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입사해서 본청에 근무하다 면으로 나갔다 다시 본청 근무하다 지금은 서면에 근무하고 있다.
< 구)청사 내 공간에 관한 이야기 >
서천 읍성 산책로를 한 바퀴 돌면 운동도 되고 뒤에 산이 있기 때문에 힐링도 된다.
군청 민원실과 본 청사 사이에 느티나무 그늘과 데크가 마련되어 벤치도 있고 ‘꿈 & 카페 산타로사’도 있어서 쉼터 역할을 한다.
< 구)청사 연계 사건 >
공무원 생활이 단순하다. 법규 안에서 지침 안에서 틀에서만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미담 같은 에피소드도 크게 없다.
개인적으로 취미활동으로 사진을 남기고 있는데 서천 역사성과 문화재 옛 흔적을 기록하고 있다. 성안마을과 읍성 등 흔적을 찾아 동호회원으로서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는 일에 보람을 느낀다. 후손들이 서천을 좀 더 알아갈 수 있도록 역사를 남기고 있다. 현 청사 주변의 사진 기록을 모으기도 하는데 아까운 기록물들이 많았다. 청사의 옛 모습도 남겨진 사진으로 가늠할 수 있으니 기록한다는 의미는 역사를 이어가는 일이기도 하다.
< 청사이전에 관한 감정 >
현 청사가 노후화되어서 신청사로 이전하고 원도심 공동화 대비해서 이곳을 활력있는 장소로 탈바꿈하려 한다. 서천읍성을 복원한다면 양쪽 다 균형 발전이 가능해질 수 있다.
< 주민문화공간으로 조성된 후, 기대하는 문화활동 >
청사가 이전하고 나서 이 공간이 문화예술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공동화 현상을 물리칠 수 있기를 바란다. 원도심이 죽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많은데 다른 지역에서도 문제가 되기는 하다. 하지만 이 공간을 문화예술 공간과 거리로 잘 조성한다면 봄의 마을이라는 공간과 연계되기도 하기에 거리 공연도 가능하고 역사박물관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공간을 상업적인 공간으로 바꾸기는 어렵다. 길을 통해 이곳저곳으로 이동하며 문화의 거리가 이어졌으면 좋겠다.
이 공간에서 소 공연들로 1년 내내 활용되었으면 좋겠다. 도시에서만 볼 수 있는 공연들이 이곳에서도 접할 수 있다면 더없이 바람직하다. 사진이나 그림 전시회, 뮤지컬 공연 등 다각적인 공간 활용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아마추어들인 지역민들이 이 공간을 편리하게 이용해서 기획하고 전시 공간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사진/영상
기록개요
기록명
마을기록단 '기억해유'_구)청사에 관한 기억 인터뷰
기록방법
인터뷰
마을명
-
시대
2022년
주제
구)군청사에 대한 서천군청 직원들의 기억
검색어
#구청사 #기억 #인터뷰 #구중식
수집 및 생산자료
사진 7점
제보자
구중식
기록자
이창우
작성연월일
2022년 8월 23일
관련사업
서천읍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
관련기관
-
붙임자료
관련자료 없음
※ 본 내용의 저작권은 서천군 및 1차 저작자(기록자)에게 있습니다. 본 기록의 무단 배포와 변형, 활용을 금지합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성문이 필요 없게 되자 다 없애버렸다. 흔적이 남아있는 동문은 모양이 갖춰지고 있다. 북문은 완전히 흔적조차 사라졌고 서문도 거의 사라져 찾기 어렵다. 우리가 드나드는 입구 쪽이 남문도 다 사라져서 넓게 되었다. 서천읍성이 토성인데 그 흔적을 찾기 어려워졌다.
서천읍의 역사성을 살리기 위해서 복원에 힘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이곳이 명당자리였기 때문에 동헌이 형성된 것이다. 그런 역사성을 지켜내는 일도 중요하다.
< 청사이전에 관한 감정 >
청사는 진작에 새로운 장소로 나갔어야 한다. 이제라도 신청사로 이전하니 잘 된 일이다.
< 구)청사의 아름다운 변화가능성 >
구)청사의 미래 가능성은 첫째, 문화공간으로 활용되어 주민들이 읍성 산책로를 걸을 수 있어야 한다. 둘째로는 주민들이 사용 가능한 전시 공간과 소공연장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 공무원들도 예산이 없어서 안 된다고만 하지 말고 되도록 노력을 하고 주민들도 자발적으로 움직이면서 확실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사진/영상
기록개요
기록명
마을기록단 '기억해유'_구)청사에 관한 기억 인터뷰
기록방법
인터뷰
마을명
-
시대
2022년
주제
구)군청사에 대한주민들의 기억
검색어
#구청사 #기억 #인터뷰 #김수곤 #사진동호회
수집 및 생산자료
사진 8점
제보자
김수곤
기록자
이창우
작성연월일
2022년 8월 23일
관련사업
서천읍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
관련기관
-
붙임자료
관련자료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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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광(1989년생)씨는 어릴 적 군청로에 살았던 주민으로, 사거리 근처에서 살다가 성안마을로 이사했다. 고등학생이 되던 2004년에 군청 일대를 떠나 살게 됐다. 대학교 다닐 때를 제외하면 태어나고 쭉 서천에서 살고 있다.
정경희(1990년생)씨는 군청로에 살았던 주민으로서 인터뷰에 참여했다. 어렸을 적 군청로 골목에서 친구들과 함께 놀았던 기억이 있고, 고등학생 때와 20대 후반에 군청에서 잠깐 일을 한 경험을 토대로 인터뷰에 참여했다.
김영광 씨와 정경희 씨는 현재 ‘우리동네 스튜디오’ 소속으로 영상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다.
< 구)청사에 관한 기억 자율 이야기 >
군청 주변에서 살았던 얘기를 듣고 싶어 하자 김영광 씨는 지금은 다른 곳에서 살고 있고 어린 시절을 조금 보냈다고 얘기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사거리에서 군청으로 가는 방향 기준, 왼쪽에 있는 마을에 살았는데 근처에 ‘구룡사’라는 절이 있던 게 기억이 난다. 지나가면서 보았는데 터만 남고 부서진 상태였다. 내가 살던 집이 부서졌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어쩐지 싱숭생숭했다고 한다.
2003년,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김영광 씨는 군청 앞 성안 마을로 이사 갔다. 성안 주택 못 가서 현재 군청 민원인 주차장으로 쓰고 있는 곳이다. 당시에는 민원인 주차장이 없었는데 바로 김영광 씨가 성안 마을 바로 앞 주차장 자리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지금 성안 마을과 주차장 사이에 있는 길목을 중심으로 모두 주택가였다.
주민으로서 군청이 바로 앞이라 불편했던 점은 없었는지 묻자, 평소 사람 구경하는 걸 좋아했다며 군청에 사람이 많이 오가서 좋았다고 한다. 아쉽게도 성안 마을에서는 1년만 살았다고 한다. 다만 이전 집과 다르게 여전히 누가 살고 있다니 안도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군청 일대에 우물 터가 있다고 들었는데 아시는 게 있는지 물었다. 김영광 씨는 성안 마을에 약 2개의 우물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중 한 곳만 알고 있었다. 성안 마을로 이사 왔을 때 지금 사랑방 선생님 집 오른쪽으로 두 번째 집에 살았다. 그 옆에 작은 우물이 있었는데 당시에도 물을 사용할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수돗물과 지하수 그리고 동시에 우물 물을 펌프로 끌어올려 썼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
성안 마을에 살았을 때 읍성 터에 자주 올라갔는지 물었다. 운동 삼아 올라간 적이 몇 번 있다. 어린 시절이라 그런지 몰라도 고지가 굉장히 높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올라가 보고 그렇지 않아서 조금 놀랐다. 지금은 운동기구를 잘해놨지만 그때는 윗몸 일으키는 기구 정도만 있었다.
군청로의 옛 모습은 어땠는지 자세한 모습을 물어봤다. 지금은 군청을 중심으로 행정적인 일하는 업체가 대부분이지만 과거에는 동네 분위기가 꽤 났다고 한다. 서천에서 가장 크고 시설이 좋은 목욕탕이 있었다. 또 군청로 왼쪽에 있는 ‘축복건축사 사무소’가 전에는 슈퍼였고 맞은 편 ‘드림스타트’는 문구점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정경희 씨는 CCTV 관리센터 주자창 자리에 살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어렸을 때 살았던 동네라 친구들과 골목에서 놀았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 듯했다. 본인을 포함한 또래에게 형제자매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친구가 다섯이면 10명이 모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또 사거리 시장이 서천수산물특화시장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버스가 다 은해곱창 앞 버스정류장을 지났다. 그렇다 보니 면에 사는 친구들은 가까운 정경희 씨 집에 자주 들렀다.
당시 집과 가까웠던 현 관광축제과 건물에 문방구가 하나, 군청 앞 토목설계사 위치에 두 개가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정경희 씨는 아침과 저녁에 한 번씩 어머니께 천 원을 받았다. 그 시절 유행하던 육공다이어리, S.E.S, H.O.T 물건을 두 문방구를 왔다 갔다 하면서 수집하고 다녔다고 한다.
서천목욕탕 옆에 오락실이 있었다.
아이들 사이에 집 근처 건물들에 대한 이상한 전설들이 있었다. 집 앞에 있는 사회복지과 건물은 그저 크고 오래돼서 무섭게만 느껴져다. 그래서 아무도 안 사는 곳, 늦은 시간 지나가면 안 된다는 얘기를 주로 했고, 지금은 없는 ‘대우사우나’라는 큰 목욕탕은 옛날에 어떤 피부병 환자가 왔다 가서 이제 가면 안 된다는 말도 있었다.
초등학교 때 여름, 겨울방학이면 성안 마을 길을 통해서 서천향교에 한자 수업을 들으러 갔다고 한다. 동떨어진 지역이 아닌데 작은 산 너머에 있는 향교를 걸어 다니다 보니 괜히 방학에 멀리 다녀오는 것만 같았다고 한다. 향교 가는 길이 경사가 심해 겨울이면 친구들과 썰매를 탔다.
서천교회 뒤로도 많이 놀러 다녔는데 예전에는 말 그대로 달동네 느낌이었다. 읍성에 갈 때도 친구들과 골목길로 다녀서 군청을 거치지 않아도 산에 올라갈 수 있었고 부모님이 아침, 저녁 등산하러 가시면 같이 가곤 하는 가까운 산이었다.
정경희 씨는 어릴 적 군청의 존재감을 잘 느끼지 못했다. 자라면서 서서히 군청에 대한 이미지가 생겼다고 한다. 군청이 뭐 하는지조차 모르던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친구네가 이사하는 이유가 군청에서 일하시는 부모님의 전근 때문이었다는 걸 알았다. 집이 아인빌라인 친구네 놀러 갔다가 바닥이 대리석으로 돼 있어 부모님이 군청에 다니면 다 부자라고 생각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 구)청사 내 공간에 관한 이야기 >
정경희 씨는 중학생 때 학교를 통해 군청에서 하는 아르바이트 했었다. 정보화 작업을 도왔는데 그때 처음으로 군청에 들어가 봤다.
그 뒤로 20대 후반이 되고 후관동에 있는 환경보호과에서 일했었다. 그때 군청의 모습을 자세히 보게 됐고 왜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건물을 지었을까 궁금해했다고 한다. 본관, 후관, 후별관이 겹쳐진 구조인데 그 사이마다 쓰레기가 정말 많았다.
< 구)청사 연계 사건 >
정경희씨는 중학생이 되고 군청의 이미지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정경희 씨 아버지가 서부 교통 파업으로 군청 앞에서 데모하셨기 때문이다. 군수님이 주차하는 공간 앞에서 늘어선 시위대가 삭발식을 했고 그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집에 들어갔다고 한다.
신문에서도 군청은 대체로 민주 투쟁과 관련한 기사가 실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약 6년 이상 군청과 축협을 오가며 계속된 파업 속에 언제 한번 승소한 적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에는 그 일을 주제로 글을 써서 상을 받았다.
< 청사이전에 관한 감정 >
청사 자리에 문화시설이 생긴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해하자 김영광 씨는 개인적으로 기뻤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평소 서천군에 문화시설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그런 변화가 생기는 게 학생이나 주민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사람이 만나는 공간이 많았으면 좋겠고 영상 작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새로운 활동을 기대하고 있다.
아쉬운 마음은 없냐는 물음에 세월이 흐르면 무엇이든 자연스럽게 변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금씩 변하는 모습을 보며 서천도 발전을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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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군청 자체로는 정경희 씨에게 큰 의미가 없다고 한다. 다만 옛날에 관아가 있던 곳이라는 걸 최근 지역활성화 사업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면서 알게 됐다. 역사가 있는 장소가 갖는 상징성이 아깝게 느껴졌다.
현청사 자리에 청사가 유지되는 게 가장 상징적이고 좋다고 생각한다. 문화시설을 조성한다면 사람들이 시설 이용을 떠나서 어느 때라도 갈 수 있는 센트럴 파크처럼 인식할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
제일 아파트 뒤 마을회관에서 ‘마을 방송국’을 통해 마을 소식을 전하고 있다. 지역의 중심지가 되기에 알맞은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장점을 살려 현청사 자리에서 해도 좋을 것 같다.
군청 후관동 옥상과 서천여중, 여고에서 내려다보는 시내와 남산이 엄청 예쁘다. 주민들이 동네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를 조성해서 더 많은 사람이 서천의 풍경을 알았으면 한다.
< 어릴 적 에피소드 >
인근에 여중, 여고가 있어 생각나는 에피소드를 말해주었다. 김영광 씨가 최근에 여동생과 대화를 통해 알게 된 일로, 학생 때 어느 날 아침, 함께 등교했다. 여동생의 학교 선배가 그 모습을 보고 김영광 씨를 남자친구로 오해했고 여동생이 학교 선생님께 불려간 적이 있다고 한다.
사진/영상
기록개요
기록명
마을기록단 '기억해유'_구)청사에 관한 기억 인터뷰
기록방법
인터뷰
마을명
-
시대
2022년
주제
구)군청사에 대한 주민들의 기억
검색어
#구청사 #기억 #인터뷰 #우리동네 스튜디오 #김영광 #정경희
수집 및 생산자료
사진 17점
제보자
김영광, 정경희
기록자
지연지
작성연월일
2022년 8월 23일
관련사업
서천읍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
관련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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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임자료
관련자료 없음
※ 본 내용의 저작권은 서천군 및 1차 저작자(기록자)에게 있습니다. 본 기록의 무단 배포와 변형, 활용을 금지합니다.
나정자(95세)님은 서천군청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전직 공무원으로 현재 성안마을에 거주하고 있다.
최정희(78세)님은 성안마을에서 미용실을 하면서 주변 어르신들을 돌봐드리는 봉사를 하고 있는 주민이다.
김금남(72세)님은 성안마을에서 살다 도회로 나갔다 돌아온지 8년째이고 실버합창단과 장애인합창단 지휘자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 구)청사에 관한 기억 자율 이야기 >
나정자님은 군청 마당에 있는 은행나무를 자신이 근무하던 때에 심었다고 한다. 그 나무를 바라보면 하늘 높이 솟은 모습에 내가 얼마나 긴 세월을 살아왔는가 절실하게 느낀다고 말한다. 너무 오래 살아서 지금 95세라는 것을 상상도 못했다며 아직까지 혼자 끼니를 해결하고 걸어 다닐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했다.
최정희님은 성안길이 아카시아 꽃으로 만발한 거리를 기억하셨다. 여기는 공기가 맑아서 살기 좋은 동네라는 말도 놓치지 않았다.
김금남님은 여섯이나 일곱 살 때 기와집이 한 채 있던 기억과 소나무와 벚꽃을 모아서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난다고 말한다. 대나무도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거기는 무서워했지만 대나무 숲으로 들어가서 놀기도 했다고. 도시로 나가서 살다가 성안마을로 돌아와 보니 우리 집 앞이 군청주차장이 되어있었다. 중학교 때는 운동선수로 활약했는데 학교에 탁구대가 하나 있지만 애들이 서로 하려고 해서 차지할 수 없었다. 군청에 오면 군청의 젊은 직원들과 탁구를 치곤 했는데 엄마한테 혼나기도 했다. 친구들과 옹기종기 다 같이 모여 살았던 추억이 많이 남아 있다.
< 구)청사 내 공간에 관한 이야기 >
나정자님의 어머니가 어렸을 때는 보통학교를 여기(구청사)에서 개교했다고 한다. 학교가 청사로 되고 새 건물을 짓고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군수 사택은 지금 직원 주차장으로 되었다.
