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봉업을 부친이 시작하셨고 본인은 우체국에 근무를 하면서 틈틈이 시간을 내어 꾸준히 해오다 우체업무 정년 후 본격적으로 해오고 있다 이야기합니다.
2. 양봉업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시겠어요?
우리나라 양봉의 시작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갑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형태의 양봉은 몇 십 년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보는 사각형의 벌통이 벌을 체계적으로 사육하고 꿀을 따기 위한 최적의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벌집을 소비라 부르고 벌통 안에 대략 10장 정도의 소비가 들어갑니다. 벌들이 봄 여름 가을 내내 꿀을 가져와 벌집에 저장한 걸 모아 시중에 파는 게 벌꿀입니다. 벌꿀과 관련된 파생 상품까지를 말할 수 있습니다.
3. 그러면 이 벌집의 주인인 벌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겠습니까?
이 벌통의 중심은 여왕벌입니다. 다른 벌보다 크고 색도 진하며 몸통도 길지요. 여왕벌은 많게는 하루에 3천 개까지 알을 낳으면서 벌의 개체수를 불려가는 거지요. 여왕벌은 시중드는 일벌들이 따라다니고 유니크한 여왕벌만의 페로몬을 분비하면 일벌들이 결집하고 벌의 사회 체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조율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여왕입니다. 실제로 여왕벌이 사고로 죽거나 사라지면 벌통에 남아있는 벌들이 극도로 불안해하고 일도 잘 안하고 어수선한 모습을 보입니다.
4. 그러면 다른 벌들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시겠어요?
일벌과 비슷하지만 몸이 좀 더 뚱뚱한 수벌이 있어요. 새로운 처녀 여왕벌이 태어나면 바로 알을 낳는게 아닙니다. 바로 교미를 해야 하는데 이때 교미 비행이란걸 하지요. 처녀 여왕벌이 하늘로 날아오르면 그 냄새 페르몬에 취해서 모든 수벌 들이 한번 교미해 보겠다고 일제히 그 여왕벌을 따라가는데 수벌들은 바로 이때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요. 인간사회와는 달리 벌들은 철저히 모계 중심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여왕벌이 벌의 구심점이고 일벌들은 모든 생계를 책임지고 그리고 수벌은 그냥 교미만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5. 꿀을 만드는 방법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직접 꽃에서 가져온 천연 벌꿀과 벌들에게 설탕물을 먹여 만든 사양 꿀이 있습니다. 물론 둘 다 꿀입니다. 벌이 먹고 뱉어내서 발효된 꿀이니 꿀은 맞지요. 벌들이 꿀을 가져오는 밀원지가 너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6. 그런데 양봉업 하는 분들이 이동양봉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카시아 꽃을 따라서 남쪽부터 북쪽으로 계속 이동하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아카시아 꽃이 남쪽이 빨리 피고 북쪽으로 갈수록 늦게 피거든요. 그래서 빨리 꽃이 피는 곳에서 먼저 꿀을 뜨고 벌통을 트럭에 싣고 계속 조금씩 위로 올라가면서 많은 꿀을 수확하는 거지요.
7. 양봉업이 성공하려면 무엇이 제일 중요한가요?
풍부한 밀원 식물의 확보, 우수한 품종의 확보, 양봉가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꿀벌은 고유의 3대 습성인 자연성, 고유성, 자유성이 있기 때문에 이들에 순응하는 봉군 관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계절, 날씨, 기후의 3대 환경요인에 순응하는 봉군 관리가 있어야 양봉에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조사자의 의견
인터뷰를 하면서 벌과 밀원식물, 그리고 양봉관련 부산물에 대한 관리와 육성 등 많은 제반 문제가 함께 다루어져야 하는 점을 생각하게 되었으며 생태 농업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천군 양봉 현황에 대한 기록 활동을 구상해보고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1.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성북리(城北里), 화리(禾里), 어은동(魚隱洞), 화호리(禾好里) 일부와 비인군 이방면의 담화리(淡花里) 각 일부를 합하여 현 화성리가 되었다. 화성리는 ‘담화골’이라고 불린다.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 명당으로 알려진 마을로 연꽃이 물에 뜬 형국이라 ‘담화골’이라 하던 것이 ‘대마굴’로도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2. 현 마을 회관 맞은편 지역을 잣디라고 부르며 지세형국이 포란형이고 햇볕이 강하지 않은(북향) 지형이라 예부터 고추장, 된장 등을 담그면 좋다 한다.
잣 - 기다랗게 돌을 쌓아올린 담. 제주 지방의 방언이다. ‘성’의 옛말.
디 - ‘뒤’의 방언.
3. 당시 마을에 소나무가 병풍을 두르듯 빼곡이 심어져 있었는데 마을의 좋은 기운이 빠져나가지 않게 하려고 심었던 것이며 당시 외부에서 바라보면 마을이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6.25전쟁 때 피해가 없었던 이유라고도 한다. (마을의 한 원로는 산이 우거져서 ‘팽뫼지역’ 이라고 부른다. 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4. 담화골 뒷산인 월명산은 옛 부터 달맞이를 한 산이라 이름이 붙여졌으며, 음력 8월 17일이면 마을 아낙네들과 처녀들이 이 산에 올라 노래자랑도하고 유흥을 함께 즐기던 장소였다. 지당제(마을 사람들은 지장재로 기억)라고도 부른다. 이밖에도 사발처럼 생겨 사발봉이라 부르는 산이 있다.
- 1956년 마을 지장재에서 당시 판교 중학교 선생님께서 10~20대 청년들을 모아 청년들의 체력향상이 국력에 중요함을 강조하며 체력훈련을 시켰다. 라고 하였다.
5. 마을의 인물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에 일제강점기 시절 전봇대를 혼자 들고 다닐 정도의 장사의 힘을 가졌던 ‘이달호’라는 분이 일본에 가서 돈을 엄청나게 벌어와 마을 거의 모든 전, 답, 임야를 샀으며 장항농고 설립 시 당시 금액으로 100원을 시사해서 개교를 도왔다. 고한다. 또한 그의 아들 이원근은 서천읍에서 연탄공장을 하였고 그의 손자는 서울전선을 창업하여 현 회장임을 이야기하였다. 당시 마을의 대분의 농사를 짓기 위해 마을 윗 지역에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연못을 파고 농사지었다. 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6. 당시 (1950년대말 이후) 화성리에서 서천읍을 거쳐 장항 도선장에 가는 당시의 여정을 질문하였다.
화성리에서 장항으로 농산물, 장작 등을 팔기 위해서 현 화성2리 노인회관쪽으로 산길을 넘어 기차길 쪽으로 걸어가다 태월 장수촌고개에서 (당시 나무가 우거지고 음지인 곳이 많아 도깨비, 강도사고가 있었다. 혼자서는 무서워 못다니고 네 다섯명이 모여 다녀서 사오고개라 불렀다함) 화금리 진재를 넘어 서천읍으로 다녔다. 서천읍에서 장항 도선장까지 구 도로와 혹은 기차길을 따라 걸어 도착했다한다. 장향에서 군산으로 출발할 때 승선정원이 300명이었고 태비(승선비용을 당시에 부르던 말)는 5원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가끔 배 옆에 우시장에 가기위해 소를 묶어 도선하던 모습도 설명하였다.
* 조사자의 의견
마을기록 활동 과정에서 구전되어 내려오던 용어를 조사하며 보다 정확한 의미와 기원을 알게 되었고 추론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음을 생각해본다. 의문점이 들거나 애매모호한 사안들을 크로스체크 할 수 있는 리스트를 작성 해야겠다 생각해본다.
사진
<화성리(花城里)마을 뒤쪽으로 사발봉을 끼고 멀리 희리산을 바라보고 있는 화성 1리 포란형 지세/잣디>
구술자: 제 이름은 신효정이고요. 1976년생입니다. 올해 2022년 1월 1일에 부임을 했습니다. 현재 서천도서관은 교육청 소속 직속기관으로 직원들은 순환보직으로 지역 교류를 합니다. 그래서 서천 지역 출생이거나 생활 기반이 서천인 공무원이 근무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외지인인 제 시각에서 (보았을 때) 이곳 지역 주민 분들은 서천도서관의 가치에 대해서 특별히 생각을 해보시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대부분 익숙한 것에 대한 공간에 대해서는 특별히 생각을 안 하거든요. 서울 사람들이 남산이나 서울타워에 안 가보잖아요.
조사자: 그렇죠, 맞아요.
구술자: 저희도 이제 항상 그 자리에 영원히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잖아요. 이번 코로나를 겪으면서 하찮고 소소한, 하찮다고 하기보다는 작지만 소소한 일상에 대한 고마움이 남다르게 느껴진 것 같아요. 저희는 교육청 소속 도서관이고요. (충남도) 14개 시군 교육청에 19개 평생교육원 공공도서관이 있어요. 직속 평생교육원이 4곳 공공도서관은 15기관이 있습니다. 교육청에서 관할하는 시군에 15개 공공도서관이 있는 거예요. 근데 지금 서천도서관 같은 경우에는 원형이 남아 있는 지금 유일한 도서관이에요.
조사자: 원형이라고 하면 어떤?
구술자: 기존에 있던 건물을 리모델링을 하거나 개축을 하고 그러니까 변형이 됐죠. 그런데 (우리 도서관은) 완공 당시 그대로 남아있는 거예요. 안에 내부 수리 정도 하고 이곳에 특별하게 큰 변화가 없었던 것 같아요. 와서 보니까 창틀 샤시 정도 바꾸고 구조물은 그냥 그대로 있습니다.
조사자: 최근에 그래피티 작품이 가장 큰 변화 같던데요.
구술자: 제가 보기에 이곳이 도서관인지 인지를 못하고 계신 것 같아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저희가 순환보직이거든요. 3년에 한 번, 그리고 여기 지역 특성상(군청이면 좀 다를 텐데) 저희 교육청은 14개 시군 순환보직을 해요. 사서직들이 지금 안에서도 계속 결원이 계속 생겨요. 출산, 육아휴직이나 기타 사정으로 말이죠. 여기 이 직원이 많아 보이시기는 할 텐데 결원이 항상 있었어요. 매년 그리고 올해 잠깐 채워졌는데 아마 내년에 또 결원이 될 거로 예상됩니다. 저도 지금 홍성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고요. 지금 저희 직원이 총 다섯이거든요. 정직원이 4명 관장인 제가 홍성에서 출근을 하고 행정직원은 논산이에요. 그리고 사서직 둘이 하나는 논산 하나는 보령이에요. 매일 출근 출퇴근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지역 사람들이 아니어서 순환보직 최저가 1년 반이에요. 그래서 빨리 가려고 하고 왜냐하면 너무 통근이 저희가 왕복 100km가 넘어가니까. 그런 내부적인 문제가 있고. 그리고 대부분 서천에 연고지가 없어요. 아무도 안 오려고 해요. 그러니까 집 가까운 곳에 근무하고 싶어하죠. 거의 천안 아산 쪽에 몰려 있고 홍성 정도에 있다 보니까. 대부분 생활 근거지가 천안 아산 서산 같은 시 단위로 어린 직원이 대다수라 서천군까지 출퇴근이 어렵습니다. 일단 현재 인적 구성원이 계속 보시다시피 누구라도 근무하겠다고 하면 이제 모시고 와야 될 판이에요.
조사자: 지금 관장님 말씀하신 순환보직이라는 네 분 말고 나머지 기타 직원들은요?
구술자: 기타 직원이 교육 공무직에 한 분이 계세요. 이분이 계시긴 한데 시설업무와 도서관을 전반적인 업무 지원해 주고 계세요. 도서관 운영을 위한 사서와 행정 전문성을 갖기보다는 조금 다른 형태 행정보조 형태여서 주체성을 갖고서 업무 수행을 하기에는 좀 어려운 점이 있어요.
조사자: 네
구술자: 그러다 보니까 도서관 업무, 사업 수행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거예요.
조사자: 사업수행의 어려움요?
구술자: 저희는 중점 사업이 지역 주민을 위한 자료 제공. 자료 제공이 제일 기본적인 거예요. 도서관다운 본연의 사업이죠. 그걸 충실히 해야 하는데 사서가 배치되지 않았었어요. 사서의 안정적인 근무가 보장돼야 하는데. 저경력자 신규 사서가 배치되서 일을 파악하다가 1년 가고 일을 알아갈 때 쯤에는 인사발령으로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중점 사업인 자료실 관리를 사서가 해야 하는데 그게 제일 소홀하게 하고 있어요. 그리고 교육청 소속이다 보니까 평생 교육에 관심이 많죠. 자료 관리는 눈에 보이지 않아요. 인풋 아웃풋이 굉장히 오래 걸리는 사업이에요. 그러니까 이렇게 누적된 집안일 같다고 저는 표현을 하거든요.
조사자: 네.
