불편하다고 한다. 새똥이 산성이 있어 차를 부식시키고 나무도 많이 죽고 있다.
이따금 조류에 관심 있는 사진작가들이 오셔서 백로를 찍어가는 분도 있는 걸 보면 이 새 군락지를 관리, 조성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새를 쫓아내지 못한다면 차라리 청소를 자주 한다거나 하는 공생의 길을 도모하는 방법을 찾고 싶어 했다.
< 청사이전에 관한 감정 >
앞으로 군청 산책로를 많이 그리워할 것 같다.
김은이 과장은 "직원들의 신청사에 대한 전반적으로 반응이 좋다. 우리가 헌 집에서 새집으로 이사하면 기분이 좋듯 직원들도 비슷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다만 사무실 공간이 좁아서 직원들끼리 서로 등을 맞대고 근무하며 느끼는 친밀감이 있다. 이전하게 되면 그런 공간에 대한 추억이 많이 떠오를 것 같다"고 한다.
강미정 팀장도 "청사 이전이 결정되고 먼저 퇴직하신 과장님들을 생각하니 좀 안타깝다고 생각한다. 입사하고 임기가 끝날 때까지 불편한 환경에서 근무하셨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 서천군청사의 아름다운 변화가능성에 대해 >
김은이 과장과 강미정 팀장은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을 해서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청사가 이전하고 나면 구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구도심이 될 테니까 정비 중인 서천읍성을 이용해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면 어떨까 싶다. 읍성과 산책로를 와본 사람들은 다 감탄했다. 더불어 백로와 함께하는 방법을 찾아서 자연 친화적인 공간으로 만든다면 외부인도 많이 찾아오는 명소가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 공무원으로 생활하면서 지역민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
공무원으로서 군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강미정 팀장은 서천이 인구도 많이 감소하고 재정 자립도로 보면 충청남도에서 하위권에 있지만 많은 공무원이 최대한 많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사실 오직 서천군청에서 일하고 다른 지역에서 근무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함께 일하는 공무원과 주민들을 보며 다른 곳 공무원, 주민들도 다 이렇겠지.’라고 생각하며 지냈다. 그런데 2019년도에 공무원교육원으로 1년 동안 장기교육을 받고 나서 ‘서천군 공무원들이 일을 참 열심히, 성실하게 하는 편이구나’ 하고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러니 주민들도 함께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고 만나면 질책보다는 격려 부탁드린다. 어쨌든 다 서천에 사는 지역민이고, 누군가의 가족이고 자식이니까 서로를 그렇게 바라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은이 과장도 강미정 팀장의 말에 공감하며 공무원과 국민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고 각자 주어진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 맞춰나간다면 서천군 발전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사진/영상
기록개요
기록명
마을기록단 '기억해유'_구)청사에 관한 기억 인터뷰
기록방법
인터뷰
마을명
-
시대
2022년
주제
구)군청사에 대한 서천군청 직원들의 기억
검색어
#구청사 #기억 #인터뷰 #민원봉사과 #김은이 #강미정
수집 및 생산자료
사진 4점
제보자
김은이, 강미정
기록자
지윤지
작성연월일
2022년 8월 1일
관련사업
서천읍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
관련기관
-
붙임자료
관련자료 없음
※ 본 내용의 저작권은 서천군 및 1차 저작자(기록자)에게 있습니다. 본 기록의 무단 배포와 변형, 활용을 금지합니다.
정해민 도시건축과장은 2019년에 자치행정과 조직인사팀장으로 일했다. 주요업무는 건축인허가 및 신고업무, 지역개발 업무 등이다. 현재 신청사 짓는 일(충남개발공사에 위탁, 준공까지)을 도시건축과에서 진행하고 있다.
< 구)청사에 관한 기억 자율 이야기 > 군청길이 너무 좁아서 버스가 다니지 않는다. 군청 직원들이나 민원인들이 너무 불편해한다. 읍성을 정비하고 있지만, 그동안 손을 전혀 못 대고 있던 부분이다. 한산면에 있는 한산읍성도 일부 발굴, 보수하고 있는데 서천읍성도 접근성과 편의성을 높여서 주민들이 평소에도 자주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읍성 가는 길이 평일에 직원들이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 걷는 산책코스다.
< 구)청사 내 공간에 관한 이야기 > 정해민 과장은 서천군청사가 가진 지리적 요소가 군청을 특별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했다. 읍성이 군청을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그 역할이 더 상징적으로 보일 수 있고, 외지 손님이 군청을 찾았을 때 대체로 ‘전국에서 이런 건물은 처음 봤다’, ‘문화유산으로 지정해야 한다’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본관과 별관은 콘크리트 건물이라 열을 덜 받는 편이지만 후관동은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진 조립식 건물이다 보니 여름, 겨울에 근무하기가 정말 힘들다. 특히 여름은 출근 시간 때에도 실내온도 30도가 넘기도 하는데 겨울도 같은 이유로 매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처럼 후관동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애로사항이 많다고 한다.
도시건축과가 있는 별관을 올라오는 계단에 있는 넥산(비가림막, 차양)도 원래 없었는데 직원들의 편의를 위해 하나씩 보수를 한 것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어차피 이전할 건물이기에 큰 투자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탁구장이 된 교육지원청 관사는 체육실이 아닌 여직원들 휴게실이 본 목적이었다. 그런데 건물이 본관과 꽤 떨어져 있다 보니 잘 사용하지 않아서 탁구장과 공무직 노동조합 사무실로 사용하는 거라고 말했다. 군수 관사 건물은 현재 예산실로 쓰이고 있는데 관선 군수였던 1~2기 때는 관사로 쓰다가 3기~5기 민선 군수를 지낸 나소열 군수님이 4기(2002년)부터 관사를 쓰지 않겠다고 하자 마침 부족했던 사무실 용도로 쓴 것이라고 한다.
8개 팀으로 구성된 사회복지과는 본관 실과 2개의 규모와 맞먹는 큰 과다. 2015년에 청사 밖으로 나와 농업기반공사가 쓰던 건물을 쓰고 있다. 정해민 과장이 인사팀장으로 근무하던 2019년에 조직개편을 했다고 한다. 과가 계속 늘어나고 군청 안에 더 이상 배치할 자리가 없자, 연관성 있는 문화예술과, 관광축제과 그리고 사회복지과까지 총 3개 실과의 위치가 불가피하게 멀어진 것이다. 그중 문화예술과와 관광축제과는 원래 산부인과였던 곳을 임대해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시골 특성상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아서 자가용이 없으면 출퇴근이 어렵다. 직원들의 경우 출장도 가야 한다. 직원주차장을 조금씩 늘려도 항상 부족하다. 민원 주차장도 원래 주택이 있던 자리인데 다 매입, 철거해 만든 공간이다. 건너편 민가 자리도 군청에서 매입했는데 어떤 목적이었는지는 알 수 없고 현재 다른 사업을 계획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고 설명했다.
< 구)청사 연계 사건 > 후별관동 뒤로 지금은 정비 차원에서 베어내고 없는 대나무 숲이 있었다. 대나무 숲에 지네가 많이 살아서 사무실에 자주 나왔고 아침에 출근하면 바닥에 잔해가 있었다고 한다.
< 청사이전에 관한 감정 > 신청사 짓는 일(충남개발공사에 위탁, 준공까지)을 여기 도시건축과에서 진행하고 있는데 사실 청사 이전을 일찍 시작했어야 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매년 겨울이면 기름 난로를 쓰기 때문에 겨울마다 주유소 차가 오고 직원들이 직접 20L 통을 들고 사무실을 오고 가며 나른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에 이런 건물에서 근무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거라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서천군 예산이 적은 것도 있고 12년 동안 계셨던 군수님이 새 청사 위치를 물색하셨지만 특정 지역 주민들의 요구에만 응하기 곤란했던 게 주요 원인인 것 같다. 그 뒤로 2선 한 군수님이 결정을 내리셔서 일을 추진하는 중이다.
내년 3월이면 신청사가 완공되고 5월에 이전한다고 한다. 직원 대부분이 굉장히 기대하고 있다. 현청사 뒤 읍성에서 걷는 것과 평지 공원에서 걷는 건 느낌이 다르긴 하겠지만 신청사 부지로 가면 넓은 주차공간과 공원이 조성될 예정이라 다들 좋아할 거로 생각한다. 또 주민들의 경우 사무소나 업소를 하시는 분들은 수요가 떨어질 테니 아쉬움이 클 것이다. 집회는 거의 끊이지 않고 경찰서에서 집회 신고를 항상 청사 민원 주차장에 해주니 그 앞에 사시는 성안마을 분들은 청사가 옮겨서 좋은 희비가 엇갈리는 상황이다. < 주민문화공간으로 변화하는 현청사에 대한 기대 > 문화공간이 들어오는 것 대해 어떤 기대가 있는지 묻자, 정해민 과장은 개인적으로 기대하고 있는 건 없다고 말했다. 운영하기 나름이겠지만 많은 주민이 이용할지 잘 모르겠다는 이유였다.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이 유치되기 전에 청사 자리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새로 지으려고 했었다. 근데 서천읍성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층수 제한이 있고 문화재청에서 문화재 현상변경 허가를 받아야 하는 복잡한 문제 때문에 최종적으로 그 계획이 배제됐다고 한다. 다만 현청사 주변의 공동화 현상을 우려해 사거리 우측에 있는 서천읍사무소와 여러 사회단체를 현청사로 이전한 후, 읍사무소 자리를 매각하면 공동화 현상을 막을 수 있을 거란 논의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과정이 있었음에도 청사를 문화공간으로 조성하기로 한 것은 아마 서천과 장항에 문화예술 분야 공간 확보에 힘쓰신 전 군수님의 생각이 반영된 것 같다. 현재 도로 정비를 포함해 성안마을도 경관계획, 범죄예방 도시디자인 사업과 같은 정비사업을 설계 중이지만, 이런 공동화 방지 사업들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우려된다.
< 공무원으로 생활하면서 지역민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 주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정해민 과장은 주민들에게 이 공간을 돌려주게 됐으니 이왕이면 농정과에서 주민들의 의견을 잘 수렴해서 도움이 되는 공간을 만들어드렸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사진/영상
기록개요
기록명
마을기록단 '기억해유'_구)청사에 관한 기억 인터뷰
기록방법
인터뷰
마을명
-
시대
2022년
주제
구)군청사에 대한 서천군청 직원들의 기억
검색어
#구청사 #기억 #인터뷰 #도시건축과 #정해민
수집 및 생산자료
사진 9점
제보자
정해민
기록자
지윤지
작성연월일
2022년 8월 1일
관련사업
서천읍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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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의 저작권은 서천군 및 1차 저작자(기록자)에게 있습니다. 본 기록의 무단 배포와 변형, 활용을 금지합니다.
< 인터뷰 참여자 자기소개 > 환경보호과 장기수 과장님은 91년 7월 근무를 시작하여 31년간 근무하다가, 2022년 6월 말에 퇴직을 하였다. 환경보호과 나한일 팀장님은 30년 근무하였고 환경보호과로 온 지는 3년 정도 되었다.
< 구)청사에 관한 기억 자율 이야기 > - 장기수 과장님은 직원들 후생으로 테니스장이 있었는데 밥먹고 나면 테니스도 치고 했던 장소인데 차가 늘어나면서 여기가 주차장으로 바뀌었다며 직원들이 제일 아쉬워 하는게 건물이 작다 보니까 뭐 하나 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없었다고 말했다. - 예전에 본관동 바로 옆에 조그만한 식당이 있었는데 여기서 손님맞이하고 차 한 잔 먹고 또 어디가서 못먹으니깐 구내식당에 시키면 차를 갖다주고는 했다. 그래서 이사가야 한다고 얘기하는 직원들이 많았다. 어디 갈데가 없으니 일하면 일하는 거고 앉아서 쉬면 쉬는 거고 그랬다. 문화재 구역이다 보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안그랬으면 주차장 쪽에 5층이든 10층이든 지었을 거다. - 현청사 공간이 비좁아 지금 근무중인 환경보호과 사무실을 나누어 쓰기도 했다. 공간을 구분하여 한 사무실 내에 2개의 문이 있었고 직원들이 앉아 있으면 사이로 못지나가 끝에서 끝으로 돌아가야 했다. 업무가 늘어나면서 직원들도 늘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공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맞춰서 하려다보니 좁게 생활할 수 밖에 없었다.
- 나한일 팀장님은 후관동 건물이 조립식 건물이라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너무나 춥다며, 조립식도 옛날 조립식이라 한 5cm 두께 밖에 안돼서 더위와 추위를 피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에어컨을 틀어도 시원하지가 않다. - 20년전에 구내식당하고 환경보호과 앞에 산림축산과 지역경제과하고 옆에 테니스장과 주차장까지 해서 그당시 2층으로 사무실을 지을 구상을 했었다. 청사가 외주 나가는 것보다 한자리에 있었으면 좋겠다 해서 이런 얘기들을 듣다보니 일부는 나가야 한다 일부는 안된다 하다가 결국은 추진을 못했다. 서천여자 중학교를 이전하고 군청사가 해당 자리로 이전하는 계획도 있었고 도로 정비등을 하면 상권도 함께 살 수 있는 방안으로 생각했다. - 근무환경이 저희들이 제일 열악한 것 같다. 충남에서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따져도 이런 곳이 없다. 2002년 IMF가 끝나고 호화청사 때문에 경기도나 성남시 용인시청 시끄러울 때 청사를 새로 지으려 했는데 그때 행안부에서 승인을 안해 주는 바람에 사업을 추진 못했다.
< 구)청사 내 공간에 관한 이야기 > 장기수 과장님은 본관 옆 동에 느티나무가 있다며, 이 느티나무가 봄에서부터 파랗게 있다가 가을이되면 낙엽이 떨어지는데 그걸 보면서 또 한해가 가는 구나하고 기획실에 근무당시 그런 추억들이 많이 남는다고 말했다. 계절이 바뀌는 것에 따라 느티나무의 변화된 모습이 5월에는 이렇게 푸르러 졌다가 12월이 되면 다 떨어지고 또 그렇게 다시 1년이 갔다.
힐링공간에 대한 물음에 장기수 과장은 특별히 없었다고 했다. 사무실에만 있다 보니깐 이용할 수 있는 상황도 없었고 90년대 초반에 탁구장 동아리 운영을 하여 실과별로 대항하는 등 활발히 이용을 했었다. 지금도 직원들이 점심때 와서 치고 간다. 하지만 이용하는데 너무나 열악하다.
나한일 팀장도 힐링공간은 없었다고 말했다. 단지 점심 식사하고 서천 읍성을 걷는 것이 나와 직원들의 유일한 낙이었다. 운동겸 돌다보면 소화도 되고 좋았다. 과거에는 성안 마을 내에 목욕탕, 시장이 있었다
< 청사이전에 관한 감정 >
장기수 과장은 신청사로 이전을 해도 직원들의 후생 차원에서는 별다른 게 없는 것 같다. 그런 것들이 반영되려면 기존에도 얘기했지만 호화청사 개념들이 있어서 쉽게 못하다고 한다. 아쉬운 마음은 있지만 좋은 환경에 만족을 한다. 하는 일은 정해져 있다보니 그쪽으로 간다고 변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새로운 마음으로 뭔가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그런 의욕을 가지고 근무환경이 개선된 만큼 열심히 해야겠다.
나한일 팀장은 근무 여건이 나아지니 좋다며 2년 뒤 퇴직을 앞두고 있지만 바뀐 환경에서 마지막까지 열심히 일하겠다고 했다.
< 문화활동에 대한 기대 >
장기수 과장님은 청사 이전으로 수백 명이 생활을 하다가 빠져 나가면 상권이 무너지는 상황이 될 것이라며 우려했다. 각종 단체들에게 임차해주거나 지원을 할 것으로 생각됨에 따라 생활할 수 있도록 가건물들을 다 털어내고 일반 본건물 들만 남는걸로 해서 문화활동을 해나갈 것이다.
나한일 팀장은 시민단체들이 많이 있으니, 각자 사무실을 빌려 나가 있는 단체들을 모아가지고 이쪽에서 같이 회의도 할수 있게 활용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밖에서 일일이 찾아 만나러 다녀야 하는데 한곳에 모아 놓으면 효율성이 좋을 것 같다.
< 공무원으로 생활하면서 지역민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 저희들은 공무원 생활을 했으니까 지역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사진/영상
기록개요
기록명
마을기록단 '기억해유'_구)청사에 관한 기억 인터뷰
기록방법
인터뷰
마을명
-
시대
2022년
주제
구)군청사에 대한 서천군청 직원들의 기억
검색어
#구청사 #기억 #인터뷰 #환경보호과 #장기수 #나한일
수집 및 생산자료
사진 5점
제보자
장기수, 나한일
기록자
김주연
작성연월일
2022년 7월 22일
관련사업
서천읍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
관련기관
-
붙임자료
관련자료 없음
※ 본 내용의 저작권은 서천군 및 1차 저작자(기록자)에게 있습니다. 본 기록의 무단 배포와 변형, 활용을 금지합니다.
< 인터뷰 참여자 자기소개 > 김범수님은 지역경제과 경제정책팀장이시고 25년째 재직 중이시다 권종연님은 지역경제과 에너지팀장이시고 27년째 재직 중이시다
< 구)청사에 관한 기억 자율 이야기 > 권종연 팀장님은 군청의 역사성에 대해서 애기를 하자면 원래 군청이 있던 자리가 옛날 조선시대 때 관수령이 살던 관청이였다고 한다. 뒤가 산이고 앞에가 딱 트여있어서 입지로는 상당히 좋고 예전 선배님들 얘기를 들어보면 군청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 왔다고 한다. 그래서 저희가 사업을 해서 지질조사를 해보면 뻘이 좀 많다. 연안 지반에 약하고 바다였던 해수면이 낮아졌다 올라온 그런 역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가치가 상당히 좋다. 또한 성안마을은 읍성 안에 있다고 해서 성안마을, 성내리로 불렸으며, 성 밖에 있는 마을은 읍성 밖에 있어서 성밖마을, 성외리라고 했다.