예전에 여자애는 배우게 하지도 못했는데 할아버지가 면서기로 계시면서 학교가 개교하자 입학을 하게 해주셨다. 할아버지는 향교에서 글을 깨우치시고 면서기를 할 수 있었다고 추측한다.
일제시대에는 조선어 시간이 1주일에 1시간 있는데 그마저도 선생들이 풀뽑기를 시켰다. 조선어 말살 정책으로 글을 몰라서 1945년 해방 후 당시 둘째 동생이 초등학교 6학년이라 그 아이에게서 한글을 배웠다. 지금도 한글을 쓰는 데 부끄러움이 있다.
< 구)청사 연계 사건 >
최정희님은 청사 앞에서 살면서 데모 보는 일이 잦았다. 어떨 때에는 상여 메라는 소리가 들려 새벽에 주민이 나와서 야단치고 누가 죽었냐고 왜 상여메는 소리를 내냐고 했던 일이 잊을 수가 없다. 청사 앞이라 자주 볼 수 있다.
김금남님은 주차장 바로 앞에 사니 흙먼지가 날려서 당장 민원실로 달려가서 말했더니 다음 날로 돌을 깔았다고 한다. 군청 주변에 살고 있는 어르신들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공무원들이 스스로 알아서 해주지는 않는다. 먼지가 너무 나니까 최정희씨 남편분이 사철나무를 쭉 심어놔서 또 다른 골목길이 만들어 졌다.
< 청사이전에 관한 감정 >
구청사가 좋은 장소로 만들어질 것이라는 믿음도 있어서 나정자님은 나이가 있으니 생전에 그런 모습을 볼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말한다.
최정희님은 지금 살고 있는 청사 앞에서 근처 다른 장소로 이주 계획이다. 여기는 물이 좋은데 여기서 계속 살았으면 안 떠날 것을 하는 생각을 한다.
김금남님은 마을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관공서에 요구를 하면서 목소리를 내야 변화가 생긴다며 함께 목소리 내야 한다고 말한다.
< 서천군청사의 아름다운 변화가능성에 대해 >
김금남님은 청사가 문화예술 공간으로 변화하게 되는데 우물을 다시 복원했으면 한다. 물이 참 좋은데 골목길도 살리면 돌봄공동체로 거듭 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성안 한옥마을로 조성한다고 하니 성안주민협동조합도 만들고 싶다. 주민들이 함께 모여 움직여서 뭔가를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 어린이도서관도 만들어질 예정이라고 들었는데 사서이기도 했으니 어린이들과 책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주차장이 잔디밭으로 조성되면 이곳에 사람들이 놀러올 것이니 사랑방을 열어 같이 이야기를 하고 상담사로 들어주고 도움이 되기를 원한다. 동네를 아름답게 꾸미면 좋겠다. 성터를 걸으면서 마음을 놓아줄 수 있기를 바란다. 버스킹 하는 장소로도 꿈을 꾼다. 작은 음악회도 열리는 아름다운 동네를 만들고 싶다. 음악이 있는 동네, 지역 모든 사람들이 와서 아름답고 행복한 곳이라는 생각으로 더 머물고 깊은 공간이 됐으면 참 좋겠다.
최정희님은 봉사활동을 더 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했다. 어르신들 머리 자르는 일이나 돌봐드리는 일을 계속 하고 싶다. 먼 곳에서 놀러와 관광지로 되기도 하게 잘 만들어졌으면 한다. 좋은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
나정자님은 95세인 자신을 위하는 일보다는 주민들이 원하는 것들이 평화롭게 일어나는 것들을 바라보고 싶다.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로 이 공간이 유익하게 되도록 응원한다.
< 표백소 할머니 이야기 >
김금남님의 고모 할머님이 표백소를 하셨는데 강한 며느리였다. 옛날에는 생모시를 잿물에 빨아서 하얗게 표백을 했다. 그 잿물이 또랑으로 흘러가면 마을 사람들이 그 물로 빨래를 했다. 그 또랑은 지금은 다 덮어버렸고 그 후에 표백소가 목욕탕이 되었다.
사진/영상
기록개요
기록명
마을기록단 '기억해유'_구)청사에 관한 기억 인터뷰
기록방법
인터뷰
마을명
-
시대
2022년
주제
구)군청사에 대한 주민들의 기억
검색어
#구청사 #기억 #인터뷰 #나정자 # 최정희 #김금남
수집 및 생산자료
사진 18점
제보자
나정자, 최정희, 김금남
기록자
이창우
작성연월일
2022년
관련사업
서천읍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
관련기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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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의 저작권은 서천군 및 1차 저작자(기록자)에게 있습니다. 본 기록의 무단 배포와 변형, 활용을 금지합니다.
이천휘 팀장은 2013년에 타 시군 직원들이 와서 무척 놀라면서 열악한 환경을 지적하는데 조금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했다 한다. 이제 넓은 신청사로 나가면 주민들의 접근성도 좋아지고 공무원들도 좀 더 효율적인 공간에서 사무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민들도 서비스의 질이 높아지기를 바라니 잘 된 일이다.
< 구)청사 내 공간에 관한 이야기 >
이천휘 팀장은 현 청사에 개인의 힐링공간으로 서천읍성 주면 산책길을 꼽았다.
정선림님은 은행나무와 팽나무 주변에서 차를 마시고는 하지만 공간이 좁다 보니까 나만의 작은 공간으로 느낄 곳이 없다고 말한다. 최근에 청사 주차장 나무로 보금자리를 옮긴 새들과 같이 지낸다.
< 구)청사 연계 사건 >
정선림 님은 건물이 낙후되어 일어났던 일을 들려 주었다. 한파가 와서 청사 앞에 있는 수도관이 전부 얼어서 물이 솟구쳐 분수처럼 퍼져 추위에 얼어붙은 겨울을 기억하고 있다. 여름에 폭우가 와서 기획감사실 복도를 지나 군수 관사쪽으로 이어져 군수실까지 양동이로 물을 받아내던 적도 있었다.
< 청사이전에 관한 감정 >
이천휘 팀장은 청사 이전에 대해 기대감도 있고 섭섭함도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몸담고 지냈기에 아끼는 마음이 있다.
< 서천군청사의 활용과 미래 가능성에 대해 >
정선림 님은 현 청사 공간의 활용과 미래 가능성에 대해 문화 활동보다는 공공도서관을 기대한다. 서천읍은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도서관이 구석에 자리 잡아 접근성도 어렵고 공간도 좁아서 아이들과 이 근방 어르신들이 같이 이용할 수 있는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되기를 바란다. 자유롭게 들고 날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다. 시니어 중심 도서관으로 큰 글씨 책을 구비해서 수요를 충족하는 것도 좋지 않나 생각한다. 현재 진행되는 상항과는 달라서 개인적으로 아쉽다.
이제 특별하게 바라는 것은 사진동호회나 그림 전시 등 활동하는 주민들을 위한 상설전시공간이 수월하게 열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현청사의 아름다운 미래 가능성에 대해 이천휘 님과 정선림 님은 주민들이 와서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늦은 저녁에도 할 수 있는 그런 열린 공간이기를 입을 모아 말한다. 공간이 있어도 직장인 경우 저녁시간 활용이 어렵고 시설 사용 신청 등 그런 점을 신경 썼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다.
사진/영상
기록개요
기록명
마을기록단 '기억해유'_구)청사에 관한 기억 인터뷰
기록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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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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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20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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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군청사에 대한 서천군청 직원들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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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청사 #기억 #인터뷰 #해양수산과 #이천휘 #정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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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자
이천휘, 정선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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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우
작성연월일
2022년 8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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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석님은 33년의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현재는 군청 근처에서 서천 설계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 구)청사에 관한 기억 자율 이야기 >
지역 업무를 담당했을 때에는 지적에 대한 전산화 사업을 했을 때 대장을 카드화 작업을 했다. 1970년대~80년대 진행되었고 그 이후에 또 제2단계 사업이라고 전산화를 시작했다. 그 당시 업무량은 아침 먹고 출근해서 밤 11시~12시에 퇴근하고는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당시에는 힘들었다.
청사 주변을 넓혀서 주차장을 만들고 나니 데모하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게 되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소음 공해로 작용을 한다. 정신적 피로감이 크다. 데모하는 사람들의 목적은 알겠는데 지역 주민들 입장도 생각을 해서 자제를 해주었으면 바란다.
< 구)청사 내 공간에 관한 이야기 >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공간은 정자나무와 그 밑에 있는 은행나무 아래에서 얘기 나누고 했던 곳이다. 이제는 직원 식당도 생겼지만 재직 시절에는 그런 공간도 부족했다.
지금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는 공간은 군청 내에 있던 관사인데 기와집이었다. 지금 있다면 이런 조성 사업하는데 무척 근사했겠다 싶다. 관선 시대에 사용했던 공간이니 협소한 청사의 근무 환경을 위해 철거를 했던 것인데 많이 아쉽다.
< 청사이전에 관한 감정 >
청사 이전은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공무원들이 협소한 공간에서 업무를 보기가 편안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주민 문화활동의 공간으로 어떻게 활성화시키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것들을 유치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본디. 충분히 검토해서 운영을 하면 더 나을 것이라 생각한다. 주민들에게 얼만큼 혜택을 줄 것이냐가 중요하다.
현청사의 문화공간은 우리 세대들 보다는 젊은 세대를 위해서 마련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인구도 안 줄고 여기서 머물고 안착하고 싶도록 행복한 도시여야 한다. 그곳에 가면 힐링할 수 있다던가 이곳에 머무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저 하나 배우고 나가는 것보다 여기서 머무를 수 있는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주어야 한다.
현 청사 주변은 사무실들이 신청사를 따라 움직이면 텅텅 빌 수도 있고 주택으로 전환되기도 할 것 같다. 무언가 비전이 있어야 상업적으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새로운 일거리가 마련되어야 문화의 거리이든 다양한 먹거리 가게든 생겨나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처럼 젊은이들이 찾아오는 거리가 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화랑도 있고 젊은이들 협동조합도 있고 서천도 그렇게 되려면 혼자만의 생각으로는 어렵다. 여러 일들이 맞물려서 일어난다면 미래에는 가능할 수도 있다. 하루 아침에 될 일은 아니라고 본다.
< 퇴직 이후 청사를 바라보는 시선 >
퇴직 후 청사 근처에서 계속 직업을 가지고 있기에, 청사를 바라보면 드는 마음이 담담하다. 그래도 그 어려운 세파 속에서 공무원 생활을 무사히 저기서 마쳤구나 하면서 자부심을 주기는 한다.
사진/영상
기록개요
기록명
마을기록단 '기억해유'_구)청사에 관한 기억 인터뷰
기록방법
인터뷰
마을명
-
시대
2022년
주제
구)군청사에 대한 퇴직공무원의 기억
검색어
#구청사 #기억 #인터뷰 #정진석
수집 및 생산자료
사진 8점
제보자
정진석
기록자
이창우
작성연월일
2022년 8월 3일
관련사업
서천읍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
관련기관
-
붙임자료
관련자료 없음
※ 본 내용의 저작권은 서천군 및 1차 저작자(기록자)에게 있습니다. 본 기록의 무단 배포와 변형, 활용을 금지합니다.
예전에 군 청사는 우리 삶의 중심지였다. 서천이 바닷가이다 보니 물맛이 좀 짰다. 읍내 사람들은 지금은 폐쇄되어 있지만, 청사 뒤편에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먹었다. 당시에는 샘에서 물을 떠서 식당과 가정집에 배달하면서 돈을 버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 때는 석탄으로 난방을 했다. 선배들 비위도 맞추고 겨울 아침 같은 때는 장작 가져다 석탄 갖다가 불을 때면 연기가 사무실에 자욱하다. 최소 한 시간 일찍 출근해야 했다. 난방 피우고 바닥 청소하고 책상 닦고 이렇게 고생했다. 우리가 나이 먹고 대우받을 때가 되니까 다 사라졌다. 청소도 내가 하고.
내가 기억하는 재직 시 가장 큰 변화는 아무래도 행정업무에 관한 일이다. 공문서 작업을 손글씨로 다 해야 했다. 문서 생산을 하려면 가리방 먹는다고 해서 원지가 있고 기름 먹지를 끼우고 철판에 글씨를 쓰는 일이었다. 문서 생산하고 발송하는 일이 큰 일이었다. 지금은 컴퓨터로 거의 모든 행정 업무가 신속하게 생성되고 발송하면서 보관되니 엄청난 변화이다.
< 구)청사 내 공간에 관한 이야기 >
군청사가 한 동으로 되어있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우리는 본청에 별관, 그 뒤에 또 위에 증축하고 미로가 되어 버렸다. 그러다 보니 군청을 찾아오는 민원인들이나 직원들도 짜증이 나기도 한다.
1960년대는 군청 본 건물 하나에 4개 과 정도밖에 없었다. 한 100여명 정도 근무했다. 확장하면서 군수 관사를 없애고 주차장을 넣으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변천했다.
군청 뒤에는 지금과 달리 건물이 하나도 없었다.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길도 없어서 진입로로 들어오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주변이 늘 먼지였다. 군청 주변이 개발되기는 했지만, 난개발이다 보니 보기는 좋아 보이지 않아도 진입로가 여러 곳으로 가능해진 것이다.
옛날에는 군청 주변이 다 숲터였다. 읍성 주변에 대나무도 빼곡했고 소나무도 엄청 많아서 어렸을 적에는 여기서 대나무나 솔가지를 주워다 난방용으로 쓰기도 했다.
청사 주변을 웃장터라고 불렀는데 목욕탕도 있었고 표백소도 있었다. 성안 마을이라 불리던 시절이다.
지금과 달리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길이 없었다. 군청에 들어오려면 정문 입구 하나밖에 없었다.
식당에서 점심 식사 후 등산로인 토성 한 바퀴를 돌면 점심시간이 딱 맞는다. 아무래도 그 길이 기억에 많이 남아있다. 예전에는 성 주위로 길이 나지 않았었다.
< 청사이전에 관한 감정 >
진작 이전을 했어야하는 일이었다. 예산군 같은 경우를 보면 시내 한복판에 있어서 굉장히 어려운 입장이지만 그래도 이전했다. 청양군만 해도 규모나 시설이나 주차장도 엄청 넓다. 신청사를 이전하는 일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청사 공간이 적어서 분리된 채 나가 있는 형편이다.
문화관광과 사회복지과는 청사 밖으로 나가 있고, 그 외에도 외부로 나가 있는 부서들과 회의를 하거나 전달하거나 소통을 하는데 걸림돌이 된다. 부서 간 협조받을 일이 있는데 굉장히 어려워진다. 같은 장소에 있다 보면 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서로 고통을 나누면서 서로 소통하는 분위기가 마련될 수 있다. 청사를 찾는 민원인들의 불편함도 덜어질 수 있을 것이다.
현 청사는 주민들을 위한 문화 활동 공간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했는데 개인적으로 지저분하고 잡다한 조립식 건물들은 과감하게 철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롭게 보완해서 쓸모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문화공간도 지금 어려움이 많다. 지역 내에서 나름대로 문화공간이 많다. 봄의 마을이나 문화원, 읍사무소 등 다양하게 프로그램을 하고 있어서 참여하는 사람도 적을 수 있다. 그러니 여기서 제대로 내실 있는 운영으로 전체 군민이 참여할 수 있게 되었으면 한다. 문화도 그렇고 이 주변이 성이니까 그것을 고려해서 서천의 역사성을 살려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성곽 중심으로 성터도 복원하고 역사와 맞물려 일이 추진되면 좋을 것 같다.
< 퇴직공무원으로서 지역민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
퇴직 이후 생각보다 자주 청사에 일이 없으면 들리게 되지 않는다. 요즈음은 인사를 해도 아무도 모르고 직원들이 자주 바뀌고 있어서 남의 집 온 기분이 든다.
서천 지역민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근무했을 때나 퇴직 후 생각하는 것은 비슷하다. 모든 일이 진행되고 있을 때 지역민들이 협력을 많이 해주면 좋겠다. 재직 시절에 지역민이 협력을 안 해주어서 고생하고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군 행정에 약간 관심을 가지고 주민들이 협조를 해주면 싶다. 다 잘 살자고 하는 일인데 이기적인 마음을 조금 버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역민으로 돌아가 군청에서 하는 일을 보면 크게 주민의 협조를 구하는 일도 없고 예전에 비해 약간 소극적으로 일처리를 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우리 젊었을 때 근무 환경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봉공정신이 중요한데 쉽지는 않은 일이다.