구술자: 그래서 없으면 금방 표가 나고 있어도 하는지 안 하는지. 그냥 전통적인 대출 반납에 방점을 찍다 보니까 이용자들도 “도서관에서 뭐 하는데?”라고 하거나, “도서 대출하고 도서 반납 같은 거 아무나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라고 해요. 누구나 할 수 있고 아무나 해도 되는 일은 아닙니다. 저희는 문헌정보학을 전공한 사람들만이 시험을 봐서 들어오는 거거든요. 누구나 할 거면 뭐 하러 4년제 대학에서 공부를 하겠어요. 지식정보라는내면적 구조의 균형 유지를 위한 업무를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네요. 간단한 건 아니거든요. 자료 관리가 어떤 점이 있냐면 기본 장서 구성이 안 되고, 누적이 되다 보면 흔히 아는 추천 도서라든가 아이들이 읽어야 되는 양서, 트렌드도 반영을 해야 하고 지역 주민의 니즈를 단기간에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좀 이렇게 진득하게 한 3~4년 근무하면서. 저도 지금 1년이 됐는데 지역주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요. 오자마자 이곳이 다른 지역과 비교해 너무 낙후돼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천안 아산 같은 경우는 트렌디한 프로그램도 하고 하는데 여기는 전혀 없더라고요. 소모적인 프로그램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많이 바꿔보려고 하는데 지역주민의 니즈가 가장 중요하다보니, 소모적인 프로그램이라고 하는 것은 결과가 보여야 되는 평생교육 학습기능 위주와 재료비가 지원되는 취미 활동 참여도가 높아요. 여기는 재료비가 지원되지 않으면 참여를 전혀 안 하세요. 눈에 보이는 만들기 같은 프로그램 참여도가 높아요. 인문학에 대한 기본 개인 소양을 쌓기 위한 공부 참여도가 낮으세요. 의외로 제가 와서 놀랐던 점이 대출률은 굉장히 높아요. 타 지역과 비교해 대출률이 높아요. 네 그러니까 40, 50대 60대 분들이. 저희가 이제 정확한 통계 수치로 하는 건 아니고 근무하면 체감하는 수치입니다. 추측하기를 여기가 문화 공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하잖아요. 그러니까 혼자서 독자적으로 책을 읽는 형태가 많으신 거예요. 같이 함께하는 분들 연대를 한다거나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하는 게 부족해요.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요. 그냥 외로운 은둔형 독자들이 많으세요. 그래서 독서회도 제가 운영을 하려고 했는데 그림책 독서회. 왜냐하면 올해 준비를 해야지 내년에 프로그램을 할 수가 있거든요.
조사자: 지원자가 없나요?
구술자: 저희가 어떻게든 5명만 끌고 나가자 했는데, 한 명도 안 나오시고. 6명 신청을 하셨는데 6명은 다 안 나오셨어요. 이건 좀 장기간 해야 되는 프로그램들이거든요. 독서회라는 게 타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자기만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그런 프로그램이에요. 그리고 인문학 강좌에 대한 제가 지금 판단이 부족했는지, 지금 매월 작가와의 만남을 2회씩 운영을 했어요. 이런 사업은 예산과 인력이 풍부한 중앙에서 하는 사업이거든요. 저희가 작가와 만남 같은 사업은 사실 거의 뭐 1년에 한두 번 할까 말까 해요. 서천까지 어렵게 모셔왔는데 참여자가 매우 적으니까 사기도 저하되는 부분이 있고. 그래도 저는 내년에도 인원은 적지만 지속적으로 하려고 해요.
조사자: 월2회요?
구술자: 이후에는 좀 유지를 하려고 해요. 그림책이 지금 몇 년간 굉장히 핫한 트렌드거든요. 근데 그림책은 아이들만 읽는구나 여기고 학부모님들이 의외로 애들을 읽혀도 본인들은 책을 안 읽으세요. 스스로 책을 읽는 거에 대한 기회가 부족을 한 건지, 아니면 아이를 키우는 보육자의 연령 때에 해야 될 일이 많잖아요. 육아도 있고 생계도 있고 맞벌이도 있고 이런 부분인지 모르겠지만 보육자들이 책과 거리감이 있는 것 같아요. 지역의 문화 흐름이겠죠. 어쨌든 관심도가 이렇게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게 참여도나 호응도 자체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이런 건 있죠. 연극은 연극하고 싶은 사람들은 있으되 실제 광장에 나와서 이렇게 할 수 있는 활동에 대한 기회나 이런 것들은 스스로 못 만드는 거죠. 그런 장을 좀 펼쳐드리고 싶었어요. 싶었는데, 일단 안 오시니까 그냥 개설은 하자, 개설은 하자 하고 나중에 폐강되더라도 추진을 하자 하는데 그래서 개강을 했다 폐강을 하면 좀 어려운 점이 있어요. 안 해도 되는 행정적인 처리를 만들어서 하는 셈이라 직원들이 힘들죠.
조사자: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가 1번인가요?
구술자: 네.
조사자: 사람들이 부족하면 억지로 찾아오게 하든지 아니면 찾아가든지하는 서비스를 기획을 해야 되는 숙제가 있지요?
구술자: 그렇죠. 지금 하고 있어요. 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강구해서 지원을 하고 있어요. 작은도서관도 지원을 하고, 노인복지관도 지원을 하고, 찾아가기도 하고, 초중고 참여 모집 공문도 보내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진해야 하는 거는 해야 하니 우선 추진한 사업이 저 벽화를 한 거예요. 왜냐하면 일단은 도서관에 인지를 시켜야겠다. 40여 년이 지난 이 건물이 지역 주민들은 뭔지도 몰라요. 저 벽화에 대한 그림을 선정을 할 때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사실 이상재 선생님을 제일 먼저 생각했어요. 이상재 선생님과 의미를 부여하고 교육적 목표, 교육적인 가치라 이런 거를 내보내기에는 딱 안정적인 아이템이죠. 독립운동가를 지역주민과 학생들에게 알리기 얼마나 좋아요. 근데 지금 적벽돌에 이상재 선생님이 근엄하게 있는 모습이 현재 트렌드하고는. 트렌드도 그렇지만 좀 진지할 것 같더라고요. 도서관에 아이들이 많이 와야 하는데 그래서 지금 초중고 아이들 시선에서 무조건 짱 귀엽게 만들자. 일단은 한 번에 각인시킬 수 있는 이미지를 하자. 그리고 벽화가 오래되면 식상해져요. 식상해지는데. 저희가 이전 이슈가 연초에 있었어요. 5년 안에 당장이라도 옮길 것처럼 이야기가 나와서 제가 재구조화되면 저 벽화는 식상해지기 전에 사라질 거라 시도해 봤습니다. 재구조화 연구만 해도 여러 번 논의됐어요. 오래도 했고 중장기 계획부터 저희가 추진을 안 하는 게 아니에요. 했는데 온 우주의 힘이 모아져야 이루어지는 일들이 있더라고요.
조사자: 온 우주의 힘 플러스 지자체의 관심, 주민의 관심을 기반으로 한 주무관청의 어떤 결정요?
구술자: 근데 여기가 문화 활동과 문화 활동가도 다른 지역보다 없고 적어요. 저희가 문화 활동가를 양성을 하려고 연초부터 프로그램을 돌렸어요. 그런 쪽으로 저는 딱 한 명만 나오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한 명이 어렵더라고요.
조사자: 지금 관장님이 구상하셨다고 하셨던 부분들이 구체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모집 절차까지 하고 실행 단계까지 가셨던 건지….
구술자: 그렇죠. 저희가 자격증을 취득을 하게 하고, 그중에 수요 조사를 했어요. 수요 조사를 하면 보통은 한 분 정도는 나오거든요. 두세 분 정도. 왜냐면 그 수업을 하신 분들이 함께 다니시면서 활동도 신청하는데, 서천 지역은 자격증 취득하고 끝이에요. 공간도 있고 저희가 그 자격증을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기획해서 제공을 할 수 있고 이분들이 하시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그게 없더라고요. 프로그램 자격증을 취득하고 끝. 근데 아까 문화 활동가라고 했는데 저희는 또 도서관만의 고유 업무가 있어요. 도서관 기능에 맞는 활동을 하실 수 있는 분을 양성을 해서 도서관과 함께 가야죠. 그래서 제가 지역에 갈 때마다 꼭 한 분 정도는 양성을 해서 활동하시도록 지원해 드렸어요. 그분들 중에는 애들 대학까지 보내고 지금도 활동하셔요. 서천에도 그런 분이 계실 거라 생각됩니다.
조사자: 네, 사람은 있을 거예요.
구술자: 이제 하드웨어적 약간 공간의 문제인데, 지금 자료실이 너무 좁아요. 저는 이제 (자료를) 이고 있는 거는 앞으로는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니까 장서량이 많다를 우수한 도서관의 기준으로 삼으면 안 돼요. 왜냐하면 디지털 자료도 많커니와 지역 주민이 저 책 다 못 읽어요. 그리고 얼마 전부터 저도 서천도서관 건축 시기에 대해서 바깥에 향나무 때문에 조사를 시작을 한 거예요. 일제 잔재 청산이 교육감님의 숙원 사업이에요. 노래 교가를 없앤다거나 아니면 일제시대의 칼을 찬 교장선생님들 옛날에 그런 사진들을 없앤다거나 그거는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가이스카 향나무의 기원을 보면 이토 히로부미가 기념 식수를 한 일본특산종이에요. 그럼에도 저기 진입로에 있는 저 나무들은 오랫동안 지역주민들과 함께 있었던 세월을 생각하면 없애야하나. 찾아보니 일제 시대에 심은 나무는 아니었어요. 도서관 건립할 때 같이 심은 나무더라고요. 나무들이 일본에서 왔다는 이유로 없애는 것에는 고민이 많습니다.
조사자: 그럼 기존에 있었던 서재가 부족한 것으로 인해서, 제한된 공간에 대한 대책은 어떻게 세우시고 계세요?
구술자: 보존서고가 있어야 돼요. 보존서고가 있는 도서관은 별로 없어요. 있어도 보존서고조차 이미 포화상태이죠. 우선은 훼손된 것들은 버려요. 그건 명백하게 훼손이니까. 고민 없이. 운영위원회에다가 폐기 등록을 해서 하고, 그다음에 오래된 순서로 빼고, 기준이 있습니다. 절판됐거나 뭐 이런 것들은 남겨야겠지만. 도서가 요즘 굉장히 많이 나와요. 몇 십 만 권씩 나오는데 저희가 도서 구입비가 한 5천~6천만 원 정도입니다. 그러면은 한 5천 권 정도 매년 사는 거예요. 여기(도서관장실)가 딱 삼천 권정도 들어가니까 이게 5천만 원어치 들어갈 거예요. 2년만 되면 이거 두 개예요. 3년 되면 여기 방 한 바퀴 돈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3년에 그러면 그만큼 빼야 돼요. 양이 엄청난 거예요. 저희도 보존서고라든가 별도의 공간이 있으면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좋을 텐데. 버리면서도 이거를 버려야 하는가 심사숙고를 해요. 올 초에도 버렸어요. 올 초에도 버려야 되는데 한 번도 안 본 책도 있어요.
조사자: 네.
구술자: 저희 사서가 부재라고 했잖아요. 사서부재. 저도 사서경력이 약20년 정도 됐는데 지금도 고민을 하는 거예요. 폐기 기준을 20년쯤 했으면 이제 밥 먹고도 이제 그냥 눈 먹고도 해야 되는 상황인데 지금 신규 후배들이랑 고민을 합니다. 폐기해야하지만 일단 최대한 놔두자. 놔두자 한 게 지금 시집이에요. 시집은 초판 발행과 동시에 절판이에요.
조사자: 그렇죠. 재인쇄가 없으니까.
구술자: 재쇄라는 건 거의 없어요. 지금 거의 뭐 500부 만드는 판이에요. 고민인 거예요. 시집이 지금 이만큼 쌓였어요. 수요는 없어요. 자리만 차지하고. 요즘 디지털화도 많이 되고 있는데, 디지털화 된 책 그런 건 버릴 수 있어요.
조사자: 건축물 역사와 관해서도 더 말씀해주세요.
구술자: 건축물 관련해서 전에 근무하셨던 교육청 직원 분과 통화를 해봤습니다. 이곳은 남양 분교였고, 1971년 9월 7일 개교를 했는데 폐교가 됐어요. 1986년 3월 1일 터 일부를 군이랑 대토를 한 거예요. 그러니까 토지를 바꿨어요. 그래서 일부가 지금의 문예의 전당이 됐고, 여기가 남양도서관으로 개관을 한 거예요. 전에 근무하셨던 분에 말에 의하면, 1987년 개관 준비를 했는데 서천 지역에 큰 비가 내렸데요. 홍수 피해가 심각해서 두 달 뒤에 9월에 개관을 했다고 합니다. 향나무는 준공식 때 심어졌더라고요. 정원수로 적합하고 예쁘니까 그때 당시에는 식민사관과 향나무로 연결시켜서 문제가 안 됐으니까 향나무를 심었고, 도로가 문제가 좀 있었다고 해요. 현재 대지가 국자 모양이에요. 왜 이렇게 했을까 궁금해서 알아보니 당시 군이랑 협의가 안 돼서. 그때는 이용자 차량도, 차 소유도 그렇게 많지 않았던 시절이라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전에는 도서관 앞까지 차가 들어왔었어요. 뒤에도 열려 있었고. 그러고 있다가 차량이 많아지니까 안전 문제도 있고, 애들도 있고 해서(문제인데) 저쪽에 다행히 (문예의 전당 주차장이 있어서) 말없이 잘 쓰고 있어요. 어차피 문예의 전당 주차장도 지역주민들이 사용하는 공공성을 띈 거니까 우리 도서관도 그렇고. 여기 건물이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이 시원해요.