< 구)청사 내 공간에 관한 이야기 > 권종연 팀장님은 다른 지역 청사와 많이 비교가 되고 부끄러웠다고 하셨다. 다른 지역에 가서 좋은 청사를 보면 우리도 언제 저런 청사에서 근무를 해보나 하는 그런 마음이 들 때가 많았다고 하셨다. 셋방살이 하던 사람이 좋은 양옥집을 보면 나도 저런 좋은 집에서 살고 싶다라는 그런 마음하고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범수 팀장님은 간혹 외부에서 내비를 찍고 오면은 뒤로 보건소 쪽으로 해서 버스가 그쪽으로 와서 후진하는 경우가 있는데 경로를 그쪽으로 안내를 해서 그렇다고 하셨다. 권종연님도 단축 경로를 서천군청을 찍으면 큰 도로가 아닌 샛길로 경로를 안내해 주기 때문에 처음 오시는 분들은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고 말씀하셨다. 내비를 믿고 오시다보니 그런 경우가 생긴다고 한다. 권종연님은 힐링공간에 대해 힐링이 될 만한 공간보다 아쉬움이 많다고 하셨다. 청사가 좁아서 같은 실과지만 임대해서 나가는 경우도 있고 지금도 3개의 실과가 임대해서 나가 있다며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하셨다. 청사가 좁아서 숨어서 힐링 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고 하시니 김범수님이 옛날에 당직실에 가서 몰래 쉬기도 했다며 지금은 보는 눈이 많아 그렇게 하기 힘들다고 하셨다. 권종연님은 특별히 기억나는게 내가 처음 입사당시가 90년대 중반 이였는데 그땐 차가 별로 없었다. 군수님이 관선군수였기 때문에 차가 별로 없어서 현재 직원주차장 자리는 과거 테니스장이 있었다. 테니스장 자체가 코트 하나에 많이 쳐봤자 4명 밖에 못들어간다. 단식 할때는 둘 여기도 2코트 3코트 나올텐데 쓰는 사람은 1시간에 4명~6명 밖에 못쓰니깐 우리 같은 사람들은 못들어가는 거다.옛날 당시에는 점심때도 하고 주말 같은데도 하고 옛날에는 토요일 오전까지 근무를 했으니깐 1시까지 근무를 하고 밥먹고 퇴근하고 여기서 운동하고 갔다. 예전에는 차가 없으니 주차장이 필요 없었다. 군청 전체를 통틀어 차도, 관용차도 몇 대 없었고 그러다보니 주차장이 클 필요가 없었다. 그러다가 차가 많아지기 시작 하면서 주차장 확보를 위해 땅을 매입하였다. 김범수님은 테니스 코트가 있었다는 것만 알지 할 정도는 안됐다고 하셨다.
< 구)청사 연계 사건 > 권종연님은 옛날 을지연습 이라고 을지훈련을 하면 밤을 샌다며 매년 8월에 하는데 최근에는 코로나 때문에 하지 못했다고 한다. 옛날에는 훈련을 굉장히 어렵게 하다보니 새벽에 갈 만한 곳이 숙직실인데 그마저도 사람들이 있다보니 거기서 껴가지고 쪽잠을 자고 했다. 을지훈련이란 전쟁을 가상해서 일주일 정도 도상 훈련을 하는거다. 어디에 적기가 와서 파괴를 했을 때 행정에서 어떻게 매뉴얼에 따라서 조치를 하나 하는 훈련을 시키는 국가 훈련이라고 하셨다. 군사적으로도 독수리 훈련 같은거를 하는데 행정도 똑같다고 보면 된다. 주요 시설물이 파괴되었을 때 어떻게 조치할건가 하는 가상 연습을 하는거다. 재난 발생 했을 때 매뉴얼에 따라서 사망자가 발생하면 어떻게 하는지 어떻게 이민 조치도 해야하는지 매뉴얼 그대로 연습을 한다. 그러다보면 밤새는 경우가 많다.일주일동안 교대로 하루24시간 근무하고 24시간 쉬고 전쟁 났을 때 그렇게 해야 된다.그렇게 하다보면 피곤하고 하니깐 의자를 쭉 펴놓고 쪽잠을 잤다.이런 훈련을 통해 동료애도 생긴다. 같이 밤을 새우고 그런 경우가 재난 같은 태풍이 오면 공무원들 비상대기하고 한다. 그러면 똑같이 상황주시하고 돌발상황에 대비를 해야하니 밤새 해야 하는 경우가 좀 있다.
< 청사이전에 관한 감정 > 권종연님은 청사 이전에 대해 기대감이 많고 새집에 살려면은 저게 얼마나 지어졌나 관심도 가고 그렇다며 설레는 마음이라고 하셨다. 김범수님은 일단 새집으로 가는 거니깐 다들 기대도 하고 있을테고 또 쾌적한 환경에서 근무를 할수 있게 돼서 근무 효율도 오를 것 같고 청사 이전으로 서천군이 더 발전을 했으면 좋겠다라고 하셨다 권종연님은 지금 청사에 휴식공간이나 환경이 열악한 부분들을 저희보다 젊은 친구들에 욕구에 맞춰서 했으면 하고 칸막이식으로 해서 손님이 올때면 불편함 없이 상담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있었으면 한다고 하셨다
< 서천군청사의 아름다운 변화가능성에 대해 > 권종연님은 현청사를 보존할 것인지 철거할 것인지 굉장히 고민도 하고 활용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고 하셨다. 개인적인 바램으로 근대역사 그런 쪽으로 보존 가치가 있다고 본다며 한 공간을 서천군 군청의 역사를 5분짜리 영상으로 만들어 찾아오는 사람들이 볼수 있게끔 했으면 한다.나중에 퇴직해서 오더라도 내가 여기서 근무를 했었다는 것을 나중에 손자들을 데리고 와서 보여주고 추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쓰여지길 원하셨다.
< 공무원으로 생활하면서 지역민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 권종연님은 지역민들에게 마안한 마음이 있다며 군청으로 인해 인근 거주민에게는 데모 등 피해를 본 부분도 있다보니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사진/영상
기록개요
기록명
마을기록단 '기억해유'_구)청사에 관한 기억 인터뷰
기록방법
인터뷰
마을명
-
시대
2022년
주제
구)군청사에 대한 서천군청 직원들의 기억
검색어
#구청사 #기억 #인터뷰 #지역경제과 #김범수 #권종연
수집 및 생산자료
사진 5점
제보자
김범수, 권종연
기록자
김주연
작성연월일
2022년 7월 29일
관련사업
서천읍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
관련기관
-
붙임자료
관련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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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참여자 자기소개 > 전용각님은 건설과 과장이시며 33년째 근무 중이며 퇴직을 1년 남겨두고 계신다. 한상광님은 건설과 팀장이시며 92년 8월에 입사 후 30년째 근무 중이시다.
< 구)청사에 관한 기억 자율이야기 > 전용각 과장님은 건물이 좁다보니 각 부서의 위치가 이리왔다 저리왔다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고 하셨다. 인구 수는 줄어 갔지만 업무에 대한 세분화로 공무원 수가 늘어나서 그렇다고 한다. 건물의 활용도에 대한 부분도 몇 가지만 가지고 포괄적으로 해놓고 하다 보니 아기자기한 부분이 없어서 그런 부분에 아쉬움도 있고 또 외부에서 별개의 일반인들에 대한 모임활동에 대한 그런 부분들이 여기 와서 있었으면 하는 그런 아쉬움이 상당히 많이 있었다고 한다. 문화재 지역이다 보니 증축이라든지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상황이다. 계획에 대한 부분도 주차장이 있었던 부분 아래를 파면 안 되고, 공원화 시켜서 하는 사업만 가능하여 지금 계획 중에 있다고 한다. 우리 건설과는 힘들고 고된 일이 비일비재하다. 복구 뿐 아니라 매년 11월~3월말 측량,설계를 계속 만들어내서 공사 발주하고 하다 보니 건설과 불이 꺼질 날이 없다. 내가 잠깐 면에 나갔다가 들어올 때가 있었는데 다시 건설과로 발령받고 나서 집에다 얘기한 게 있다. '저녁 먹으러 간다고 전화하기 전 내밥은 차리지마라'라고 말이다. 한달이면 주말 빼고 4~5번 밖에서 먹을 정도로 일이 많았다. 그때만 해도 아날로그반 컴퓨터반 이런 형식으로 하다보니 일의 속도도 느리고 기술직들 직원 숫자도 적었다. 주말에도 거의 나와서 생활하다 보니 집사람이 하는 말이 다른 집은 아이들 데리고 체험도 다니고 놀러도 다니는데 우리 애들은 그런 경험이 전무하다며 아쉬움과 미안해 하셨다. 요즘 젊은 직원들은 이해를 못한다. 그런 얘기하면 이상한 사람 소리 듣고 할 필요도 없는 거고, 연차 낸다고 하면 왜 연차내냐고 물어보면 나쁜놈 되는 거고, 젊은 사람들은 개인적인 프라이버시도 그렇고 또 물어보는 것도 싫어한다. 구)청사는 나를 성장시켜 주었고 우리 가족을 먹여 살려준 삶의 터전이다. 30년 넘게 이 공간에서 생활해 왔으니 말이다.
< 구)청사 내 공간에 관한 이야기 > 전용각 과장님은 80년대 후반엔 건설과 자리가 재무과였고 현재 서고 자리가 새마을과였다고 기억하고 있다. 현재 해양수산과 자리에서 근무할 때 진짜 열악했는데 그 이유가 뒤에는 옹벽이 높이 쌓여져 있고 건설과 바로 뒤로 해서 배수로가 있어서 계속 습하였다고 한다. 내부적으로 막혀있는 공간이다 보니 건강상태들이 많이 안 좋았다고 하셨다. 직원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었고 아늑하게 쉬었다 하는 그런 추억에 대한 부분 자체도 거의 없다. 공무원들이 어떤 민원 상담을 하고 싶어도 옛날 구매식당 자리 컨테이너 박스를 놓았던 곳에서 열악하게 얘기를 몇마디 나누기도 하고 또 다른 손님이 오시면 시끄럽고 해서 은행나무 밑에서 차 한잔 씩 나누었는데 쉼터 자리라고 할 수도 없이 그냥 서서 얘기를 하고는 했다. 지금은 은행나무가 가지치기를 많이 해서 그랬지 과거에는 굉장히 휘황찬란했다고 하셨다. 지역 제조사 컨테이너 박스를 다 들어내고 식당 일부를 해 놓았는데 식당자체가 삼각형으로 되어 있다 보니 공간이 좁았다. 그러다보니 맨날 나오는 기본반찬 하나가 자반고등어였다고 한다. 나이 먹은 직원들은 자반고등어 나오면 밥을 먹으러 가지 않고 특별한 메뉴가 나오면 가서 먹었다고 한다. 나중엔 직원들이 복리후생비를 올리든지 음식을 다양하게 해달라고 하는 그런 부분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옛날 구내식당 하시던 분들이 그곳이 헐리자 나가게 되었고 구내식당을 새로 해놓고 자유회에서 운영을 하였는데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전용각 과장님은 당진,예산 청사를 자주 가신다고 한다. 예전 당진,예산 청사가 우리 구조와 똑같다고 하셨다. 지금은 청사들을 이전해서 가봤는데 완전 신세계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보이니깐 부러운 마음이었다고 한다. 군청 내 힐링공간이 있냐는 물음에, 마음에 여유나 시간적 여유가 있는 날은 아침 일찍 나와서 뒤에 읍성을 산책을 하는데 여름엔 녹음이 우거져 멋있다고 하시며 30분 정도 운동 겸 산책 코스로 좋다고 하셨다. 다른 직원들도 점심먹고 운동삼아 산책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으로 지금도 얘기 할 수 있는 장소가 없어 구내식당을 이용한다고 한다. 그리고 여성 화장실이 의회 화장실 빼고 하나 밖에 없어 여성 공직자들의 안타까움을 얘기하셨다. 건설과 건물은 출근하고 에어컨을 틀고 환기를 시켜야 한다. 단층이라 시멘트에 열이 계속 쌓인다. 저녁에 퇴근할 때 문을 닫고 가기 때문에 그 열들이 다 밑으로 내려온다. 아침에 오면 29.5도 30도가 되어 숨이 탁탁 막힌다
한상광 팀장님은 군청 공간의 변화에 대해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본관은 66년도에 지어졌다. 그런 다음 계속 필요에 의해 건물들이 지어졌다. 그러다보니 청사구조가 분산되어 미로 같아서 민원인들이 불편해 하였다. 예를 들어 지역경제과를 설명하려면 본관 1층에서 볼 때 설명이 어려워 직접 모시고 가야했다. 한번은 옛날 근무할 때 어떤 민원인이 차를 세우더니 보고 뱅뱅돌더라. 네비찍고 군청을 왔는데 서천군청이 안 보인다고, 군청인데 군청인줄 모르는 거였다. 네비는 목적지에 도착했다는데 건물이 노후되고 분산되어 있다 보니 그렇게 생각하신 것 같았다. 민원인이 앉아서 대화할 곳이 구내식당 말고 없었다. 식당 겸 민원 상담실인 셈이다
< 구)청사 연계 사건 > 전용각 과장님은 겨울이면 볼 수 있는 군청의 특이한 광경에 대해 이야기했다. 군청사 건물이 개별난방이다 보니 아직도 겨울에는 난방유를 배급받아 추위를 견딘다고 한다. 앞에서 20리터 짜리 기름통을 30개에서 40개 정도를 차가 와서 배급을 해주는데 부서마다 그걸 가지고 일주일을 쓰는 것이다. 건설과는 늦게까지 아침 일을 하는 야간작업이 많다 보니 늦게까지 난방을 할 때가 많아 부족할 때가 있다. 이럴 때면 주유소에 직접 가서 타다가 넣기도 하고 했다. 신청사로 옮기면 그런 것이 없어지니 직원들이 엄청 기쁠 것 같다며 젊은 직원들은 그런 것에 대한 부분을 상상을 못 했을 것이라고 덧붙여 말하셨다. 지금도 겨울만 되면 아침 일찍 가서 기름을 타놓고 해야 되는 부분이 있다. 그런 일은 당분간은 이사 가기 전까지 지속될 것이고 나중에는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하셨다
한상광 팀장님은 안전총괄과에 2009년,10년 쯤 근무했을 당시 유류 피해가 나서 피해주민들에게 피해보상을 했던 때를 기억했다. 허베이 스피리트호 라고 태안에서 유류 오염사고가 나서 서천 앞바다 까지 유류가 떠밀려 왔었다. 당시 피해주민들에게 보상이 나올 때에도 노인분들은 4층 안전총괄과까지 힘들어서 못 올라오셨다. 그래서 밑에서 전화를 하면 내려가서 은행나무 밑에서 대화하고 했다.
< 청사이전에 관한 감정 > 한상광 팀장님은 신청사로 가면 모든 직원들이 다 좋아할 것 같다. 어떤 생활도 불편하지 않고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나서 좋은 환경으로 가니 기분이 새롭다고 했다.
<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주민문화공간과 문화활동에 대한 기대 > 전용각 과장님은 근무하기 꺼려하는 부서가 있다고 하셨는데 바로 안전총괄과다 건설과로 오기 1년 전까지만 해도 안전총괄과에 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보고를 하루에도 2~3번씩 많으면 4~5번씩 왔다갔다 해야했다며, 4층을 올라와 상당히 걸어가야 안전총괄과가 있었기에 힘이 많이 들었다고 한다. 영상회의도 매일 있다 보니 기본으로 하루에 3번 이상은 오르락내리락 했어야 했다고 한다. 지금은 영상회의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이 건물이 안전하게 주민들에게 자유롭게 활용될 수 있게끔 내부보강에 대한 부분을 확실하게만 되어 준다고 하면은 동아리 활동, 전시관 이런 부분들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문화활동이 활발이 이루어지길 원하셨는데 군청 밑에 보면 건물사라든지 설계사무소 건축설계 사무관련 사람들이 많이 있다. 청사가 옮겨지면 신청사 주변으로 다 이사를 가게 되면 완전한 죽음의 도시가 될 수밖에 없다며, 활발한 활동을 위해 카페를 만든다든지 많은 동아리 활동을 한다던지 그래서 사람들이 왕래할수 있게끔 도와주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 공무원으로서 주민에게 말하고 싶은 점 > 전용각 과장님은 지역민들에게는 내 직업이 민원을 해결하는 부분이니 지역주민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현장에 찾아가서 확인하고 불편사항을 해소할 수 있도록 노력을 끈임없이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불편함없이 부담감없이 군청을 찾아오셔서 민원을 요청하시고 하셨으면 좋겠다.
한상광 팀장님은 근무기간이 1년 정도 남았다며, 빨리 그만두고 집에서 편안하게 그동안 찌들었던 틀에서 벗어나서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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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기록단 '기억해유'_구)청사에 관한 기억 인터뷰
기록방법
인터뷰
마을명
-
시대
2022년
주제
구)군청사에 대한 서천군청 직원들의 기억
검색어
#구청사 #기억 #인터뷰 #건설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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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자
전용각, 한상광
기록자
김주연
작성연월일
2022년 7월 29일
관련사업
서천읍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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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년도에 장항읍사무소를 시작으로 공무원 생활을 하였다. 서천읍, 종천면에서 근무하고 군청에 들어와 근무하다가 장항읍장을 하고 시과장, 4급 서기관, 군정책회의실장을 하며 2009년 6월 말에 퇴직을 하였다. 현)서천읍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의 주민위원회, 농공단지 관리소장, 국립생태원 비상임이사로 지역봉사를 하고 있으며 오전에는 시니어 알바인 소비자 지킴이, 오후에는 월.수 한문강좌 강사를 하고 있다
구)청사에 관한 기억 자율 이야기
- 구)청사가 있던 자리에 원래는 고려시대 남산에 청사가 있었다. 남산에 청사가 있으니 불편한게 많았다. 물도 그렇고 여러 가지 조달하는 것 외에도 문제가 있어서 태종 1413년에 지금에 자리로 이전을 했다. 읍성을 만들어 놓고 이전을 한 것이다. 지금에 본관동이 예전에 향청이다. 그 옆으로 군관청이라고 군인들이 지키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입법, 사법 행정을 다했다. 군관청 옆으로 조그만한 시장이 있었고 위로 올라가면 지금에 탁구장인 곳에 예전에 누문이 있었는데 이곳은 시도 읽고 잠깐 쉬기도 하고 접객하는 곳이었다. 민원실 옆에는 형리청이 있었는데 이곳은 죄인을 가두는 형방이었다. 위로는 옛날 군수관사가 있었다. 그런데 기와집이고 지네도 나오고 뱀도 나온다고 해서 헐고 주차장을 만들었다.