사진/영상
기록개요
기록명
마을기록단 '기억해유'_구)청사에 관한 기억 인터뷰
기록방법
인터뷰
마을명
-
시대
2022년
주제
구)군청사에 대한 퇴직공무원의 기억
검색어
#구청사 #기억 #인터뷰 #퇴직공무원 #정선교
수집 및 생산자료
사진 30점
제보자
정선교
기록자
이창우
작성연월일
2022년 8월 3일
관련사업
서천읍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
관련기관
-
붙임자료
관련자료 없음
※ 본 내용의 저작권은 서천군 및 1차 저작자(기록자)에게 있습니다. 본 기록의 무단 배포와 변형, 활용을 금지합니다.
김명원님은 안전총괄과 과장이다. 안전총괄과에는 6개 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예방 차원과 긴급하고 위험한 상황에는 지역 재난안전본부를 설립해 총괄 지휘하고 있다.
한명숙님은 안전관리팀장이고, 박근영님은 중대재해예방 TF팀장, 성재권님은 민방위팀장으로 재직 중이다.
< 구)청사에 관한 기억 자율 이야기 >
김명원 과장은 예전에 구내 식당이 아니라 외부에 식당이 있었을 때 자반고등어 메뉴를 잊지 못한다. 당시는 먹을 것이 풍부하지 않아서 자반고등어 구이가 나오는 날이 떠오른다고 말하자 한명숙 팀장은 요새는 금요일에 생선 나온다고 젊은 직원들은 민원을 넣기도 하고 나가서 점심을 먹고 온다고 한다. 식당들이 현청사 주변에 활성화되었지만 아파트 단지가 생기면서 그 주변으로 옮겨갔다.
재래시장이 옮겨 가면서 청사 주변이 구 시장터였는데 흐름이 많이 바뀌었다. 이 주변이 정비되면서 많은 것들이 변했다. 지금은 다른 공간으로 바뀌었지만, 군청으로 들어오는 길에 작은 동네 슈퍼가 하나 있었다. 아이스크림과 라면, 담배가 가장 많이 팔리는 가게였다.
성재권 팀장은 여름에 물난리가 났던 기억이 있다. 2018년 문화관광과로 와서 본청으로 들어왔는데 이렇게 오래된 청사에서 어떻게 직원들이 근무를 하고 있나 신기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다고 술회한다.
< 구)청사 내 공간에 관한 이야기 >
김명원 과장의 힐링 공간은 산성으로, 다른 지역 청사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근사하다고 말한다. 아침에 일찍 올 때면 산성 뒤로 난 길을 지나면서 운동도 한다. 안전총괄과가 자리 잡은 4층 이 공간도 마찬가지다. 청사 이전으로 제일 아쉬운 것이 점심 먹은 후 산책하는 산성 길이다. 길의 시작은 하나이지만 여러 갈래 길이 나 있어서 봄 여름 가을 겨울마다 분위기가 다르다. 올라가고 싶은 사람은 올라가고 내려가고 싶으면 내려가고 머물고 싶은 사람은 머물 수 있는 곳이다. 숲에는 꽃과 나무 종류도 다양하다. 의외로 생각하지 못한 꽃나무들이 반겨준다. 특히 소나무 향이 나는 이 산책로는 추억의 공간으로 남을 것 같다.
한명숙 팀장은 행정적 차원에서 업무를 하다 시설 안전관리를 하게 되었을 때 중압감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코로나 19 시절을 보내면서 워라벨은 사라졌지만 안전관리 총괄이란 책임감이 컸다. 계단을 타고 올라오다 보면 머리는 가뿐해지면서 4층에 자리 잡은 이곳은 가장 좋아하는 곳이 되었다. 전경이 다 내려다보이고 앞이 트여서 마음 가릴 게 없는 곳이다. 주차공간이 부족하니까 출근 시간대별로 이용하는 주차공간이 다르다. 늦게 오면 새똥맞게 되는 자리로 온다. 새똥 맞는 날은 복권 사러 가는 날이기도 하다. 남직원들은 모르겠는데 여직원들은 화나고 열 받으면 업무 시간에 졸졸졸 나가서 서천성길로 가 동문으로 올라가서 하얀 뜰만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한다. 과장님한테 혼나면 거기로 올라 간다. 가서 하염없이 바라보는 저 뜰이 내 뜰이었다. 서천 들에서 화양 들까지 금강까지 다 바라다 보이는 풍경이 제일 좋다.
< 구)청사 연계 사건 >
지금은 주차장으로 다 사라졌지만 한명숙 팀장은 마티즈를 처음 타고 운전하고 왔을 때 큰 은행나무와 입맞춤을 한 기억을 소개해 주었다. 직원들이 와서 밖으로 꺼내 주었는데 경차이기에 가능했다 하고 지금도 만나면 마티즈 차를 꺼냈던 이야기를 듣는다고 한다.
< 청사이전에 관한 감정 >
김명원 과장은 현청사가 노후화된 것으로 이미지가 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장소로만 생각하는 것에 약간의 거부감은 있다. 구조물이 낡았지만 안착된 느낌인데 이곳을 떠난다는 게 좀 아쉽다. 안전총괄과는 4층에 만들고 나갔다 돌아온 것이라 애착이 많다. 30년 넘게 근무하다보니 새 곳으로 가는 기대감도 조금 있지만 아쉬움이 더 크다. 퇴직을 1년 정도 남긴 탓이기도 하다. 공간을 이용하는 통로라던가 입출구가 불편하기는 하다. 여직원을 위한 휴식 공간이나 직원들을 위한 힐링공간을 만들어야 하는데 현 청사는 협소하다 보니 제약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청사 이전은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성재권 팀장은 이산가족으로 살아온 청사 식구들이 신청사로 가면 만나서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으로도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 서천군청사의 아름다운 변화가능성에 대해 >
김명원 과장은 현청사 공간이 주민 간 소통의 장소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서천군 내에서 이렇게 조용한 공간을 주민을 위해 만들기는 어렵다. 어떤 의미에서 현 청사의 자리는 독립적인 공간으로 활용하기 좋다. 평일에도 아이들이나 어른들을 위해서 편안하게 손잡고 산책하면서 쉴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앞으로는 낮 시간 보다는 저녁 시간 활동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하니 어떤 프로그램이라도 저녁 시간에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특히 장년층이나 어르신들은 소통하는 방법을 잘 모르고 정보력도 없어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자신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방법이라던가 이야기를 끌어나가야 하는 지도 배워야 한다. 소통을 자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대 간 서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명숙 팀장은 주민들이 교육이나 활동 참여에 적극적이어야 이 공간이 활성화된다고 말한다. 어렵더라도 천천히 많은 사람이 함께 참여하며 활동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우기를 바란다. 가족들이 모여서 소규모 활동과 작은 공연도 하고 연극이나 음악회도 있어서 가족 단위의 웃음소리가 나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넘치는 공간이기를 기대한다.
박근영 팀장은 관공서가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별로 오지 못했던 공간이다. 서천군은 인구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문화시설이나 공원도 없고 큰 도서관도 없다. 학교 근처이니까 같이 산책하며 아이들이 뛰어놀며 공부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되기를 바란다.
성재권 팀장은 도지정 문화재인 서천읍성의 특별함을 살려서 문화재 발굴과 같은 역사성을 강조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서천읍성을 토대로 주민들이 산책로로 이용하면서 서천 역사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주민들이 원하는 쪽으로 가야 하지만 문화재와 연관해 개발하는 게 좋다고 본다.
사진/영상
기록개요
기록명
마을기록단 '기억해유'_구)청사에 관한 기억 인터뷰
기록방법
인터뷰
마을명
-
시대
2022년
주제
구)군청사에 대한 서천군청 직원들의 기억
검색어
#구청사 #기억 #인터뷰 #안전총괄과 #김명원 #한명숙 #박근영 #성재권
수집 및 생산자료
사진 25점
제보자
김명원, 한명숙, 박근영, 성재권
기록자
이창우
작성연월일
2022년 8월 3일
관련사업
서천읍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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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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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경숙 재무과장은 군청과 다른 곳을 오가며 일했다. 서천군청에서는 농정과, 민원봉사과를 거쳤다. 최근에 국립해양생물자원관에서 근무했으며 올해 1월부터 재무과에서 일하고 있다.
< 구)청사에 관한 기억 자율 이야기 >
홍경숙 과장은 청사가 가지는 특징으로 역사적인 의미를 꼽았다. 앞에 남산이 치소(지역의 행정 사무를 맡는 기관)였고 그다음 문산 문장리를 거쳐서 1966년부터 현청사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천읍성의 한 가운데 있는 것도 상징적이라 일반적인 공간의 개념으로 바라보긴 어렵다.
외부인이 방문할 때 내비게이션에 서천군청을 검색하면 보건소 쪽에서 민원실로 넘어오는 가파른 언덕길로 안내해준다. 길도 복잡하고 좁으니까 다들 놀란다.
직원들이 야근하느라 저녁을 먹으면 그 냄새를 맡고 고양이들이 오기도 한다. 남은 밥을 주다 보니까 고양이의 수가 점점 늘어났다. 평소에도 직원을 따라오고 감당이 안 돼서 직원들이 더 이상 음식을 주지 않았더니 고양이들이 주차장에서 많이 지낸다. 최근까지 민원실에서 밥을 챙겨준 것으로 알고 있다.
< 구)청사 내 공간에 관한 이야기 >
2000년에 읍사무소에 있다가 발령받아 청사로 처음 왔을 때 후관동 농정과에서 일했다. 조립식 가설건물이다 보니 여름, 겨울에 특히 근무하기가 힘들었다. 지금 일하고 있는 재무과(후관동 1층)와 옆 사무실 해양수산과도 증축해서 생긴 불편함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건물들이 붙어있어 해가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무과는 그나마 낫고 해양수산과는 앞에 있는 투자유치과(본관 1층)가 완전히 가리고 있어 습하다. 또 증축으로 연결된 부분이 비가 오면 물이 새고 쥐가 나오기도 한다. 직원들이 야근하느라 먹은 저녁 냄새 맡고 온 고양이들을 이용해 쥐를 쫓아내려 한 적도 있다.
조직을 개편하면 실과가 늘어나 후관동 옥상에 조립식 건물을 올려서 4층이 됐다. 안전총괄과가 있는 곳인데 듣기로는 1년 사이 2명이나 다쳤다. 올라가는 철제 계단이 위험하다. 눈이 오면 직원들이 미끄러지고 깁스를 한 경우도 많다.
홍경숙 과장은 2001년에 근무하면서 가장 아찔했던 일이 있다고 하셨다. 사무실에 불이 날 뻔했는데 식목일이라 농정과 직원들이 현장에 나가서 없고 비상 대기조로 몇 명만 사무실에 남은 날이었다. 지금도 기름을 넣는 전기난로를 쓰고 있지만, 당시에 과장님 자리 앞에 큰 석유난로가 있었다. 그때 난로를 담당하고 있어서 난로를 피우려고 했는데 누가 기름을 넣다가 흘렸는지 라이터로 불을 붙였더니 불이 옆으로 계속 번졌다. 바닥이 장판이라 기름이 흘렀어도 티가 안 난 것 같다. 근처에 물이 든 양동이가 있어 부으려고 하자 한 직원이 말리더니 소화기를 갖고 와 진압했다고 한다. 물을 부었으면 기름이 물을 타고 흘러 불이 더 번졌을 것이다. 건물도 조립식이고 옆에 종이가 많이 쌓여있는 발간실이 있었기 때문에 건물이 다 탈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때 이후로 화기 관리에 더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민원봉사과에서 일할 때도 불이 날 뻔 했다. 어떤 어르신이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운 후 제대로 끄지 않고 휴지통에 버리고 가는 바람에 소화기로 불씨를 끈 적이 있다.
어느 날은 본관동 2층 군수실 앞으로 물이 폭포처럼 샜다. 1966년에 지어졌으니 아무리 보수작업을 했어도 한계가 있었다. 직원들이 양동이로 물을 퍼냈다.
약 15년 전에 수박 농사하시는 분이 당시 수박값이 똥값이 됐다면서 트럭에 싣고 온 수박을 청사 입구에 던져 깨뜨린 일이 있다. 당시에는 민원주차장이 만들어지기 전이라 시위공간도 없었기 때문에 입구에서 시위한 셈이었다. 후에 직원들이 삽으로 다 치운 걸로 안다. 그 자리에 없어서 다른 직원에게 얘기를 전해 듣고 홍경숙 과장 자신의 친구라는 걸 알았다고 한다.
별관 2층으로 가는 계단 밑 카페 자리에 원래 아무것도 없었다. 중간에 장애인복지관이 생기면서 보호작업장에서 장애인들이 훈련했다. 취업하기 전에 시험 무대가 필요한 상황이라 장애인복지관과 군청이 협약을 맺어 지금 공간이 마련이 됐다고 한다. 느티나무에 둘러진 나무 데크도 그때 같이 생긴 것이다. 느티나무와 은행나무는 군청이 들어서면서 같이 심은 것으로 알고 있다.
구내식당 쪽에 대나무 숲이 있었는데 최근에 다 베어버렸다. 대나무가 자라면서 무게를 못 이기고 건물 위로 우거져서 예초한 셈이다.
청사 이전하면 노박래 군수님이 시위가 모두에게 힘들지 않게 공간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청사 내에서 가장 맘에 드는 곳은 느티나무랑 카페 있는 곳부터 은행나무 밑 벤치까지의 공간이다. 요즘은 덥고 모기가 많아서 직원들이 잘 안 가지만 은행잎이 떨어지고 할 때는 운치가 굉장히 좋다.
< 청사이전에 관한 감정 >
청사를 이전하고 나면 읍성 산책길이 가장 그리울 것 같다. 조금 전에도 다녀왔는데 청사 직원들은 뒤로 읍성이 있어서 점심 먹고 한 바퀴 돌면서 힐링 시간을 보낸다. 항상 사람이 많다. 서천보건소부터 읍성을 지나 반대 방향에 있는 서천향교, 성당까지 갈 수 있다. 중간에 서천여중, 여고 운동장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좋고, 이어지는 산길을 올라가면 동문이 나온다고 한다.
직원들은 오매불망 이전을 기다리고 있다. 젊은 직원들은 비교적 편한 환경에서 경제적인 부를 누리며 대학을 나와 취업했기 때문에 낡은 청사에 익숙하지 않다. 50세가 넘은 직원들은 힘든 시절을 보고 겪었으니까 적응이 쉽지만 젊은 사람들은 견디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다.
주차마저 쉽지 않아서 이중주차를 하고 그러면 사진을 찍어서 올리니까 직원들의 스트레스가 크다. 이전하면 직원들의 주차 문제는 해소될 거라 기대하고 있다.
< 주민문화공간으로 변화할 청사에 대한 기대 >
군청 자리에 문화시설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 반신반의하고 있다. 사거리 우측 읍사무소에도 주차장이 부족하다. 청사의 콘크리트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문화공간과 같이 쓰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또 현재 서천읍사무소와 주민자치센터를 새로 지었기 때문에 청사로 오는 게 불가능하다면, 서천군 내 군청에서 보조금을 지원하는 자원봉사센터 같은 사회단체들이 많으니 그런 민간단체들이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온전히 문화공간으로 만들면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예를 들어 문화 활동 중에서도 어떤 게 형성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지역활성화사업 안내 책자에 있는 ‘치유의 숲’이라는 단어를 보면 포괄적, 가치적인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10분만 가면 얼마든지 산길을 걸을 수 있다.
시설을 유지, 관리만 하는 게 아니라 활용도가 중요하다. 일단 인구가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에서 고민을 많이 해볼 필요가 있다. 역사적인 위치인 만큼 사람의 필요에 맞게 활용이 잘 되는 곳이길 바라는데 서천에 이미 비슷한 공간이 있다는 점이 그 이유다.
일단 도서관을 보면 서천군에 서천도서관, 봄의 마을 도서관, 사할린 교포들이 영구 귀국해 사는 휴먼시아 아파트 작은 도서관이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서천 남자 고등학교 뒤 복합체육센터에도 작은 도서관이 들어갈 예정이다.
홍경숙 과장은 서천에 역사관, 기록관이 없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도서관보다 기록관이 잘 조성됐으면 좋겠다. 한산에 가면 한산모시관에서 모시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직원을 배치해놓고 누구라도 오면 전반적인 서천 역사를 알 수 있게 해놓는다면 대학생이나 연구원들에게도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인권위원회에서 50년, 100년이 지나면 공개 가능해지는 것처럼, 서천군도 내년에 이전하면 행정기관에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자료가 분명 많이 있을 거다. 그런 것을 폐기하지 말고 이런 곳에 쓰면 좋겠다고 말했다.