조사자: 이유가 뭘까요?
구술자: 초기에 잘 지은 것 같아요. 벽돌로 단열 이런 것들이. 요즘 도서관 샌드위치 판넬로 지어요. 샌드위치 판넬로, 여기는 벽돌집이에요. 지금 옛날에 목조도 들어가고 안에 옛날만큼 정성스럽게 진짜 벽돌 한 장 한 장 쌓아 올린 곳이 여기에요. 지하에 가보셨나요? 옛날에 매점이 있었고, 밑에서 라면 끓여 먹고 그랬다고. 지금 행정과장님도 여기 도서관에 대한 추억이 굉장히 많아요. 초창기에는 폐가식으로 운영되었습니다. 옛 주사님 말씀으로는 도서관 자료 기능보다는 공부방 기능으로 1일 백 여 명이 찾아왔다고 해요. 현재 강의실도 모두 열람실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입장료도 받았을 거예요. 100원씩 그래서 지금 1층 사무실에 보면은 이만하게 창이 있어요. 옛날에 사람이 앉아서 거기서 돈을 받았던 거예요. 이런 건물에 창문이 나 있는 데가 유구도서관, 공주 도서관 이런 데 창문이 이렇게 나 있는 데는 다 돈 받았던 데예요. 받아가지고 옛날 수기장부 거기다가 한 명 들어오면 100원 이렇게. 전자 문서화된 게 20년 정도밖에 안 됐어요. 전에는 돈 받다가 이제 자료실도 폐가식에서 개가식으로 바뀐 거죠. 저희 선배들 얘기 들어 보면은 지역 주민들이랑 다 어울리고. 지금은 너는 너 나는 나. (당시에는) 열람실 안에서 탄을 때서 난방을 했데요. 이용자들이랑 같이 탄도 갈고, 고구마도 구워먹고, 눈 오면 눈 치우고. 직원들은 밤에 여기서 당직을 섰었어요. 여기(도서관장실)가 당직실이거든요. 직원들이 당직 서면서 밤새 있다가 개관 시간이든 폐관 시간이든 상관없이 맨날 오시는 분들이 오니까 같이 가족처럼 지내셨대요.
조사자: 입장료가 100원이었다는 거죠?
구술자: 입관료 받으셨던 분이 100원을 받았다고 그랬어요. 정확한 금액은 저도 들어서 아는 거라. 조례나 이런 지침들이 있었을 거예요. 저희가 임의로 받는 건 아니에요. 아마 서울부터 전국이 다 똑같이 입장료를 그런 식으로 받지 않았을까 싶어요.
조사자: 유료 대출은 안 했지만, 입장료를 받았을 것이라는 거죠?
구술자: 서울 남산도서관도 받았었어요. 도서관이 역사가 어떻게 되냐면 교육청에서 다 시작을 해요. 그래서 지역명을 갖고 있는 거는 다 교육청 소속이라고 보시면되요. 서천도서관처럼. 천안에 만약에 천안 시립도서관이라든가 천안 중앙도서관이라든가 하는 거는 아니에요. 뭐 하러 중앙도서관을 이름을 넣겠어요. 교육청에서 선점을 해서 지자체에서 그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다 보니까 군립도서관이라든가 이런 주체를 붙여서 쓰죠. 저희가 몇 년 전에 충남서천교육지원청서천도서관이라고 이름을 바꿨어요. 이용자들은 교육청 소속이든 지자체 소속이든 아무 상관없겠지만, 교육청에서 운영하고 있는 좋은 기관을 주민들에게 알리고 싶은 거죠. 그런 걸 알리기 위해서 이름도 바꾸고 외적으로 명칭도 바꾸고 간판 바꿨어요.
조사자: 관장님이 생각하시는 앞으로 도서관이 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가요?
구술자: 저는 지역 여건을 고려하되 장기간 봤을 때, 결국은 기본에 충실해야 되는 게 도서관의 역할인 것 같아요. 도서관이 지역사회 문화공동체의 중심으로 지역 주민들의 문화 활동 참여 기회를 확대하고 변화, 세대가 바뀌고 이런 거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을 해야 되죠. 도서관은 기본적인 자료를 중심으로 해야 되는 게 맞는 것 같고요. 서천도서관은 그 자료를 이용할 수 있는 공간적인 편의시설은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지금 2층에 디지털 자료실이라고 벽면에 쓰여 있어요. 20년 전에 pc방 잔뜩 늘어날 때 정부에서 우리도 다 pc 보급하자 이렇게 해가지고 도서관에 디지털 자료실을 다 만들어 놨어요. 디지털 자료실 이름하에 그래서 컴퓨터를 다 놓은 거예요. 지금 어린이 자료실 바닥이 과거 디지털 자료실 구성하면서 액서스 플로어를 깔고 그 밑으로 전선을 깔았어요. 액서스 플로어를 치우고 서고를 옮겼어야 되는데 그것을 그대로 두고 서가를 올려놨습니다. 지금 그게 남아 있어요. 그래서 그걸 치워서 자료실에 열람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이사 비용도 있고 저 책을 다 밖으로 빼서 다시 배치해 가지고 리모델링도 하려면 예산과 인력 문제라 논의하고 있습니다. 지금 제일 숙제예요. 일단은 공간에 편의시설, 열람 기능을 할 수 있는 자료실을 만들고 싶어요. 이전을 하게 되면 가능하겠죠. 현재로서는 책을 읽고 있어야 되는 상황이어서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요.
조사자: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장항도서관 같은 경우는 1997년도 문을 열었더라고요. 거의 20년도 안 된 상황에서 새로 신축했는데, 서천도서관 같은 경우는 1987년이면 훨씬 더 오래됐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진행이 안 된 거죠.
구술자: 논의는 항상 있었어요. 일이란 게 뭔가 다 이렇게 맞물려 딱 되는 날이 있더라고요. 장항과 서천도서관이 경쟁 구도라기보다는 상생이죠. 왜냐하면 완전히 지역이 다르거든요. 장항 분들이 서천도서관까지 오시려면 정말 매우 큰 메리트가 있어야 해요. 공간으로 따질 때는 장항공공도서관이 너무 멋지잖아요. 건물 내용도 멋있고 안에도 좀 넉넉하고. 그런데 책이 너무 오래됐다고 그러시더라고요. 도서 구입비가 적다보니까 그럴 수 밖에 없어요. 저희는 도서 구입비는 안정적이에요. 또 지역 주민들의 이용 편의를 위해 매월 구입을 하고 있어요. 저희가 그냥 입찰 띄워가지고 한 번에 구입하면 가장 편하지만 직원들이 그러한 수고스러움에도 이용자들에게 신착 도서를 제공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어요.
조사자: 마지막으로 건축 당시의 도면이나 사진이나, 관련된 기록이나 이런 것들이 있으면 그것도 참고가 돼서 기록에 반영이 됩니다.
구술자: 행정 기록물 등 개방을 해도 되는지 안 되는지 그걸 먼저 알아보고, 가능한 공개되는 거라면 저희가 제공을 해드릴게요. 좋은 기회라고 생각을 했어요. 이것도 이전된다고 하니까 이게 또 남을 수 있을까….
조사자: 그렇죠. 이전 전에 외형적인 기록에다가 관장님이 해 주신 말씀하고 아주 소중한 기록이 될 것 같아요. 도면이나 이런 게 없다라고 하면 건축물 관리 대장에 소유자가 평면도 첨부해서 발급 받을 수가 있어요. 과거 자료 있으시면 이번 기회에 도서관 내부의 이야기들이 이제 마을 기록 형태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겠죠.
구술자: 옛날 사진도 있어요.
조사자: 옛날사진은 너무 좋은 자료예요. 지금 이런 과정을 통해서 정리되지 않으면 나중에 실무자 바뀌고 그다음에 다 버려지죠.
구술자: 저희가 해야 할 일인데….
조사자: 근데 그것도 한계가 있으시잖아요.
구술자: 우선순위를 두다 보면 그렇죠. 뭔가 꼭 필요한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후회되는 일들이 많아요.
조사자: 제가 이제 마을 주민들 만나면서 얘기를 한참 들어요. 한참 듣다가 어느 정도 친숙해지잖아요. 그러면 그 시점에는 앨범이 나와요 그 전에는 절대 안 나와요. 저 사람이 왜 나한테 이런 관심을, 이런 것들도 있기도 하고, 그다음에 당신이 살아왔던 과거 기억이나 이런 저런 안 좋은 것들까지. 시간이 지나면서 앨범을 꺼내놓으면 그때부터 이야기가 잘 풀려나가더라고요. 짧은 경험이지만 작년 올해 그런 것들을 계속 겪고 있거든요.
구술자: 저희도 내부적으로는 행정 기록물 이런 거는 이제 계속 남겨놔요. 남겨놓는데 사진이라든지 필수 보존 기록물이 아니면 시간이 지나가면….
조사자: 저희들이 하는 활동 영역은 거기에서 이제 시선을 받지 못했던 이야기나 자료들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업들을 하는 거거든요.
구술자: 아휴 큰일이네요.
조사자: 그래도 1차 작업을 하면 나중에 이제 부족한 부분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지금 현재는 아마추어니까 부족한 것들을 좀 채워주면서…. 지금 1년도 안 돼가지고 사실 이거 뭘 한다고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구술자: 아니에요. 누군가는 해야 될 일 중에 하나인 거는 분명해요. 이제 이 공간이 사라진다든지 더군다나 이전 개축이 이렇게 된다 그러면 지금 현재 원형은 다 사라질 거거든요. 그런데 그 시점에서 내부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보는 시선하고요 외부에서 보는 시선하고 좀 다를 수도 있거든요. 저도 완전히 생판 외부인이거든요. 그냥 외부인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도서관일 수 있어요.
조사자: 그러면 지역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거예요. 대신 그런 부분들이 아까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의 과거 기록이나 자료들이 같이 덧입혀지면 외부의 시각으로 봤지만 내부의 기록도 같이 보완이 되는 거니까.
구술자: 좋은 자료가 나와서 저도 봤으면 좋겠어요.
조사자: 제가 잘 해야 될 텐데 걱정되긴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일단 1차 자료하고 지금 그냥 가지고 계신 자료 중에 제가 미리 공부할 수 있는 게 있으면 좀 미리 주시면….
구술자: 네, 누리집(홈페이지)이 다예요.
조사자: 누리집(홈페이지)은 제가 한 번 보긴 했어요.
구술자: 이게 저희가 가지고 있는 사진이에요. 너무 좋은 거 많더라고요. 그리고 이거 드릴게요. 제가 만든 책인데요. 잘 팔렸어요.
조사자: 오늘 긴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관장님. 11월 16일 초안 나오면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필요한 사진은 나중에 찍더라도 간단히 공간 안내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이화미용실 원장 백은화는 서천 문산면이 고향이며, 7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풍정산업(방직공장)에서 3개월 정도 일했으나, 도저히 다닐 수 없어서 그만 두고 미용기술을 배우려고 서울로 갔다. 서울에서 6년 정도 보조 일을 하면서 미용기술을 배웠는데, 호적이 줄어서 미용자격증을 취득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백은화가 미용업에 종사한 49년 중에 문산면에서 미용실을 운영한 기간은 43년이다. 오랫동안 운영한 비결에는 속이지 않고 열심히 일한 거다. 짧게는 7년, 많게는 50년 가까이 된 미용도구들을 보면, 처음 미용기술 배웠을 때가 생각난다.
처음에는 산호다방 자리에서 하다가 지금의 자리(문산면 신농리20-1)로 옮겼다. 초창기에는 파마가 1,300원이었으며, 커트는 공짜 손님이 많았다. 3~4년은 돈을 벌지 못했기에 떠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6년째부터는 결혼하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불고데를 했고, 불고데 손님이 증가하면서 수입이 늘어났다. 미용 일은 양심적으로 했다. 자신과 손님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파마 약은 좋은 것으로 사용해왔으며, 요금도 2만 원 정도 받고 있다. 하루에 많게는 대여섯 사람의 파마를 하지만 오래 몸에 익숙해서 그런지 힘들지 않다.
지금은 100원짜리 희망버스가 운행 중이라 조금은 편하다. 희망버스가 없을 때 는 몸이 불편하거나 먼 거리 노인들은 차로 이동해 파마를 해드렸다. 노인들이 몸이 불편해져서 요양원으로 가거나 돌아가시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가슴이 아프다. 이화미용실을 운영하면서 여러 일을 겪었다. 보람도 있었고, 힘들기도 했다. 힘들게 손주를 키우는 노인에게 학비를 덜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 주고, 면사무소에 문의를 하여 어려움에 처한 노인에게 주택을 포함해서 생활에 필요한 도움을 주었다. 남편이 밖에서 낳은 딸을 지극 정성 키워서 그 딸 결혼식날 불고데를 했던 손님이 있었고, 아들딸이 돈을 잘 번다고 자랑하면서도 파마 비용을 깎는 손님도 있었다. 손님에게 오지 말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백은화는 꿈이 있었다. 예식장을 운영해 보고 싶었다. 가족들의 반대로 지금까지 꿈을 이루지 못했다. 몇 년 전에는 건강이 좋지 않았으나, 지금은 좋아지고 있어서 70세까지는 미용실을 운영하고 싶다.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건강이고, 또 있다면 봉사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 요즈음 취미로 장구를 배우고 있다. 얼마 전 서천예술축제에 나가 공연도 하고 왔다. 틈틈이 손님이 없을 때에는 농사도 짓고 있다. 고추, 깨, 콩 등 다양한 농사를 지으며 조금은 여유가 있다. 지역을 위해 부녀회장의 역할도 잘하고 있다.