지금에 예산실이 예전에 객사였고 옆으로 군기고, 작청이 있었다. 작청은 밑에 직원이 근무하는 곳이였다. 군청 위 현 일아빌라 자리에 외산문이 있고 사령청이 있었는데 이방이나 쫄병 등 아래 사람들이 근무하던 곳으로 이곳을 거쳐서 들어갈 수 있었다. 민원실 땅이 옛날에는 다 민간인들 집이였는데 다 사들여서 지금의 주차장을 만든 것이다.
군청뒤에 있는 산은 오석산이다. 석축을 해서 둘레는 3525척이고 옹성이 17개 있고 우물이 5개 연못이 1개가 있었다 우물물 1곳의 수질이 너무나 좋아서 상수도가 들기 전에 한원희씨란 분이 새벽마다 와서 물을 퍼다가 팔았다. 그러다가 상수도가 들어오면서 물을 팔지 못하자 먹고 살기 힘드니 대처해달라고 해서 수도 검침원으로 근무했다.
- 백제시대 때부터 모시를 재배하기 시작하여 모시는 1500년의 역사가 있다. 과거 근무당시 모시타운을 조성을 해서 모시유래비. 모시교육관 등을 만들었다
< 구)청사에 관해 들었던 이야기(비석군의 역사) >
- 군에 30개 넘는 비석이 있는데 예전에 내가 모셨던 박지원 군수는 본인이 열심히 했다고 공적비를 세웠고 이만근 씨라는 분은 6.25 때 전라도로 피난을 갔다가 못 돌아오시고 돌아가셨는데 그 아들들이 나 현직에 있을 때 사단장이었다. 아버지가 여기서 근무하다가 재직 중에 돌아가셨으니 비석을 세워야 한다고 해서 세웠다.
- 구봉서 군수라는 분은 하얀 비석이 있는데 그거는 도인이였다는 뜻이다. 옛날 어른이 나보고 일러주라고 얘기를 했는데 참 전설같은 얘기이다. 그 양반은 도인이라 아침에 참새가 짹짹하고 지저귀면 이방을 불러 저 새가 누구네 논에 가서 쪼아 먹자고 하니 거기 가서 연락을 해 새 좀 보라고 하며 새랑 대화를 했다고 한다. 또, 한양을 가려면 세수대야에다 물을 떠놓고 축지법으로 갔다 왔다고 한다. 구봉서 군수는 도인이라서 돌아가신 날짜 그만둔 날짜를 모른다고 한다.
- 유인남 군수는 여기에 비석이 있는데 두 개가 있다. 예전에 청사가 불이 났는데 그분이 직접 중건을 해서 고마움에 비석을 세웠다.
- 유왕 선생이라고 유일하게 서천분이 군수를 하셨는데 한양 중앙에서 감을 상납을 하고 세금을 바치라고 했는데 감이 많지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유유지에다 감을 다 심게 시켜서 감이 많이 생산되자 세금을 바치고 남는 건 농가 소득에도 도움이 되어 그 고마움에 비를 세웠다고 한다.
- 윤행교란 분도 군수였는데 논산분이시고 윤중 선생의 아들이었다. 마을이 늘 물이 차고 수해가 나서 군수 때 물이 잘 빠지게 뚫었다고 한다. 개구리가 많아 못 살 정도였는데 물이 잘 빠지자 개구리가 없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비석이 세워졌다.
- 비석군의 역사는 그렇게 나름대로 역사가 있다. 암행어사비도 있고 관찰사비도 있는데 암행어사가 왔다가 공적이 있으면 비석하나 세워주고 관찰사가 돌아다니다가 공적을 세우면 또 세워주고 이렇게 해서 한 30개가 생겨난 것이다.
< 구)청사 내 공간에 관한 이야기 >
- 필요하면 짓고 하다 보니 제대로 지어지지 않아 물도 새고 비좁고 조립식건물이라 불날 염려도 있었다. 여름에는 덥고 미로로 되어있다 보니 처음오시는 분들은 해매이셔서 꼭 안내를 했어야 했다.
- 직원들 탁구장이 있어서 잠깐씩 짬을 내서 탁구도 치고 했다.
- 동산에 올라가면 꽃이 만개해서 쳐다보면 기분이 좋고 길따라 산책하기도 하고 그나마 힐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 따로 휴게실이 없어서 잠깐 쉬거나 손님이 오시면 구내식당가서 마시고는 했다.
< 구)청사 연계 사건 >
87년에 수해가 크게 났었는데 7월 21일 새벽부터 비가 오기 시작해서 마서면을 제외하고 전부 다 니꺼내꺼 할 것 없이 물바다가 되었다. 판교면에 있는 계량기에 측정된 양이 736ml인데 이것도 전기가 나가서 더 이상 측정되지 못했던 것이었다. 얘기를 들어 보니 드럼통이 넘쳤다고 한다. 그건 1300ml 이상은 왔다는 것이다. 그때 당시 나는 새마을 계장을 했었는데 피해조사해서 보고 받고 피해지역 확인하고 피해복구 계획해서 2년을 집에 못 갈 정도로 엄청난 고생을 했다. 사무실에서 밥 먹고 잠도 거의 못 잤다. 나중에 설계하고 복구작업 할 땐 직원들하고 여관을 잡아 설계하고 측량하고 했다. 피해건수가 936건이나 되었다. 그때 당시 돈으로 108억 1200만원의 피해액이 났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1천억이 넘는 돈이다. 그때 당시 수해 복구 한 기억이 너무나도 생생할 뿐만 아니라 너무나 고생을 많이 해서 잊을 수가 없다
< 청사이전에 관한 감정 >
구)청사 뒤에 있는 오석산은 좋은 주산으로 명당산으로 내려오고 있다. 인산이라고 있는 도장산이 앞에 있고 서천중학교 앞에 우청룡 좌백호 안산이 있고 남산이 딱 펼쳐져 있어서 이게 명당터다. 40년을 근무해 봤지만 비바람이 불어도 조용하고 아무 태풍도 없고 그렇게 평온할 수가 없는 좋은 터다. 내가 정책실장 당시에 전국에 몇십개 시군을 조사를 해봤는데 이전해서 성공한 곳이 몇 개가 안 되었다. 거의 없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역세권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청사권이다 옮김으로써 거기가 상권이 형성되고 주거권이 형성이 되는데 그렇지 않다. 서천군민이 5만1천명이다. 앞으로 늘어나봐야 6만명도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옮기지 말고 600년 넘는 이곳을 유지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허허벌판에다 몇 백억을 들여서 공무원만 편하면 뭐하고 크고 좋게 지으면 뭐하냐. 상권도 그렇고 절대 형성이 안 될 것 같다. 지금 청사가 13개 읍면 중심지여서 이곳을 중심으로 살면 된다. 우리도 일본의 절차를 밟는 것 같아 결론적으로 나는 싫다 하지만 옮겨지게 되었으니 잘 되기를 바랄뿐이다.
< 구)청사는 개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
고등학교 3학년 때 시험봐서 들어와서 이 직장이 최고다 하고 우리 서천군민을 위해서 하나하나 계획해 나가면서 자부심을 가지고 다녔다. 중앙에서 예산을 따와서 국가공단 또 서천시장을 12억 예산으로 허허벌판인 곳을 도시계획 변경 준주거지역으로 만들어서 형성하였다. 86년 아시안게임을 대비하여 모시타운에 모시관, 모시 유래비, 모시 전통 공방, 또 유물관 등을 하고 서울시 연수원도 유치하였다. 보람이 있었다. 40년을 다니면서 여기가 우리집이었고 내 삶의 터전이었다. 그만큼 애착을 갖고 열심히 하였다. 집에서는 2등 아버지이지만 직장에서 만큼은 1등이었다.
< 공무원으로서 지역민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
2등 아빠 1등 공무원이었기에 나름 열심히 노력하며 사업을 많이 해왔다. 그런데도 아쉬움은 있다. 조금 더 노력을 했으면 서천군이 많이 발전할 수 있는 초석이 될 수 있는 그런 역할을 해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하면 주민들의 소득을 올려 줄 수 있을까 하고 노력도 했고, 바다를 기르고 육성하고 어민들 소득을 위해 노력했다.
< 개인적으로 희망하는 문화활동의 형태 >
아이들을 위해 키즈카페를 한다는 얘기도 있고 작은 도서관도 만든다는 애기도 있다. 문화카페라고 해서 자기들이 취미 생활도 할 수 있고 나름대로 지역에 특성이 있는 카페를 한다고 한다. 무슨 문화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지금 생각은 잘 안 난다. 하지만 이곳 성과 모든 게 어울리게 리모델링을 했으면 한다.
사진/영상
기록개요
기록명
마을기록단 '기억해유'_구)청사에 관한 기억 인터뷰
기록방법
인터뷰
마을명
-
시대
2022년
주제
구)군청사에 대한 퇴직공무원의 기억
검색어
#구청사 #기억 #인터뷰 #임성순
수집 및 생산자료
사진 24점
제보자
임성순
기록자
김주연
작성연월일
2022년 7월 28일
관련사업
서천읍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
관련기관
-
붙임자료
관련자료 없음
※ 본 내용의 저작권은 서천군 및 1차 저작자(기록자)에게 있습니다. 본 기록의 무단 배포와 변형, 활용을 금지합니다.
현 군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70년대부터 시작하였고 내무과, 자치행정과, 총무과, 기획실에서 일했다. 그러다가 한산면장, 마서면장 의회사무국 일을 하다가 서천 읍장으로 퇴직을 하였고 퇴직한 지는 10년이 넘었다. 현재 퇴직자 모임인 행정동호회 회장을 맡고 있다.
< 구)청사에 관한 기억 자율 이야기 >
- 일제 강점기 군청사 자리에는 나무집과 우물이 있었는데 그 우물물이 좋아서 한 어르신이 도라무통에 물을 떠다 필요한 집에 팔았다. - 우물터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다 우물 물을 길러 먹었으나 우물터에서 멀고 오기가 어려운 주민들에게는 우물 물을 팔기도 했다. - 군청 앞 비석들은 예전에는 흐트러져 있었는데 청사를 짓고 복원하면서 지금에 자리에 자리 잡았다. 대부분이 공적비로 세워진 것들이다. - 군청 위쪽으로 충령사가 있는데 옛날에는 그곳을 관리하던 산지기가 있었다. 그분이 돌아가시고 지금의 빌라가 들어섰다. - 옛날에는 관사 빼놓고는 전부 대밭으로 우거져있어서 무서웠다. - 청사 인근 서천여자중고등학교는 과거 표백한 것을 말리는 장소로 활용했고, 운동장도 본래 길에서 좁아서 계속 늘려나간 특이한 형태였다.
< 구)청사 내 공간에 관한 이야기 >
- 너무나 취약해서 다른 지역 청사와 비교가 되었고 열등감 마저 들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못 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움이 많았고 자랑하고 싶은 건 없으나 위치는 좋다. 서천 읍성 안에 서천군청이 들어있다는 자체가 말이다. - 힐링할 만한 공간도 없고 편히 쉴만한 공간이 별로 없다. 단지 구내식당 가서 오후되면 배고프니깐 라면도 먹고 차도 마시며 잠깐에 휴식을 취했고 야근 전 식사도 하고 쉴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 되었다. - 비좁고 미로 같은 구조에 고생을 많이 했다. 원래는 본건물에다 건물을 올려 지으려 했으나 기반이 오래되고 3층으로 짓기 어렵다 해서 뒤에다 건물을 지었다. - 직원들을 배려해 지금에 주차장 쪽에 테니스장을 만들었으나 얼마 못 가 주차공간이 너무 없어 주차장으로 바뀌었다. - 교육청 관사를 군에서 매입해서 탁구장으로 쓰고 있다. - 테니스장 옆으로 내무과장 관사가 있었는데 군수 다음에 내무과장이 제일 우선이었다. 옛날에는 내무과장이 대부분 외지에서 왔다 - 과거 본관동은 일제시대에 나무로 지어졌으며 후관동은 없고 창고 형태로 있었다 - 후관동 건물은 아치와 건물 높이가 다 달랐다. 필요에 의해 그때마다 건축물이 지어지다보니 그런 양상을 띠었으며, 의회 회의실은 천고가 높아 아치형태, 건물높이가 다르게 지어졌다. - 과거 민원인 주차장 자리에는 화재시 사용할 수 있는 연못과 둠벙이 있었다. - 과거 군청사 주변으로 울타리가 빙 둘러져 있었으나 관공서 개방에 따라 울타리를 제거해 현재 모습이 되었다. - 현재 청사 앞에는 공적비가 늘어서 있는데 공적비는 역대 군수와 공적을 적은 비석이다.
< 청사이전에 관한 감정 >
논란이 많이 있었지만 너무나 좋고 후배들이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어서 기쁜 마음이다. 옛 정이 들어 아쉬운 마음도 있고 현청사에 추억들이 많이 생각 날 것 같다. 청사 인근이 집 근처라 청사가 이전된다고 하니 서운하고 아쉽지만 건물이 노후화되어 화재위험 등 위험요소가 많기 때문에 신청사로 이전되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청사 주변 군청로 상가의 공동화 현상이 우려된다. 과거 시장이 현재 서천특화시장 자리로 이전했을 때에도 비슷한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 개인적으로 바라는 문화활동의 형태 >
주민을 위한 편의시설이 만들어 지기를 바란다. 문화공간으로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둘레길처럼 읍성 전체를 돌아보며 운동도 하고 볼수 있게끔 했으면 한다. 여기를 보겠다고 타지역 사람들이 오지는 않을 것이다 내내 서천지역민들이 이용을 할텐데 그런시설이 아니면 이용하는데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한다. 그리고 사회단체 중에서 사무실이 없는 곳이 많이 있다.그런 공간도 만들었으면 한다. 사람들이 왔다갔다 드나들어야 활성화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사진/영상
기록개요
기록명
마을기록단 '기억해유'_구)청사에 관한 기억 인터뷰
기록방법
인터뷰
마을명
시대
2022년
주제
구)군청사에 대한 퇴직공무원의 기억
검색어
#구청사 #기억 #인터뷰
수집 및 생산자료
사진 12점
제보자
신승훈
기록자
김주연
작성연월일
2022년 7월 28일
관련사업
서천읍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
관련기관
-
붙임자료
관련자료 없음
※ 본 내용의 저작권은 서천군 및 1차 저작자(기록자)에게 있습니다. 본 기록의 무단 배포와 변형, 활용을 금지합니다.
노희랑 투자유치과장은 1991년에 서기보를 시작으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1년 반~2년마다 과를 옮기며 약 30년 동안 서천군청사에 몸담고 있다. 전략사업단 팀장으로 일한 경험이 있다. 홍지용 투지기획팀장은 군대 가기 전, 1998년에 후별관에서 일한 경험이 있고 생태관광팀을 거쳐 투자유치과에 재직중이다. 투자유치과는 바이오 신산업, 보안산업, 산업단지 유치, 공공기관 유치를 맡고 있고 현재 대규모 리조트 추진, 서천 관광단지 조성, 동백정 복원, 마산 봉선저수지 개발 등을 하고 있다.
< 구)청사에 관한 기억 자율 이야기 > 주민들이 군청에 오실 때 불편한 일 중 하나가 대중교통을 이용하시는 경우다. 버스 노선이 군청을 지나가지 않는다. 이것 또한 문화재 구역이라 제한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거리에서 내려서 이곳까지 걸어오셔야 한다. 이런 곳은 전국에서 드문 경우고 특히 어르신들이 무더운 날 힘들어하신다고 노희랑 과장과 홍지용 팀장은 입을 모아 말했다.
< 구)청사 내 공간에 관한 이야기 > 청사의 역사가 느껴질 만한 에피소드가 있는지 두 분에게 물었다. 홍지용 팀장은 가장 먼저 서천군청을 둘러싸고 있는 읍성에 관해 이야기했다. 금계포란형(닭이 알을 품은 듯한 모양) 지대에 있는 걸로 보아 조선시대에 관아 터였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다고 했다. 명당자리인 만큼 서천군의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생각한다. 또 성안 빌라 옆이 옛 시장이 있었고 군청 올라오는 도로가에 하천이 있었다고 선배들을 통해 들었다. 고기를 잡을 수 있을 정도의 물길이었다고 한다. 청계천 복원 당시 지방자치단체에서 복원사업을 많이 했다. 군청을 이전하면 차 없는 거리를 만든다고 알고 있다. 생태계와 주민들을 고려해 서천도 그런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차장과 관련해서는 어느 팀장이 사무관에게 민원주차장을 확보하길 제안했는데 직원주차장도 없는데 왜 민원주차장을 만들어야 하느냐고 말했다가 그 사무관이 승진을 못 한 일화가 있다고 말했다. 직원주차장의 모습이 아닌 족구장, 테니스장 자리였을 때의 일로, 여름에 6시에 퇴근하고도 해가 지지 않았다. 부서별로 팀을 만들어 팀 대항 족구도 하고 어느 날은 술도 마시기도 했다. 직원주차장으로 바꾼 후에는 자가용이 많지 않던 시절, 주차장에서 고사를 지내곤 했다. 동료 직원의 새 차 앞에 돗자리를 펴고 막걸리를 먹었다고 한다. 홍지용 팀장은 청사 건물이 너무 낡아서 특히 후별관이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다고 했다. 98년도 군대 가기 전에 후별관에서 근무를 했는데 여름에 에어컨을 틀어놓아도 엄청 더워했다고 기억했다. 또 겨울이 되면 난방이 문제였다. 석유 난로를 쓰기 위해 막내들이 정자나무부터 2층까지 줄을 서 받아왔다. 고장이 나면 매연이 나와 사무실을 가득 찼다. 고치려고 수리기사를 불러도 오지 않았다. 이런 것도 추억이라면 추억인 것 같다고 말했다.