민원실 앞에 공적비들이 있다. 거북이 2개와 비석 1개를 청사가 떠나고 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는데 문화사업의 일부로 쓰였으면 했다. 여태까지 주차공간이 부족해서 앞에 주차하다 보니 보는 사람도 없고 방치되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한다. 다른 곳에 있던 공적비를 기증받은 것이기도 하고 한 번 멸실되면 다시 되돌릴 수 없으니 사람들이 보고 그 가치를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 공무원으로 생활하면서 지역민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
지역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사람들이 자신의 주변에 있는 것들을 소홀히 하기 쉽다며 말문을 열었다. 서천군에 많은 유적과 유물이 있다. 특히 비인 5층 석탑, 한산 봉서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불상, 문헌서원의 목은이색 초상화는 국가지정 보물인데 그 가치를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지역민부터 먼저 보물로 지정된 이유와 유형, 무형 문화재의 가치를 알고 귀하게 여겨야 다른 사람들도 인정해준다고 생각한다. 이런 노력을 함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진/영상
기록개요
기록명
마을기록단 '기억해유'_구)청사에 관한 기억 인터뷰-
기록방법
인터뷰
마을명
-
시대
2022년
주제
구)군청사에 대한 서천군청 직원들의 기억
검색어
#구청사 #기억 #인터뷰 #재무과 #홍경숙
수집 및 생산자료
사진 5점
제보자
홍경숙
기록자
지연지
작성연월일
2022년 8월 2일
관련사업
서천읍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
관련기관
-
붙임자료
관련자료 없음
※ 본 내용의 저작권은 서천군 및 1차 저작자(기록자)에게 있습니다. 본 기록의 무단 배포와 변형, 활용을 금지합니다.
남성우 희망마을팀장은 20년 전 지역경제과에서 근무했고 현재는 농정과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종수 주무관은 2007년 건설과에서 첫 업무를 시작했고 현재는 농정과에 재직 중이다.
< 구)청사 내 공간에 관한 이야기 >
청사의 초기 모습은 담에 둘러싸여 있었다고 한다. 내부와 외부의 소통을 위해 담을 다 허물었다.
나주하 팀장은 직원주차장이 된 테니스장에 대해 떠올렸다. 당시 테니스가 유행이어서 직원들이 많이 이용했다. 90년대 말 직원들의 자가용이 많아지면서 테니스장을 치우게 됐을 때 팀장님의 경우 공간이 남아 아이들과 함께 축구도 하고 놀았다고 한다. 직원주차장이 됐지만, 테니스공을 튕기는 벽이 아직 남아있다.
교육지원청 관사, 여성 휴게실로 쓰던 곳에 탁구장을 마련했는데 현재 잘 이용 중이라고 한다. 현청사 내 탁구동아리가 있고 특히 도시건축과 안형섭 팀장이 잘 알고 있다. 여성 휴게실에 대해 법적인 이유로 마련됐지만, 여성 혼자 그 공간에 있으면 위험할 수 있으니 차라리 체육관으로 만들자고 노조에서 건의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별관동 뒤에 공무원 노조가 있었는데 지금은 과거 군수 관사에 있고 탁구장 안에는 계약직 공무직 노조 사무실이 있다.
태풍으로 호우주의보가 있어 군수님과 직원들이 일찍 출근한 날이었다. 군수님께 지역별로 강수량을 파악해 보고드리며 청사로 들어왔는데 비가 많이 와서 군수실에 물이 샜다. 구멍이 난 건 아니고 건물 틈새를 타고 흘러 이미 바닥이 흥건한 상태였다. 큰 세숫대야를 갖다 놓은 일이 있을 정도로, 청사가 많이 낙후된 건물이란 걸 실감한 일이었다고 한다.
군청사 이전이 결정되기 전인 재작년쯤 이 자리에 다시 지을지 밖에 지을지 결정하기 위해서 민원인 주차장에서 한동안 지표조사를 했다.
청사에 사람이 찾아오면 안내해드리기가 정말 어렵다. 반드시 동행해야 하고 들어가서 나오지 못하시는 분도 마찬가지로 안내가 필요하다. 청사가 말 그대로 소굴 같은 곳이다. 들어올 때뿐만 아니라 나갈 때도 헤매는 경우가 많아서 군수님도 민원인이 오시면 끝까지 안내해 주길 직원들에게 당부하셨다. 안내판의 필요성 문제로 건물, 실과 안내표시가 생기고 없어지는 일이 반복된 적 있다고 한다.
그래도 길을 못 찾고 있는 민원인께 안내해드리면 민원인이 손을 꼭 붙잡고 감사하다고 하시면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 특히 나이 많으신 분들은 부모님 같기도 하고 젊은 사람에 비해 감각이 떨어지기 때문에 필요한 실과 담당자를 바로 연결해주기도 한다.
본관과 별관 사이에 있는 큰 느티나무는 전부터 몇 번씩 베려고 했었다. 해가 갈수록 공간을 차지하고, 낙엽이 많고 비가 오면 하수가 막혀 관리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근데 나무가 청사와 나이가 비슷하고 크면 클수록 동네 역사를 상징하기 때문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나무를 베지 않고 현재는 가지치기만 하고 있다.
어느 해는 관리가 어려우면 낙엽을 쓸지 말아보자고 해서 낙엽이 쌓이도록 놔두었더니 단풍이 진 모습이 너무 예뻐 다들 좋아했다.
박명수 과장은 문화재 관리 구역이 청사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얘기했다. 예전부터 문화재 관리법은 법적으로 제재가 심한 편이었고 최근 들어 근방 50cm만 건드려도 문제가 될 정도로 엄격한 상황에서 개별적으로 진행할 수 없는 게 많다는 것이다.
증축에 관해 기억나는 일이 있는지 물었다. 박명수 과장은 약 20년 전 기존 건물에 사람이 다 들어가지 않으니 후별관동을 조립식 건물로 지었다고 했다. 트라스를 짜서 급하게 공간을 확보한 것인데 10년이 지나니까 트라스 특성상 용접 부분이 약해졌는지, 겨울에 폭설이 내리던 날 근무 중에 지붕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 2층에 있던 산림축산과(당시 농민과) 직원들이 대피하는 상황이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후별관동에 있는 지역경제과에서 일했던 남성우 팀장도 대피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2003년에 안전총괄과가 생겼는데 청사 내에 갈 곳이 없으니 옥상으로 증축했다. 그때 건축(구조물을 새로 만들어 설치하는 것)이 따로 없었는데 외곽 계단도 함께 만들었고 정식 절차를 밟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나주하 팀장과 이종수 주무관은 처음엔 불법이었으나 누가 신고해 전체조사를 들어가 다시 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나주하 팀장은 당시 공무원 노조에 악감정을 가진 사람이 외부에서 신고한 것이고 증축하는 것으로 설계부터 다시 했다고 덧붙였다.
박명수 과장은 관사 담장 앞에 심어 놓은 향나무들은 오래됐지만, 우리나라 전통 나무가 아니다. 일제의 잔재인데 환경단체라든지 조성하시는 분들이 일본에 대한 적대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청사에 있는 은행나무처럼 우리 고유의 나무들이 있으니 시대 흐름에 맞춰 없애는 게 좋고 없애기 곤란하면 다른 곳에 옮겨심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남성우 팀장도 관사와 본청 앞 모두 깔끔하게 정리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이종수 주무관은 2007년 군청에 들어와 건설과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 앞에 구멍가게를 기억했다. 막내라서 심부름을 자주 했다고 한다.
박명수 과장도 구멍가게를 기억하고 있었는데 학교 앞 조그만 문방구처럼 과자, 음료, 막걸리, 맥주 등을 팔고 있어서 공무원들이 민원인과 상담하는 등 휴게실처럼 이용했다고 한다. 지금 별관동에 있는 민원실이 없던 시절이다.
현재 예산실은 군수 관사 자리였고 군수님이 관사에 계실 때면 급한 서류를 가지고 결제받으러 갔다고 한다.
관사로 쓰던 때는 관선 군수였기 때문에 도에서 내려와 점검했다. 부군수와 일부 실과장 자리도 도에서 파견한 사람이 2년 정도 있다가 올라가는 일이 있었다. 가장 마지막으로 파견된 곳이 환경보호과인 것으로 알고 있다. 파견된 실과장들도 관사가 별도로 주어졌고 현재 군수 관사만 남아있다. 당시 도지사, 군수가 관선에서 민선으로 넘어가면서 ‘관사를 이용하면 예산을 많이 쓴다’는 이유로 사용하지 않았다. 민간인한테 예산을 더 쓸 수 있도록 일종의 배려를 해준 것이다.
박명수 과장에게 컨테이너 건물을 언제부터 썼는지 물었다. 컨테이너 건물은 약 20년 된 것부터 10년이 채 안 된 것도 있었다. 그중 한 곳은 산림과 시절에 산 정상에 CCTV, 카메라를 설치한 후 사무실에 TV를 놓고 산불 감시하려니 장소도 협소하고 민원 일을 수월하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컨테이너에 TV 5~6대를 두고 산불 감시 업무를 따로 했다고 설명했다.
남성우 팀장은 3번(*현 건축물 및 시설 검토 위성사진 참고) 컨테이너가 산불 CCTV, 관제탑 역할을 했던 곳이고 1번은 안전총괄과의 많은 물품을 4층까지 갖고 올라갈 수 없어 보관하기 위해 추가된 컨테이너라고 덧붙였다.
여기(6번으로 추측)는 지적재조사 서고인 것 같다. 증축이 어려운 상황에 도시건축과도 그렇고 보안문서를 보관할 공간이 부족했다. 지적재조사팀 사무실이 없어서 컨테이너에서 일하기도 했다. 그리고 2번은 관사 차고지 같다.
< 구)청사 연계 사건 >
주차난이 있는 군청인데 어떻게 민원주차장 일부를 집회 장소로 쓰게 됐는지 나주하 팀장에게 물었다. 나주하 팀장은 군수님과 직원들의 눈에 잘 띄는 곳이기 때문에 의견 피력하기 좋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른 군, 시청처럼 광장이 없는 공간적 한계도 있었다.
서천군은 농민들이 많아서 쌀값에 대한 불만으로 집회를 많이 한다. 쌀을 대형 포대에 담아 기계가 옮기는 지금과 다르게 당시에는 사람이 직접 40~60kg짜리 포대를 쌓아놓고 시위했다. 이런 시위를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하니까 비 오면 젖지 말라고 비닐로 싸 놓기도 하면서 약 한 달 동안 청사 앞에 놓여있었다. 지금은 군이 아닌 농협에서 관리하다 보니 그런 시위는 거의 없다고 한다.
군청 위로 서천여중, 여고가 있기 때문에 출근길과 등하굣길이 겹친다. 학생 수가 많은 시절에는 군청 앞이 굉장히 혼잡했다. 특히 군청 직원주차장이 분산돼 있어 충령사 앞에 주차하면 학생들 사이로 운전하기 위험해 한참 기다려야 했다. 사고도 몇 번 있었다.
외부인들이 서천IC를 통해서 군청을 찾아오면 내비게이션이 최단 거리로 알려주기 때문에 손님들이 군청 뒤 가파른 길을 보게 된다. 외부인이 그 얘기를 해줄 때마다 군청이 지리적으로 특이하다는 걸 직원들도 실감한다고 말했다.
사람들과 가까이 살면 야생동물로부터 새끼를 보호할 수 있다는 생각인지 성안마을 쪽에 백로가 지냈다. 근데 주민들이 빨래를 널면 오가면서 변을 떨어뜨리니까 나무를 베어버렸다. 새끼를 낳고 키울 자리가 사라지니까 약 10년 전에 군청 근처로 터를 옮긴 것으로 보인다.
후별관동 뒤에 있던 대나무는 답답하고 학생들이 다니는 길이니 음침함을 덜기 위해 새 군수님이 오시면서 없앴다. 베어내기 전에 비둘기, 꿩 집도 많이 있었다.
남성우 팀장은 백로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봐야 한다며 환경 쪽이나 어느 부서에서든 검토, 담당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새를 위한 구조물 혹은 간단하게 새를 관찰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이종수 주무관은 약 15년 전에 3번 컨테이너(*현 건축물 및 시설 검토 위성사진 참고) 2층에서 직장예비군을 했다고 한다. 1년에 한 번 군복을 입고 가서 헬멧, 방독면을 쓰고 4시간 정도 교육받고 나면 예비군 훈련을 따로 가지 않아도 되었다.
박명수 과장은 농촌 특성상 주를 이루는 농업, 축산물의 무역 관계 때문에 주민들과 마찰이 잦았다고 말한다. 본관 정문에서 군수실까지 뭔가를 뿌리는 일도 있었다.
< 청사이전에 관한 감정 >
나주하 팀장은 항상 직원들이 읍성으로 산책을 많이 다니며 코로나19가 막 확산됐을 때는 배식을 일찍 시작해 팀마다 20분씩 순차적으로 식사 시간을 가졌었다고 한다. 식사가 끝난 직원들은 다들 한 바퀴씩 돌았다. 앞으로는 얘기 나누며 걷던 산책길이 없을 거라 생각하니 아쉽다고 말했다.
현청사에 애착이 있어 보이는 나주하 팀장은 청사 위치가 바뀌고도 본인도 모르게 출근을 신청사가 아닌 현청사로 할 것 같다고 한다. 오랫동안 출퇴근을 했던 곳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서운함도 있지만, 주차난을 피하고자 7시 40분 전까지 출근하는 일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니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 주민문화공간으로 변화할 현청사에 대한 기대 >
새롭게 바뀔 청사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나주하 팀장은 서비스산업이 발전할수록 좋은데 서천군이 문화서비스 공간이 부족하다며 운을 떼었다. 주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하고 공무원으로서 문화시설로 공원이 조성되면 주민들이 많이 이용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읍성도 복원 중인데 그와 걸맞게 성안마을과 지어질 문화공간을 전통적인 건물을 테마로 짓는다면 훨씬 괜찮을 것이다. 군청이 오래되긴 했으나 어차피 근대적인 느낌도 없고 크게 문화적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니 옛날에 군청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모형으로 남겨놓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문화공간을 답답하게 하지 말고 시골의 이점을 살려 쾌적하게 조성하는 게 나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어르신과 장애인분들은 시내나 읍성을 돌아다니기엔 무리니까 불편함 없는 동선을 만들어서 넓게 꾸미면 이용하기 좋을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다 없애고 본관만 남겼으면 좋겠다. 2층을 만들면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니까 동등하게 1층에 다 만들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명수 과장은 1965년생인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 청사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조립식 건물을 포함해 주변 정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농업 시, 군이 대부분 인구소멸 지역이 돼 가는 상황에 청사 면적을 늘려가면서까지 청사를 살리기보다 주민들이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 되는 게 바람직하다. 청사를 새로 짓고 더 많은 정책이 내려오면 복지시설이 산재할 가능성이 크다. 향후 10~20년이 흐른 후에 관리비만 낭비되는 일이 없어야 하기에 소프트웨어든 하드웨어든 최소한으로 했으면 한다.
중앙에 건물이 있다는 이유로 너무 부각한다면 정부와 서천군 입장 모두 손실이 클 것이다. 요즘은 리모델링하면 현대식으로 하거나 친환경을 테마로 목재 건물을 만든다. 그런 식으로 하면 2~3년만 지나도 다른 건물처럼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최대한 기존의 이미지를 살려 정감 있는 시설로 남겨놓았으면 좋겠다.
읍마다 복지센터에서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농업, 축산, 임업 종사자보다 장사, 사업, 공무원 같은 지적 수준이 더 높은 분들이 문화시설을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 프로그램도 연령대를 고려해 큰 힘이 드는 일 말고 가볍게 할 수 있는 그림, 음악, 붓글씨 활동이 괜찮을 듯하다.
또 금 세공사나 유리 가공 같은 강좌를 개설해 저가의 임대료를 내고 운영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괜찮다고 말했다.
남성우 팀장도 박명수 과장의 말에 일부 동의했다. 청사가 1964년도에 지어졌지만 서천군에서 오래된 것이지 전국적으로 봤을 때, 건물 양식이 기와나 목조 건물이 아닌 콘크리트 건물이다 보니 내적, 외적으로 역사성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기와를 얹는다거나 새로운 양식으로 만들려고 하면 이상할 것 같고 여기 있는 양식에 약간의 변화만 줘서 옛날 구청 건물을 상상할 수 있게 조성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인구 자체가 줄어들고 있으니 운영, 관리하기 편한 방향으로 조성해야 한다. 관리직원이나 관리를 위탁하는 기관의 편리성뿐만 아니라 군민의 세금을 생각하면 관리비가 안 들어갈 수는 없지만, 최소화하는 게 옳다는 의견이다.