사진
<사진 1> 미용실전경
<사진 2> 미용요금표
<사진 3> 미용도구
<사진 4> 미용실 재료보관
<사진 5> 미용실 내부
<사진 6> 백은화와 손님
기록개요
기록명
이화미용실
기록방법
글, 사진
마을명
문산면 신농리
시대
1980년대 이후
개요
이화미용실 원장이 미용기술을 배우게 된 동기와 신농리에서 34년 이상 미용실을 운영해온 이야기
전형옥은 2005년부터 준비 기간을 거쳐 귀촌했다. 이전에는 수원에서 자라 홍익대 서양화를 전공하고 입시미술학원을 운영했다. 귀촌 지역으로 서천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학원생 중 서천에 사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의 권유로 모세의 길이 열린다는 바닷가 중심으로 3박 4일 여행을 왔다가 귀촌을 결심했다. 서천은 열매를 품은 꽃의 향연이 있는 봄, 물 먹은 여름, 5대 영양소를 갖춘 풍성한 가을, 먹을거리가 풍성한 겨울이라는 사계절 환경을 가지고 있는 점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녀는 어린 시절 엄마의 자연친화적인 삶에 영향으로 나이가 들면 시골에 가서 전원생활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연중무휴로 입시생 중심인 입시학원을 정리하고 나서 여행 기억을 가지고 서천으로 내려왔다. 전원에서 행복하게 살아오신 엄마를 생각하면, 도시에 사는 자신이 용서되지 않았다. 남편이 1년 먼저 내려와 귀촌 준비를 했다. 1년을 주말부부로 보내는 동안 남편의 건강이 염려가 되었다. 그래서 서둘러 학원과 생활을 정리하고 내려왔다.
지금 사는 집(가양길 46번길 23-10)을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망설임이 있었다. 리모델링하는 것보다 새로 짓는 게 나을 정도였다. 부부가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계승 발전이다. 자연 그대로 가양리 정서에 맞게 대지 그대로 두고 집을 헐지 않고 살리는 방법을 모색했다. 집과 맞물려 전시관을 소박하게 조성하려고 했다. 마을 정서에 거슬리지 않게 구도를 맞추고 마을 전체를 위한 디자인을 했다. 농촌의 아름다운 정서에 그림과 사람이 살고 있는 전원 전시관으로, 작품 생활을 하는 화가로 스며들기를 상상하고 있다. 돌 하나까지 서천에서 나는 것 으로 건축하고, 타인에게 해를 주지 않는 건축물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현재 우물이 있는 자리는 국유지이며, 우물은 마을 공동 우물이다. 그래서 전에는 마을 사람들이 그 집을 '샘물집'이라고 불렀다. 마을 사람들이 샘물에서 빨래도 하고 물을 길어 먹는 등 매우 유용하게 사용했다. 샘물에 얽힌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내용은 샘물이 신기한 효험이 있는 치유의 물이라는 것이다. 어느 시대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부여에서 임금이 산을 타고 넘어왔는데 부스럼이 심했다고 한다. 어느 새벽에 마르지 않고 넘쳐 흐르는 샘물로 임금이 몸을 닦아내면서 부스럼이 나았다는 이야기이다.
집 주변에서 땅을 파면 둥근 바위가 많이 나온다. 현재 마당 여기저기 놓여 있는 바위가 그것이다. 아직도 땅을 파면 모나지 않은 바위가 많이 있다. 어떤 연유인지 옛날부터 산에서 바위들이 굴러 내려왔다고 한다. 아주 가파른 산인지라 세월이 흐르면서 돌이 떨어져 내려올 수 있으나, 둥글게 반들반들한 돌이 여러 모양을 보이는 게 신기하다.
서천읍 군사리와 신송리 간 비인선 철도를 기억하는 주민들(1940~60년대생) 6명을 대상으로 면담한 내용을 글로 정리하고 지도를 작성하였다.
□ 비인선 철도 기공식에 관해 알고 계셨나요?
나의 조부가 한학을 하셨기 때문에 당시 서천면의 기관장들과 많이 교류하셨어요. 모임에서 조부가 가지고 온 ‘비인선 기공식’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는 사진을 본 적이 있어요. 그래서 철도 기공식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 사진을 본 시기는 국민학교 6학년인 1966년경으로 기억돼요.(김OO, 남성, 1954년생)
□ 당시 철도 노반은 어떠했고, 어떻게 이용하셨나요?
당시 철도 노반은 사다리꼴 모양으로 아랫변 길이는 약 5~6m이고, 윗변 길이는 약 2~3m이며, 높이는 약 2m 정도로 기억하고 있어요. 철도 노반이 지나는 좁은 배수로는 '로깡'이라고 하는 콘크리트파이프 배수관, 넓은 배수로는 교각으로 돼 있었어요.
판교천의 경우 지금은 하천 수로가 넓지만, 당시 하천이 좁아서 다리나 교각은 설치하지 않았고, 로깡으로 배수로를 만들어 건널 수 있도록 한 것으로 기억돼요.
신송리 옆 마을 구암리 삼막골에 외갓집이 있었기 때문에 초등학교 6학년 때 철도 노반을 걸었어요. 철도 노반에서 가까운 거리에 도로가 있었지만, 찻길은 위험하고 철도 노반은 한적해서 안전했기 때문에 그 길로 다녔지요.
또한 중학교 때 체육 시간에도 운동하러 걸어갔던 기억이 나요.(김OO, 남성, 1954년생)
□ 철도 노반공사는 왜 중단되었다고 생각하셨나요?
철도 노반공사가 끝난 후, 철로가 놓이지 않고 몇 해 동안 노반이 그대로 유지되었어요. 당시 내가 학생 시절이므로 이해관계가 없어서 그렇게 깊이 있게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그러나 당시 노반이 약해서 단단해지기를 기다린다고 생각했어요.(김OO, 남성, 1954년생)
□ 당시 도보로 걸었던 철도 노반 구간은 어디까지였나요?
당시 나는 서천면 화금리에서 살았는데, 가끔 어머니와 군사리에 있는 서천시장을 보고 구암리 삼막골 외갓집에 갔어요. 그때 서천면 군사리에서 신송리까지 철도 노반 길로 걸어갔어요.
그 철도 노반 길은 신송 들을 지나는데, 곧은 직선 길이었고 어릴 적에 왕복으로 다니면 4km 이상 되어 먼 거리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김OO, 남성, 1954년생)
□ 철도 노반은 왜 놓였다고 알고 있으신가요?
당시에 철도 노반공사는 비인 공단과 관련되어 있는지는 몰랐어요. 철도 노반 길을 걸어 다닐 때가 초등학교 시절이어서 종천, 비인, 서면 사람들이 서천을 오갈 때 편리하도록 철도를 건설하는 것으로 생각했어요. 당시 이미 장항선을 이용하여 서천에서 천안, 서울까지 편리하게 갈 수 있었던 철도가 있었기 때문에 같은 맥락에서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지요. (김OO, 남성, 1954년생)
□ 철도 노반 위에 설치한 구조물이 있었나요?
철도 노반 위에 자갈이나 철로 등 구조물을 본 적이 없어요. 당시 노반 표면은 황토 색깔 흙으로 쌓인 것만 보였어요. 그러니까 철로나 배수를 위한 자갈 등 구조물을 설치하기 전 단계였지요. (김OO, 남성, 1954년생)
□ 비인선 철도 노반이 어디부터 어디까지라고 생각하셨나요?
구 장항선의 경우 종착역이 장항이었었던 것처럼 비인선이니까 종착역이 비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출발역은 서천역에서 분기하였기에 서천이라고 알고 있었어요. (김OO, 남성, 1954년생)
□ 철도 노반 흔적은 언제까지 보셨나요?
1973년 서천고등학교 학생일 때, 현재 서천중학교 뒤쪽에 있는 공원산(인살뫼)에 올라가서 남산 방향으로 바라보면 공원산에서 가까운 곳에 동서 방향으로 철도 노반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김OO, 남성, 1954년생)
저는 철도 노반 길에서 멀지 않은 서천 재래시장 부근에서 살았기 때문에 친구들과 그 길을 걸었던 기억이 나요. 그때가 1980년대 초쯤으로 겨울이었는데 곧게 뻗은 하얀 노반 길을 걸었던 추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김OO, 여성, 1963년생)
※ 조사자의 의견
'비인공업지구조성사업과 비인선철도기공식'은 1966년 4월 29일 오후 2시 30분 서면 도둔리 서도국민학교 교정에서 당시 정일권 국무총리, 전예용 건설부 장관과 지방 유지 및 주민 다수가 모여 거행되었다.
서천역에서 비인 공단이 건설될 예정이었던 서면 마량리 비인역까지 노선 거리는 22km이었다. 역 구간별로 보면 서천역에서 종천역까지 7.7km, 종천역에서 선동역까지 7.1km, 선동역에서 비인역까지 7.2km였다.
비인선은 비인 공업단지의 화물 수송을 목적으로 부설하려던 철도였다. 주민들의 제보에 의하면 '비인선은 1966년 4월 29일 착공하였으나 울산 공단에 밀려 자금 부족 등의 이유로 1969년 공단 건설이 취소되면서 그 무렵에 최종 무산되었다.' 라고 알고 있다.
1969년 철도연감에 의하면 '비인선은 서천~비인 간 22km로 비인 임해공업단지의 건설에 따라 장항선 서천역에서 분기하여 비인에 이르는 22km의 산업철도로 1966년 4월 29일 착공하여 1968년 말 현재 전 공정의 11.5%가 진척되었으며, 지속 사업으로 1973년도에 완공 계획이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비인선과 관련된 역은 서천역(舒川驛), 종천역(鍾川驛), 선동역(船東驛), 비인역(庇仁驛)의 4개이고, 3개의 역이 건설될 예정이었다. 역 부지의 위치는 서천역은 구 서천역이 있던 위치이고, 종천역은 마을 주민들의 의견을 토대로 서천역에서 7.7km 거리에 있는 현재 구도로와 신도로가 갈라지는 지점(그림 3)으로 추정하고 있다. 선동역은 종천역에서 7.1km 거리에 있는 선도리 선동마을로 추정되며, 비인역은 선동역에서 7.2km 거리에 있는 비인 공단이 들어설 서면 도둔리로 추정된다.
비인선 철도의 궤간은 1,435mm인 표준궤를 설치할 계획이었다. 철도 공사는 철도건설국에서 지명경쟁입찰로 비인선 1공구(서천~종천)는 삼양공무, 2공구(종천~비인)는 삼부토건에서 맡아 공사를 하였다. 비인선 구간의 철도 노반 흔적은 현재 하부 노반, 배수관, 교각, 터널 등으로 남아 있다. 향후 조사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비인선의 역사가 제대로 복원되기를 바란다.
구술자 : 충남도 14개 시군 소재 도서관 중 건축 당시의 원형이 남아있는 유일한 도서관입니다. 시설이 좁고 노후화 되어서 2019년도 증축계획이 논의되었으나 사업이 진행되지는 못했어요.
[ 2022년11월 현재 서천도서관 현황 ]
연 혁
- 1987. 08. 30. 청사 및 부대시설 준공
- 1987. 09. 30. 서천군 남양도서관 개관
- 1991. 03. 26. 서천도서관으로 명칭 변경
- 2012. 04. 16. RFID 도서관리시스템 구축
* 바코드 도서관리시스템에서 RFID 변환
- 2016. 06. 20. 도서관 모바일앱 서비스 구축
- 2017. 02. 08. 오디오북 서비스 구축
- 2019. 03. 01. 충청남도서천교육지원청서천도서관으로 명칭 변경
* 서천도서관은 남양분교(개교 1971.9.7.~폐교1986.3.1.)터 일부에
1987.9.30. 서천군 남양도서관으로 개관
시설현황
- 소재 : 서천군 서천읍 서천로 14번길 10
- 대지면적 : 2,109㎡
- 연면적 : 866.25㎡(지하1층, 지상2층)
- 구 조 : 철근콘크리트조
구 분
지하
1층
2층
기타
(화장실 등)
계
다목적실
평생학습실
문화사랑방
열람실
사무실
(관장실)
자료실
실 수
1
1
1
1
2
1
4
11
면적(㎡)
70.75
75.6
50.4
50.4
70.56
338.05
210.49
866.25
좌석수
20
30
18
36
10
13
-
127
조사자 : 도서관은 주로 어떤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는가요? 도서관 시설 중 어떤 시설들을 많이 이용하나요?
구술자 : 서천군이 다른 지역에 비해서 대출율이 높다는 것을 체감합니다. 대상층은 학생들보다는 40~60대, 퇴직자분들이 눈에 띕니다. 그리고 함께 모여서 소통하고 나누는 연대문화보다는 혼자서 독자적으로 책을 읽는 형태, 어떻게 보면 은둔형 독자가 많으신 것 같아요.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각종 학습프로그램 참여자들이 있고, 관내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견학차 방문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조사자 : 도서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최근 2020년 11월13일 서천고등학교에서 찾아가는 도서관 프로그램도 있더라구요.