< 구)청사 연계 사건 > 노희랑 과장은 사무실 컴퓨터를 도난당한 사건이 있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CCTV가 어디든 있지만, 과거에 청사는 정문 개념이 없고 보안에 취약한 면이 있었던 탓이다. 환경보호과의 컴퓨터였는데 약 2대가 없어졌다. 컴퓨터 자체보다 그 안에 들어있는 행정자료, 개인정보가 중요했다. 다행히 시대상 개인정보 유출을 걱정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한다. 당시에도 사무실에 무인보안서비스(세콤)를 설치해놓긴 했으나 평소 낡은 문이 바람에 자주 열려 보안 경고 소리가 났다. 그래서 나갈 때 보안 설정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당시 당직자가 변상으로 책임을 지면서 마무리가 됐다고 말했다. 정문으로 들어오면 주변 큰 나무에 백로, 황로 같은 왜가리과 새를 볼 수 있다. 홍지용 팀장은 서천여중, 여고 앞 충령사 앞이 새들의 주요 서식지였는데 새들이 성안빌라 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울음소리와 새똥이 주민들을 불편하게 했고 결국 민원이 들어와 나무를 다 잘랐다. 그래서 새들은 지금 청사 근처로 거처를 옮기게 된 것이다. 서천군청사가 특이해 보이는 이유 중 하나다. 실제 새똥으로 인해 군청 직원들도 불편함을 겪고 있다. 주차해놓은 차에 분비물이 묻어있는 일이 다반사고 냄새 또한 심하다. 그래도 계절에 따라 새들이 오가는 모습을 보며 계절을 느끼기도 한다며 군청 직원과 민원인들이 힘들면 조치를 취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모습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 청사이전에 관한 감정 > 홍지용 팀장은 "직원들이 점심 먹고 읍성 주변으로 산책하는 걸 좋아했듯 주민들도 좋아할 장소다. 그런 의미에서 환경적으로 좋은 곳이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읍성 복원을 다른 지역처럼 멋있게 조성했으면 한다. 그 공간을 주민들이 누리시고 군청 직원들은 쾌적한 환경으로 가서 일한다면 모두에게 바람직할 것 같다"고 말했다.
< 개인적으로 문화활동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가 > 청사가 문화공간이 되는 것에 대해 홍지용 팀장은 지역 주민이 자긍심을 느끼고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지역 문화를 활성화하고 자연환경을 잘 보존하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고 말했다. 청사 이전을 하고 나면 군청을 중심으로 있던 건축사와 관련 기업 사무실이 함께 움직인다. 필연적으로 생길 공동화 현상을 해결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계속 모이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청년과 예술가가 모여야 하고 행정적인 도움도 필요하다. 지리적으로 움푹 들어간 모양이라 광장, 스피커 역할로 유용하다. 사거리에 ‘봄의 마을’이 있지만 그 부분 외에도 부모님들은 도서관의 비중이 높아지길 바란다. 또 기록관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개인적으로 주민들의 소통을 돕고 문화재와 각종 기록물을 보관하는 장소로서 도서관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지용 팀장은 청사를 이전하고 나면 남겨질 군청 사거리 일대를 걱정했다. 공동화되지 않게끔 서천군수님이 관심 두고 투자해주길 바라고 있다. 사곡리에 새로운 상권이 형성된 것도 주택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의견이다. 지역 활성화의 의미에서도 문화시설이 생기는 것이 좋고 동시에 도시계획을 세워 정비했으면 하는 의견이다...
< 공무원으로 생활하면서 지역민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 홍지용 팀장은 공무원으로서 지역민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냐는 물음에 군청 직원들 모두 비좁고 열악한 상황에서도 지역 발전을 위해서 밤잠도 줄여가며 고민,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 서천 관광단지 조성을 투자유치과에서 하고 있는데 어느 피해 지역 주민들은 불만이 있을 것이다. 원하는 기대에 못 미칠 수 있겠지만 이런 노력이 지역을 바꾼다고 생각하며 지켜봐 주시고 함께 고생해주시면 앞으로 좋은 효과가 있을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대학도 생길 거고 공공기관이 몇 개 더 들어올 예정이니 많은 기대와 성원을 부탁드리고 새로운 청사로 가면 더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 인상깊은 근무경험 > 군청에서 오래 일한 두 분께 인상 깊은 근무 경험을 물었다. 노희랑 과장은 ‘전략사업단’에서 일한 경험을 말해주었다. 정부에서 준 사업이 있는데 우리는 일반적으로 대안 사업이라고 불렀고 한 1조 2천억 정도 규모의 사업이다. 국립생태원과 국립해양생물자원관 그리고 국가 산업단 3개만 하는 별도 조직이었다. 전략사업단에서 일할 때 장항산업단지 착공식을 했는데 서기보에 있을 때부터 산업단지의 착공 여부에 대한 얘기를 듣기 시작했으니 기획한 지 약 20년 만에 해낸 일이었다고 한다. 오랜 기간 정성을 쏟은 일이다 보니 팀장으로 전략사업단에 있을 때 착공식 폭죽이 터지는 걸 보며 울컥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홍지용 팀장도 노희랑 과장과 비슷한 경험을 했다. ‘군장국가공단’은 군산지구와 장항지구. 서천, 장항 갯벌을 다 막아서 산업단지를 만든 지역이다. 이 사업을 정부가 해주겠다고 했는데 새만금 사업과 겹치면서 착공을 안 시켜준 일이 있었다. 그 사업 준비로 주거지가 수용돼서 강제로 떠나야 하는 분들이 계셨다. 주민들에게 2천억이나 되는 보상금을 줬지만, 그 사람들은 다른 지역으로 떠나버렸다. 게다가 그때 공업용수를 갖다 쓴다고 하굿둑을 막아서 위로 강경까지 금강하구 쪽에 연안을 끼고 있는 어업들이 망할 위기였다. 장항은 공업도시이기 전에 항구도시인데 1차 산업인 어업을 근간으로 했던 모든 산업이 같이 어려움에 놓였다. 그래서 2006년도에 18년을 미룬 사업의 조기 착공을 요구하기 위해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대통령을 상대로 시위했다. 당시 관제 데모를 주도해 주민 2~3천 명을 데리고 광화문에 갔고 결과적으로 전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내려와 상황을 보고 갔다. 데모가 끝나고 고발당했는데 그 이후로 여러 대안 사업들이 이루어지는 걸 보고 여러 감정이 들었다. 대의를 이유로 주민들이 희생당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런 일들을 과장님과 현청사에서 해왔고 누가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못 한다고 할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사진/영상
기록개요
기록명
마을기록단 '기억해유' _구)청사에 관한 기억 인터뷰
기록방법
인터뷰
마을명
-
시대
2022년
주제
구)군청사에 대한 기억
검색어
#구청사 #기억 #인터뷰
수집 및 생산자료
사진 5점
제보자
노희랑, 홍지용
기록자
지윤지
작성연월일
2022년 7월 27일
관련사업
서천읍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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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의 저작권은 서천군 및 1차 저작자(기록자)에게 있습니다. 본 기록의 무단 배포와 변형, 활용을 금지합니다.
1< 인터뷰 참여자 자기소개 > 박상규 산림경영팀장은 보령에서 약 2년 반 초임을 지내고 현청사로 와 사회진흥과를 거쳐 산림축산과에서 일하고 있으며, 산림축산과의 주요 업무는 산지 전용 허가와 산불 예방과 산불 진화차 운영 및 진화 작업이 있다. 산불 진화는 소방서가 아니라 군에서 직접 하고 있었다. 특히 봄이나 가을에 산불이 이슈화될 때 주말도 없이 출근하기도 한다. 산불이 났을 때뿐만이 아니라 예방을 위해 동원되는 행정력이 생각보다 많으며 국가의 땅은 산림청이 담당하지만, 서천의 경우 대부분 개인 사유지이기 때문에 지자체에서 관리하고 있다. 그 과정에 민원이 있기도 하다.
< 구)청사에 관한 기억 자율 이야기 > 박상규 팀장은 개인적으로 밤에 읍성을 쭉 지나며 운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직접 찍은 읍성 사진을 보여주며 야간에는 조명까지 비추니까 화려하고 예쁘다고 말했다. 성터의 산책로를 보면 위에 걸을 수 있는 길을 만들고 나니 경관도 더 좋아졌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몰라서 안타깝다.
< 구)청사 내 공간에 관한 이야기 > 서천읍성을 오랫동안 방치하다가 다시 읍성 정비사업을 하고 있다. 지금 많이 개편됐는데 동문 일부는 준공을 마치고 굉장히 좋아진 상태라고 한다. 주민들뿐만이 아니라 군청 직원들도 점심시간이면 산책하는 코스로 잘 이용한다. 등산로가 야트막해서 약 30분 걸을 수 있는 크기고, ‘읍성’이라는 상징성도 있어서 좋다. 현재 직원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는 곳이 원래 테니스장이었는데 주차난이 심하다 보니 주차장으로 바뀌었다. 어쩔 수 없는 대안이었다. 정문 방향 우측 공간은 원래 주택가였으며 그 공간을 헐고 주차장으로 사용했지만, 본래는 청사를 확장하려고 매입한 배후지였다. 정확하진 않지만 10여 년 정도 됐다. 당시 경영팀에서 그 일을 맡았는데 여러 후보지가 있었고 그중에 현청사를 앞서 말한 주차장 부지까지 포함해 재건축하고자 하는 계획을 유력 검토했다. 하지만 문화재 관련 법에 걸려서 심의위원들이 승인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 안이 좌초되는 바람에 새 청사 자리로 부지를 옮기게 된 상황이다. 다른 지역 또한 문화재 관련한 사항을 굉장히 엄격히 관리하고 있지만, 군청 뒤로 더 높은 곳에 서천여중, 여고가 있는 데다 농촌 지역임을 감안 했을 때, 5~6층 건물을 규제하는 걸 개인적으로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고층화, 지하화하고 동시에 주차장 부지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청사 자리를 유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 구)청사 연계 사건 > 청사를 증축 확장한 탓에 민원인들이 찾아올 때 미로처럼 느끼고 찾기 힘들어하신다. 그 정도로 낡았다는 증거이니 보기에 따라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충청남도 내에 청사 이전이 필요한 곳은 서천, 홍성 그리고 서산뿐인 걸로 알고 있다.
< 청사이전에 관한 감정 > 현 청사가 열악하고 고도 제한 때문에 주변으로 확장공사를 할 수 없어서 이전하게 됐는데 타 시, 군보다 위치적, 환경적 조건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다. 일단 읍성이 둘러싸고 있고 이런 장소가 국내에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익숙해 잘 모르지만, 외지인들이 오면 좋은 곳이라고 얘기를 한다. 신청사는 어떻게 보면 허허벌판에 짓는다는 느낌이 있어 조금 삭막할 것 같다. 박상규 팀장은 2~30대 공무원들의 생각은 잘 모르겠지만 공간이 열악하지 않았다면 현청사에 있는 게 더 좋다고 말했다. 청사 신축 담당 부서로부터 사무실 공간이 크게 넓어지는 건 아니라는 얘길 들었을 때는 본인도 놀랐다고 한다. 행정안전부에서 호화청사를 규제하기 위해 공무원 1인당 평수를 계산해 책정하기 때문이었다. 현청사와 공간의 크기는 크게 달라지는 게 없고 다만 청사 밖으로 흩어져있는 몇 실과가 6층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 다만 청사 직원들이 신청사로 가면 사무실이 넓어질 거라는 고정관념이 있기에 옮기고 나서 실망할까 봐 담당 부서에서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았다고 한다. 이 두 가지가 청사 이전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 주민문화공간으로 조성되는 현청사에 대한 생각 > 문화공간 조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박상규 팀장은 개인적으로 이상적인 계획이 될까 걱정하고 있었다. 문화공간, 전시관 관리가 부실한 경우가 많아서 방치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도시가 아닌 농어촌 특성상 이런 공간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노령인구가 많은데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 모르겠고 또 인구 유입의 효과가 없을 거라고 보고 있다. 소수를 위해 몇백억을 투자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효용성 있게 사용하려면 읍사무소를 이곳으로 옮기고 남는 공간은 군 단위로 약 10개 정도의 사회단체들이 들어오는 방법도 좋다고 말했다.
< 공무원으로 생활하면서 지역민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 외부에서 주민들과 내부에서 공무원이 서로를 바라보는 관점은 180도 다르다. 서천 인구는 계속 줄어드는 반면 공무원 수는 조금씩 늘어간다. 인구가 줄어듦에도 불구하고 공무원들은 여전히 인력난에 처해있다고 말했다. 지역 주민들의 인구는 줄지만 반대로 수요는 많아졌다는 것이다. 중앙정부와 충청남도의 방침이 계속 바뀐다. 일례로 국가 예산도 지금 600조가 넘어간다. 그 예산이 지자체, 국가에서 쓰는 돈이고 문재인 정부 때만 해도 거의 100조 가까이 많아졌다. 우리나라의 경제적인 규모가 커지고 예산을 수반하는 수요도 많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예산이 늘어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인구가 많았을 때 서천군 예산이 1천억이었는데 지금은 6천억이 다 되어간다. 이것만 보고 비교하면 안 되겠지만 예산이 많으면 일도 많아진다. 각종 지침이나 규정에 따라야 하고 예산 집행까지 하는 과정이 단순하지 않다. 각종 지침과 규제를 받고 나면 사업 발주도 해야 하고 또 준공하고 사후 관리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다. 중앙 부처에서 하는 일도 있고 사업 중에 부서에서 선택해서 하는 것도 있지만 일방적으로 내려오는 업무가 있다. 의지와 상관없이 해야 하는 사업들이 상당히 많아서 산림축산과 같은 경우는 과 자체보다도 중앙정부나 충청남도에서 예산이 내려오는 게 90% 이상이다. 이런 내부 상황을 모르고 ‘시골이라 인구가 줄어드는데 왜 공무원은 자꾸 늘어나느냐.’ 이렇게 접근하시는 주민들이 계신다. 공무원 입장에서 “인력을 늘리지 말되 예산도 늘리지 말아라. 기본만 하겠다.” 식의 논리를 주장할 수 있겠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부분이다. 공무원의 일이 제가 30년 전보다 여러모로 힘들다. 아무리 전산화되었어도 예산의 규모가 매년 늘어나니까 그걸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민원 건수를 포함한 내용의 범위와 난이도도 인구가 많았을 때보다 적은 지금이 더 많다. 이런 점을 알지 못해서 생기는 입장차이가 공무원의 입장에서는 안타깝다고 주민들에게 전하고 싶어 했다.
사진/영상
기록개요
기록명
마을기록단 '기억해유'_구)청사에 관한 기억 인터뷰
기록방법
인터뷰
마을명
-
시대
2022년
주제
구)군청사에 대한 서천군청 직원들의 기억
검색어
#구군청사 #기억 #인터뷰 #산림축산과 #박상규
수집 및 생산자료
사진 4점
제보자
박상규
기록자
지윤지
작성연월일
2022년 7월 26일
관련사업
서천읍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
관련기관
-
붙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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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참여자 자기소개 >
자치행정과는 인사 및 조직관리, 선거 업무, 주민자치 및 행정구역관리와 같은 행정지원에 관한 일을 하는 과로, 한승교 조직인사팀장은 서천군청에서 20년 넘게 근무하고 있고, 허광무 주무관은 조직인사팀에 재직중이다.
< 구)청사에 관한 기억 자율 이야기 >
한승교 팀장은 군청 뒤 읍성에 대해 얘기해줬다. 읍성의 동문은 복원을 다 마쳤고 서문은 복원 중이라고 한다. 홍성에 있는 홍주성처럼 흔적이 많이 남아 있으면 도전할 가치가 있을 텐데 서천읍성은 아예 터만 남았다. 그래서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의 의미에 대해 생각도 했다고 한다.
< 구)청사 내 공간에 관한 이야기 >
청사 내 힐링공간으로 허광무 주무관은 큰 느티나무 아래 쉼터를 언급하며, 군청이 5~60년대에 지어졌고 나무 크기로 보아 군청이 지어지기 전부터 있었고 존치한 것으로 보인다.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항상 직원들이 모여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장소다.
현재 주차장 일부를 집회 장소로 쓰고 있는데 한승교 팀장은 주변 학교에 소음공해가 되고 좁은 곳에 천막을 치고 집회하는 시위자들도 안타깝다며 주차난 외에도 여러모로 주차장에 배치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신청사로 가게 되면 집회 장소를 따로 마련해야 한다고 얘기를 해놓기도 했다.
허광무 주무관도 직원들의 불편함도 상당하다며 공감했다. 민원인 주차장은 최근에 만들어졌으니 비교적 괜찮다. 하지만 직원주차장이 매우 협소하고 민원인 주차장을 직원이 이용할 수 없는 게 원칙이다 보니, 직원주차장에 주차하려면 오전 8시 전에 출근해도 자리가 거의 없어 근처에 있는 아인빌라 주차장과 그 아래 공간을 이용한다.
한승교 팀장은 서천군청에 오랫동안 근무하며 여러 차례에 걸친 주차장 확장을 지켜본 사람으로서 주차장은 넓을수록 좋다고 여기고 있다. 그래서 신청사의 주차장을 넓게 설계한다고 해도 집회 장소 분리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청사 이전을 하면 주차장 문제가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승교 팀장은 군청이 증축을 못 하는 이유는 뒤에 있는 서천읍성과 함께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묶여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청사 신축 논의가 이루어질 때 현 청사 위치를 그대로 하되 옆에 건물을 만드는 식으로 고려하기도 했었다. 성안마을도 그 이유로 매입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현재 예산실은 과거 군수 관사였지만 20년 전(2002년) 나소열 군수님이 4대 임기를 시작할 때부터 관사로 쓰지 않았다. 예산실 1층은 비정규직 노조 사무실이다. 관사였던 건물이 하나 더 있는데 과거 교육지원청 관사였다. 입구와 가까운 강당은 직원들을 위한 탁구장이 있고 안쪽 방은 보조사무실로 사용 중이라고 한다.
또 직원들의 편의 시설이 부족하다. 휴게실조차 없어 주로 구내식당에서 만난다. 화장실도 남자 화장실은 1층과 2층에 하나씩 있지만, 여성 직원들은 화장실이 본관 1층 한 곳밖에 없어 불편함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 구)청사 연계 사건 >
오래된 청사의 모습을 담고자 드라마, 영화 촬영팀이 몇 번 찾아왔었다. 최근에도 촬영 협조를 한 기억이 난다. 본관 1층 투자유치과와 자치행정과와 군청로 사거리를 촬영했었다.
올해 상반기에 새끼 쥐가 나와서 끈끈이로 잡은 일이 있다.
겨울에 눈이 많이 내리면 건설과에서 기본적으로 제설작업을 하지만 가파르고 좁은 길의 특성상 제설이 쉽지 않은 경우, 직접 제설에 나서기도 했다.