그리고 근처에 여학교가 있으니 밤에는 환하게 해놓고 누가 봐도 학생들이 사용 중이란 걸 알 수 있도록 최대한 열린 공간으로 두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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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명
마을기록단 '기억해유'_구)청사에 관한 기억 인터뷰
기록방법
인터뷰
마을명
-
시대
2022년
주제
구)군청사에 대한 서천군청 직원들의 기억
검색어
#구청사 #기억 #인터뷰 #농정과 # 박명수 #나주하 #남성우 #이종수
수집 및 생산자료
사진 7점
제보자
박명수, 나주하, 남성우, 이종수
기록자
지연지
작성연월일
2022년 8월 2일
관련사업
서천읍 농촌중심지 활성화사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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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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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자료 없음
※ 본 내용의 저작권은 서천군 및 1차 저작자(기록자)에게 있습니다. 본 기록의 무단 배포와 변형, 활용을 금지합니다.
< 인터뷰 참여자 자기소개 >
1997년 입사해서 본청에 근무하다 면으로 나갔다 다시 본청 근무하다 지금은 서면에 근무하고 있다.
< 구)청사 내 공간에 관한 이야기 >
서천 읍성 산책로를 한 바퀴 돌면 운동도 되고 뒤에 산이 있기 때문에 힐링도 된다.
군청 민원실과 본 청사 사이에 느티나무 그늘과 데크가 마련되어 벤치도 있고 ‘꿈 & 카페 산타로사’도 있어서 쉼터 역할을 한다.
< 구)청사 연계 사건 >
공무원 생활이 단순하다. 법규 안에서 지침 안에서 틀에서만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미담 같은 에피소드도 크게 없다.
개인적으로 취미활동으로 사진을 남기고 있는데 서천 역사성과 문화재 옛 흔적을 기록하고 있다. 성안마을과 읍성 등 흔적을 찾아 동호회원으로서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는 일에 보람을 느낀다. 후손들이 서천을 좀 더 알아갈 수 있도록 역사를 남기고 있다. 현 청사 주변의 사진 기록을 모으기도 하는데 아까운 기록물들이 많았다. 청사의 옛 모습도 남겨진 사진으로 가늠할 수 있으니 기록한다는 의미는 역사를 이어가는 일이기도 하다.
< 청사이전에 관한 감정 >
현 청사가 노후화되어서 신청사로 이전하고 원도심 공동화 대비해서 이곳을 활력있는 장소로 탈바꿈하려 한다. 서천읍성을 복원한다면 양쪽 다 균형 발전이 가능해질 수 있다.
< 주민문화공간으로 조성된 후, 기대하는 문화활동 >
청사가 이전하고 나서 이 공간이 문화예술 공간으로 자리매김하면서 공동화 현상을 물리칠 수 있기를 바란다. 원도심이 죽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많은데 다른 지역에서도 문제가 되기는 하다. 하지만 이 공간을 문화예술 공간과 거리로 잘 조성한다면 봄의 마을이라는 공간과 연계되기도 하기에 거리 공연도 가능하고 역사박물관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 공간을 상업적인 공간으로 바꾸기는 어렵다. 길을 통해 이곳저곳으로 이동하며 문화의 거리가 이어졌으면 좋겠다.
이 공간에서 소 공연들로 1년 내내 활용되었으면 좋겠다. 도시에서만 볼 수 있는 공연들이 이곳에서도 접할 수 있다면 더없이 바람직하다. 사진이나 그림 전시회, 뮤지컬 공연 등 다각적인 공간 활용이 이어지기를 바란다. 아마추어들인 지역민들이 이 공간을 편리하게 이용해서 기획하고 전시 공간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사진/영상
기록개요
생산자료
붙임자료
※ 본 내용의 저작권은 서천군 및 1차 저작자(기록자)에게 있습니다. 본 기록의 무단 배포와 변형, 활용을 금지합니다.
김수곤(71세)님은 사진동호회 회장이다.
< 구)청사 내 공간에 관한 이야기 >
세월이 흐르면서 성문이 필요 없게 되자 다 없애버렸다. 흔적이 남아있는 동문은 모양이 갖춰지고 있다. 북문은 완전히 흔적조차 사라졌고 서문도 거의 사라져 찾기 어렵다. 우리가 드나드는 입구 쪽이 남문도 다 사라져서 넓게 되었다. 서천읍성이 토성인데 그 흔적을 찾기 어려워졌다.
서천읍의 역사성을 살리기 위해서 복원에 힘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이곳이 명당자리였기 때문에 동헌이 형성된 것이다. 그런 역사성을 지켜내는 일도 중요하다.
< 청사이전에 관한 감정 >
청사는 진작에 새로운 장소로 나갔어야 한다. 이제라도 신청사로 이전하니 잘 된 일이다.
구)청사의 미래 가능성은 첫째, 문화공간으로 활용되어 주민들이 읍성 산책로를 걸을 수 있어야 한다. 둘째로는 주민들이 사용 가능한 전시 공간과 소공연장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 공무원들도 예산이 없어서 안 된다고만 하지 말고 되도록 노력을 하고 주민들도 자발적으로 움직이면서 확실하게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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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참여자 자기소개 >
김영광(1989년생)씨는 어릴 적 군청로에 살았던 주민으로, 사거리 근처에서 살다가 성안마을로 이사했다. 고등학생이 되던 2004년에 군청 일대를 떠나 살게 됐다. 대학교 다닐 때를 제외하면 태어나고 쭉 서천에서 살고 있다.
정경희(1990년생)씨는 군청로에 살았던 주민으로서 인터뷰에 참여했다. 어렸을 적 군청로 골목에서 친구들과 함께 놀았던 기억이 있고, 고등학생 때와 20대 후반에 군청에서 잠깐 일을 한 경험을 토대로 인터뷰에 참여했다.
김영광 씨와 정경희 씨는 현재 ‘우리동네 스튜디오’ 소속으로 영상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다.
< 구)청사에 관한 기억 자율 이야기 >
군청 주변에서 살았던 얘기를 듣고 싶어 하자 김영광 씨는 지금은 다른 곳에서 살고 있고 어린 시절을 조금 보냈다고 얘기하기 시작했다.
처음엔 사거리에서 군청으로 가는 방향 기준, 왼쪽에 있는 마을에 살았는데 근처에 ‘구룡사’라는 절이 있던 게 기억이 난다. 지나가면서 보았는데 터만 남고 부서진 상태였다. 내가 살던 집이 부서졌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어쩐지 싱숭생숭했다고 한다.
2003년, 당시 중학교 3학년이었던 김영광 씨는 군청 앞 성안 마을로 이사 갔다. 성안 주택 못 가서 현재 군청 민원인 주차장으로 쓰고 있는 곳이다. 당시에는 민원인 주차장이 없었는데 바로 김영광 씨가 성안 마을 바로 앞 주차장 자리에서 살았기 때문이다. 지금 성안 마을과 주차장 사이에 있는 길목을 중심으로 모두 주택가였다.
주민으로서 군청이 바로 앞이라 불편했던 점은 없었는지 묻자, 평소 사람 구경하는 걸 좋아했다며 군청에 사람이 많이 오가서 좋았다고 한다. 아쉽게도 성안 마을에서는 1년만 살았다고 한다. 다만 이전 집과 다르게 여전히 누가 살고 있다니 안도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군청 일대에 우물 터가 있다고 들었는데 아시는 게 있는지 물었다. 김영광 씨는 성안 마을에 약 2개의 우물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중 한 곳만 알고 있었다. 성안 마을로 이사 왔을 때 지금 사랑방 선생님 집 오른쪽으로 두 번째 집에 살았다. 그 옆에 작은 우물이 있었는데 당시에도 물을 사용할 수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수돗물과 지하수 그리고 동시에 우물 물을 펌프로 끌어올려 썼던 걸 기억하고 있었다.
성안 마을에 살았을 때 읍성 터에 자주 올라갔는지 물었다. 운동 삼아 올라간 적이 몇 번 있다. 어린 시절이라 그런지 몰라도 고지가 굉장히 높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최근에 올라가 보고 그렇지 않아서 조금 놀랐다. 지금은 운동기구를 잘해놨지만 그때는 윗몸 일으키는 기구 정도만 있었다.
군청로의 옛 모습은 어땠는지 자세한 모습을 물어봤다. 지금은 군청을 중심으로 행정적인 일하는 업체가 대부분이지만 과거에는 동네 분위기가 꽤 났다고 한다. 서천에서 가장 크고 시설이 좋은 목욕탕이 있었다. 또 군청로 왼쪽에 있는 ‘축복건축사 사무소’가 전에는 슈퍼였고 맞은 편 ‘드림스타트’는 문구점이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정경희 씨는 CCTV 관리센터 주자창 자리에 살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어렸을 때 살았던 동네라 친구들과 골목에서 놀았던 게 가장 기억에 남는 듯했다. 본인을 포함한 또래에게 형제자매가 있는 경우가 많았다. 친구가 다섯이면 10명이 모이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또 사거리 시장이 서천수산물특화시장으로 옮겨가기 전까지 버스가 다 은해곱창 앞 버스정류장을 지났다. 그렇다 보니 면에 사는 친구들은 가까운 정경희 씨 집에 자주 들렀다.
당시 집과 가까웠던 현 관광축제과 건물에 문방구가 하나, 군청 앞 토목설계사 위치에 두 개가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 정경희 씨는 아침과 저녁에 한 번씩 어머니께 천 원을 받았다. 그 시절 유행하던 육공다이어리, S.E.S, H.O.T 물건을 두 문방구를 왔다 갔다 하면서 수집하고 다녔다고 한다.
서천목욕탕 옆에 오락실이 있었다.
아이들 사이에 집 근처 건물들에 대한 이상한 전설들이 있었다. 집 앞에 있는 사회복지과 건물은 그저 크고 오래돼서 무섭게만 느껴져다. 그래서 아무도 안 사는 곳, 늦은 시간 지나가면 안 된다는 얘기를 주로 했고, 지금은 없는 ‘대우사우나’라는 큰 목욕탕은 옛날에 어떤 피부병 환자가 왔다 가서 이제 가면 안 된다는 말도 있었다.
초등학교 때 여름, 겨울방학이면 성안 마을 길을 통해서 서천향교에 한자 수업을 들으러 갔다고 한다. 동떨어진 지역이 아닌데 작은 산 너머에 있는 향교를 걸어 다니다 보니 괜히 방학에 멀리 다녀오는 것만 같았다고 한다. 향교 가는 길이 경사가 심해 겨울이면 친구들과 썰매를 탔다.
서천교회 뒤로도 많이 놀러 다녔는데 예전에는 말 그대로 달동네 느낌이었다. 읍성에 갈 때도 친구들과 골목길로 다녀서 군청을 거치지 않아도 산에 올라갈 수 있었고 부모님이 아침, 저녁 등산하러 가시면 같이 가곤 하는 가까운 산이었다.
정경희 씨는 어릴 적 군청의 존재감을 잘 느끼지 못했다. 자라면서 서서히 군청에 대한 이미지가 생겼다고 한다. 군청이 뭐 하는지조차 모르던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 친구네가 이사하는 이유가 군청에서 일하시는 부모님의 전근 때문이었다는 걸 알았다. 집이 아인빌라인 친구네 놀러 갔다가 바닥이 대리석으로 돼 있어 부모님이 군청에 다니면 다 부자라고 생각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 구)청사 내 공간에 관한 이야기 >
정경희 씨는 중학생 때 학교를 통해 군청에서 하는 아르바이트 했었다. 정보화 작업을 도왔는데 그때 처음으로 군청에 들어가 봤다.
그 뒤로 20대 후반이 되고 후관동에 있는 환경보호과에서 일했었다. 그때 군청의 모습을 자세히 보게 됐고 왜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건물을 지었을까 궁금해했다고 한다. 본관, 후관, 후별관이 겹쳐진 구조인데 그 사이마다 쓰레기가 정말 많았다.
< 구)청사 연계 사건 >
정경희씨는 중학생이 되고 군청의 이미지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정경희 씨 아버지가 서부 교통 파업으로 군청 앞에서 데모하셨기 때문이다. 군수님이 주차하는 공간 앞에서 늘어선 시위대가 삭발식을 했고 그 모습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집에 들어갔다고 한다.
신문에서도 군청은 대체로 민주 투쟁과 관련한 기사가 실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약 6년 이상 군청과 축협을 오가며 계속된 파업 속에 언제 한번 승소한 적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에는 그 일을 주제로 글을 써서 상을 받았다.
< 청사이전에 관한 감정 >
청사 자리에 문화시설이 생긴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궁금해하자 김영광 씨는 개인적으로 기뻤다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평소 서천군에 문화시설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그런 변화가 생기는 게 학생이나 주민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사람이 만나는 공간이 많았으면 좋겠고 영상 작업을 하는 사람으로서 새로운 활동을 기대하고 있다.
아쉬운 마음은 없냐는 물음에 세월이 흐르면 무엇이든 자연스럽게 변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금씩 변하는 모습을 보며 서천도 발전을 한다는 느낌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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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군청 자체로는 정경희 씨에게 큰 의미가 없다고 한다. 다만 옛날에 관아가 있던 곳이라는 걸 최근 지역활성화 사업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하면서 알게 됐다. 역사가 있는 장소가 갖는 상징성이 아깝게 느껴졌다.
현청사 자리에 청사가 유지되는 게 가장 상징적이고 좋다고 생각한다. 문화시설을 조성한다면 사람들이 시설 이용을 떠나서 어느 때라도 갈 수 있는 센트럴 파크처럼 인식할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
제일 아파트 뒤 마을회관에서 ‘마을 방송국’을 통해 마을 소식을 전하고 있다. 지역의 중심지가 되기에 알맞은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장점을 살려 현청사 자리에서 해도 좋을 것 같다.
군청 후관동 옥상과 서천여중, 여고에서 내려다보는 시내와 남산이 엄청 예쁘다. 주민들이 동네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를 조성해서 더 많은 사람이 서천의 풍경을 알았으면 한다.
< 어릴 적 에피소드 >
인근에 여중, 여고가 있어 생각나는 에피소드를 말해주었다. 김영광 씨가 최근에 여동생과 대화를 통해 알게 된 일로, 학생 때 어느 날 아침, 함께 등교했다. 여동생의 학교 선배가 그 모습을 보고 김영광 씨를 남자친구로 오해했고 여동생이 학교 선생님께 불려간 적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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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참여자 자기소개 >
나정자(95세)님은 서천군청에서 근무하다 퇴직한 전직 공무원으로 현재 성안마을에 거주하고 있다.
최정희(78세)님은 성안마을에서 미용실을 하면서 주변 어르신들을 돌봐드리는 봉사를 하고 있는 주민이다.
김금남(72세)님은 성안마을에서 살다 도회로 나갔다 돌아온지 8년째이고 실버합창단과 장애인합창단 지휘자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 구)청사에 관한 기억 자율 이야기 >
나정자님은 군청 마당에 있는 은행나무를 자신이 근무하던 때에 심었다고 한다. 그 나무를 바라보면 하늘 높이 솟은 모습에 내가 얼마나 긴 세월을 살아왔는가 절실하게 느낀다고 말한다. 너무 오래 살아서 지금 95세라는 것을 상상도 못했다며 아직까지 혼자 끼니를 해결하고 걸어 다닐 수 있어서 감사하다고 했다.
최정희님은 성안길이 아카시아 꽃으로 만발한 거리를 기억하셨다. 여기는 공기가 맑아서 살기 좋은 동네라는 말도 놓치지 않았다.
김금남님은 여섯이나 일곱 살 때 기와집이 한 채 있던 기억과 소나무와 벚꽃을 모아서 가지고 놀았던 기억이 난다고 말한다. 대나무도 어마어마하게 많아서 거기는 무서워했지만 대나무 숲으로 들어가서 놀기도 했다고. 도시로 나가서 살다가 성안마을로 돌아와 보니 우리 집 앞이 군청주차장이 되어있었다. 중학교 때는 운동선수로 활약했는데 학교에 탁구대가 하나 있지만 애들이 서로 하려고 해서 차지할 수 없었다. 군청에 오면 군청의 젊은 직원들과 탁구를 치곤 했는데 엄마한테 혼나기도 했다. 친구들과 옹기종기 다 같이 모여 살았던 추억이 많이 남아 있다.