구술자 : 찾아오기도 하고, 찾아오게 하기도 하고, 찾아가기도 하고,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모두 시도해보고 있습니다. 매년 도서관 내에서 상반기, 하반기 평생학습 프로그램이 정기적으로 운영되고 있구요. 올해 2022년도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는 10세 이하 아동과 부모 10팀이 월 1회 그림책작가와 직접 만나 진행한 ‘2022년 서천그림책학교’, 2022년 책 읽는 서천교육 일환으로 진행된 서천군민 대상 ‘서천독서가치’, 학생 대상 ‘학생독서아카데미’가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 역시 작가님들이 직접 참여자들과 소통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구요. 지금 몇 년간 굉장히 핫한 트랜드인 그림책 독서회 프로그램도 기획했었는데요. 서천군 내 지원자가 없어서 진행되진 못했습니다.
[1987년 개관이후 2002년경까지 운영되어온 교육프로그램 현황]
본 현황은 구술자제공 사진첩을 토대로 조사자가 정리기록 하였으며, 2011년 7월부터는 도서관홈페이지(https://sclib.cne.go.kr) 사진자료실에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 활동기록을 볼 수 있음.
기 간
프로그램명
비고
1989.8.1.~8.11
여름독서교실
여름방학 독서교실*
1990.8.1.~8.11
여름독서교실
1991.7.24.~8.3
여름독서교실
1998.2~4
문화교양강좌
문화이론 및 글쓰기실제
33회 도서관 주간 기념행사 **
1998.2.6
미래사회와 자녀교육
1999.2.5.~7.31
컴퓨터강좌 위탁교육
매주 금요일
1999.8.~10
수지침강좌개강
매주 목요일
1999.11~12
메이크업강좌개설
매주 수요일
2000.2.3.~계속
서예강좌 개설
매주 목요일
2000.2.2.~4.31
신문활용교육(NIE)개설
매주 목요일
2000.3.2.~5.25
수지침강좌 개설
매주 목요일
2000.6.~7
부모교육강좌 개설
매주 수요일
2000.7.24.~7.29
여름독서교실
2000.
시문학강좌 개강
독서의 달 문화행사
2000.9~12
한문교실개강
매주 목요일
2001.7.10.~8.31
수지침강좌 개설
매주 목요일
2001.
풍요한 독서와 개성적인 글쓰기
2001.7.23.~7.28
여름독서교실
2001.8.1.~10.31
문학강좌 개설
2002.05.29
인터넷교실 개강
2002.06.21
서천도서관수지침교실 자원봉사
* 여름독서교실도 최근 2020.8.3.~8.5.까지 다문화독서교실 등 연례화된 프로그램임.
** 도서관주간 문화행사는 2022년 57주년으로 연례화된 문화교양강좌임.
조사자 : 도서관의 개관부터 현재까지 어떤 변화들이 있었나요? 제가 가지고 있는 도서회원증도 1990년도 이후 현재까지 몇 번 바뀌었죠?
구술자 : 개관 이후 냉난방 설비의 변화, 창호 교체, 디지털 자료실 설치 등과 연계한 변화 이외에는 외관의 변화는 거의 없다고 보시면 돼요. 도서관 운영 환경의 변화에 따른 지하층 매점이 다목적실로 바뀐 점, 근무 방식의 변화에 따라 1층 당직실이 창고로 이용되고 있는 점, 2층에 부족한 공간 해결을 위해 경량 구조로 보존서고를 증축한 점 등은 큰 변화로 볼 수 있어요. 기타 시설 이외 도서대출관리시스템( 수기방식 → 바코드 → RFID )이 바뀌거나 화재예방을 위한 목재 서가의 철재 서가 일부 도입 등의 변화가 있기도 했구요.1층 출입구 우측 사무실 쪽으로 창호가 하나 있어요. 개관 당시 폐가식 도서관으로 운영되었는데, 당시 도서관 이용료(당시 근무하신 분 기억으로 100원) 징수를 위한 개찰구예요. 이와 함께 건축물 원형의 대표적인 구조물로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목재 난간대, 열람실의 목재 서가도 그대로 있어요. 출입구에 설치된 장애인 편의시설인 촉지도, 도서 도난 방지 시설, 도서 소독기, 도서 자동반납기, 외부 도서반납기 등 추가된 설비 등이 있습니다.
조사자 : 도서관의 현재 역할과 앞으로의 역할에 대해서 희망하시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구술자 : 도서관이 교육지원청 평생학습프로그램에 관한 요구도가 강한 것이 사실이지만, 도서관의 전문적 연구와 지역주민에 대한 자료 제공이라는 도서관 본연의 기능이 회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연히 부족한 편의시설도 보강되었으면 좋겠구요. 이를 위해선 도서관 근무 인력의 3년 단위 순환보직 체계로 인한 직무안정성 부족 문제 해결과 함께, 무엇보다도 부족하고 노후된 시설문제의 빠른 해결이 절실하구요. 2019년도 있었던 중장기 발전 방안 연구용역 등 도서관 재구조화 논의가 이제 다시 시작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조사자 : 바쁘신 시간 흔쾌히 내주셔 고맙습니다. 관장님 잘 기록해보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내부시설 한 번 안내해주실 수 있나요?
구술자 : 그럼요. 천천히 둘러보시죠. 꼭 해야 할 일을 대신해 주시는 것 같아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시장이 언제부터 섰는지 들은 바는 없지만, 읍성이 생긴 뒤부터 장이 섰을 것으로 생각돼요.
□ 구)비인시장은 어디에서 섰나요?
시장은 지장천에 놓인 청석교 건너편 장소에서 섰어요.
□ 구)비인시장이 중학교 부근으로 이전한 것은 언제인가요?
이전은 6.25 전쟁 후인 1952년에 했어요.
□ 구)비인시장은 왜 이전했나요?
물건을 파는 상인과 물건을 사는 사람들은 늘어나는데 장이 서는 장소가 좁아서 옮겨야 한다는 말들이 많았어요. 결국 6.25 전쟁 이후에 넓은 장소를 찾아 새 장터에 장옥을 짓고 이전하였지요.
□ 구)비인시장에서 거래된 주요 품목은 무엇인가요?
주요 거래 품목은 농산물, 수산물, 포목이었고, 땔나무도 거래되었어요. 비인 시장은 한산장의 모시장이나 판교장의 우시장처럼 특정한 품목이 거래되지는 않았어요.
□ 구)비인시장이 3․8일 장에서 4․9일 장으로 바뀐 이유를 아시나요?
장이 서는 날짜가 바뀐 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비인시장이 3.8일에 서다가 4.9일로 된 것은 서천 관내 다른 시장과 날짜를 서로 조정하면서 바뀐 것으로 생각돼요.
□ 장꾼들은 어느 지역에서 왔었나요?
서천 관내 지역 중 서면, 종천, 판교 등에서 왔는데, 특히 서면에서 많이 왔어요. 외지에서는 보령의 주산, 간치 등에서 왔어요.
□ 구)비인시장의 상인 수는 몇 명 정도 되었나요?
하루 시장 상인 수는 50~60명 정도였어요.
□ 구)비인시장에 하루 이용객은 몇 명 정도 모였나요?
하루 시장 이용객은 100~200명 정도 되었어요.
□ 구)비인시장 주변에 있던 주요 건물은 무엇이 있나요?
장사하던 물품은 장옥에 보관하지 않고, 장날에 천막을 치고 장사를 하고 파장이 되면 그 자리에 짐을 쌓아 갈무리하고 돌아갔죠. 장이 서는 장소 주변에 여관, 선술집, 싸전, 밥집, 대장간, 정육점 등이 있었지만, 현재 헐려서 남아 있지 않아요. 현재 정육점이나 대장간이 있었던 곳은 농협 창고가 들어섰고, 선술집이 있던 곳은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어요.
□ 서천의 다른 시장과 비교하여 40~50년대 구,비인시장의 규모는 어떠했는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서천 관내 다른 시장과 비교하여 뒤지지 않은 시장이었어요. 그러니까 1950년대 초 시장을 확장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고, 넓은 장소로 시장이 이전한 것이지요.
□ 당시 여관이 구)비인시장에 한 역할은 무엇입니까?
우리 집은 중앙여관을 운영했는데 손님들 숙박도 했지만, 장날이 되면 상인들에게 밥을 팔았어요.
□ 당시 구)비인시장에서 사셨던 물건은 무엇입니까?
주로 생활에 필요한 식품류가 많았어요. 우리 집은 시장 옆에 있었고, 상인들에게 밥을 팔았기 때문에 이에 필요한 물품을 주로 샀어요.
□ 장을 통해서 혼인도 이루어졌는지요?
장에서 친한 사람들을 만나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다 보면 자녀나 동네에 사는 결혼할 나이에 있는 처녀와 총각에 대해서도 말하게 되어, 중매를 서는 일도 있지요.
□ 장은 개장부터 파장까지 어떻게 열렸는지요?
상인들은 팔 물건을 준비해야 하므로 아침 일찍 장에 오게 되고, 물건을 살 사람들은 아침 먹고 나와요. 오전 일찍부터 장이 서기 시작해서 오후 거의 해질녘에 장이 파했지요.
□ 장에서 도난 등이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까?
도난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보다 장이 설 때마다 소매치기가 있어 시장이 불안하고, 사람들이 서로 경계해야 하는 어려움이 생기기도 했죠.
□ 구)비인시장에서 구하지 못한 물건은 어디에서 사셨습니까?
시장에서 구할 수 없는 물건은 주로 군산에서 구해 왔어요. 버스 타고 장항으로 가서 장항과 군산 간 도선을 이용해서 물건을 사오기 때문에 제법 번거로움이 있었어요.
※ 조사자의 의견
조선일보 1927년 3월 17일자에 의하면 1914년 비인군이 서천군에 합군된 이후로 비인시장이 유야무야되어 주민들이 삼십리 이상 되는 서천이나 보령군 등지에 내왕하여 생활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에 비인시장 부흥과 산업조합 저포(모시) 매입 상 편의를 위해 장이 서는 날짜를 1927년에 3.8일 장에서 4.9일장으로 변경하였다. 1920년대 후반 저포의 거래량은 관내에서 한산, 서천, 비인 순으로 많았다. 저포 매입 편의를 위해 같은 3, 8일 장인 신장(구,한산군)과 비인장(구,비인군)의 조정이 필요했고, 거래량 규모가 신장보다 적은 비인장의 날짜를 조정한 것으로 여겨진다.
산천리 마을은 전형전인 농촌마을로 방앗간, 농산물간이집하장, 마을주민이 운영하는 메주공장이 있고, 국립희리산해송자연휴양림 조성과 함께 도로가 정비되었고, 나름의 입지가 만들어지면서 두 곳의 김공장이 들어섰고, 해양쓰레기처리업을 하고 있는 사업체 한 곳이 있다.
지금은 운영하고 있지 않는 시설로, 산천1리에는 방앗간 터가 있고, 산천2리에는 마을 입구에 농협창고와 그 창고와 함께 운영되었던 산천리정미소 한 곳이 있다.
1. 산천리 농산물 간이집하장 터
1) 위치 : 충청남도 서천군 종천면 산천리 571
2) 건축물은 언제 지어졌고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나요?
몇 년도인지 잘 모르지만 정부지원유통시설 간이집하장인데 노후되고, 용도가 없어서 한 5년 전에 헐리고 지금은 밭으로 쓰고 있어요.
2. 정미소, 방앗간 터 각 1개소
1) 산천2리 마을입구 산천리 정미소 (장밭방앗간, 산천정미소 )
- 위치 : 충남 서천군 종천면 산천리 143-2
- 건축물은 언제 지어졌나요?
미상
- 건축물은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고, 현재상황은 어떤가요?
한○근, 한○우, 한○국이 운영하다가 지금은 운영되지 않고 있어요. 방앗간 앞에 있는 창고도 같이 썼구요.
2) 산천1리 방앗간( 미륵방앗간 ) 터
- 위치 : 충남 서천군 종천면 산천리 372-2
- 건축물은 언제 지어졌나요?
2017.7.27./ 농업용창고 / 경량철골조 / 판넬지붕
- 건축물은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고, 현재상황은 어떤가요?
기억엔 7~8살 이전부터 20살 때까지 운영(김○현)되었던 것 같은데 돌아가시고 나서 삼형제가 있었는데도 방앗간 헐고 밭으로 한참 썻어요. 그러다가 부인이 나한테 팔고 서울로 이사갔어요. 4~5년 전에 창고 짓고 보관창고, 건조장으로 쓰고 있어요? 저기 미륵바위가 있어서 미륵방앗간이라고 불렀어요.(김영봉, 남, 1955년생, 농업인)
산천리 미륵바위
산천리 335-7번지 내에 미륵형상의 바위가 있다. 미륵 알림판에 “산천리 미륵은 전쟁이 일어났을 때, 가뭄이 발생하였을 때, 염병이 돌았을 때도 우리 마을 사람들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였다고 믿었으며, 오래 전부터 미륵의 영험을 믿고 보존하여 왔다”고 적혀 있다. [조사자기록]
3. 산천리 메주공장
1) 위치 : 충청남도 서천군 종천면 산천리 580-28
2) 건축물은 언제 지어졌나요?