허광무 주무관은 민원인들이 군청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다고 말했다. 청사가 증축으로 의도치 않게 미로 같은 모양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주민들이 오시면 원하는 과를 찾지 못하고 항상 물어보신다. 이정표가 있어도 그것만 보고 찾아가기는 어렵다. 농정과나 지역경제과의 경우 후관, 후별관에 있다. 뒤 건물을 못 찾고 다시 나가려고 해도 온 길로 가야 하는데 헷갈려서 갇히는 일이 잦다고 설명했다.
< 청사이전에 관한 감정 >
청사 이전에 대한 느낌이 어떤지 물었다. 허광무 주무관은 청사 이전에 대해 직원들의 반응은 대체로 좋다. 새로운 건물에서 근무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승교 팀장은 개인적으로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군청 사거리에 있는 상가들이 타격을 많이 받을 거고 뒤로 서천여중, 여고의 등하굣길이 매우 어둡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청사가 있으면 불이 켜있어 괜찮은데 이전 직후 건물을 사용하지 않으면 우범지역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 문화공간으로 변화할 현청사에 대한 생각 >
한승교 팀장은 군청 이전을 하고 나면 문화공간에 마당 조성을 기획 중이라고 들었다. 좋은 생각이다. 서천군 학교 학생들의 시험 기간을 피해 평상시나 방학에 문화행사를 하면 반응이 좋을 것이라 말했다.
< 공무원으로 생활하면서 지역민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
지역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허광무 주무관은 청사 이전 건으로 최종 후보지를 선정할 당시, 공무원들은 군청 근처에 사시는 주민들이 반대를 많이 하실 거라 예상했다고 한다. 아무래도 군청이 나가고 나면 구시가지가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반대가 심하지 않았다. 그 덕에 수월하게 후보지를 선정할 수 있었다. 현재 위치에서는 증축의 한계가 있으니까 그 사정을 알고 이해해주신 것 같다며 지역민께 감사함을 전했다.
사진/영상
기록개요
생산자료
붙임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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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참여자 자기소개 >
김은이 과장은 민원업무의 종합조정과 민원행정뿐만 아니라 지적재조사 업무도 수행하는 민원봉사과의 과장으로 재직 중에 있다.
강미정 민원행정팀장은 읍사무소에서 근무하다가 1995년부터 현 청사에서 근무 중이다. 과거 지역경제과, 안전총괄과를 거쳐 현재 민원봉사과에서 일하고 있다.
< 구)청사 내 공간에 관한 이야기 >
김은이 과장은 "군청사를 읍성이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직원들이 점심식사 후나 휴식을 취할 때 산책로를 걸으며 힐링하는 공간이 되어서 좋다. 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못 걷지만 봄이나 가을은 굉장히 운치가 있다. 가끔은 산책길을 걸어서 출퇴근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강미정 팀장은 "처음에 군청 내 구내식당도 없어서 개인 주택에 식당을 마련해 식사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관사 자리도 사무실로 사용하는 등 여러 증축과정을 거친 것이다. 가장 최근에 증축한 곳은 후관동 4층이다. 그렇다 보니 내부환경이 쾌적한 편이다. 원래 3층 건물인 본관 옥상에 만든 조립식 가설건물이고 안전총괄과랑 재난종합상황실이 배치돼 있다. 얼마 전까지 거기서 근무했는데 올라가는 계단이 오래된 철제 계단이다. 1년에 한 번씩은 직원들이 다치는 사고가 난다. 며칠 전에도 어느 과 팀장이 발목이 삐끗한 일이 있을 정도로 항상 신경 써서 다녀야 하는 곳이다. 비나 눈이 오면 바람이 불면서 계단 안까지 다 들어오기 때문에 막아달라고 요청했지만 어차피 곧 이전한다는 이유로 보완해주지 않는 상황이다. 특이한 점은 청사 내에서 가장 고층에 있는 건물이라 청사 근처에 사는 새소리가 많이 들린다.
강미정 팀장은 2층에는 여자 화장실이 아예 없어 불편하다고 말했다. 1995년부터 군청에서 성별에 상관없이 직원을 뽑기 시작했다. 당시 읍사무소에서 근무하다가 95년에 첫 전입 시험을 봐서 현 청사로 왔기 때문에 정확하게 기억한다고 한다. 여직원이 있긴 했지만 실과 별로 한두 명씩밖에 없었던 그때부터 현재까지 여자 화장실은 1층 한 곳뿐이었다. 증축도 했고 여직원이 늘어나 화장실을 만들고 싶어도 자리가 없는 상황이다.
여성 휴게실이 없어진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탁구장 안쪽에 있는 방을 원래 여성 휴게실로 사용했다. 지금은 비정규직 노조 사무실로 사용한다. 휴게실을 대신하는 공간이 있는데 4층에 위치한 재난종합상황실이다. 냉난방 시설도 잘돼 있어 재난 상황이 아니면 비워두는 회의실이라 평소 직원들끼리 속 이야기를 한다. 또 점심시간에 손님을 모시거나 민원인과 상담할 때 활용하고 있다.
김은이 과장은 조직이 계속 분과, 증가한 것도 증축의 원인이 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공간 배치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사회복지과, 관광축제과, 문화예술과 사무실이 청사 밖으로 나가 있다. 발리 노래주점 건물 2, 3층을 관광축제과와 문화예술과가 임차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직원들이 야근하는 날이면 노래방 소음을 견디며 근무한다고 한다.
대각선으로 사회복지과 건물이 있는데 앞서 말한 두 과의 건물보다 더 오래됐다. 옛날에 농업기반공사과가 임차해서 쓰다가 독립된 건물로 이전하면서 사회복지과가 지금까지 사용하고 있다.
또 민원봉사과의 경우는 사람들이 많이 찾는 부서치고 공간이 좁다. 민원실이 일렬로 배치가 되어있으면 한눈에 들어와서 찾기도 수월할 텐데 ‘ㄱ’ 모양으로 돼 있어 불편해하는 분이 있다. 민원봉사과뿐만 아니라 본관을 포함한 모든 건물을 증축하는 바람에 안쪽으로 들어가는 구조다. 이정표를 보고도 모르셔서 안내할 때도 말로 하는 건 한계가 있다. 어르신은 복잡한 설명을 빨리 외우지 못하시니까 웬만하면 직접 모셔다드린다고 말했다.
강미정 팀장은 비 오면 물이 새는 일이 잦아서 한번은 본관동 2층에 있는 군수실 앞에서도 양동이를 대놓고 있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에어컨 온도 규정이 심하지 않은데 옛날에는 무조건 절약해야 했다. 강미정 팀장은 10년 전 청사 뒤 조립식 가설건물에 있는 지역경제과에서 근무했는데 당시 에너지 절약 기준에 맞추느라 냉난방을 원하는 대로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여름철은 28도에 맞춰야 했고 충청남도청에서 점검을 나오는 사람이 있었다. 28도에 온도를 맞춰놓고 있었는데 건물이 조립식 건물이라 다른 사무실처럼 내부 온도를 28도로 유지할 수 없었다. 에너지를 담당하는 부서도 바로 그 지역경제과였는데 점검하시는 분도 ‘여기는 온도 기준을 지킬 수 없겠다’고 말할 정도였다.
< 구)청사 연계 사건 >
김은이 과장은 군청 근처에 서식하는 철새 문제를 떠올렸다. 성안마을 부근에서 지내던 새들이, 주민들의 민원으로 나무를 베면서 서천여고 올라가는 길가에서 많이 지낸다는 것이다. 요즘은 번식해 무리가 나뉘었는지 사무실 옆으로 와서 똥을 싸놓으니 냄새가 많이 나 창문을 열지 못할 정도로 불편하다고 한다. 새똥이 산성이 있어 차를 부식시키고 나무도 많이 죽고 있다.
이따금 조류에 관심 있는 사진작가들이 오셔서 백로를 찍어가는 분도 있는 걸 보면 이 새 군락지를 관리, 조성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새를 쫓아내지 못한다면 차라리 청소를 자주 한다거나 하는 공생의 길을 도모하는 방법을 찾고 싶어 했다.
< 청사이전에 관한 감정 >
앞으로 군청 산책로를 많이 그리워할 것 같다.
김은이 과장은 "직원들의 신청사에 대한 전반적으로 반응이 좋다. 우리가 헌 집에서 새집으로 이사하면 기분이 좋듯 직원들도 비슷한 기분이라고 말했다. 다만 사무실 공간이 좁아서 직원들끼리 서로 등을 맞대고 근무하며 느끼는 친밀감이 있다. 이전하게 되면 그런 공간에 대한 추억이 많이 떠오를 것 같다"고 한다.
강미정 팀장도 "청사 이전이 결정되고 먼저 퇴직하신 과장님들을 생각하니 좀 안타깝다고 생각한다. 입사하고 임기가 끝날 때까지 불편한 환경에서 근무하셨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 서천군청사의 아름다운 변화가능성에 대해 >
김은이 과장과 강미정 팀장은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을 해서 다행으로 여기고 있었다. 청사가 이전하고 나면 구도심 공동화 현상으로 구도심이 될 테니까 정비 중인 서천읍성을 이용해 문화의 중심지로 만들면 어떨까 싶다. 읍성과 산책로를 와본 사람들은 다 감탄했다. 더불어 백로와 함께하는 방법을 찾아서 자연 친화적인 공간으로 만든다면 외부인도 많이 찾아오는 명소가 되겠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 공무원으로 생활하면서 지역민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
공무원으로서 군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강미정 팀장은 서천이 인구도 많이 감소하고 재정 자립도로 보면 충청남도에서 하위권에 있지만 많은 공무원이 최대한 많은 성과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사실 오직 서천군청에서 일하고 다른 지역에서 근무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함께 일하는 공무원과 주민들을 보며 다른 곳 공무원, 주민들도 다 이렇겠지.’라고 생각하며 지냈다. 그런데 2019년도에 공무원교육원으로 1년 동안 장기교육을 받고 나서 ‘서천군 공무원들이 일을 참 열심히, 성실하게 하는 편이구나’ 하고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그러니 주민들도 함께 자부심을 가졌으면 좋겠고 만나면 질책보다는 격려 부탁드린다. 어쨌든 다 서천에 사는 지역민이고, 누군가의 가족이고 자식이니까 서로를 그렇게 바라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은이 과장도 강미정 팀장의 말에 공감하며 공무원과 국민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관계고 각자 주어진 입장에서 최선을 다해 맞춰나간다면 서천군 발전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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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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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의 저작권은 서천군 및 1차 저작자(기록자)에게 있습니다. 본 기록의 무단 배포와 변형, 활용을 금지합니다.
< 인터뷰 참여자 자기소개 >
정해민 도시건축과장은 2019년에 자치행정과 조직인사팀장으로 일했다.주요업무는 건축인허가 및 신고업무, 지역개발 업무 등이다. 현재 신청사 짓는 일(충남개발공사에 위탁, 준공까지)을 도시건축과에서 진행하고 있다.
< 구)청사에 관한 기억 자율 이야기 >
군청길이 너무 좁아서 버스가 다니지 않는다. 군청 직원들이나 민원인들이 너무 불편해한다.
읍성을 정비하고 있지만, 그동안 손을 전혀 못 대고 있던 부분이다. 한산면에 있는 한산읍성도 일부 발굴, 보수하고 있는데 서천읍성도 접근성과 편의성을 높여서 주민들이 평소에도 자주 찾을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란다.
읍성 가는 길이 평일에 직원들이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나서 걷는 산책코스다.
< 구)청사 내 공간에 관한 이야기 >
정해민 과장은 서천군청사가 가진 지리적 요소가 군청을 특별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했다. 읍성이 군청을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그 역할이 더 상징적으로 보일 수 있고, 외지 손님이 군청을 찾았을 때 대체로 ‘전국에서 이런 건물은 처음 봤다’, ‘문화유산으로 지정해야 한다’와 같은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본관과 별관은 콘크리트 건물이라 열을 덜 받는 편이지만 후관동은 샌드위치 패널로 지어진 조립식 건물이다 보니 여름, 겨울에 근무하기가 정말 힘들다. 특히 여름은 출근 시간 때에도 실내온도 30도가 넘기도 하는데 겨울도 같은 이유로 매년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처럼 후관동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애로사항이 많다고 한다.
도시건축과가 있는 별관을 올라오는 계단에 있는 넥산(비가림막, 차양)도 원래 없었는데 직원들의 편의를 위해 하나씩 보수를 한 것이라고 한다. 그 외에도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어차피 이전할 건물이기에 큰 투자를 할 수 없는 상황이다.
탁구장이 된 교육지원청 관사는 체육실이 아닌 여직원들 휴게실이 본 목적이었다. 그런데 건물이 본관과 꽤 떨어져 있다 보니 잘 사용하지 않아서 탁구장과 공무직 노동조합 사무실로 사용하는 거라고 말했다.
군수 관사 건물은 현재 예산실로 쓰이고 있는데 관선 군수였던 1~2기 때는 관사로 쓰다가 3기~5기 민선 군수를 지낸 나소열 군수님이 4기(2002년)부터 관사를 쓰지 않겠다고 하자 마침 부족했던 사무실 용도로 쓴 것이라고 한다.
8개 팀으로 구성된 사회복지과는 본관 실과 2개의 규모와 맞먹는 큰 과다. 2015년에 청사 밖으로 나와 농업기반공사가 쓰던 건물을 쓰고 있다. 정해민 과장이 인사팀장으로 근무하던 2019년에 조직개편을 했다고 한다. 과가 계속 늘어나고 군청 안에 더 이상 배치할 자리가 없자, 연관성 있는 문화예술과, 관광축제과 그리고 사회복지과까지 총 3개 실과의 위치가 불가피하게 멀어진 것이다. 그중 문화예술과와 관광축제과는 원래 산부인과였던 곳을 임대해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시골 특성상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아서 자가용이 없으면 출퇴근이 어렵다. 직원들의 경우 출장도 가야 한다. 직원주차장을 조금씩 늘려도 항상 부족하다.
민원 주차장도 원래 주택이 있던 자리인데 다 매입, 철거해 만든 공간이다. 건너편 민가 자리도 군청에서 매입했는데 어떤 목적이었는지는 알 수 없고 현재 다른 사업을 계획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고 설명했다.
< 구)청사 연계 사건 >
후별관동 뒤로 지금은 정비 차원에서 베어내고 없는 대나무 숲이 있었다. 대나무 숲에 지네가 많이 살아서 사무실에 자주 나왔고 아침에 출근하면 바닥에 잔해가 있었다고 한다.
< 청사이전에 관한 감정 >
신청사 짓는 일(충남개발공사에 위탁, 준공까지)을 여기 도시건축과에서 진행하고 있는데 사실 청사 이전을 일찍 시작했어야 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매년 겨울이면 기름 난로를 쓰기 때문에 겨울마다 주유소 차가 오고 직원들이 직접 20L 통을 들고 사무실을 오고 가며 나른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중에 이런 건물에서 근무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거라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서천군 예산이 적은 것도 있고 12년 동안 계셨던 군수님이 새 청사 위치를 물색하셨지만 특정 지역 주민들의 요구에만 응하기 곤란했던 게 주요 원인인 것 같다. 그 뒤로 2선 한 군수님이 결정을 내리셔서 일을 추진하는 중이다.
내년 3월이면 신청사가 완공되고 5월에 이전한다고 한다. 직원 대부분이 굉장히 기대하고 있다. 현청사 뒤 읍성에서 걷는 것과 평지 공원에서 걷는 건 느낌이 다르긴 하겠지만 신청사 부지로 가면 넓은 주차공간과 공원이 조성될 예정이라 다들 좋아할 거로 생각한다.
또 주민들의 경우 사무소나 업소를 하시는 분들은 수요가 떨어질 테니 아쉬움이 클 것이다. 집회는 거의 끊이지 않고 경찰서에서 집회 신고를 항상 청사 민원 주차장에 해주니 그 앞에 사시는 성안마을 분들은 청사가 옮겨서 좋은 희비가 엇갈리는 상황이다.
< 주민문화공간으로 변화하는 현청사에 대한 기대 >
문화공간이 들어오는 것 대해 어떤 기대가 있는지 묻자, 정해민 과장은 개인적으로 기대하고 있는 건 없다고 말했다. 운영하기 나름이겠지만 많은 주민이 이용할지 잘 모르겠다는 이유였다.
농촌중심지 활성화 사업이 유치되기 전에 청사 자리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새로 지으려고 했었다. 근데 서천읍성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층수 제한이 있고 문화재청에서 문화재 현상변경 허가를 받아야 하는 복잡한 문제 때문에 최종적으로 그 계획이 배제됐다고 한다. 다만 현청사 주변의 공동화 현상을 우려해 사거리 우측에 있는 서천읍사무소와 여러 사회단체를 현청사로 이전한 후, 읍사무소 자리를 매각하면 공동화 현상을 막을 수 있을 거란 논의도 있었다고 한다.
그런 과정이 있었음에도 청사를 문화공간으로 조성하기로 한 것은 아마 서천과 장항에 문화예술 분야 공간 확보에 힘쓰신 전 군수님의 생각이 반영된 것 같다. 현재 도로 정비를 포함해 성안마을도 경관계획, 범죄예방 도시디자인 사업과 같은 정비사업을 설계 중이지만, 이런 공동화 방지 사업들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우려된다.
< 공무원으로 생활하면서 지역민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
주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물었다. 정해민 과장은 주민들에게 이 공간을 돌려주게 됐으니 이왕이면 농정과에서 주민들의 의견을 잘 수렴해서 도움이 되는 공간을 만들어드렸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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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보호과 장기수 과장님은 91년 7월 근무를 시작하여 31년간 근무하다가, 2022년 6월 말에 퇴직을 하였다.
환경보호과 나한일 팀장님은 30년 근무하였고 환경보호과로 온 지는 3년 정도 되었다.
< 구)청사에 관한 기억 자율 이야기 >
- 장기수 과장님은 직원들 후생으로 테니스장이 있었는데 밥먹고 나면 테니스도 치고 했던 장소인데 차가 늘어나면서 여기가 주차장으로 바뀌었다며 직원들이 제일 아쉬워 하는게 건물이 작다 보니까 뭐 하나 할 수 있는 공간 자체가 없었다고 말했다.