< 구)청사 내 공간에 관한 이야기 >
나정자님의 어머니가 어렸을 때는 보통학교를 여기(구청사)에서 개교했다고 한다. 학교가 청사로 되고 새 건물을 짓고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군수 사택은 지금 직원 주차장으로 되었다.
예전에 여자애는 배우게 하지도 못했는데 할아버지가 면서기로 계시면서 학교가 개교하자 입학을 하게 해주셨다. 할아버지는 향교에서 글을 깨우치시고 면서기를 할 수 있었다고 추측한다.
일제시대에는 조선어 시간이 1주일에 1시간 있는데 그마저도 선생들이 풀뽑기를 시켰다. 조선어 말살 정책으로 글을 몰라서 1945년 해방 후 당시 둘째 동생이 초등학교 6학년이라 그 아이에게서 한글을 배웠다. 지금도 한글을 쓰는 데 부끄러움이 있다.
< 구)청사 연계 사건 >
최정희님은 청사 앞에서 살면서 데모 보는 일이 잦았다. 어떨 때에는 상여 메라는 소리가 들려 새벽에 주민이 나와서 야단치고 누가 죽었냐고 왜 상여메는 소리를 내냐고 했던 일이 잊을 수가 없다. 청사 앞이라 자주 볼 수 있다.
김금남님은 주차장 바로 앞에 사니 흙먼지가 날려서 당장 민원실로 달려가서 말했더니 다음 날로 돌을 깔았다고 한다. 군청 주변에 살고 있는 어르신들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공무원들이 스스로 알아서 해주지는 않는다. 먼지가 너무 나니까 최정희씨 남편분이 사철나무를 쭉 심어놔서 또 다른 골목길이 만들어 졌다.
< 청사이전에 관한 감정 >
구청사가 좋은 장소로 만들어질 것이라는 믿음도 있어서 나정자님은 나이가 있으니 생전에 그런 모습을 볼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말한다.
최정희님은 지금 살고 있는 청사 앞에서 근처 다른 장소로 이주 계획이다. 여기는 물이 좋은데 여기서 계속 살았으면 안 떠날 것을 하는 생각을 한다.
김금남님은 마을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관공서에 요구를 하면서 목소리를 내야 변화가 생긴다며 함께 목소리 내야 한다고 말한다.
< 서천군청사의 아름다운 변화가능성에 대해 >
김금남님은 청사가 문화예술 공간으로 변화하게 되는데 우물을 다시 복원했으면 한다. 물이 참 좋은데 골목길도 살리면 돌봄공동체로 거듭 나지 않을까 생각한다. 성안 한옥마을로 조성한다고 하니 성안주민협동조합도 만들고 싶다. 주민들이 함께 모여 움직여서 뭔가를 이룰 수 있기를 바란다. 어린이도서관도 만들어질 예정이라고 들었는데 사서이기도 했으니 어린이들과 책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주차장이 잔디밭으로 조성되면 이곳에 사람들이 놀러올 것이니 사랑방을 열어 같이 이야기를 하고 상담사로 들어주고 도움이 되기를 원한다. 동네를 아름답게 꾸미면 좋겠다. 성터를 걸으면서 마음을 놓아줄 수 있기를 바란다. 버스킹 하는 장소로도 꿈을 꾼다. 작은 음악회도 열리는 아름다운 동네를 만들고 싶다. 음악이 있는 동네, 지역 모든 사람들이 와서 아름답고 행복한 곳이라는 생각으로 더 머물고 깊은 공간이 됐으면 참 좋겠다.
최정희님은 봉사활동을 더 할 수 있게 되면 좋겠다고 했다. 어르신들 머리 자르는 일이나 돌봐드리는 일을 계속 하고 싶다. 먼 곳에서 놀러와 관광지로 되기도 하게 잘 만들어졌으면 한다. 좋은 공간이 됐으면 좋겠다.
나정자님은 95세인 자신을 위하는 일보다는 주민들이 원하는 것들이 평화롭게 일어나는 것들을 바라보고 싶다.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로 이 공간이 유익하게 되도록 응원한다.
< 표백소 할머니 이야기 >
김금남님의 고모 할머님이 표백소를 하셨는데 강한 며느리였다. 옛날에는 생모시를 잿물에 빨아서 하얗게 표백을 했다. 그 잿물이 또랑으로 흘러가면 마을 사람들이 그 물로 빨래를 했다. 그 또랑은 지금은 다 덮어버렸고 그 후에 표백소가 목욕탕이 되었다.사진/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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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참여자 자기소개 >
해양 수산과 수산정책팀장 이천휘와 수산정책자원팀에 근무하고 있는 정선림이다.
< 구)청사에 관한 기억 자율 이야기 >
이천휘 팀장은 2013년에 타 시군 직원들이 와서 무척 놀라면서 열악한 환경을 지적하는데 조금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했다 한다. 이제 넓은 신청사로 나가면 주민들의 접근성도 좋아지고 공무원들도 좀 더 효율적인 공간에서 사무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주민들도 서비스의 질이 높아지기를 바라니 잘 된 일이다.
< 구)청사 내 공간에 관한 이야기 >
이천휘 팀장은 현 청사에 개인의 힐링공간으로 서천읍성 주면 산책길을 꼽았다.
정선림님은 은행나무와 팽나무 주변에서 차를 마시고는 하지만 공간이 좁다 보니까 나만의 작은 공간으로 느낄 곳이 없다고 말한다. 최근에 청사 주차장 나무로 보금자리를 옮긴 새들과 같이 지낸다.
< 구)청사 연계 사건 >
정선림 님은 건물이 낙후되어 일어났던 일을 들려 주었다. 한파가 와서 청사 앞에 있는 수도관이 전부 얼어서 물이 솟구쳐 분수처럼 퍼져 추위에 얼어붙은 겨울을 기억하고 있다. 여름에 폭우가 와서 기획감사실 복도를 지나 군수 관사쪽으로 이어져 군수실까지 양동이로 물을 받아내던 적도 있었다.
< 청사이전에 관한 감정 >
이천휘 팀장은 청사 이전에 대해 기대감도 있고 섭섭함도 있다고 말한다. 여기서 몸담고 지냈기에 아끼는 마음이 있다.
< 서천군청사의 활용과 미래 가능성에 대해 >
정선림 님은 현 청사 공간의 활용과 미래 가능성에 대해 문화 활동보다는 공공도서관을 기대한다. 서천읍은 교육청에서 주관하는 도서관이 구석에 자리 잡아 접근성도 어렵고 공간도 좁아서 아이들과 이 근방 어르신들이 같이 이용할 수 있는 쉴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되기를 바란다. 자유롭게 들고 날 수 있는 공간이면 좋겠다. 시니어 중심 도서관으로 큰 글씨 책을 구비해서 수요를 충족하는 것도 좋지 않나 생각한다. 현재 진행되는 상항과는 달라서 개인적으로 아쉽다.
이제 특별하게 바라는 것은 사진동호회나 그림 전시 등 활동하는 주민들을 위한 상설전시공간이 수월하게 열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현청사의 아름다운 미래 가능성에 대해 이천휘 님과 정선림 님은 주민들이 와서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늦은 저녁에도 할 수 있는 그런 열린 공간이기를 입을 모아 말한다. 공간이 있어도 직장인 경우 저녁시간 활용이 어렵고 시설 사용 신청 등 그런 점을 신경 썼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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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참여자 자기소개 >
정진석님은 33년의 공무원 생활을 마치고 현재는 군청 근처에서 서천 설계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
< 구)청사에 관한 기억 자율 이야기 >
지역 업무를 담당했을 때에는 지적에 대한 전산화 사업을 했을 때 대장을 카드화 작업을 했다. 1970년대~80년대 진행되었고 그 이후에 또 제2단계 사업이라고 전산화를 시작했다. 그 당시 업무량은 아침 먹고 출근해서 밤 11시~12시에 퇴근하고는 했는데, 지금 생각해도 당시에는 힘들었다.
청사 주변을 넓혀서 주차장을 만들고 나니 데모하는 소리가 너무 크게 들리게 되어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소음 공해로 작용을 한다. 정신적 피로감이 크다. 데모하는 사람들의 목적은 알겠는데 지역 주민들 입장도 생각을 해서 자제를 해주었으면 바란다.
< 구)청사 내 공간에 관한 이야기 >
개인적으로 좋아했던 공간은 정자나무와 그 밑에 있는 은행나무 아래에서 얘기 나누고 했던 곳이다. 이제는 직원 식당도 생겼지만 재직 시절에는 그런 공간도 부족했다.
지금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는 공간은 군청 내에 있던 관사인데 기와집이었다. 지금 있다면 이런 조성 사업하는데 무척 근사했겠다 싶다. 관선 시대에 사용했던 공간이니 협소한 청사의 근무 환경을 위해 철거를 했던 것인데 많이 아쉽다.
< 청사이전에 관한 감정 >
청사 이전은 긍정적으로 생각한다. 공무원들이 협소한 공간에서 업무를 보기가 편안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주민 문화활동의 공간으로 어떻게 활성화시키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어떠한 것들을 유치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본디. 충분히 검토해서 운영을 하면 더 나을 것이라 생각한다. 주민들에게 얼만큼 혜택을 줄 것이냐가 중요하다.
현청사의 문화공간은 우리 세대들 보다는 젊은 세대를 위해서 마련되는 게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인구도 안 줄고 여기서 머물고 안착하고 싶도록 행복한 도시여야 한다. 그곳에 가면 힐링할 수 있다던가 이곳에 머무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저 하나 배우고 나가는 것보다 여기서 머무를 수 있는 무언가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주어야 한다.
현 청사 주변은 사무실들이 신청사를 따라 움직이면 텅텅 빌 수도 있고 주택으로 전환되기도 할 것 같다. 무언가 비전이 있어야 상업적으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새로운 일거리가 마련되어야 문화의 거리이든 다양한 먹거리 가게든 생겨나기 때문이다. 다른 지역처럼 젊은이들이 찾아오는 거리가 되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화랑도 있고 젊은이들 협동조합도 있고 서천도 그렇게 되려면 혼자만의 생각으로는 어렵다. 여러 일들이 맞물려서 일어난다면 미래에는 가능할 수도 있다. 하루 아침에 될 일은 아니라고 본다.
< 퇴직 이후 청사를 바라보는 시선 >
퇴직 후 청사 근처에서 계속 직업을 가지고 있기에, 청사를 바라보면 드는 마음이 담담하다. 그래도 그 어려운 세파 속에서 공무원 생활을 무사히 저기서 마쳤구나 하면서 자부심을 주기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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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참여자 자기소개 >
정선교님은 2022년 현재 70세이며, 서천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지금까지 살고 있다.
공무원 생활은 1974년부터 2012년까지 근무한 후 퇴직했다.
< 구)청사에 관한 기억 자율 이야기 >
군청 앞에서 태어나 지금까지도 살고 있으면서 옛날에 비해 많이 훼손되었다는 생각은 한다.
예전에 군 청사는 우리 삶의 중심지였다. 서천이 바닷가이다 보니 물맛이 좀 짰다. 읍내 사람들은 지금은 폐쇄되어 있지만, 청사 뒤편에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먹었다. 당시에는 샘에서 물을 떠서 식당과 가정집에 배달하면서 돈을 버는 사람도 있었다.
우리 때는 석탄으로 난방을 했다. 선배들 비위도 맞추고 겨울 아침 같은 때는 장작 가져다 석탄 갖다가 불을 때면 연기가 사무실에 자욱하다. 최소 한 시간 일찍 출근해야 했다. 난방 피우고 바닥 청소하고 책상 닦고 이렇게 고생했다. 우리가 나이 먹고 대우받을 때가 되니까 다 사라졌다. 청소도 내가 하고.
내가 기억하는 재직 시 가장 큰 변화는 아무래도 행정업무에 관한 일이다. 공문서 작업을 손글씨로 다 해야 했다. 문서 생산을 하려면 가리방 먹는다고 해서 원지가 있고 기름 먹지를 끼우고 철판에 글씨를 쓰는 일이었다. 문서 생산하고 발송하는 일이 큰 일이었다. 지금은 컴퓨터로 거의 모든 행정 업무가 신속하게 생성되고 발송하면서 보관되니 엄청난 변화이다.
< 구)청사 내 공간에 관한 이야기 >
군청사가 한 동으로 되어있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우리는 본청에 별관, 그 뒤에 또 위에 증축하고 미로가 되어 버렸다. 그러다 보니 군청을 찾아오는 민원인들이나 직원들도 짜증이 나기도 한다.
1960년대는 군청 본 건물 하나에 4개 과 정도밖에 없었다. 한 100여명 정도 근무했다. 확장하면서 군수 관사를 없애고 주차장을 넣으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변천했다.
군청 뒤에는 지금과 달리 건물이 하나도 없었다.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길도 없어서 진입로로 들어오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주변이 늘 먼지였다. 군청 주변이 개발되기는 했지만, 난개발이다 보니 보기는 좋아 보이지 않아도 진입로가 여러 곳으로 가능해진 것이다.
옛날에는 군청 주변이 다 숲터였다. 읍성 주변에 대나무도 빼곡했고 소나무도 엄청 많아서 어렸을 적에는 여기서 대나무나 솔가지를 주워다 난방용으로 쓰기도 했다.
청사 주변을 웃장터라고 불렀는데 목욕탕도 있었고 표백소도 있었다. 성안 마을이라 불리던 시절이다.
지금과 달리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길이 없었다. 군청에 들어오려면 정문 입구 하나밖에 없었다.
식당에서 점심 식사 후 등산로인 토성 한 바퀴를 돌면 점심시간이 딱 맞는다. 아무래도 그 길이 기억에 많이 남아있다. 예전에는 성 주위로 길이 나지 않았었다.
< 청사이전에 관한 감정 >
진작 이전을 했어야하는 일이었다. 예산군 같은 경우를 보면 시내 한복판에 있어서 굉장히 어려운 입장이지만 그래도 이전했다. 청양군만 해도 규모나 시설이나 주차장도 엄청 넓다. 신청사를 이전하는 일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청사 공간이 적어서 분리된 채 나가 있는 형편이다.
문화관광과 사회복지과는 청사 밖으로 나가 있고, 그 외에도 외부로 나가 있는 부서들과 회의를 하거나 전달하거나 소통을 하는데 걸림돌이 된다. 부서 간 협조받을 일이 있는데 굉장히 어려워진다. 같은 장소에 있다 보면 좀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서로 고통을 나누면서 서로 소통하는 분위기가 마련될 수 있다. 청사를 찾는 민원인들의 불편함도 덜어질 수 있을 것이다.
현 청사는 주민들을 위한 문화 활동 공간으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했는데 개인적으로 지저분하고 잡다한 조립식 건물들은 과감하게 철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새롭게 보완해서 쓸모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고 바란다.
문화공간도 지금 어려움이 많다. 지역 내에서 나름대로 문화공간이 많다. 봄의 마을이나 문화원, 읍사무소 등 다양하게 프로그램을 하고 있어서 참여하는 사람도 적을 수 있다. 그러니 여기서 제대로 내실 있는 운영으로 전체 군민이 참여할 수 있게 되었으면 한다. 문화도 그렇고 이 주변이 성이니까 그것을 고려해서 서천의 역사성을 살려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성곽 중심으로 성터도 복원하고 역사와 맞물려 일이 추진되면 좋을 것 같다.
< 퇴직공무원으로서 지역민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
퇴직 이후 생각보다 자주 청사에 일이 없으면 들리게 되지 않는다. 요즈음은 인사를 해도 아무도 모르고 직원들이 자주 바뀌고 있어서 남의 집 온 기분이 든다.
서천 지역민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근무했을 때나 퇴직 후 생각하는 것은 비슷하다. 모든 일이 진행되고 있을 때 지역민들이 협력을 많이 해주면 좋겠다. 재직 시절에 지역민이 협력을 안 해주어서 고생하고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군 행정에 약간 관심을 가지고 주민들이 협조를 해주면 싶다. 다 잘 살자고 하는 일인데 이기적인 마음을 조금 버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지역민으로 돌아가 군청에서 하는 일을 보면 크게 주민의 협조를 구하는 일도 없고 예전에 비해 약간 소극적으로 일처리를 하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우리 젊었을 때 근무 환경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봉공정신이 중요한데 쉽지는 않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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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참여자 자기소개 >
김명원님은 안전총괄과 과장이다. 안전총괄과에는 6개 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예방 차원과 긴급하고 위험한 상황에는 지역 재난안전본부를 설립해 총괄 지휘하고 있다.