2013.9.16./ 2층 / 1층 메주작업장, 발효장, 장독대, 2층 건조장 /
3) 건축물은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나요?
농업기술센터 장수마을 지원사업으로 시작한 산천장수메주사업장으로 사용되었는데, 한동안 잘 운영되다가 전년도 이후에 지금은 손 놓고 있어요. 사람이 없어서… 주로 메주, 간장, 된장을 위주로 하셨어요.
산천1리 느티나무 쉼터 앞에는 5곳 정도의 우물이 있었는데 현재는 '공동우물(탑샘)'이 보존되어 있고, 옛날에 연못처럼 큰 우물이 있었다는 흔적을 보여주는 '못치레' 지명이 전해오고 있다. 위치는 산천2리 입구의 '장밭' 인근일 것으로 기억하는 주민이 있으나 구체적인 장소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산천1리와 2리에 각각 소화전이 설치되어 있고, 산천2리에 지금은 가동되지 않고 있는 서천읍상수도취수장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1. 마을 공동우물(탑샘)
1) 위치 : 충남 서천군 종천면 산천리 333번지 (느티나무 쉼터 아래)
2) 마을 공동우물은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나요?
- 마을 식수였죠.
3) 마을 공동우물과 관련된 이야기를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 우물 위에 탑이 세 개 있어서 '탑샘'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마을에 우물이 더 있었는데, 애가 살고 있는 집에서 한 200미터 떨어진 어머니집 가는 쪽으로 '암샘(솟대는 남자, 우물은 여자라고 해서인 듯함)'이 10년 전까지도 있었어요. 정자나무도 큰 게 있었는데 나무 밑을 지날 때는 음침했어요. 뱀소린가 귀신소린가 웅 소리가 들리기도 했어요. 그리고 이름은 기억 못하지만 우물이 한 세 개 정도 더 있었던 것 같아요. (김영봉, 남, 1955년생)
2. 못치레
1) 위치 : 충남 서천군 종천면 산천리 (구체적인 장소는 알 수 없음)
2) '못치레'라고 불리게 된 이유와 관련 이야기를 알고 계신가요?
- 옛날에는 1리, 2리 이렇게 해서 '못치레'라고 했다고 그래요. 옛날 저 밑에 연못처럼 큰 못이 있어서 '못치레'라고 했다고 하는데 정확한 위치는 잘 몰라요. (김병래, 남, 1961년생)
- 못치레는 아마 장밭 근처로 알고 있어요. (김영봉, 남, 1955년생)
3. 마을소화전
1) 위치
충남 서천군 종천면 산천리 520-3
* 산천1리 경로당 옆
충남 서천군 종천면 산천리 234번지
* 산천2리 마을회관 옆 재활용분리수거장
2) 소화전은 언제 만들어졌나요?
- 미상
3) 소화전은 어떤 용도로 설치되었으며, 관련된 이야기를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 소화전은 마을화재 시 스스로 진화할 수 있도록 설치된 시설로 최근에 소방훈련을 한 적은 없고 119에서 가끔 나와서 작동점검도 하고 확인해요.
4. 서천읍 상수도 취수장
1) 위치 : 충남 서천군 종천면 산천리 72-2번지 일원
2) 서천읍 상수도 취수장은 언제부터 언제까지 가동되었나요?
- 만들어진 시기나 가동 중단된 시기는 잘 모르겠어요.
3) 서천읍 상수도 취수장의 용도는 무엇인가요?
- 서천읍 식수원이었죠. 판교저수지에서 내려오는 물을 유도하고 양수 펌핑을 해서 서천보건소 앞 정수장으로 보냈고 나중에는 문산저수지, 용담댐에서 받아 썼나 그랬을걸요.
기록내용
1. 양봉업을 시작하게된 계기가 있나요?
양봉업을 부친이 시작하셨고 본인은 우체국에 근무를 하면서 틈틈이 시간을 내어 꾸준히 해오다 우체업무 정년 후 본격적으로 해오고 있다 이야기합니다.
2. 양봉업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시겠어요?
우리나라 양봉의 시작은 삼국시대까지 거슬러갑니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형태의 양봉은 몇 십 년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보는 사각형의 벌통이 벌을 체계적으로 사육하고 꿀을 따기 위한 최적의 디자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벌집을 소비라 부르고 벌통 안에 대략 10장 정도의 소비가 들어갑니다. 벌들이 봄 여름 가을 내내 꿀을 가져와 벌집에 저장한 걸 모아 시중에 파는 게 벌꿀입니다. 벌꿀과 관련된 파생 상품까지를 말할 수 있습니다.
3. 그러면 이 벌집의 주인인 벌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시겠습니까?
이 벌통의 중심은 여왕벌입니다. 다른 벌보다 크고 색도 진하며 몸통도 길지요. 여왕벌은 많게는 하루에 3천 개까지 알을 낳으면서 벌의 개체수를 불려가는 거지요. 여왕벌은 시중드는 일벌들이 따라다니고 유니크한 여왕벌만의 페로몬을 분비하면 일벌들이 결집하고 벌의 사회 체계가 무너지지 않도록 조율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여왕입니다. 실제로 여왕벌이 사고로 죽거나 사라지면 벌통에 남아있는 벌들이 극도로 불안해하고 일도 잘 안하고 어수선한 모습을 보입니다.
4. 그러면 다른 벌들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시겠어요?
일벌과 비슷하지만 몸이 좀 더 뚱뚱한 수벌이 있어요. 새로운 처녀 여왕벌이 태어나면 바로 알을 낳는게 아닙니다. 바로 교미를 해야 하는데 이때 교미 비행이란걸 하지요. 처녀 여왕벌이 하늘로 날아오르면 그 냄새 페르몬에 취해서 모든 수벌 들이 한번 교미해 보겠다고 일제히 그 여왕벌을 따라가는데 수벌들은 바로 이때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지요. 인간사회와는 달리 벌들은 철저히 모계 중심이라고 할 수 있어요. 여왕벌이 벌의 구심점이고 일벌들은 모든 생계를 책임지고 그리고 수벌은 그냥 교미만을 위해서 존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5. 꿀을 만드는 방법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직접 꽃에서 가져온 천연 벌꿀과 벌들에게 설탕물을 먹여 만든 사양 꿀이 있습니다. 물론 둘 다 꿀입니다. 벌이 먹고 뱉어내서 발효된 꿀이니 꿀은 맞지요. 벌들이 꿀을 가져오는 밀원지가 너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6. 그런데 양봉업 하는 분들이 이동양봉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아카시아 꽃을 따라서 남쪽부터 북쪽으로 계속 이동하는 겁니다. 우리나라는 아카시아 꽃이 남쪽이 빨리 피고 북쪽으로 갈수록 늦게 피거든요. 그래서 빨리 꽃이 피는 곳에서 먼저 꿀을 뜨고 벌통을 트럭에 싣고 계속 조금씩 위로 올라가면서 많은 꿀을 수확하는 거지요.
7. 양봉업이 성공하려면 무엇이 제일 중요한가요?
풍부한 밀원 식물의 확보, 우수한 품종의 확보, 양봉가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꿀벌은 고유의 3대 습성인 자연성, 고유성, 자유성이 있기 때문에 이들에 순응하는 봉군 관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계절, 날씨, 기후의 3대 환경요인에 순응하는 봉군 관리가 있어야 양봉에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조사자의 의견
인터뷰를 하면서 벌과 밀원식물, 그리고 양봉관련 부산물에 대한 관리와 육성 등 많은 제반 문제가 함께 다루어져야 하는 점을 생각하게 되었으며 생태 농업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서천군 양봉 현황에 대한 기록 활동을 구상해보고 싶은 생각을 해 봅니다.
사진
기록개요
생산자료
서천군 평생학습센터, 예소아카이브,
사방팔방 서천이야기 마을기록단
붙임자료
※ 이 마을기록은 평생교육팀 '마을기록활동가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사방팔방서천이야기 마을기록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마을기록활동가들이 기록한 자료입니다.
※ 본 내용의 저작권은 1차 저작자(기록자)에게 있습니다. 본 기록의 무단 배포와 변형, 활용을 금지합니다.
기록내용
2. 현 마을 회관 맞은편 지역을 잣디라고 부르며 지세형국이 포란형이고 햇볕이 강하지 않은(북향) 지형이라 예부터 고추장, 된장 등을 담그면 좋다 한다.
잣 - 기다랗게 돌을 쌓아올린 담. 제주 지방의 방언이다. ‘성’의 옛말.
디 - ‘뒤’의 방언.
3. 당시 마을에 소나무가 병풍을 두르듯 빼곡이 심어져 있었는데 마을의 좋은 기운이 빠져나가지 않게 하려고 심었던 것이며 당시 외부에서 바라보면 마을이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6.25전쟁 때 피해가 없었던 이유라고도 한다. (마을의 한 원로는 산이 우거져서 ‘팽뫼지역’ 이라고 부른다. 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4. 담화골 뒷산인 월명산은 옛 부터 달맞이를 한 산이라 이름이 붙여졌으며, 음력 8월 17일이면 마을 아낙네들과 처녀들이 이 산에 올라 노래자랑도하고 유흥을 함께 즐기던 장소였다. 지당제(마을 사람들은 지장재로 기억)라고도 부른다. 이밖에도 사발처럼 생겨 사발봉이라 부르는 산이 있다.
- 1956년 마을 지장재에서 당시 판교 중학교 선생님께서 10~20대 청년들을 모아 청년들의 체력향상이 국력에 중요함을 강조하며 체력훈련을 시켰다. 라고 하였다.
5. 마을의 인물을 추천해 달라는 부탁에 일제강점기 시절 전봇대를 혼자 들고 다닐 정도의 장사의 힘을 가졌던 ‘이달호’라는 분이 일본에 가서 돈을 엄청나게 벌어와 마을 거의 모든 전, 답, 임야를 샀으며 장항농고 설립 시 당시 금액으로 100원을 시사해서 개교를 도왔다. 고한다. 또한 그의 아들 이원근은 서천읍에서 연탄공장을 하였고 그의 손자는 서울전선을 창업하여 현 회장임을 이야기하였다. 당시 마을의 대분의 농사를 짓기 위해 마을 윗 지역에 물을 저장할 수 있는 연못을 파고 농사지었다. 라는 이야기를 하였다.
6. 당시 (1950년대말 이후) 화성리에서 서천읍을 거쳐 장항 도선장에 가는 당시의 여정을 질문하였다.
화성리에서 장항으로 농산물, 장작 등을 팔기 위해서 현 화성2리 노인회관쪽으로 산길을 넘어 기차길 쪽으로 걸어가다 태월 장수촌고개에서 (당시 나무가 우거지고 음지인 곳이 많아 도깨비, 강도사고가 있었다. 혼자서는 무서워 못다니고 네 다섯명이 모여 다녀서 사오고개라 불렀다함) 화금리 진재를 넘어 서천읍으로 다녔다. 서천읍에서 장항 도선장까지 구 도로와 혹은 기차길을 따라 걸어 도착했다한다. 장향에서 군산으로 출발할 때 승선정원이 300명이었고 태비(승선비용을 당시에 부르던 말)는 5원으로 기억하고 있었다. 가끔 배 옆에 우시장에 가기위해 소를 묶어 도선하던 모습도 설명하였다.
* 조사자의 의견
마을기록 활동 과정에서 구전되어 내려오던 용어를 조사하며 보다 정확한 의미와 기원을 알게 되었고 추론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음을 생각해본다. 의문점이 들거나 애매모호한 사안들을 크로스체크 할 수 있는 리스트를 작성 해야겠다 생각해본다.
사진
기록개요
생산자료
서천군 평생학습센터, 예소아카이브,
사방팔방 서천이야기 마을기록단
붙임자료
※ 이 마을기록은 평생교육팀 '마을기록활동가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사방팔방서천이야기 마을기록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마을기록활동가들이 기록한 자료입니다.
※ 본 내용의 저작권은 1차 저작자(기록자)에게 있습니다. 본 기록의 무단 배포와 변형, 활용을 금지합니다.
기록내용
조사자: 서천 마을기록단 김석환입니다. 관장님 성함, 출생연도, 언제 관장 보직 받으셨는지 말씀해주세요.
구술자: 제 이름은 신효정이고요. 1976년생입니다. 올해 2022년 1월 1일에 부임을 했습니다. 현재 서천도서관은 교육청 소속 직속기관으로 직원들은 순환보직으로 지역 교류를 합니다. 그래서 서천 지역 출생이거나 생활 기반이 서천인 공무원이 근무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외지인인 제 시각에서 (보았을 때) 이곳 지역 주민 분들은 서천도서관의 가치에 대해서 특별히 생각을 해보시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대부분 익숙한 것에 대한 공간에 대해서는 특별히 생각을 안 하거든요. 서울 사람들이 남산이나 서울타워에 안 가보잖아요.
조사자: 그렇죠, 맞아요.