- 예전에 본관동 바로 옆에 조그만한 식당이 있었는데 여기서 손님맞이하고 차 한 잔 먹고 또 어디가서 못먹으니깐 구내식당에 시키면 차를 갖다주고는 했다. 그래서 이사가야 한다고 얘기하는 직원들이 많았다. 어디 갈데가 없으니 일하면 일하는 거고 앉아서 쉬면 쉬는 거고 그랬다. 문화재 구역이다 보니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안그랬으면 주차장 쪽에 5층이든 10층이든 지었을 거다.
- 현청사 공간이 비좁아 지금 근무중인 환경보호과 사무실을 나누어 쓰기도 했다. 공간을 구분하여 한 사무실 내에 2개의 문이 있었고 직원들이 앉아 있으면 사이로 못지나가 끝에서 끝으로 돌아가야 했다. 업무가 늘어나면서 직원들도 늘어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고 공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맞춰서 하려다보니 좁게 생활할 수 밖에 없었다.
- 나한일 팀장님은 후관동 건물이 조립식 건물이라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너무나 춥다며, 조립식도 옛날 조립식이라 한 5cm 두께 밖에 안돼서 더위와 추위를 피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에어컨을 틀어도 시원하지가 않다.
- 20년전에 구내식당하고 환경보호과 앞에 산림축산과 지역경제과하고 옆에 테니스장과 주차장까지 해서 그당시 2층으로 사무실을 지을 구상을 했었다. 청사가 외주 나가는 것보다 한자리에 있었으면 좋겠다 해서 이런 얘기들을 듣다보니 일부는 나가야 한다 일부는 안된다 하다가 결국은 추진을 못했다. 서천여자 중학교를 이전하고 군청사가 해당 자리로 이전하는 계획도 있었고 도로 정비등을 하면 상권도 함께 살 수 있는 방안으로 생각했다.
- 근무환경이 저희들이 제일 열악한 것 같다. 충남에서 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따져도 이런 곳이 없다. 2002년 IMF가 끝나고 호화청사 때문에 경기도나 성남시 용인시청 시끄러울 때 청사를 새로 지으려 했는데 그때 행안부에서 승인을 안해 주는 바람에 사업을 추진 못했다.
< 구)청사 내 공간에 관한 이야기 >
장기수 과장님은 본관 옆 동에 느티나무가 있다며, 이 느티나무가 봄에서부터 파랗게 있다가 가을이되면 낙엽이 떨어지는데 그걸 보면서 또 한해가 가는 구나하고 기획실에 근무당시 그런 추억들이 많이 남는다고 말했다. 계절이 바뀌는 것에 따라 느티나무의 변화된 모습이 5월에는 이렇게 푸르러 졌다가 12월이 되면 다 떨어지고 또 그렇게 다시 1년이 갔다.
힐링공간에 대한 물음에 장기수 과장은 특별히 없었다고 했다. 사무실에만 있다 보니깐 이용할 수 있는 상황도 없었고 90년대 초반에 탁구장 동아리 운영을 하여 실과별로 대항하는 등 활발히 이용을 했었다. 지금도 직원들이 점심때 와서 치고 간다. 하지만 이용하는데 너무나 열악하다.
나한일 팀장도 힐링공간은 없었다고 말했다. 단지 점심 식사하고 서천 읍성을 걷는 것이 나와 직원들의 유일한 낙이었다. 운동겸 돌다보면 소화도 되고 좋았다. 과거에는 성안 마을 내에 목욕탕, 시장이 있었다
< 청사이전에 관한 감정 >
장기수 과장은 신청사로 이전을 해도 직원들의 후생 차원에서는 별다른 게 없는 것 같다. 그런 것들이 반영되려면 기존에도 얘기했지만 호화청사 개념들이 있어서 쉽게 못하다고 한다. 아쉬운 마음은 있지만 좋은 환경에 만족을 한다. 하는 일은 정해져 있다보니 그쪽으로 간다고 변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새로운 마음으로 뭔가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그런 의욕을 가지고 근무환경이 개선된 만큼 열심히 해야겠다.
나한일 팀장은 근무 여건이 나아지니 좋다며 2년 뒤 퇴직을 앞두고 있지만 바뀐 환경에서 마지막까지 열심히 일하겠다고 했다.
< 문화활동에 대한 기대 >
장기수 과장님은 청사 이전으로 수백 명이 생활을 하다가 빠져 나가면 상권이 무너지는 상황이 될 것이라며 우려했다. 각종 단체들에게 임차해주거나 지원을 할 것으로 생각됨에 따라 생활할 수 있도록 가건물들을 다 털어내고 일반 본건물 들만 남는걸로 해서 문화활동을 해나갈 것이다.
나한일 팀장은 시민단체들이 많이 있으니, 각자 사무실을 빌려 나가 있는 단체들을 모아가지고 이쪽에서 같이 회의도 할수 있게 활용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밖에서 일일이 찾아 만나러 다녀야 하는데 한곳에 모아 놓으면 효율성이 좋을 것 같다.
< 공무원으로 생활하면서 지역민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
저희들은 공무원 생활을 했으니까 지역이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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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수님은 지역경제과 경제정책팀장이시고 25년째 재직 중이시다
권종연님은 지역경제과 에너지팀장이시고 27년째 재직 중이시다
< 구)청사에 관한 기억 자율 이야기 >
권종연 팀장님은 군청의 역사성에 대해서 애기를 하자면 원래 군청이 있던 자리가 옛날 조선시대 때 관수령이 살던 관청이였다고 한다. 뒤가 산이고 앞에가 딱 트여있어서 입지로는 상당히 좋고 예전 선배님들 얘기를 들어보면 군청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 왔다고 한다. 그래서 저희가 사업을 해서 지질조사를 해보면 뻘이 좀 많다. 연안 지반에 약하고 바다였던 해수면이 낮아졌다 올라온 그런 역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 가치가 상당히 좋다.
또한 성안마을은 읍성 안에 있다고 해서 성안마을, 성내리로 불렸으며, 성 밖에 있는 마을은 읍성 밖에 있어서 성밖마을, 성외리라고 했다.
< 구)청사 내 공간에 관한 이야기 >
권종연 팀장님은 다른 지역 청사와 많이 비교가 되고 부끄러웠다고 하셨다. 다른 지역에 가서 좋은 청사를 보면 우리도 언제 저런 청사에서 근무를 해보나 하는 그런 마음이 들 때가 많았다고 하셨다. 셋방살이 하던 사람이 좋은 양옥집을 보면 나도 저런 좋은 집에서 살고 싶다라는 그런 마음하고 비슷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범수 팀장님은 간혹 외부에서 내비를 찍고 오면은 뒤로 보건소 쪽으로 해서 버스가 그쪽으로 와서 후진하는 경우가 있는데 경로를 그쪽으로 안내를 해서 그렇다고 하셨다.
권종연님도 단축 경로를 서천군청을 찍으면 큰 도로가 아닌 샛길로 경로를 안내해 주기 때문에 처음 오시는 분들은 낭패를 보는 경우가 많다고 말씀하셨다. 내비를 믿고 오시다보니 그런 경우가 생긴다고 한다.
권종연님은 힐링공간에 대해 힐링이 될 만한 공간보다 아쉬움이 많다고 하셨다. 청사가 좁아서 같은 실과지만 임대해서 나가는 경우도 있고 지금도 3개의 실과가 임대해서 나가 있다며 미안한 마음이 든다고 하셨다. 청사가 좁아서 숨어서 힐링 할 수 있는 공간이 없다고 하시니 김범수님이 옛날에 당직실에 가서 몰래 쉬기도 했다며 지금은 보는 눈이 많아 그렇게 하기 힘들다고 하셨다.
권종연님은 특별히 기억나는게 내가 처음 입사당시가 90년대 중반 이였는데 그땐 차가 별로 없었다. 군수님이 관선군수였기 때문에 차가 별로 없어서 현재 직원주차장 자리는 과거 테니스장이 있었다. 테니스장 자체가 코트 하나에 많이 쳐봤자 4명 밖에 못들어간다. 단식 할때는 둘 여기도 2코트 3코트 나올텐데 쓰는 사람은 1시간에 4명~6명 밖에 못쓰니깐 우리 같은 사람들은 못들어가는 거다.옛날 당시에는 점심때도 하고 주말 같은데도 하고 옛날에는 토요일 오전까지 근무를 했으니깐 1시까지 근무를 하고 밥먹고 퇴근하고 여기서 운동하고 갔다. 예전에는 차가 없으니 주차장이 필요 없었다. 군청 전체를 통틀어 차도, 관용차도 몇 대 없었고 그러다보니 주차장이 클 필요가 없었다. 그러다가 차가 많아지기 시작 하면서 주차장 확보를 위해 땅을 매입하였다.
김범수님은 테니스 코트가 있었다는 것만 알지 할 정도는 안됐다고 하셨다.
< 구)청사 연계 사건 >
권종연님은 옛날 을지연습 이라고 을지훈련을 하면 밤을 샌다며 매년 8월에 하는데 최근에는 코로나 때문에 하지 못했다고 한다. 옛날에는 훈련을 굉장히 어렵게 하다보니 새벽에 갈 만한 곳이 숙직실인데 그마저도 사람들이 있다보니 거기서 껴가지고 쪽잠을 자고 했다. 을지훈련이란 전쟁을 가상해서 일주일 정도 도상 훈련을 하는거다. 어디에 적기가 와서 파괴를 했을 때 행정에서 어떻게 매뉴얼에 따라서 조치를 하나 하는 훈련을 시키는 국가 훈련이라고 하셨다. 군사적으로도 독수리 훈련 같은거를 하는데 행정도 똑같다고 보면 된다. 주요 시설물이 파괴되었을 때 어떻게 조치할건가 하는 가상 연습을 하는거다. 재난 발생 했을 때 매뉴얼에 따라서 사망자가 발생하면 어떻게 하는지 어떻게 이민 조치도 해야하는지 매뉴얼 그대로 연습을 한다. 그러다보면 밤새는 경우가 많다.일주일동안 교대로 하루24시간 근무하고 24시간 쉬고 전쟁 났을 때 그렇게 해야 된다.그렇게 하다보면 피곤하고 하니깐 의자를 쭉 펴놓고 쪽잠을 잤다.이런 훈련을 통해 동료애도 생긴다. 같이 밤을 새우고 그런 경우가 재난 같은 태풍이 오면 공무원들 비상대기하고 한다. 그러면 똑같이 상황주시하고 돌발상황에 대비를 해야하니 밤새 해야 하는 경우가 좀 있다.
< 청사이전에 관한 감정 >
권종연님은 청사 이전에 대해 기대감이 많고 새집에 살려면은 저게 얼마나 지어졌나 관심도 가고 그렇다며 설레는 마음이라고 하셨다.
김범수님은 일단 새집으로 가는 거니깐 다들 기대도 하고 있을테고 또 쾌적한 환경에서 근무를 할수 있게 돼서 근무 효율도 오를 것 같고 청사 이전으로 서천군이 더 발전을 했으면 좋겠다라고 하셨다
권종연님은 지금 청사에 휴식공간이나 환경이 열악한 부분들을 저희보다 젊은 친구들에 욕구에 맞춰서 했으면 하고 칸막이식으로 해서 손님이 올때면 불편함 없이 상담을 할 수 있는 공간도 있었으면 한다고 하셨다
< 서천군청사의 아름다운 변화가능성에 대해 >
권종연님은 현청사를 보존할 것인지 철거할 것인지 굉장히 고민도 하고 활용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고 하셨다. 개인적인 바램으로 근대역사 그런 쪽으로 보존 가치가 있다고 본다며 한 공간을 서천군 군청의 역사를 5분짜리 영상으로 만들어 찾아오는 사람들이 볼수 있게끔 했으면 한다.나중에 퇴직해서 오더라도 내가 여기서 근무를 했었다는 것을 나중에 손자들을 데리고 와서 보여주고 추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쓰여지길 원하셨다.
< 공무원으로 생활하면서 지역민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
권종연님은 지역민들에게 마안한 마음이 있다며 군청으로 인해 인근 거주민에게는 데모 등 피해를 본 부분도 있다보니 미안하다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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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용각님은 건설과 과장이시며 33년째 근무 중이며 퇴직을 1년 남겨두고 계신다.
한상광님은 건설과 팀장이시며 92년 8월에 입사 후 30년째 근무 중이시다.
< 구)청사에 관한 기억 자율이야기 >
전용각 과장님은 건물이 좁다보니 각 부서의 위치가 이리왔다 저리왔다 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고 하셨다. 인구 수는 줄어 갔지만 업무에 대한 세분화로 공무원 수가 늘어나서 그렇다고 한다.
건물의 활용도에 대한 부분도 몇 가지만 가지고 포괄적으로 해놓고 하다 보니 아기자기한 부분이 없어서 그런 부분에 아쉬움도 있고 또 외부에서 별개의 일반인들에 대한 모임활동에 대한 그런 부분들이 여기 와서 있었으면 하는 그런 아쉬움이 상당히 많이 있었다고 한다.
문화재 지역이다 보니 증축이라든지 할 수 있는 여건이 안 되는 상황이다. 계획에 대한 부분도 주차장이 있었던 부분 아래를 파면 안 되고, 공원화 시켜서 하는 사업만 가능하여 지금 계획 중에 있다고 한다.
우리 건설과는 힘들고 고된 일이 비일비재하다. 복구 뿐 아니라 매년 11월~3월말 측량,설계를 계속 만들어내서 공사 발주하고 하다 보니 건설과 불이 꺼질 날이 없다. 내가 잠깐 면에 나갔다가 들어올 때가 있었는데 다시 건설과로 발령받고 나서 집에다 얘기한 게 있다. '저녁 먹으러 간다고 전화하기 전 내밥은 차리지마라'라고 말이다. 한달이면 주말 빼고 4~5번 밖에서 먹을 정도로 일이 많았다. 그때만 해도 아날로그반 컴퓨터반 이런 형식으로 하다보니 일의 속도도 느리고 기술직들 직원 숫자도 적었다.
주말에도 거의 나와서 생활하다 보니 집사람이 하는 말이 다른 집은 아이들 데리고 체험도 다니고 놀러도 다니는데 우리 애들은 그런 경험이 전무하다며 아쉬움과 미안해 하셨다. 요즘 젊은 직원들은 이해를 못한다. 그런 얘기하면 이상한 사람 소리 듣고 할 필요도 없는 거고, 연차 낸다고 하면 왜 연차내냐고 물어보면 나쁜놈 되는 거고, 젊은 사람들은 개인적인 프라이버시도 그렇고 또 물어보는 것도 싫어한다.
구)청사는 나를 성장시켜 주었고 우리 가족을 먹여 살려준 삶의 터전이다. 30년 넘게 이 공간에서 생활해 왔으니 말이다.
< 구)청사 내 공간에 관한 이야기 >
전용각 과장님은 80년대 후반엔 건설과 자리가 재무과였고 현재 서고 자리가 새마을과였다고 기억하고 있다.
현재 해양수산과 자리에서 근무할 때 진짜 열악했는데 그 이유가 뒤에는 옹벽이 높이 쌓여져 있고 건설과 바로 뒤로 해서 배수로가 있어서 계속 습하였다고 한다. 내부적으로 막혀있는 공간이다 보니 건강상태들이 많이 안 좋았다고 하셨다.
직원들이 쉴 수 있는 공간이 거의 없었고 아늑하게 쉬었다 하는 그런 추억에 대한 부분 자체도 거의 없다. 공무원들이 어떤 민원 상담을 하고 싶어도 옛날 구매식당 자리 컨테이너 박스를 놓았던 곳에서 열악하게 얘기를 몇마디 나누기도 하고 또 다른 손님이 오시면 시끄럽고 해서 은행나무 밑에서 차 한잔 씩 나누었는데 쉼터 자리라고 할 수도 없이 그냥 서서 얘기를 하고는 했다. 지금은 은행나무가 가지치기를 많이 해서 그랬지 과거에는 굉장히 휘황찬란했다고 하셨다.
지역 제조사 컨테이너 박스를 다 들어내고 식당 일부를 해 놓았는데 식당자체가 삼각형으로 되어 있다 보니 공간이 좁았다. 그러다보니 맨날 나오는 기본반찬 하나가 자반고등어였다고 한다. 나이 먹은 직원들은 자반고등어 나오면 밥을 먹으러 가지 않고 특별한 메뉴가 나오면 가서 먹었다고 한다. 나중엔 직원들이 복리후생비를 올리든지 음식을 다양하게 해달라고 하는 그런 부분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옛날 구내식당 하시던 분들이 그곳이 헐리자 나가게 되었고 구내식당을 새로 해놓고 자유회에서 운영을 하였는데 인기가 많았다고 한다.
전용각 과장님은 당진,예산 청사를 자주 가신다고 한다. 예전 당진,예산 청사가 우리 구조와 똑같다고 하셨다. 지금은 청사들을 이전해서 가봤는데 완전 신세계에서 생활하는 것처럼 보이니깐 부러운 마음이었다고 한다.
군청 내 힐링공간이 있냐는 물음에, 마음에 여유나 시간적 여유가 있는 날은 아침 일찍 나와서 뒤에 읍성을 산책을 하는데 여름엔 녹음이 우거져 멋있다고 하시며 30분 정도 운동 겸 산책 코스로 좋다고 하셨다. 다른 직원들도 점심먹고 운동삼아 산책을 한다고 한다. 하지만 열악한 환경으로 지금도 얘기 할 수 있는 장소가 없어 구내식당을 이용한다고 한다.
그리고 여성 화장실이 의회 화장실 빼고 하나 밖에 없어 여성 공직자들의 안타까움을 얘기하셨다.
건설과 건물은 출근하고 에어컨을 틀고 환기를 시켜야 한다. 단층이라 시멘트에 열이 계속 쌓인다. 저녁에 퇴근할 때 문을 닫고 가기 때문에 그 열들이 다 밑으로 내려온다. 아침에 오면 29.5도 30도가 되어 숨이 탁탁 막힌다
한상광 팀장님은 군청 공간의 변화에 대해 이렇게 기억하고 있었다.
본관은 66년도에 지어졌다. 그런 다음 계속 필요에 의해 건물들이 지어졌다. 그러다보니 청사구조가 분산되어 미로 같아서 민원인들이 불편해 하였다. 예를 들어 지역경제과를 설명하려면 본관 1층에서 볼 때 설명이 어려워 직접 모시고 가야했다.