한명숙님은 안전관리팀장이고, 박근영님은 중대재해예방 TF팀장, 성재권님은 민방위팀장으로 재직 중이다.
< 구)청사에 관한 기억 자율 이야기 >
김명원 과장은 예전에 구내 식당이 아니라 외부에 식당이 있었을 때 자반고등어 메뉴를 잊지 못한다. 당시는 먹을 것이 풍부하지 않아서 자반고등어 구이가 나오는 날이 떠오른다고 말하자 한명숙 팀장은 요새는 금요일에 생선 나온다고 젊은 직원들은 민원을 넣기도 하고 나가서 점심을 먹고 온다고 한다. 식당들이 현청사 주변에 활성화되었지만 아파트 단지가 생기면서 그 주변으로 옮겨갔다.
재래시장이 옮겨 가면서 청사 주변이 구 시장터였는데 흐름이 많이 바뀌었다. 이 주변이 정비되면서 많은 것들이 변했다. 지금은 다른 공간으로 바뀌었지만, 군청으로 들어오는 길에 작은 동네 슈퍼가 하나 있었다. 아이스크림과 라면, 담배가 가장 많이 팔리는 가게였다.
성재권 팀장은 여름에 물난리가 났던 기억이 있다. 2018년 문화관광과로 와서 본청으로 들어왔는데 이렇게 오래된 청사에서 어떻게 직원들이 근무를 하고 있나 신기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다고 술회한다.
< 구)청사 내 공간에 관한 이야기 >
김명원 과장의 힐링 공간은 산성으로, 다른 지역 청사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근사하다고 말한다. 아침에 일찍 올 때면 산성 뒤로 난 길을 지나면서 운동도 한다. 안전총괄과가 자리 잡은 4층 이 공간도 마찬가지다. 청사 이전으로 제일 아쉬운 것이 점심 먹은 후 산책하는 산성 길이다. 길의 시작은 하나이지만 여러 갈래 길이 나 있어서 봄 여름 가을 겨울마다 분위기가 다르다. 올라가고 싶은 사람은 올라가고 내려가고 싶으면 내려가고 머물고 싶은 사람은 머물 수 있는 곳이다. 숲에는 꽃과 나무 종류도 다양하다. 의외로 생각하지 못한 꽃나무들이 반겨준다. 특히 소나무 향이 나는 이 산책로는 추억의 공간으로 남을 것 같다.
한명숙 팀장은 행정적 차원에서 업무를 하다 시설 안전관리를 하게 되었을 때 중압감이 있었다고 한다. 특히 코로나 19 시절을 보내면서 워라벨은 사라졌지만 안전관리 총괄이란 책임감이 컸다. 계단을 타고 올라오다 보면 머리는 가뿐해지면서 4층에 자리 잡은 이곳은 가장 좋아하는 곳이 되었다. 전경이 다 내려다보이고 앞이 트여서 마음 가릴 게 없는 곳이다. 주차공간이 부족하니까 출근 시간대별로 이용하는 주차공간이 다르다. 늦게 오면 새똥맞게 되는 자리로 온다. 새똥 맞는 날은 복권 사러 가는 날이기도 하다. 남직원들은 모르겠는데 여직원들은 화나고 열 받으면 업무 시간에 졸졸졸 나가서 서천성길로 가 동문으로 올라가서 하얀 뜰만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한다. 과장님한테 혼나면 거기로 올라 간다. 가서 하염없이 바라보는 저 뜰이 내 뜰이었다. 서천 들에서 화양 들까지 금강까지 다 바라다 보이는 풍경이 제일 좋다.
< 구)청사 연계 사건 >
지금은 주차장으로 다 사라졌지만 한명숙 팀장은 마티즈를 처음 타고 운전하고 왔을 때 큰 은행나무와 입맞춤을 한 기억을 소개해 주었다. 직원들이 와서 밖으로 꺼내 주었는데 경차이기에 가능했다 하고 지금도 만나면 마티즈 차를 꺼냈던 이야기를 듣는다고 한다.
< 청사이전에 관한 감정 >
김명원 과장은 현청사가 노후화된 것으로 이미지가 강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장소로만 생각하는 것에 약간의 거부감은 있다. 구조물이 낡았지만 안착된 느낌인데 이곳을 떠난다는 게 좀 아쉽다. 안전총괄과는 4층에 만들고 나갔다 돌아온 것이라 애착이 많다. 30년 넘게 근무하다보니 새 곳으로 가는 기대감도 조금 있지만 아쉬움이 더 크다. 퇴직을 1년 정도 남긴 탓이기도 하다. 공간을 이용하는 통로라던가 입출구가 불편하기는 하다. 여직원을 위한 휴식 공간이나 직원들을 위한 힐링공간을 만들어야 하는데 현 청사는 협소하다 보니 제약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청사 이전은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성재권 팀장은 이산가족으로 살아온 청사 식구들이 신청사로 가면 만나서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다는 것으로도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 서천군청사의 아름다운 변화가능성에 대해 >
김명원 과장은 현청사 공간이 주민 간 소통의 장소가 되기를 바라고 있다. 서천군 내에서 이렇게 조용한 공간을 주민을 위해 만들기는 어렵다. 어떤 의미에서 현 청사의 자리는 독립적인 공간으로 활용하기 좋다. 평일에도 아이들이나 어른들을 위해서 편안하게 손잡고 산책하면서 쉴 수 있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 앞으로는 낮 시간 보다는 저녁 시간 활동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하니 어떤 프로그램이라도 저녁 시간에 같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 특히 장년층이나 어르신들은 소통하는 방법을 잘 모르고 정보력도 없어서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내 자신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방법이라던가 이야기를 끌어나가야 하는 지도 배워야 한다. 소통을 자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대 간 서로 배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명숙 팀장은 주민들이 교육이나 활동 참여에 적극적이어야 이 공간이 활성화된다고 말한다. 어렵더라도 천천히 많은 사람이 함께 참여하며 활동할 수 있도록 계획을 세우기를 바란다. 가족들이 모여서 소규모 활동과 작은 공연도 하고 연극이나 음악회도 있어서 가족 단위의 웃음소리가 나는, 아이의 웃음소리가 넘치는 공간이기를 기대한다.
박근영 팀장은 관공서가 있기 때문에 아이들이 별로 오지 못했던 공간이다. 서천군은 인구가 줄고 있는 상황에서 문화시설이나 공원도 없고 큰 도서관도 없다. 학교 근처이니까 같이 산책하며 아이들이 뛰어놀며 공부도 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되기를 바란다.
성재권 팀장은 도지정 문화재인 서천읍성의 특별함을 살려서 문화재 발굴과 같은 역사성을 강조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본다. 서천읍성을 토대로 주민들이 산책로로 이용하면서 서천 역사에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주민들이 원하는 쪽으로 가야 하지만 문화재와 연관해 개발하는 게 좋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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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참여자 자기소개 >
홍경숙 재무과장은 군청과 다른 곳을 오가며 일했다. 서천군청에서는 농정과, 민원봉사과를 거쳤다. 최근에 국립해양생물자원관에서 근무했으며 올해 1월부터 재무과에서 일하고 있다.
< 구)청사에 관한 기억 자율 이야기 >
홍경숙 과장은 청사가 가지는 특징으로 역사적인 의미를 꼽았다. 앞에 남산이 치소(지역의 행정 사무를 맡는 기관)였고 그다음 문산 문장리를 거쳐서 1966년부터 현청사 자리를 지키고 있다. 서천읍성의 한 가운데 있는 것도 상징적이라 일반적인 공간의 개념으로 바라보긴 어렵다.
외부인이 방문할 때 내비게이션에 서천군청을 검색하면 보건소 쪽에서 민원실로 넘어오는 가파른 언덕길로 안내해준다. 길도 복잡하고 좁으니까 다들 놀란다.
직원들이 야근하느라 저녁을 먹으면 그 냄새를 맡고 고양이들이 오기도 한다. 남은 밥을 주다 보니까 고양이의 수가 점점 늘어났다. 평소에도 직원을 따라오고 감당이 안 돼서 직원들이 더 이상 음식을 주지 않았더니 고양이들이 주차장에서 많이 지낸다. 최근까지 민원실에서 밥을 챙겨준 것으로 알고 있다.
< 구)청사 내 공간에 관한 이야기 >
2000년에 읍사무소에 있다가 발령받아 청사로 처음 왔을 때 후관동 농정과에서 일했다. 조립식 가설건물이다 보니 여름, 겨울에 특히 근무하기가 힘들었다. 지금 일하고 있는 재무과(후관동 1층)와 옆 사무실 해양수산과도 증축해서 생긴 불편함이 몇 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가 건물들이 붙어있어 해가 잘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재무과는 그나마 낫고 해양수산과는 앞에 있는 투자유치과(본관 1층)가 완전히 가리고 있어 습하다. 또 증축으로 연결된 부분이 비가 오면 물이 새고 쥐가 나오기도 한다. 직원들이 야근하느라 먹은 저녁 냄새 맡고 온 고양이들을 이용해 쥐를 쫓아내려 한 적도 있다.
조직을 개편하면 실과가 늘어나 후관동 옥상에 조립식 건물을 올려서 4층이 됐다. 안전총괄과가 있는 곳인데 듣기로는 1년 사이 2명이나 다쳤다. 올라가는 철제 계단이 위험하다. 눈이 오면 직원들이 미끄러지고 깁스를 한 경우도 많다.
홍경숙 과장은 2001년에 근무하면서 가장 아찔했던 일이 있다고 하셨다. 사무실에 불이 날 뻔했는데 식목일이라 농정과 직원들이 현장에 나가서 없고 비상 대기조로 몇 명만 사무실에 남은 날이었다. 지금도 기름을 넣는 전기난로를 쓰고 있지만, 당시에 과장님 자리 앞에 큰 석유난로가 있었다. 그때 난로를 담당하고 있어서 난로를 피우려고 했는데 누가 기름을 넣다가 흘렸는지 라이터로 불을 붙였더니 불이 옆으로 계속 번졌다. 바닥이 장판이라 기름이 흘렀어도 티가 안 난 것 같다. 근처에 물이 든 양동이가 있어 부으려고 하자 한 직원이 말리더니 소화기를 갖고 와 진압했다고 한다. 물을 부었으면 기름이 물을 타고 흘러 불이 더 번졌을 것이다. 건물도 조립식이고 옆에 종이가 많이 쌓여있는 발간실이 있었기 때문에 건물이 다 탈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그때 이후로 화기 관리에 더 신경을 썼다고 말했다.
민원봉사과에서 일할 때도 불이 날 뻔 했다. 어떤 어르신이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운 후 제대로 끄지 않고 휴지통에 버리고 가는 바람에 소화기로 불씨를 끈 적이 있다.
어느 날은 본관동 2층 군수실 앞으로 물이 폭포처럼 샜다. 1966년에 지어졌으니 아무리 보수작업을 했어도 한계가 있었다. 직원들이 양동이로 물을 퍼냈다.
약 15년 전에 수박 농사하시는 분이 당시 수박값이 똥값이 됐다면서 트럭에 싣고 온 수박을 청사 입구에 던져 깨뜨린 일이 있다. 당시에는 민원주차장이 만들어지기 전이라 시위공간도 없었기 때문에 입구에서 시위한 셈이었다. 후에 직원들이 삽으로 다 치운 걸로 안다. 그 자리에 없어서 다른 직원에게 얘기를 전해 듣고 홍경숙 과장 자신의 친구라는 걸 알았다고 한다.
별관 2층으로 가는 계단 밑 카페 자리에 원래 아무것도 없었다. 중간에 장애인복지관이 생기면서 보호작업장에서 장애인들이 훈련했다. 취업하기 전에 시험 무대가 필요한 상황이라 장애인복지관과 군청이 협약을 맺어 지금 공간이 마련이 됐다고 한다. 느티나무에 둘러진 나무 데크도 그때 같이 생긴 것이다. 느티나무와 은행나무는 군청이 들어서면서 같이 심은 것으로 알고 있다.
구내식당 쪽에 대나무 숲이 있었는데 최근에 다 베어버렸다. 대나무가 자라면서 무게를 못 이기고 건물 위로 우거져서 예초한 셈이다.
청사 이전하면 노박래 군수님이 시위가 모두에게 힘들지 않게 공간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씀하셨다.
청사 내에서 가장 맘에 드는 곳은 느티나무랑 카페 있는 곳부터 은행나무 밑 벤치까지의 공간이다. 요즘은 덥고 모기가 많아서 직원들이 잘 안 가지만 은행잎이 떨어지고 할 때는 운치가 굉장히 좋다.
< 청사이전에 관한 감정 >
청사를 이전하고 나면 읍성 산책길이 가장 그리울 것 같다. 조금 전에도 다녀왔는데 청사 직원들은 뒤로 읍성이 있어서 점심 먹고 한 바퀴 돌면서 힐링 시간을 보낸다. 항상 사람이 많다. 서천보건소부터 읍성을 지나 반대 방향에 있는 서천향교, 성당까지 갈 수 있다. 중간에 서천여중, 여고 운동장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좋고, 이어지는 산길을 올라가면 동문이 나온다고 한다.
직원들은 오매불망 이전을 기다리고 있다. 젊은 직원들은 비교적 편한 환경에서 경제적인 부를 누리며 대학을 나와 취업했기 때문에 낡은 청사에 익숙하지 않다. 50세가 넘은 직원들은 힘든 시절을 보고 겪었으니까 적응이 쉽지만 젊은 사람들은 견디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다.
주차마저 쉽지 않아서 이중주차를 하고 그러면 사진을 찍어서 올리니까 직원들의 스트레스가 크다. 이전하면 직원들의 주차 문제는 해소될 거라 기대하고 있다.
< 주민문화공간으로 변화할 청사에 대한 기대 >
군청 자리에 문화시설이 들어오는 것에 대해 반신반의하고 있다. 사거리 우측 읍사무소에도 주차장이 부족하다. 청사의 콘크리트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문화공간과 같이 쓰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또 현재 서천읍사무소와 주민자치센터를 새로 지었기 때문에 청사로 오는 게 불가능하다면, 서천군 내 군청에서 보조금을 지원하는 자원봉사센터 같은 사회단체들이 많으니 그런 민간단체들이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온전히 문화공간으로 만들면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예를 들어 문화 활동 중에서도 어떤 게 형성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지역활성화사업 안내 책자에 있는 ‘치유의 숲’이라는 단어를 보면 포괄적, 가치적인 단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10분만 가면 얼마든지 산길을 걸을 수 있다.
시설을 유지, 관리만 하는 게 아니라 활용도가 중요하다. 일단 인구가 갈수록 줄어드는 상황에서 고민을 많이 해볼 필요가 있다. 역사적인 위치인 만큼 사람의 필요에 맞게 활용이 잘 되는 곳이길 바라는데 서천에 이미 비슷한 공간이 있다는 점이 그 이유다.
일단 도서관을 보면 서천군에 서천도서관, 봄의 마을 도서관, 사할린 교포들이 영구 귀국해 사는 휴먼시아 아파트 작은 도서관이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서천 남자 고등학교 뒤 복합체육센터에도 작은 도서관이 들어갈 예정이다.
홍경숙 과장은 서천에 역사관, 기록관이 없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도서관보다 기록관이 잘 조성됐으면 좋겠다. 한산에 가면 한산모시관에서 모시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처럼 직원을 배치해놓고 누구라도 오면 전반적인 서천 역사를 알 수 있게 해놓는다면 대학생이나 연구원들에게도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인권위원회에서 50년, 100년이 지나면 공개 가능해지는 것처럼, 서천군도 내년에 이전하면 행정기관에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자료가 분명 많이 있을 거다. 그런 것을 폐기하지 말고 이런 곳에 쓰면 좋겠다고 말했다.
민원실 앞에 공적비들이 있다. 거북이 2개와 비석 1개를 청사가 떠나고 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는데 문화사업의 일부로 쓰였으면 했다. 여태까지 주차공간이 부족해서 앞에 주차하다 보니 보는 사람도 없고 방치되는 것이 안타까웠다고 한다. 다른 곳에 있던 공적비를 기증받은 것이기도 하고 한 번 멸실되면 다시 되돌릴 수 없으니 사람들이 보고 그 가치를 알았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했다.