구술자: 저희도 이제 항상 그 자리에 영원히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잖아요. 이번 코로나를 겪으면서 하찮고 소소한, 하찮다고 하기보다는 작지만 소소한 일상에 대한 고마움이 남다르게 느껴진 것 같아요. 저희는 교육청 소속 도서관이고요. (충남도) 14개 시군 교육청에 19개 평생교육원 공공도서관이 있어요. 직속 평생교육원이 4곳 공공도서관은 15기관이 있습니다. 교육청에서 관할하는 시군에 15개 공공도서관이 있는 거예요. 근데 지금 서천도서관 같은 경우에는 원형이 남아 있는 지금 유일한 도서관이에요.
조사자: 원형이라고 하면 어떤?
구술자: 기존에 있던 건물을 리모델링을 하거나 개축을 하고 그러니까 변형이 됐죠. 그런데 (우리 도서관은) 완공 당시 그대로 남아있는 거예요. 안에 내부 수리 정도 하고 이곳에 특별하게 큰 변화가 없었던 것 같아요. 와서 보니까 창틀 샤시 정도 바꾸고 구조물은 그냥 그대로 있습니다.
조사자: 최근에 그래피티 작품이 가장 큰 변화 같던데요.
구술자: 제가 보기에 이곳이 도서관인지 인지를 못하고 계신 것 같아요.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저희가 순환보직이거든요. 3년에 한 번, 그리고 여기 지역 특성상(군청이면 좀 다를 텐데) 저희 교육청은 14개 시군 순환보직을 해요. 사서직들이 지금 안에서도 계속 결원이 계속 생겨요. 출산, 육아휴직이나 기타 사정으로 말이죠. 여기 이 직원이 많아 보이시기는 할 텐데 결원이 항상 있었어요. 매년 그리고 올해 잠깐 채워졌는데 아마 내년에 또 결원이 될 거로 예상됩니다. 저도 지금 홍성에서 출퇴근을 하고 있고요. 지금 저희 직원이 총 다섯이거든요. 정직원이 4명 관장인 제가 홍성에서 출근을 하고 행정직원은 논산이에요. 그리고 사서직 둘이 하나는 논산 하나는 보령이에요. 매일 출근 출퇴근하기가 굉장히 어려워요. 지역 사람들이 아니어서 순환보직 최저가 1년 반이에요. 그래서 빨리 가려고 하고 왜냐하면 너무 통근이 저희가 왕복 100km가 넘어가니까. 그런 내부적인 문제가 있고. 그리고 대부분 서천에 연고지가 없어요. 아무도 안 오려고 해요. 그러니까 집 가까운 곳에 근무하고 싶어하죠. 거의 천안 아산 쪽에 몰려 있고 홍성 정도에 있다 보니까. 대부분 생활 근거지가 천안 아산 서산 같은 시 단위로 어린 직원이 대다수라 서천군까지 출퇴근이 어렵습니다. 일단 현재 인적 구성원이 계속 보시다시피 누구라도 근무하겠다고 하면 이제 모시고 와야 될 판이에요.
조사자: 지금 관장님 말씀하신 순환보직이라는 네 분 말고 나머지 기타 직원들은요?
구술자: 기타 직원이 교육 공무직에 한 분이 계세요. 이분이 계시긴 한데 시설업무와 도서관을 전반적인 업무 지원해 주고 계세요. 도서관 운영을 위한 사서와 행정 전문성을 갖기보다는 조금 다른 형태 행정보조 형태여서 주체성을 갖고서 업무 수행을 하기에는 좀 어려운 점이 있어요.
조사자: 네
구술자: 그러다 보니까 도서관 업무, 사업 수행을 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던 거예요.
조사자: 사업수행의 어려움요?
구술자: 저희는 중점 사업이 지역 주민을 위한 자료 제공. 자료 제공이 제일 기본적인 거예요. 도서관다운 본연의 사업이죠. 그걸 충실히 해야 하는데 사서가 배치되지 않았었어요. 사서의 안정적인 근무가 보장돼야 하는데. 저경력자 신규 사서가 배치되서 일을 파악하다가 1년 가고 일을 알아갈 때 쯤에는 인사발령으로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야 합니다. 중점 사업인 자료실 관리를 사서가 해야 하는데 그게 제일 소홀하게 하고 있어요. 그리고 교육청 소속이다 보니까 평생 교육에 관심이 많죠. 자료 관리는 눈에 보이지 않아요. 인풋 아웃풋이 굉장히 오래 걸리는 사업이에요. 그러니까 이렇게 누적된 집안일 같다고 저는 표현을 하거든요.
조사자: 네.
구술자: 그래서 없으면 금방 표가 나고 있어도 하는지 안 하는지. 그냥 전통적인 대출 반납에 방점을 찍다 보니까 이용자들도 “도서관에서 뭐 하는데?”라고 하거나, “도서 대출하고 도서 반납 같은 거 아무나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라고 해요. 누구나 할 수 있고 아무나 해도 되는 일은 아닙니다. 저희는 문헌정보학을 전공한 사람들만이 시험을 봐서 들어오는 거거든요. 누구나 할 거면 뭐 하러 4년제 대학에서 공부를 하겠어요. 지식정보라는내면적 구조의 균형 유지를 위한 업무를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네요. 간단한 건 아니거든요. 자료 관리가 어떤 점이 있냐면 기본 장서 구성이 안 되고, 누적이 되다 보면 흔히 아는 추천 도서라든가 아이들이 읽어야 되는 양서, 트렌드도 반영을 해야 하고 지역 주민의 니즈를 단기간에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좀 이렇게 진득하게 한 3~4년 근무하면서. 저도 지금 1년이 됐는데 지역주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요. 오자마자 이곳이 다른 지역과 비교해 너무 낙후돼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천안 아산 같은 경우는 트렌디한 프로그램도 하고 하는데 여기는 전혀 없더라고요. 소모적인 프로그램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 많이 바꿔보려고 하는데 지역주민의 니즈가 가장 중요하다보니, 소모적인 프로그램이라고 하는 것은 결과가 보여야 되는 평생교육 학습기능 위주와 재료비가 지원되는 취미 활동 참여도가 높아요. 여기는 재료비가 지원되지 않으면 참여를 전혀 안 하세요. 눈에 보이는 만들기 같은 프로그램 참여도가 높아요. 인문학에 대한 기본 개인 소양을 쌓기 위한 공부 참여도가 낮으세요. 의외로 제가 와서 놀랐던 점이 대출률은 굉장히 높아요. 타 지역과 비교해 대출률이 높아요. 네 그러니까 40, 50대 60대 분들이. 저희가 이제 정확한 통계 수치로 하는 건 아니고 근무하면 체감하는 수치입니다. 추측하기를 여기가 문화 공간이 상대적으로 부족하잖아요. 그러니까 혼자서 독자적으로 책을 읽는 형태가 많으신 거예요. 같이 함께하는 분들 연대를 한다거나 이야기를 나눈다거나 하는 게 부족해요. 다른 지역보다 상대적으로요. 그냥 외로운 은둔형 독자들이 많으세요. 그래서 독서회도 제가 운영을 하려고 했는데 그림책 독서회. 왜냐하면 올해 준비를 해야지 내년에 프로그램을 할 수가 있거든요.
조사자: 지원자가 없나요?
구술자: 저희가 어떻게든 5명만 끌고 나가자 했는데, 한 명도 안 나오시고. 6명 신청을 하셨는데 6명은 다 안 나오셨어요. 이건 좀 장기간 해야 되는 프로그램들이거든요. 독서회라는 게 타인과 이야기를 나누고 자기만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그런 프로그램이에요. 그리고 인문학 강좌에 대한 제가 지금 판단이 부족했는지, 지금 매월 작가와의 만남을 2회씩 운영을 했어요. 이런 사업은 예산과 인력이 풍부한 중앙에서 하는 사업이거든요. 저희가 작가와 만남 같은 사업은 사실 거의 뭐 1년에 한두 번 할까 말까 해요. 서천까지 어렵게 모셔왔는데 참여자가 매우 적으니까 사기도 저하되는 부분이 있고. 그래도 저는 내년에도 인원은 적지만 지속적으로 하려고 해요.
조사자: 월2회요?
구술자: 이후에는 좀 유지를 하려고 해요. 그림책이 지금 몇 년간 굉장히 핫한 트렌드거든요. 근데 그림책은 아이들만 읽는구나 여기고 학부모님들이 의외로 애들을 읽혀도 본인들은 책을 안 읽으세요. 스스로 책을 읽는 거에 대한 기회가 부족을 한 건지, 아니면 아이를 키우는 보육자의 연령 때에 해야 될 일이 많잖아요. 육아도 있고 생계도 있고 맞벌이도 있고 이런 부분인지 모르겠지만 보육자들이 책과 거리감이 있는 것 같아요. 지역의 문화 흐름이겠죠. 어쨌든 관심도가 이렇게 프로그램을 기획해서 만든다고 하더라도 그게 참여도나 호응도 자체가 나타나지 않는 것은. 이런 건 있죠. 연극은 연극하고 싶은 사람들은 있으되 실제 광장에 나와서 이렇게 할 수 있는 활동에 대한 기회나 이런 것들은 스스로 못 만드는 거죠. 그런 장을 좀 펼쳐드리고 싶었어요. 싶었는데, 일단 안 오시니까 그냥 개설은 하자, 개설은 하자 하고 나중에 폐강되더라도 추진을 하자 하는데 그래서 개강을 했다 폐강을 하면 좀 어려운 점이 있어요. 안 해도 되는 행정적인 처리를 만들어서 하는 셈이라 직원들이 힘들죠.
조사자: 자발적으로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가 1번인가요?
구술자: 네.
조사자: 사람들이 부족하면 억지로 찾아오게 하든지 아니면 찾아가든지하는 서비스를 기획을 해야 되는 숙제가 있지요?
구술자: 그렇죠. 지금 하고 있어요. 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강구해서 지원을 하고 있어요. 작은도서관도 지원을 하고, 노인복지관도 지원을 하고, 찾아가기도 하고, 초중고 참여 모집 공문도 보내고 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추진해야 하는 거는 해야 하니 우선 추진한 사업이 저 벽화를 한 거예요. 왜냐하면 일단은 도서관에 인지를 시켜야겠다. 40여 년이 지난 이 건물이 지역 주민들은 뭔지도 몰라요. 저 벽화에 대한 그림을 선정을 할 때도 고민을 많이 했어요. 사실 이상재 선생님을 제일 먼저 생각했어요. 이상재 선생님과 의미를 부여하고 교육적 목표, 교육적인 가치라 이런 거를 내보내기에는 딱 안정적인 아이템이죠. 독립운동가를 지역주민과 학생들에게 알리기 얼마나 좋아요. 근데 지금 적벽돌에 이상재 선생님이 근엄하게 있는 모습이 현재 트렌드하고는. 트렌드도 그렇지만 좀 진지할 것 같더라고요. 도서관에 아이들이 많이 와야 하는데 그래서 지금 초중고 아이들 시선에서 무조건 짱 귀엽게 만들자. 일단은 한 번에 각인시킬 수 있는 이미지를 하자. 그리고 벽화가 오래되면 식상해져요. 식상해지는데. 저희가 이전 이슈가 연초에 있었어요. 5년 안에 당장이라도 옮길 것처럼 이야기가 나와서 제가 재구조화되면 저 벽화는 식상해지기 전에 사라질 거라 시도해 봤습니다. 재구조화 연구만 해도 여러 번 논의됐어요. 오래도 했고 중장기 계획부터 저희가 추진을 안 하는 게 아니에요. 했는데 온 우주의 힘이 모아져야 이루어지는 일들이 있더라고요.
조사자: 온 우주의 힘 플러스 지자체의 관심, 주민의 관심을 기반으로 한 주무관청의 어떤 결정요?
구술자: 근데 여기가 문화 활동과 문화 활동가도 다른 지역보다 없고 적어요. 저희가 문화 활동가를 양성을 하려고 연초부터 프로그램을 돌렸어요. 그런 쪽으로 저는 딱 한 명만 나오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한 명이 어렵더라고요.
조사자: 지금 관장님이 구상하셨다고 하셨던 부분들이 구체적으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모집 절차까지 하고 실행 단계까지 가셨던 건지….
구술자: 그렇죠. 저희가 자격증을 취득을 하게 하고, 그중에 수요 조사를 했어요. 수요 조사를 하면 보통은 한 분 정도는 나오거든요. 두세 분 정도. 왜냐면 그 수업을 하신 분들이 함께 다니시면서 활동도 신청하는데, 서천 지역은 자격증 취득하고 끝이에요. 공간도 있고 저희가 그 자격증을 활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기획해서 제공을 할 수 있고 이분들이 하시겠다는 의지만 있으면. 그게 없더라고요. 프로그램 자격증을 취득하고 끝. 근데 아까 문화 활동가라고 했는데 저희는 또 도서관만의 고유 업무가 있어요. 도서관 기능에 맞는 활동을 하실 수 있는 분을 양성을 해서 도서관과 함께 가야죠. 그래서 제가 지역에 갈 때마다 꼭 한 분 정도는 양성을 해서 활동하시도록 지원해 드렸어요. 그분들 중에는 애들 대학까지 보내고 지금도 활동하셔요. 서천에도 그런 분이 계실 거라 생각됩니다.
조사자: 네, 사람은 있을 거예요.