한번은 옛날 근무할 때 어떤 민원인이 차를 세우더니 보고 뱅뱅돌더라. 네비찍고 군청을 왔는데 서천군청이 안 보인다고, 군청인데 군청인줄 모르는 거였다. 네비는 목적지에 도착했다는데 건물이 노후되고 분산되어 있다 보니 그렇게 생각하신 것 같았다.
민원인이 앉아서 대화할 곳이 구내식당 말고 없었다. 식당 겸 민원 상담실인 셈이다
< 구)청사 연계 사건 >
전용각 과장님은 겨울이면 볼 수 있는 군청의 특이한 광경에 대해 이야기했다. 군청사 건물이 개별난방이다 보니 아직도 겨울에는 난방유를 배급받아 추위를 견딘다고 한다. 앞에서 20리터 짜리 기름통을 30개에서 40개 정도를 차가 와서 배급을 해주는데 부서마다 그걸 가지고 일주일을 쓰는 것이다. 건설과는 늦게까지 아침 일을 하는 야간작업이 많다 보니 늦게까지 난방을 할 때가 많아 부족할 때가 있다. 이럴 때면 주유소에 직접 가서 타다가 넣기도 하고 했다. 신청사로 옮기면 그런 것이 없어지니 직원들이 엄청 기쁠 것 같다며 젊은 직원들은 그런 것에 대한 부분을 상상을 못 했을 것이라고 덧붙여 말하셨다. 지금도 겨울만 되면 아침 일찍 가서 기름을 타놓고 해야 되는 부분이 있다. 그런 일은 당분간은 이사 가기 전까지 지속될 것이고 나중에는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하셨다
한상광 팀장님은 안전총괄과에 2009년,10년 쯤 근무했을 당시 유류 피해가 나서 피해주민들에게 피해보상을 했던 때를 기억했다. 허베이 스피리트호 라고 태안에서 유류 오염사고가 나서 서천 앞바다 까지 유류가 떠밀려 왔었다. 당시 피해주민들에게 보상이 나올 때에도 노인분들은 4층 안전총괄과까지 힘들어서 못 올라오셨다. 그래서 밑에서 전화를 하면 내려가서 은행나무 밑에서 대화하고 했다.
< 청사이전에 관한 감정 >
한상광 팀장님은 신청사로 가면 모든 직원들이 다 좋아할 것 같다. 어떤 생활도 불편하지 않고 열악한 환경에서 벗어나서 좋은 환경으로 가니 기분이 새롭다고 했다.
<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주민문화공간과 문화활동에 대한 기대 >
전용각 과장님은 근무하기 꺼려하는 부서가 있다고 하셨는데 바로 안전총괄과다
건설과로 오기 1년 전까지만 해도 안전총괄과에 있었는데 코로나 때문에 보고를 하루에도 2~3번씩 많으면 4~5번씩 왔다갔다 해야했다며, 4층을 올라와 상당히 걸어가야 안전총괄과가 있었기에 힘이 많이 들었다고 한다. 영상회의도 매일 있다 보니 기본으로 하루에 3번 이상은 오르락내리락 했어야 했다고 한다. 지금은 영상회의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이 건물이 안전하게 주민들에게 자유롭게 활용될 수 있게끔 내부보강에 대한 부분을 확실하게만 되어 준다고 하면은 동아리 활동, 전시관 이런 부분들을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문화활동이 활발이 이루어지길 원하셨는데 군청 밑에 보면 건물사라든지 설계사무소 건축설계 사무관련 사람들이 많이 있다. 청사가 옮겨지면 신청사 주변으로 다 이사를 가게 되면 완전한 죽음의 도시가 될 수밖에 없다며, 활발한 활동을 위해 카페를 만든다든지 많은 동아리 활동을 한다던지 그래서 사람들이 왕래할수 있게끔 도와주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 공무원으로서 주민에게 말하고 싶은 점 >
전용각 과장님은 지역민들에게는 내 직업이 민원을 해결하는 부분이니 지역주민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현장에 찾아가서 확인하고 불편사항을 해소할 수 있도록 노력을 끈임없이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니 불편함없이 부담감없이 군청을 찾아오셔서 민원을 요청하시고 하셨으면 좋겠다.
한상광 팀장님은 근무기간이 1년 정도 남았다며, 빨리 그만두고 집에서 편안하게 그동안 찌들었던 틀에서 벗어나서 자유로운 영혼이 되고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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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년도에 장항읍사무소를 시작으로 공무원 생활을 하였다.
서천읍, 종천면에서 근무하고 군청에 들어와 근무하다가 장항읍장을 하고 시과장, 4급 서기관, 군정책회의실장을 하며 2009년 6월 말에 퇴직을 하였다.
현)서천읍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의 주민위원회, 농공단지 관리소장, 국립생태원 비상임이사로 지역봉사를 하고 있으며 오전에는 시니어 알바인 소비자 지킴이, 오후에는 월.수 한문강좌 강사를 하고 있다
구)청사에 관한 기억 자율 이야기
- 구)청사가 있던 자리에 원래는 고려시대 남산에 청사가 있었다. 남산에 청사가 있으니 불편한게 많았다. 물도 그렇고 여러 가지 조달하는 것 외에도 문제가 있어서 태종 1413년에 지금에 자리로 이전을 했다. 읍성을 만들어 놓고 이전을 한 것이다.
지금에 본관동이 예전에 향청이다. 그 옆으로 군관청이라고 군인들이 지키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입법, 사법 행정을 다했다. 군관청 옆으로 조그만한 시장이 있었고 위로 올라가면 지금에 탁구장인 곳에 예전에 누문이 있었는데 이곳은 시도 읽고 잠깐 쉬기도 하고 접객하는 곳이었다.
민원실 옆에는 형리청이 있었는데 이곳은 죄인을 가두는 형방이었다. 위로는 옛날 군수관사가 있었다. 그런데 기와집이고 지네도 나오고 뱀도 나온다고 해서 헐고 주차장을 만들었다.
지금에 예산실이 예전에 객사였고 옆으로 군기고, 작청이 있었다. 작청은 밑에 직원이 근무하는 곳이였다.
군청 위 현 일아빌라 자리에 외산문이 있고 사령청이 있었는데 이방이나 쫄병 등 아래 사람들이 근무하던 곳으로 이곳을 거쳐서 들어갈 수 있었다.
민원실 땅이 옛날에는 다 민간인들 집이였는데 다 사들여서 지금의 주차장을 만든 것이다.
군청뒤에 있는 산은 오석산이다. 석축을 해서 둘레는 3525척이고 옹성이 17개 있고 우물이 5개 연못이 1개가 있었다
우물물 1곳의 수질이 너무나 좋아서 상수도가 들기 전에 한원희씨란 분이 새벽마다 와서 물을 퍼다가 팔았다. 그러다가 상수도가 들어오면서 물을 팔지 못하자 먹고 살기 힘드니 대처해달라고 해서 수도 검침원으로 근무했다.
- 백제시대 때부터 모시를 재배하기 시작하여 모시는 1500년의 역사가 있다.
과거 근무당시 모시타운을 조성을 해서 모시유래비. 모시교육관 등을 만들었다
< 구)청사에 관해 들었던 이야기(비석군의 역사) >
- 군에 30개 넘는 비석이 있는데 예전에 내가 모셨던 박지원 군수는 본인이 열심히 했다고 공적비를 세웠고 이만근 씨라는 분은 6.25 때 전라도로 피난을 갔다가 못 돌아오시고 돌아가셨는데 그 아들들이 나 현직에 있을 때 사단장이었다. 아버지가 여기서 근무하다가 재직 중에 돌아가셨으니 비석을 세워야 한다고 해서 세웠다.
- 구봉서 군수라는 분은 하얀 비석이 있는데 그거는 도인이였다는 뜻이다. 옛날 어른이 나보고 일러주라고 얘기를 했는데 참 전설같은 얘기이다. 그 양반은 도인이라 아침에 참새가 짹짹하고 지저귀면 이방을 불러 저 새가 누구네 논에 가서 쪼아 먹자고 하니 거기 가서 연락을 해 새 좀 보라고 하며 새랑 대화를 했다고 한다. 또, 한양을 가려면 세수대야에다 물을 떠놓고 축지법으로 갔다 왔다고 한다.
구봉서 군수는 도인이라서 돌아가신 날짜 그만둔 날짜를 모른다고 한다.
- 유인남 군수는 여기에 비석이 있는데 두 개가 있다. 예전에 청사가 불이 났는데 그분이 직접 중건을 해서 고마움에 비석을 세웠다.
- 유왕 선생이라고 유일하게 서천분이 군수를 하셨는데 한양 중앙에서 감을 상납을 하고 세금을 바치라고 했는데 감이 많지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유유지에다 감을 다 심게 시켜서 감이 많이 생산되자 세금을 바치고 남는 건 농가 소득에도 도움이 되어 그 고마움에 비를 세웠다고 한다.
- 윤행교란 분도 군수였는데 논산분이시고 윤중 선생의 아들이었다. 마을이 늘 물이 차고 수해가 나서 군수 때 물이 잘 빠지게 뚫었다고 한다. 개구리가 많아 못 살 정도였는데 물이 잘 빠지자 개구리가 없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비석이 세워졌다.
- 비석군의 역사는 그렇게 나름대로 역사가 있다. 암행어사비도 있고 관찰사비도 있는데 암행어사가 왔다가 공적이 있으면 비석하나 세워주고 관찰사가 돌아다니다가 공적을 세우면 또 세워주고 이렇게 해서 한 30개가 생겨난 것이다.
< 구)청사 내 공간에 관한 이야기 >
- 필요하면 짓고 하다 보니 제대로 지어지지 않아 물도 새고 비좁고 조립식건물이라 불날 염려도 있었다. 여름에는 덥고 미로로 되어있다 보니 처음오시는 분들은 해매이셔서 꼭 안내를 했어야 했다.
- 직원들 탁구장이 있어서 잠깐씩 짬을 내서 탁구도 치고 했다.
- 동산에 올라가면 꽃이 만개해서 쳐다보면 기분이 좋고 길따라 산책하기도 하고 그나마 힐링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 따로 휴게실이 없어서 잠깐 쉬거나 손님이 오시면 구내식당가서 마시고는 했다.
< 구)청사 연계 사건 >
87년에 수해가 크게 났었는데 7월 21일 새벽부터 비가 오기 시작해서 마서면을 제외하고 전부 다 니꺼내꺼 할 것 없이 물바다가 되었다. 판교면에 있는 계량기에 측정된 양이 736ml인데 이것도 전기가 나가서 더 이상 측정되지 못했던 것이었다. 얘기를 들어 보니 드럼통이 넘쳤다고 한다. 그건 1300ml 이상은 왔다는 것이다.
그때 당시 나는 새마을 계장을 했었는데 피해조사해서 보고 받고 피해지역 확인하고 피해복구 계획해서 2년을 집에 못 갈 정도로 엄청난 고생을 했다. 사무실에서 밥 먹고 잠도 거의 못 잤다. 나중에 설계하고 복구작업 할 땐 직원들하고 여관을 잡아 설계하고 측량하고 했다. 피해건수가 936건이나 되었다. 그때 당시 돈으로 108억 1200만원의 피해액이 났다. 지금 돈으로 환산하면 1천억이 넘는 돈이다.
그때 당시 수해 복구 한 기억이 너무나도 생생할 뿐만 아니라 너무나 고생을 많이 해서 잊을 수가 없다
< 청사이전에 관한 감정 >
구)청사 뒤에 있는 오석산은 좋은 주산으로 명당산으로 내려오고 있다. 인산이라고 있는 도장산이 앞에 있고 서천중학교 앞에 우청룡 좌백호 안산이 있고 남산이 딱 펼쳐져 있어서 이게 명당터다. 40년을 근무해 봤지만 비바람이 불어도 조용하고 아무 태풍도 없고 그렇게 평온할 수가 없는 좋은 터다. 내가 정책실장 당시에 전국에 몇십개 시군을 조사를 해봤는데 이전해서 성공한 곳이 몇 개가 안 되었다. 거의 없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역세권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청사권이다 옮김으로써 거기가 상권이 형성되고 주거권이 형성이 되는데 그렇지 않다. 서천군민이 5만1천명이다. 앞으로 늘어나봐야 6만명도 되지 않는다고 하는데 옮기지 말고 600년 넘는 이곳을 유지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허허벌판에다 몇 백억을 들여서 공무원만 편하면 뭐하고 크고 좋게 지으면 뭐하냐. 상권도 그렇고 절대 형성이 안 될 것 같다. 지금 청사가 13개 읍면 중심지여서 이곳을 중심으로 살면 된다.
우리도 일본의 절차를 밟는 것 같아 결론적으로 나는 싫다 하지만 옮겨지게 되었으니 잘 되기를 바랄뿐이다.
< 구)청사는 개인에게 어떤 의미인가 >
고등학교 3학년 때 시험봐서 들어와서 이 직장이 최고다 하고 우리 서천군민을 위해서 하나하나 계획해 나가면서 자부심을 가지고 다녔다.
중앙에서 예산을 따와서 국가공단 또 서천시장을 12억 예산으로 허허벌판인 곳을 도시계획 변경 준주거지역으로 만들어서 형성하였다.
86년 아시안게임을 대비하여 모시타운에 모시관, 모시 유래비, 모시 전통 공방, 또 유물관 등을 하고 서울시 연수원도 유치하였다. 보람이 있었다. 40년을 다니면서 여기가 우리집이었고 내 삶의 터전이었다. 그만큼 애착을 갖고 열심히 하였다. 집에서는 2등 아버지이지만 직장에서 만큼은 1등이었다.
< 공무원으로서 지역민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
2등 아빠 1등 공무원이었기에 나름 열심히 노력하며 사업을 많이 해왔다.
그런데도 아쉬움은 있다. 조금 더 노력을 했으면 서천군이 많이 발전할 수 있는 초석이 될 수 있는 그런 역할을 해주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떻게 하면 주민들의 소득을 올려 줄 수 있을까 하고 노력도 했고, 바다를 기르고 육성하고 어민들 소득을 위해 노력했다.
< 개인적으로 희망하는 문화활동의 형태 >
아이들을 위해 키즈카페를 한다는 얘기도 있고 작은 도서관도 만든다는 애기도 있다. 문화카페라고 해서 자기들이 취미 생활도 할 수 있고 나름대로 지역에 특성이 있는 카페를 한다고 한다. 무슨 문화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지금 생각은 잘 안 난다.
하지만 이곳 성과 모든 게 어울리게 리모델링을 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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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군청에서 공무원 생활을 70년대부터 시작하였고 내무과, 자치행정과, 총무과, 기획실에서 일했다. 그러다가 한산면장, 마서면장 의회사무국 일을 하다가 서천 읍장으로 퇴직을 하였고 퇴직한 지는 10년이 넘었다.
현재 퇴직자 모임인 행정동호회 회장을 맡고 있다.
< 구)청사에 관한 기억 자율 이야기 >
- 일제 강점기 군청사 자리에는 나무집과 우물이 있었는데 그 우물물이 좋아서 한 어르신이 도라무통에 물을 떠다 필요한 집에 팔았다.
- 우물터 인근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다 우물 물을 길러 먹었으나 우물터에서 멀고 오기가 어려운 주민들에게는 우물 물을 팔기도 했다.
- 군청 앞 비석들은 예전에는 흐트러져 있었는데 청사를 짓고 복원하면서 지금에 자리에 자리 잡았다. 대부분이 공적비로 세워진 것들이다.
- 군청 위쪽으로 충령사가 있는데 옛날에는 그곳을 관리하던 산지기가 있었다. 그분이 돌아가시고 지금의 빌라가 들어섰다.
- 옛날에는 관사 빼놓고는 전부 대밭으로 우거져있어서 무서웠다.
- 청사 인근 서천여자중고등학교는 과거 표백한 것을 말리는 장소로 활용했고, 운동장도 본래 길에서 좁아서 계속 늘려나간 특이한 형태였다.
< 구)청사 내 공간에 관한 이야기 >
- 너무나 취약해서 다른 지역 청사와 비교가 되었고 열등감 마저 들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못 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쉬움이 많았고 자랑하고 싶은 건 없으나 위치는 좋다. 서천 읍성 안에 서천군청이 들어있다는 자체가 말이다.
- 힐링할 만한 공간도 없고 편히 쉴만한 공간이 별로 없다. 단지 구내식당 가서 오후되면 배고프니깐 라면도 먹고 차도 마시며 잠깐에 휴식을 취했고 야근 전 식사도 하고 쉴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 되었다.
- 비좁고 미로 같은 구조에 고생을 많이 했다. 원래는 본건물에다 건물을 올려 지으려 했으나 기반이 오래되고 3층으로 짓기 어렵다 해서 뒤에다 건물을 지었다.
- 직원들을 배려해 지금에 주차장 쪽에 테니스장을 만들었으나 얼마 못 가 주차공간이 너무 없어 주차장으로 바뀌었다.
- 교육청 관사를 군에서 매입해서 탁구장으로 쓰고 있다.
- 테니스장 옆으로 내무과장 관사가 있었는데 군수 다음에 내무과장이 제일 우선이었다. 옛날에는 내무과장이 대부분 외지에서 왔다
- 과거 본관동은 일제시대에 나무로 지어졌으며 후관동은 없고 창고 형태로 있었다
- 후관동 건물은 아치와 건물 높이가 다 달랐다. 필요에 의해 그때마다 건축물이 지어지다보니 그런 양상을 띠었으며, 의회 회의실은 천고가 높아 아치형태, 건물높이가 다르게 지어졌다.
- 과거 민원인 주차장 자리에는 화재시 사용할 수 있는 연못과 둠벙이 있었다.
- 과거 군청사 주변으로 울타리가 빙 둘러져 있었으나 관공서 개방에 따라 울타리를 제거해 현재 모습이 되었다.
- 현재 청사 앞에는 공적비가 늘어서 있는데 공적비는 역대 군수와 공적을 적은 비석이다.
< 청사이전에 관한 감정 >
논란이 많이 있었지만 너무나 좋고 후배들이 좋은 환경에서 일할 수 있어서 기쁜 마음이다. 옛 정이 들어 아쉬운 마음도 있고 현청사에 추억들이 많이 생각 날 것 같다.