< 공무원으로 생활하면서 지역민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 >
지역민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는지 묻자, 사람들이 자신의 주변에 있는 것들을 소홀히 하기 쉽다며 말문을 열었다. 서천군에 많은 유적과 유물이 있다. 특히 비인 5층 석탑, 한산 봉서사 목조아미타여래삼존불상, 문헌서원의 목은이색 초상화는 국가지정 보물인데 그 가치를 알고 싶어 하지 않는다. 지역민부터 먼저 보물로 지정된 이유와 유형, 무형 문화재의 가치를 알고 귀하게 여겨야 다른 사람들도 인정해준다고 생각한다. 이런 노력을 함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사진/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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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내용의 저작권은 서천군 및 1차 저작자(기록자)에게 있습니다. 본 기록의 무단 배포와 변형, 활용을 금지합니다.
< 인터뷰 참여자 자기소개 >
박명수 농정과장은 직장생활 30년 중 20년을 구)청사에서 했다.
나주하 농업정책팀장은 2000년도 이전부터 군청에서 재직 중이다.
남성우 희망마을팀장은 20년 전 지역경제과에서 근무했고 현재는 농정과 팀장으로 일하고 있다.
이종수 주무관은 2007년 건설과에서 첫 업무를 시작했고 현재는 농정과에 재직 중이다.
< 구)청사 내 공간에 관한 이야기 >
청사의 초기 모습은 담에 둘러싸여 있었다고 한다. 내부와 외부의 소통을 위해 담을 다 허물었다.
나주하 팀장은 직원주차장이 된 테니스장에 대해 떠올렸다. 당시 테니스가 유행이어서 직원들이 많이 이용했다. 90년대 말 직원들의 자가용이 많아지면서 테니스장을 치우게 됐을 때 팀장님의 경우 공간이 남아 아이들과 함께 축구도 하고 놀았다고 한다. 직원주차장이 됐지만, 테니스공을 튕기는 벽이 아직 남아있다.
교육지원청 관사, 여성 휴게실로 쓰던 곳에 탁구장을 마련했는데 현재 잘 이용 중이라고 한다. 현청사 내 탁구동아리가 있고 특히 도시건축과 안형섭 팀장이 잘 알고 있다. 여성 휴게실에 대해 법적인 이유로 마련됐지만, 여성 혼자 그 공간에 있으면 위험할 수 있으니 차라리 체육관으로 만들자고 노조에서 건의한 것으로 알고 있었다.
별관동 뒤에 공무원 노조가 있었는데 지금은 과거 군수 관사에 있고 탁구장 안에는 계약직 공무직 노조 사무실이 있다.
태풍으로 호우주의보가 있어 군수님과 직원들이 일찍 출근한 날이었다. 군수님께 지역별로 강수량을 파악해 보고드리며 청사로 들어왔는데 비가 많이 와서 군수실에 물이 샜다. 구멍이 난 건 아니고 건물 틈새를 타고 흘러 이미 바닥이 흥건한 상태였다. 큰 세숫대야를 갖다 놓은 일이 있을 정도로, 청사가 많이 낙후된 건물이란 걸 실감한 일이었다고 한다.
군청사 이전이 결정되기 전인 재작년쯤 이 자리에 다시 지을지 밖에 지을지 결정하기 위해서 민원인 주차장에서 한동안 지표조사를 했다.
청사에 사람이 찾아오면 안내해드리기가 정말 어렵다. 반드시 동행해야 하고 들어가서 나오지 못하시는 분도 마찬가지로 안내가 필요하다. 청사가 말 그대로 소굴 같은 곳이다. 들어올 때뿐만 아니라 나갈 때도 헤매는 경우가 많아서 군수님도 민원인이 오시면 끝까지 안내해 주길 직원들에게 당부하셨다. 안내판의 필요성 문제로 건물, 실과 안내표시가 생기고 없어지는 일이 반복된 적 있다고 한다.
그래도 길을 못 찾고 있는 민원인께 안내해드리면 민원인이 손을 꼭 붙잡고 감사하다고 하시면 뿌듯하고 기분이 좋다. 특히 나이 많으신 분들은 부모님 같기도 하고 젊은 사람에 비해 감각이 떨어지기 때문에 필요한 실과 담당자를 바로 연결해주기도 한다.
본관과 별관 사이에 있는 큰 느티나무는 전부터 몇 번씩 베려고 했었다. 해가 갈수록 공간을 차지하고, 낙엽이 많고 비가 오면 하수가 막혀 관리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근데 나무가 청사와 나이가 비슷하고 크면 클수록 동네 역사를 상징하기 때문에 반대하는 사람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나무를 베지 않고 현재는 가지치기만 하고 있다.
어느 해는 관리가 어려우면 낙엽을 쓸지 말아보자고 해서 낙엽이 쌓이도록 놔두었더니 단풍이 진 모습이 너무 예뻐 다들 좋아했다.
박명수 과장은 문화재 관리 구역이 청사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얘기했다. 예전부터 문화재 관리법은 법적으로 제재가 심한 편이었고 최근 들어 근방 50cm만 건드려도 문제가 될 정도로 엄격한 상황에서 개별적으로 진행할 수 없는 게 많다는 것이다.
증축에 관해 기억나는 일이 있는지 물었다. 박명수 과장은 약 20년 전 기존 건물에 사람이 다 들어가지 않으니 후별관동을 조립식 건물로 지었다고 했다. 트라스를 짜서 급하게 공간을 확보한 것인데 10년이 지나니까 트라스 특성상 용접 부분이 약해졌는지, 겨울에 폭설이 내리던 날 근무 중에 지붕에서 우두둑 소리가 났다. 2층에 있던 산림축산과(당시 농민과) 직원들이 대피하는 상황이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후별관동에 있는 지역경제과에서 일했던 남성우 팀장도 대피했던 일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2003년에 안전총괄과가 생겼는데 청사 내에 갈 곳이 없으니 옥상으로 증축했다. 그때 건축(구조물을 새로 만들어 설치하는 것)이 따로 없었는데 외곽 계단도 함께 만들었고 정식 절차를 밟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이에 나주하 팀장과 이종수 주무관은 처음엔 불법이었으나 누가 신고해 전체조사를 들어가 다시 했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나주하 팀장은 당시 공무원 노조에 악감정을 가진 사람이 외부에서 신고한 것이고 증축하는 것으로 설계부터 다시 했다고 덧붙였다.
박명수 과장은 관사 담장 앞에 심어 놓은 향나무들은 오래됐지만, 우리나라 전통 나무가 아니다. 일제의 잔재인데 환경단체라든지 조성하시는 분들이 일본에 대한 적대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청사에 있는 은행나무처럼 우리 고유의 나무들이 있으니 시대 흐름에 맞춰 없애는 게 좋고 없애기 곤란하면 다른 곳에 옮겨심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남성우 팀장도 관사와 본청 앞 모두 깔끔하게 정리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이종수 주무관은 2007년 군청에 들어와 건설과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 앞에 구멍가게를 기억했다. 막내라서 심부름을 자주 했다고 한다.
박명수 과장도 구멍가게를 기억하고 있었는데 학교 앞 조그만 문방구처럼 과자, 음료, 막걸리, 맥주 등을 팔고 있어서 공무원들이 민원인과 상담하는 등 휴게실처럼 이용했다고 한다. 지금 별관동에 있는 민원실이 없던 시절이다.
현재 예산실은 군수 관사 자리였고 군수님이 관사에 계실 때면 급한 서류를 가지고 결제받으러 갔다고 한다.
관사로 쓰던 때는 관선 군수였기 때문에 도에서 내려와 점검했다. 부군수와 일부 실과장 자리도 도에서 파견한 사람이 2년 정도 있다가 올라가는 일이 있었다. 가장 마지막으로 파견된 곳이 환경보호과인 것으로 알고 있다. 파견된 실과장들도 관사가 별도로 주어졌고 현재 군수 관사만 남아있다. 당시 도지사, 군수가 관선에서 민선으로 넘어가면서 ‘관사를 이용하면 예산을 많이 쓴다’는 이유로 사용하지 않았다. 민간인한테 예산을 더 쓸 수 있도록 일종의 배려를 해준 것이다.
박명수 과장에게 컨테이너 건물을 언제부터 썼는지 물었다. 컨테이너 건물은 약 20년 된 것부터 10년이 채 안 된 것도 있었다. 그중 한 곳은 산림과 시절에 산 정상에 CCTV, 카메라를 설치한 후 사무실에 TV를 놓고 산불 감시하려니 장소도 협소하고 민원 일을 수월하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컨테이너에 TV 5~6대를 두고 산불 감시 업무를 따로 했다고 설명했다.
남성우 팀장은 3번(*현 건축물 및 시설 검토 위성사진 참고) 컨테이너가 산불 CCTV, 관제탑 역할을 했던 곳이고 1번은 안전총괄과의 많은 물품을 4층까지 갖고 올라갈 수 없어 보관하기 위해 추가된 컨테이너라고 덧붙였다.
여기(6번으로 추측)는 지적재조사 서고인 것 같다. 증축이 어려운 상황에 도시건축과도 그렇고 보안문서를 보관할 공간이 부족했다. 지적재조사팀 사무실이 없어서 컨테이너에서 일하기도 했다. 그리고 2번은 관사 차고지 같다.
< 구)청사 연계 사건 >
주차난이 있는 군청인데 어떻게 민원주차장 일부를 집회 장소로 쓰게 됐는지 나주하 팀장에게 물었다. 나주하 팀장은 군수님과 직원들의 눈에 잘 띄는 곳이기 때문에 의견 피력하기 좋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른 군, 시청처럼 광장이 없는 공간적 한계도 있었다.
서천군은 농민들이 많아서 쌀값에 대한 불만으로 집회를 많이 한다. 쌀을 대형 포대에 담아 기계가 옮기는 지금과 다르게 당시에는 사람이 직접 40~60kg짜리 포대를 쌓아놓고 시위했다. 이런 시위를 요구가 받아들여질 때까지 하니까 비 오면 젖지 말라고 비닐로 싸 놓기도 하면서 약 한 달 동안 청사 앞에 놓여있었다. 지금은 군이 아닌 농협에서 관리하다 보니 그런 시위는 거의 없다고 한다.
군청 위로 서천여중, 여고가 있기 때문에 출근길과 등하굣길이 겹친다. 학생 수가 많은 시절에는 군청 앞이 굉장히 혼잡했다. 특히 군청 직원주차장이 분산돼 있어 충령사 앞에 주차하면 학생들 사이로 운전하기 위험해 한참 기다려야 했다. 사고도 몇 번 있었다.
외부인들이 서천IC를 통해서 군청을 찾아오면 내비게이션이 최단 거리로 알려주기 때문에 손님들이 군청 뒤 가파른 길을 보게 된다. 외부인이 그 얘기를 해줄 때마다 군청이 지리적으로 특이하다는 걸 직원들도 실감한다고 말했다.
사람들과 가까이 살면 야생동물로부터 새끼를 보호할 수 있다는 생각인지 성안마을 쪽에 백로가 지냈다. 근데 주민들이 빨래를 널면 오가면서 변을 떨어뜨리니까 나무를 베어버렸다. 새끼를 낳고 키울 자리가 사라지니까 약 10년 전에 군청 근처로 터를 옮긴 것으로 보인다.
후별관동 뒤에 있던 대나무는 답답하고 학생들이 다니는 길이니 음침함을 덜기 위해 새 군수님이 오시면서 없앴다. 베어내기 전에 비둘기, 꿩 집도 많이 있었다.
남성우 팀장은 백로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봐야 한다며 환경 쪽이나 어느 부서에서든 검토, 담당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새를 위한 구조물 혹은 간단하게 새를 관찰할 수 있는 장소를 만드는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이종수 주무관은 약 15년 전에 3번 컨테이너(*현 건축물 및 시설 검토 위성사진 참고) 2층에서 직장예비군을 했다고 한다. 1년에 한 번 군복을 입고 가서 헬멧, 방독면을 쓰고 4시간 정도 교육받고 나면 예비군 훈련을 따로 가지 않아도 되었다.
박명수 과장은 농촌 특성상 주를 이루는 농업, 축산물의 무역 관계 때문에 주민들과 마찰이 잦았다고 말한다. 본관 정문에서 군수실까지 뭔가를 뿌리는 일도 있었다.
< 청사이전에 관한 감정 >
나주하 팀장은 항상 직원들이 읍성으로 산책을 많이 다니며 코로나19가 막 확산됐을 때는 배식을 일찍 시작해 팀마다 20분씩 순차적으로 식사 시간을 가졌었다고 한다. 식사가 끝난 직원들은 다들 한 바퀴씩 돌았다. 앞으로는 얘기 나누며 걷던 산책길이 없을 거라 생각하니 아쉽다고 말했다.
현청사에 애착이 있어 보이는 나주하 팀장은 청사 위치가 바뀌고도 본인도 모르게 출근을 신청사가 아닌 현청사로 할 것 같다고 한다. 오랫동안 출퇴근을 했던 곳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서운함도 있지만, 주차난을 피하고자 7시 40분 전까지 출근하는 일을 감수하지 않아도 되니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 주민문화공간으로 변화할 현청사에 대한 기대 >
새롭게 바뀔 청사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나주하 팀장은 서비스산업이 발전할수록 좋은데 서천군이 문화서비스 공간이 부족하다며 운을 떼었다. 주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부분이라 생각하고 공무원으로서 문화시설로 공원이 조성되면 주민들이 많이 이용해주셨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읍성도 복원 중인데 그와 걸맞게 성안마을과 지어질 문화공간을 전통적인 건물을 테마로 짓는다면 훨씬 괜찮을 것이다. 군청이 오래되긴 했으나 어차피 근대적인 느낌도 없고 크게 문화적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니 옛날에 군청이 어떤 모습이었는지 모형으로 남겨놓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과 달리 문화공간을 답답하게 하지 말고 시골의 이점을 살려 쾌적하게 조성하는 게 나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어르신과 장애인분들은 시내나 읍성을 돌아다니기엔 무리니까 불편함 없는 동선을 만들어서 넓게 꾸미면 이용하기 좋을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모든 사람이 이용할 수 있도록 다 없애고 본관만 남겼으면 좋겠다. 2층을 만들면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니까 동등하게 1층에 다 만들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명수 과장은 1965년생인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 청사이기 때문에 가능하면 조립식 건물을 포함해 주변 정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농업 시, 군이 대부분 인구소멸 지역이 돼 가는 상황에 청사 면적을 늘려가면서까지 청사를 살리기보다 주민들이 휴식을 취하는 공간이 되는 게 바람직하다. 청사를 새로 짓고 더 많은 정책이 내려오면 복지시설이 산재할 가능성이 크다. 향후 10~20년이 흐른 후에 관리비만 낭비되는 일이 없어야 하기에 소프트웨어든 하드웨어든 최소한으로 했으면 한다.
중앙에 건물이 있다는 이유로 너무 부각한다면 정부와 서천군 입장 모두 손실이 클 것이다. 요즘은 리모델링하면 현대식으로 하거나 친환경을 테마로 목재 건물을 만든다. 그런 식으로 하면 2~3년만 지나도 다른 건물처럼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최대한 기존의 이미지를 살려 정감 있는 시설로 남겨놓았으면 좋겠다.
읍마다 복지센터에서 각종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농업, 축산, 임업 종사자보다 장사, 사업, 공무원 같은 지적 수준이 더 높은 분들이 문화시설을 이용할 것으로 보인다. 프로그램도 연령대를 고려해 큰 힘이 드는 일 말고 가볍게 할 수 있는 그림, 음악, 붓글씨 활동이 괜찮을 듯하다.
또 금 세공사나 유리 가공 같은 강좌를 개설해 저가의 임대료를 내고 운영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괜찮다고 말했다.
남성우 팀장도 박명수 과장의 말에 일부 동의했다. 청사가 1964년도에 지어졌지만 서천군에서 오래된 것이지 전국적으로 봤을 때, 건물 양식이 기와나 목조 건물이 아닌 콘크리트 건물이다 보니 내적, 외적으로 역사성이 두드러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기와를 얹는다거나 새로운 양식으로 만들려고 하면 이상할 것 같고 여기 있는 양식에 약간의 변화만 줘서 옛날 구청 건물을 상상할 수 있게 조성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인구 자체가 줄어들고 있으니 운영, 관리하기 편한 방향으로 조성해야 한다. 관리직원이나 관리를 위탁하는 기관의 편리성뿐만 아니라 군민의 세금을 생각하면 관리비가 안 들어갈 수는 없지만, 최소화하는 게 옳다는 의견이다.
그리고 근처에 여학교가 있으니 밤에는 환하게 해놓고 누가 봐도 학생들이 사용 중이란 걸 알 수 있도록 최대한 열린 공간으로 두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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