청사 인근이 집 근처라 청사가 이전된다고 하니 서운하고 아쉽지만 건물이 노후화되어 화재위험 등 위험요소가 많기 때문에 신청사로 이전되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청사 주변 군청로 상가의 공동화 현상이 우려된다. 과거 시장이 현재 서천특화시장 자리로 이전했을 때에도 비슷한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 개인적으로 바라는 문화활동의 형태 >
주민을 위한 편의시설이 만들어 지기를 바란다. 문화공간으로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둘레길처럼 읍성 전체를 돌아보며 운동도 하고 볼수 있게끔 했으면 한다.
여기를 보겠다고 타지역 사람들이 오지는 않을 것이다 내내 서천지역민들이 이용을 할텐데 그런시설이 아니면 이용하는데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한다.
그리고 사회단체 중에서 사무실이 없는 곳이 많이 있다.그런 공간도 만들었으면 한다.
사람들이 왔다갔다 드나들어야 활성화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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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지용 투지기획팀장은 군대 가기 전, 1998년에 후별관에서 일한 경험이 있고 생태관광팀을 거쳐 투자유치과에 재직중이다.
투자유치과는 바이오 신산업, 보안산업, 산업단지 유치, 공공기관 유치를 맡고 있고 현재 대규모 리조트 추진, 서천 관광단지 조성, 동백정 복원, 마산 봉선저수지 개발 등을 하고 있다.
< 구)청사에 관한 기억 자율 이야기 >
주민들이 군청에 오실 때 불편한 일 중 하나가 대중교통을 이용하시는 경우다. 버스 노선이 군청을 지나가지 않는다. 이것 또한 문화재 구역이라 제한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사거리에서 내려서 이곳까지 걸어오셔야 한다. 이런 곳은 전국에서 드문 경우고 특히 어르신들이 무더운 날 힘들어하신다고 노희랑 과장과 홍지용 팀장은 입을 모아 말했다.
< 구)청사 내 공간에 관한 이야기 >
청사의 역사가 느껴질 만한 에피소드가 있는지 두 분에게 물었다.
홍지용 팀장은 가장 먼저 서천군청을 둘러싸고 있는 읍성에 관해 이야기했다. 금계포란형(닭이 알을 품은 듯한 모양) 지대에 있는 걸로 보아 조선시대에 관아 터였다는 말이 사실인 것 같다고 했다. 명당자리인 만큼 서천군의 중심지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생각한다.
또 성안 빌라 옆이 옛 시장이 있었고 군청 올라오는 도로가에 하천이 있었다고 선배들을 통해 들었다. 고기를 잡을 수 있을 정도의 물길이었다고 한다. 청계천 복원 당시 지방자치단체에서 복원사업을 많이 했다. 군청을 이전하면 차 없는 거리를 만든다고 알고 있다. 생태계와 주민들을 고려해 서천도 그런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주차장과 관련해서는 어느 팀장이 사무관에게 민원주차장을 확보하길 제안했는데 직원주차장도 없는데 왜 민원주차장을 만들어야 하느냐고 말했다가 그 사무관이 승진을 못 한 일화가 있다고 말했다.
직원주차장의 모습이 아닌 족구장, 테니스장 자리였을 때의 일로, 여름에 6시에 퇴근하고도 해가 지지 않았다. 부서별로 팀을 만들어 팀 대항 족구도 하고 어느 날은 술도 마시기도 했다.
직원주차장으로 바꾼 후에는 자가용이 많지 않던 시절, 주차장에서 고사를 지내곤 했다. 동료 직원의 새 차 앞에 돗자리를 펴고 막걸리를 먹었다고 한다.
홍지용 팀장은 청사 건물이 너무 낡아서 특히 후별관이 여름에 덥고 겨울에 춥다고 했다. 98년도 군대 가기 전에 후별관에서 근무를 했는데 여름에 에어컨을 틀어놓아도 엄청 더워했다고 기억했다. 또 겨울이 되면 난방이 문제였다. 석유 난로를 쓰기 위해 막내들이 정자나무부터 2층까지 줄을 서 받아왔다. 고장이 나면 매연이 나와 사무실을 가득 찼다. 고치려고 수리기사를 불러도 오지 않았다. 이런 것도 추억이라면 추억인 것 같다고 말했다.
< 구)청사 연계 사건 >
노희랑 과장은 사무실 컴퓨터를 도난당한 사건이 있었다고 말했다. 지금은 CCTV가 어디든 있지만, 과거에 청사는 정문 개념이 없고 보안에 취약한 면이 있었던 탓이다. 환경보호과의 컴퓨터였는데 약 2대가 없어졌다. 컴퓨터 자체보다 그 안에 들어있는 행정자료, 개인정보가 중요했다. 다행히 시대상 개인정보 유출을 걱정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고 한다. 당시에도 사무실에 무인보안서비스(세콤)를 설치해놓긴 했으나 평소 낡은 문이 바람에 자주 열려 보안 경고 소리가 났다. 그래서 나갈 때 보안 설정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당시 당직자가 변상으로 책임을 지면서 마무리가 됐다고 말했다.
정문으로 들어오면 주변 큰 나무에 백로, 황로 같은 왜가리과 새를 볼 수 있다. 홍지용 팀장은 서천여중, 여고 앞 충령사 앞이 새들의 주요 서식지였는데 새들이 성안빌라 쪽으로 이동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울음소리와 새똥이 주민들을 불편하게 했고 결국 민원이 들어와 나무를 다 잘랐다. 그래서 새들은 지금 청사 근처로 거처를 옮기게 된 것이다. 서천군청사가 특이해 보이는 이유 중 하나다.
실제 새똥으로 인해 군청 직원들도 불편함을 겪고 있다. 주차해놓은 차에 분비물이 묻어있는 일이 다반사고 냄새 또한 심하다. 그래도 계절에 따라 새들이 오가는 모습을 보며 계절을 느끼기도 한다며 군청 직원과 민원인들이 힘들면 조치를 취할 수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는 모습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 청사이전에 관한 감정 >
홍지용 팀장은 "직원들이 점심 먹고 읍성 주변으로 산책하는 걸 좋아했듯 주민들도 좋아할 장소다. 그런 의미에서 환경적으로 좋은 곳이고 시간이 걸리더라도 읍성 복원을 다른 지역처럼 멋있게 조성했으면 한다. 그 공간을 주민들이 누리시고 군청 직원들은 쾌적한 환경으로 가서 일한다면 모두에게 바람직할 것 같다"고 말했다.
< 개인적으로 문화활동이 어떤 형태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가 >
청사가 문화공간이 되는 것에 대해 홍지용 팀장은 지역 주민이 자긍심을 느끼고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는 지역 문화를 활성화하고 자연환경을 잘 보존하는 것만큼 좋은 게 없다고 말했다. 청사 이전을 하고 나면 군청을 중심으로 있던 건축사와 관련 기업 사무실이 함께 움직인다. 필연적으로 생길 공동화 현상을 해결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계속 모이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청년과 예술가가 모여야 하고 행정적인 도움도 필요하다.
지리적으로 움푹 들어간 모양이라 광장, 스피커 역할로 유용하다. 사거리에 ‘봄의 마을’이 있지만 그 부분 외에도 부모님들은 도서관의 비중이 높아지길 바란다. 또 기록관을 준비하고 있다고 들었다. 개인적으로 주민들의 소통을 돕고 문화재와 각종 기록물을 보관하는 장소로서 도서관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홍지용 팀장은 청사를 이전하고 나면 남겨질 군청 사거리 일대를 걱정했다. 공동화되지 않게끔 서천군수님이 관심 두고 투자해주길 바라고 있다. 사곡리에 새로운 상권이 형성된 것도 주택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의견이다. 지역 활성화의 의미에서도 문화시설이 생기는 것이 좋고 동시에 도시계획을 세워 정비했으면 하는 의견이다...
< 공무원으로 생활하면서 지역민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
홍지용 팀장은 공무원으로서 지역민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냐는 물음에 군청 직원들 모두 비좁고 열악한 상황에서도 지역 발전을 위해서 밤잠도 줄여가며 고민,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 서천 관광단지 조성을 투자유치과에서 하고 있는데 어느 피해 지역 주민들은 불만이 있을 것이다. 원하는 기대에 못 미칠 수 있겠지만 이런 노력이 지역을 바꾼다고 생각하며 지켜봐 주시고 함께 고생해주시면 앞으로 좋은 효과가 있을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대학도 생길 거고 공공기관이 몇 개 더 들어올 예정이니 많은 기대와 성원을 부탁드리고 새로운 청사로 가면 더 열심히 하겠다고 말했다.
< 인상깊은 근무경험 >
군청에서 오래 일한 두 분께 인상 깊은 근무 경험을 물었다.
노희랑 과장은 ‘전략사업단’에서 일한 경험을 말해주었다. 정부에서 준 사업이 있는데 우리는 일반적으로 대안 사업이라고 불렀고 한 1조 2천억 정도 규모의 사업이다. 국립생태원과 국립해양생물자원관 그리고 국가 산업단 3개만 하는 별도 조직이었다. 전략사업단에서 일할 때 장항산업단지 착공식을 했는데 서기보에 있을 때부터 산업단지의 착공 여부에 대한 얘기를 듣기 시작했으니 기획한 지 약 20년 만에 해낸 일이었다고 한다. 오랜 기간 정성을 쏟은 일이다 보니 팀장으로 전략사업단에 있을 때 착공식 폭죽이 터지는 걸 보며 울컥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홍지용 팀장도 노희랑 과장과 비슷한 경험을 했다. ‘군장국가공단’은 군산지구와 장항지구. 서천, 장항 갯벌을 다 막아서 산업단지를 만든 지역이다. 이 사업을 정부가 해주겠다고 했는데 새만금 사업과 겹치면서 착공을 안 시켜준 일이 있었다. 그 사업 준비로 주거지가 수용돼서 강제로 떠나야 하는 분들이 계셨다. 주민들에게 2천억이나 되는 보상금을 줬지만, 그 사람들은 다른 지역으로 떠나버렸다. 게다가 그때 공업용수를 갖다 쓴다고 하굿둑을 막아서 위로 강경까지 금강하구 쪽에 연안을 끼고 있는 어업들이 망할 위기였다.
장항은 공업도시이기 전에 항구도시인데 1차 산업인 어업을 근간으로 했던 모든 산업이 같이 어려움에 놓였다. 그래서 2006년도에 18년을 미룬 사업의 조기 착공을 요구하기 위해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무현 대통령을 상대로 시위했다. 당시 관제 데모를 주도해 주민 2~3천 명을 데리고 광화문에 갔고 결과적으로 전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내려와 상황을 보고 갔다. 데모가 끝나고 고발당했는데 그 이후로 여러 대안 사업들이 이루어지는 걸 보고 여러 감정이 들었다. 대의를 이유로 주민들이 희생당하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런 일들을 과장님과 현청사에서 해왔고 누가 지금 다시 하라고 하면 못 한다고 할 정도로 힘든 일이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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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규 산림경영팀장은 보령에서 약 2년 반 초임을 지내고 현청사로 와 사회진흥과를 거쳐 산림축산과에서 일하고 있으며, 산림축산과의 주요 업무는 산지 전용 허가와 산불 예방과 산불 진화차 운영 및 진화 작업이 있다.
산불 진화는 소방서가 아니라 군에서 직접 하고 있었다. 특히 봄이나 가을에 산불이 이슈화될 때 주말도 없이 출근하기도 한다. 산불이 났을 때뿐만이 아니라 예방을 위해 동원되는 행정력이 생각보다 많으며 국가의 땅은 산림청이 담당하지만, 서천의 경우 대부분 개인 사유지이기 때문에 지자체에서 관리하고 있다. 그 과정에 민원이 있기도 하다.
< 구)청사에 관한 기억 자율 이야기 >
박상규 팀장은 개인적으로 밤에 읍성을 쭉 지나며 운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직접 찍은 읍성 사진을 보여주며 야간에는 조명까지 비추니까 화려하고 예쁘다고 말했다. 성터의 산책로를 보면 위에 걸을 수 있는 길을 만들고 나니 경관도 더 좋아졌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 몰라서 안타깝다.
< 구)청사 내 공간에 관한 이야기 >
서천읍성을 오랫동안 방치하다가 다시 읍성 정비사업을 하고 있다. 지금 많이 개편됐는데 동문 일부는 준공을 마치고 굉장히 좋아진 상태라고 한다. 주민들뿐만이 아니라 군청 직원들도 점심시간이면 산책하는 코스로 잘 이용한다. 등산로가 야트막해서 약 30분 걸을 수 있는 크기고, ‘읍성’이라는 상징성도 있어서 좋다.
현재 직원 주차장으로 쓰이고 있는 곳이 원래 테니스장이었는데 주차난이 심하다 보니 주차장으로 바뀌었다. 어쩔 수 없는 대안이었다.
정문 방향 우측 공간은 원래 주택가였으며 그 공간을 헐고 주차장으로 사용했지만, 본래는 청사를 확장하려고 매입한 배후지였다. 정확하진 않지만 10여 년 정도 됐다. 당시 경영팀에서 그 일을 맡았는데 여러 후보지가 있었고 그중에 현청사를 앞서 말한 주차장 부지까지 포함해 재건축하고자 하는 계획을 유력 검토했다. 하지만 문화재 관련 법에 걸려서 심의위원들이 승인해주지 않았다고 한다. 그 안이 좌초되는 바람에 새 청사 자리로 부지를 옮기게 된 상황이다.
다른 지역 또한 문화재 관련한 사항을 굉장히 엄격히 관리하고 있지만, 군청 뒤로 더 높은 곳에 서천여중, 여고가 있는 데다 농촌 지역임을 감안 했을 때, 5~6층 건물을 규제하는 걸 개인적으로 안타깝게 여기고 있다. 고층화, 지하화하고 동시에 주차장 부지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청사 자리를 유지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 구)청사 연계 사건 >
청사를 증축 확장한 탓에 민원인들이 찾아올 때 미로처럼 느끼고 찾기 힘들어하신다. 그 정도로 낡았다는 증거이니 보기에 따라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충청남도 내에 청사 이전이 필요한 곳은 서천, 홍성 그리고 서산뿐인 걸로 알고 있다.
< 청사이전에 관한 감정 >
현 청사가 열악하고 고도 제한 때문에 주변으로 확장공사를 할 수 없어서 이전하게 됐는데 타 시, 군보다 위치적, 환경적 조건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다. 일단 읍성이 둘러싸고 있고 이런 장소가 국내에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 지역 사람들은 익숙해 잘 모르지만, 외지인들이 오면 좋은 곳이라고 얘기를 한다.
신청사는 어떻게 보면 허허벌판에 짓는다는 느낌이 있어 조금 삭막할 것 같다. 박상규 팀장은 2~30대 공무원들의 생각은 잘 모르겠지만 공간이 열악하지 않았다면 현청사에 있는 게 더 좋다고 말했다. 청사 신축 담당 부서로부터 사무실 공간이 크게 넓어지는 건 아니라는 얘길 들었을 때는 본인도 놀랐다고 한다. 행정안전부에서 호화청사를 규제하기 위해 공무원 1인당 평수를 계산해 책정하기 때문이었다. 현청사와 공간의 크기는 크게 달라지는 게 없고 다만 청사 밖으로 흩어져있는 몇 실과가 6층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것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
다만 청사 직원들이 신청사로 가면 사무실이 넓어질 거라는 고정관념이 있기에 옮기고 나서 실망할까 봐 담당 부서에서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았다고 한다. 이 두 가지가 청사 이전으로 아쉬운 부분이다.
< 주민문화공간으로 조성되는 현청사에 대한 생각 >
문화공간 조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박상규 팀장은 개인적으로 이상적인 계획이 될까 걱정하고 있었다. 문화공간, 전시관 관리가 부실한 경우가 많아서 방치되기 십상이라는 것이다.
도시가 아닌 농어촌 특성상 이런 공간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노령인구가 많은데 과연 실효성이 있을지 모르겠고 또 인구 유입의 효과가 없을 거라고 보고 있다. 소수를 위해 몇백억을 투자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효용성 있게 사용하려면 읍사무소를 이곳으로 옮기고 남는 공간은 군 단위로 약 10개 정도의 사회단체들이 들어오는 방법도 좋다고 말했다.
< 공무원으로 생활하면서 지역민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
외부에서 주민들과 내부에서 공무원이 서로를 바라보는 관점은 180도 다르다. 서천 인구는 계속 줄어드는 반면 공무원 수는 조금씩 늘어간다. 인구가 줄어듦에도 불구하고 공무원들은 여전히 인력난에 처해있다고 말했다. 지역 주민들의 인구는 줄지만 반대로 수요는 많아졌다는 것이다.
중앙정부와 충청남도의 방침이 계속 바뀐다. 일례로 국가 예산도 지금 600조가 넘어간다. 그 예산이 지자체, 국가에서 쓰는 돈이고 문재인 정부 때만 해도 거의 100조 가까이 많아졌다. 우리나라의 경제적인 규모가 커지고 예산을 수반하는 수요도 많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예산이 늘어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인구가 많았을 때 서천군 예산이 1천억이었는데 지금은 6천억이 다 되어간다. 이것만 보고 비교하면 안 되겠지만 예산이 많으면 일도 많아진다. 각종 지침이나 규정에 따라야 하고 예산 집행까지 하는 과정이 단순하지 않다. 각종 지침과 규제를 받고 나면 사업 발주도 해야 하고 또 준공하고 사후 관리까지 해야 하는 상황이다.
중앙 부처에서 하는 일도 있고 사업 중에 부서에서 선택해서 하는 것도 있지만 일방적으로 내려오는 업무가 있다. 의지와 상관없이 해야 하는 사업들이 상당히 많아서 산림축산과 같은 경우는 과 자체보다도 중앙정부나 충청남도에서 예산이 내려오는 게 90% 이상이다. 이런 내부 상황을 모르고 ‘시골이라 인구가 줄어드는데 왜 공무원은 자꾸 늘어나느냐.’ 이렇게 접근하시는 주민들이 계신다. 공무원 입장에서 “인력을 늘리지 말되 예산도 늘리지 말아라. 기본만 하겠다.” 식의 논리를 주장할 수 있겠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 부분이다.
공무원의 일이 제가 30년 전보다 여러모로 힘들다. 아무리 전산화되었어도 예산의 규모가 매년 늘어나니까 그걸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민원 건수를 포함한 내용의 범위와 난이도도 인구가 많았을 때보다 적은 지금이 더 많다. 이런 점을 알지 못해서 생기는 입장차이가 공무원의 입장에서는 안타깝다고 주민들에게 전하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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