구술자: 이제 하드웨어적 약간 공간의 문제인데, 지금 자료실이 너무 좁아요. 저는 이제 (자료를) 이고 있는 거는 앞으로는 아닌 것 같아요. 그러니까 장서량이 많다를 우수한 도서관의 기준으로 삼으면 안 돼요. 왜냐하면 디지털 자료도 많커니와 지역 주민이 저 책 다 못 읽어요. 그리고 얼마 전부터 저도 서천도서관 건축 시기에 대해서 바깥에 향나무 때문에 조사를 시작을 한 거예요. 일제 잔재 청산이 교육감님의 숙원 사업이에요. 노래 교가를 없앤다거나 아니면 일제시대의 칼을 찬 교장선생님들 옛날에 그런 사진들을 없앤다거나 그거는 마땅히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을 하는데. 가이스카 향나무의 기원을 보면 이토 히로부미가 기념 식수를 한 일본특산종이에요. 그럼에도 저기 진입로에 있는 저 나무들은 오랫동안 지역주민들과 함께 있었던 세월을 생각하면 없애야하나. 찾아보니 일제 시대에 심은 나무는 아니었어요. 도서관 건립할 때 같이 심은 나무더라고요. 나무들이 일본에서 왔다는 이유로 없애는 것에는 고민이 많습니다.
조사자: 그럼 기존에 있었던 서재가 부족한 것으로 인해서, 제한된 공간에 대한 대책은 어떻게 세우시고 계세요?
구술자: 보존서고가 있어야 돼요. 보존서고가 있는 도서관은 별로 없어요. 있어도 보존서고조차 이미 포화상태이죠. 우선은 훼손된 것들은 버려요. 그건 명백하게 훼손이니까. 고민 없이. 운영위원회에다가 폐기 등록을 해서 하고, 그다음에 오래된 순서로 빼고, 기준이 있습니다. 절판됐거나 뭐 이런 것들은 남겨야겠지만. 도서가 요즘 굉장히 많이 나와요. 몇 십 만 권씩 나오는데 저희가 도서 구입비가 한 5천~6천만 원 정도입니다. 그러면은 한 5천 권 정도 매년 사는 거예요. 여기(도서관장실)가 딱 삼천 권정도 들어가니까 이게 5천만 원어치 들어갈 거예요. 2년만 되면 이거 두 개예요. 3년 되면 여기 방 한 바퀴 돈다고 생각하시면 돼요. 3년에 그러면 그만큼 빼야 돼요. 양이 엄청난 거예요. 저희도 보존서고라든가 별도의 공간이 있으면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좋을 텐데. 버리면서도 이거를 버려야 하는가 심사숙고를 해요. 올 초에도 버렸어요. 올 초에도 버려야 되는데 한 번도 안 본 책도 있어요.
조사자: 네.
구술자: 저희 사서가 부재라고 했잖아요. 사서부재. 저도 사서경력이 약20년 정도 됐는데 지금도 고민을 하는 거예요. 폐기 기준을 20년쯤 했으면 이제 밥 먹고도 이제 그냥 눈 먹고도 해야 되는 상황인데 지금 신규 후배들이랑 고민을 합니다. 폐기해야하지만 일단 최대한 놔두자. 놔두자 한 게 지금 시집이에요. 시집은 초판 발행과 동시에 절판이에요.
조사자: 그렇죠. 재인쇄가 없으니까.
구술자: 재쇄라는 건 거의 없어요. 지금 거의 뭐 500부 만드는 판이에요. 고민인 거예요. 시집이 지금 이만큼 쌓였어요. 수요는 없어요. 자리만 차지하고. 요즘 디지털화도 많이 되고 있는데, 디지털화 된 책 그런 건 버릴 수 있어요.
조사자: 건축물 역사와 관해서도 더 말씀해주세요.
구술자: 건축물 관련해서 전에 근무하셨던 교육청 직원 분과 통화를 해봤습니다. 이곳은 남양 분교였고, 1971년 9월 7일 개교를 했는데 폐교가 됐어요. 1986년 3월 1일 터 일부를 군이랑 대토를 한 거예요. 그러니까 토지를 바꿨어요. 그래서 일부가 지금의 문예의 전당이 됐고, 여기가 남양도서관으로 개관을 한 거예요. 전에 근무하셨던 분에 말에 의하면, 1987년 개관 준비를 했는데 서천 지역에 큰 비가 내렸데요. 홍수 피해가 심각해서 두 달 뒤에 9월에 개관을 했다고 합니다. 향나무는 준공식 때 심어졌더라고요. 정원수로 적합하고 예쁘니까 그때 당시에는 식민사관과 향나무로 연결시켜서 문제가 안 됐으니까 향나무를 심었고, 도로가 문제가 좀 있었다고 해요. 현재 대지가 국자 모양이에요. 왜 이렇게 했을까 궁금해서 알아보니 당시 군이랑 협의가 안 돼서. 그때는 이용자 차량도, 차 소유도 그렇게 많지 않았던 시절이라 멀리 내다보지 못하고. 전에는 도서관 앞까지 차가 들어왔었어요. 뒤에도 열려 있었고. 그러고 있다가 차량이 많아지니까 안전 문제도 있고, 애들도 있고 해서(문제인데) 저쪽에 다행히 (문예의 전당 주차장이 있어서) 말없이 잘 쓰고 있어요. 어차피 문예의 전당 주차장도 지역주민들이 사용하는 공공성을 띈 거니까 우리 도서관도 그렇고. 여기 건물이 겨울에 따뜻하고 여름이 시원해요.
조사자: 이유가 뭘까요?
구술자: 초기에 잘 지은 것 같아요. 벽돌로 단열 이런 것들이. 요즘 도서관 샌드위치 판넬로 지어요. 샌드위치 판넬로, 여기는 벽돌집이에요. 지금 옛날에 목조도 들어가고 안에 옛날만큼 정성스럽게 진짜 벽돌 한 장 한 장 쌓아 올린 곳이 여기에요. 지하에 가보셨나요? 옛날에 매점이 있었고, 밑에서 라면 끓여 먹고 그랬다고. 지금 행정과장님도 여기 도서관에 대한 추억이 굉장히 많아요. 초창기에는 폐가식으로 운영되었습니다. 옛 주사님 말씀으로는 도서관 자료 기능보다는 공부방 기능으로 1일 백 여 명이 찾아왔다고 해요. 현재 강의실도 모두 열람실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입장료도 받았을 거예요. 100원씩 그래서 지금 1층 사무실에 보면은 이만하게 창이 있어요. 옛날에 사람이 앉아서 거기서 돈을 받았던 거예요. 이런 건물에 창문이 나 있는 데가 유구도서관, 공주 도서관 이런 데 창문이 이렇게 나 있는 데는 다 돈 받았던 데예요. 받아가지고 옛날 수기장부 거기다가 한 명 들어오면 100원 이렇게. 전자 문서화된 게 20년 정도밖에 안 됐어요. 전에는 돈 받다가 이제 자료실도 폐가식에서 개가식으로 바뀐 거죠. 저희 선배들 얘기 들어 보면은 지역 주민들이랑 다 어울리고. 지금은 너는 너 나는 나. (당시에는) 열람실 안에서 탄을 때서 난방을 했데요. 이용자들이랑 같이 탄도 갈고, 고구마도 구워먹고, 눈 오면 눈 치우고. 직원들은 밤에 여기서 당직을 섰었어요. 여기(도서관장실)가 당직실이거든요. 직원들이 당직 서면서 밤새 있다가 개관 시간이든 폐관 시간이든 상관없이 맨날 오시는 분들이 오니까 같이 가족처럼 지내셨대요.
조사자: 입장료가 100원이었다는 거죠?
구술자: 입관료 받으셨던 분이 100원을 받았다고 그랬어요. 정확한 금액은 저도 들어서 아는 거라. 조례나 이런 지침들이 있었을 거예요. 저희가 임의로 받는 건 아니에요. 아마 서울부터 전국이 다 똑같이 입장료를 그런 식으로 받지 않았을까 싶어요.
조사자: 유료 대출은 안 했지만, 입장료를 받았을 것이라는 거죠?
구술자: 서울 남산도서관도 받았었어요. 도서관이 역사가 어떻게 되냐면 교육청에서 다 시작을 해요. 그래서 지역명을 갖고 있는 거는 다 교육청 소속이라고 보시면되요. 서천도서관처럼. 천안에 만약에 천안 시립도서관이라든가 천안 중앙도서관이라든가 하는 거는 아니에요. 뭐 하러 중앙도서관을 이름을 넣겠어요. 교육청에서 선점을 해서 지자체에서 그 명칭을 사용하지 못하다 보니까 군립도서관이라든가 이런 주체를 붙여서 쓰죠. 저희가 몇 년 전에 충남서천교육지원청서천도서관이라고 이름을 바꿨어요. 이용자들은 교육청 소속이든 지자체 소속이든 아무 상관없겠지만, 교육청에서 운영하고 있는 좋은 기관을 주민들에게 알리고 싶은 거죠. 그런 걸 알리기 위해서 이름도 바꾸고 외적으로 명칭도 바꾸고 간판 바꿨어요.
조사자: 관장님이 생각하시는 앞으로 도서관이 가야 할 방향이 무엇인가요?
구술자: 저는 지역 여건을 고려하되 장기간 봤을 때, 결국은 기본에 충실해야 되는 게 도서관의 역할인 것 같아요. 도서관이 지역사회 문화공동체의 중심으로 지역 주민들의 문화 활동 참여 기회를 확대하고 변화, 세대가 바뀌고 이런 거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을 해야 되죠. 도서관은 기본적인 자료를 중심으로 해야 되는 게 맞는 것 같고요. 서천도서관은 그 자료를 이용할 수 있는 공간적인 편의시설은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지금 2층에 디지털 자료실이라고 벽면에 쓰여 있어요. 20년 전에 pc방 잔뜩 늘어날 때 정부에서 우리도 다 pc 보급하자 이렇게 해가지고 도서관에 디지털 자료실을 다 만들어 놨어요. 디지털 자료실 이름하에 그래서 컴퓨터를 다 놓은 거예요. 지금 어린이 자료실 바닥이 과거 디지털 자료실 구성하면서 액서스 플로어를 깔고 그 밑으로 전선을 깔았어요. 액서스 플로어를 치우고 서고를 옮겼어야 되는데 그것을 그대로 두고 서가를 올려놨습니다. 지금 그게 남아 있어요. 그래서 그걸 치워서 자료실에 열람공간을 만들고 싶어요. 이사 비용도 있고 저 책을 다 밖으로 빼서 다시 배치해 가지고 리모델링도 하려면 예산과 인력 문제라 논의하고 있습니다. 지금 제일 숙제예요. 일단은 공간에 편의시설, 열람 기능을 할 수 있는 자료실을 만들고 싶어요. 이전을 하게 되면 가능하겠죠. 현재로서는 책을 읽고 있어야 되는 상황이어서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요.
조사자: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장항도서관 같은 경우는 1997년도 문을 열었더라고요. 거의 20년도 안 된 상황에서 새로 신축했는데, 서천도서관 같은 경우는 1987년이면 훨씬 더 오래됐는데도 불구하고 그런 진행이 안 된 거죠.
구술자: 논의는 항상 있었어요. 일이란 게 뭔가 다 이렇게 맞물려 딱 되는 날이 있더라고요. 장항과 서천도서관이 경쟁 구도라기보다는 상생이죠. 왜냐하면 완전히 지역이 다르거든요. 장항 분들이 서천도서관까지 오시려면 정말 매우 큰 메리트가 있어야 해요. 공간으로 따질 때는 장항공공도서관이 너무 멋지잖아요. 건물 내용도 멋있고 안에도 좀 넉넉하고. 그런데 책이 너무 오래됐다고 그러시더라고요. 도서 구입비가 적다보니까 그럴 수 밖에 없어요. 저희는 도서 구입비는 안정적이에요. 또 지역 주민들의 이용 편의를 위해 매월 구입을 하고 있어요. 저희가 그냥 입찰 띄워가지고 한 번에 구입하면 가장 편하지만 직원들이 그러한 수고스러움에도 이용자들에게 신착 도서를 제공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어요.
조사자: 마지막으로 건축 당시의 도면이나 사진이나, 관련된 기록이나 이런 것들이 있으면 그것도 참고가 돼서 기록에 반영이 됩니다.
구술자: 행정 기록물 등 개방을 해도 되는지 안 되는지 그걸 먼저 알아보고, 가능한 공개되는 거라면 저희가 제공을 해드릴게요. 좋은 기회라고 생각을 했어요. 이것도 이전된다고 하니까 이게 또 남을 수 있을까….
조사자: 그렇죠. 이전 전에 외형적인 기록에다가 관장님이 해 주신 말씀하고 아주 소중한 기록이 될 것 같아요. 도면이나 이런 게 없다라고 하면 건축물 관리 대장에 소유자가 평면도 첨부해서 발급 받을 수가 있어요. 과거 자료 있으시면 이번 기회에 도서관 내부의 이야기들이 이제 마을 기록 형태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겠죠.
구술자: 옛날 사진도 있어요.
조사자: 옛날사진은 너무 좋은 자료예요. 지금 이런 과정을 통해서 정리되지 않으면 나중에 실무자 바뀌고 그다음에 다 버려지죠.
구술자: 저희가 해야 할 일인데….
조사자: 근데 그것도 한계가 있으시잖아요.
구술자: 우선순위를 두다 보면 그렇죠. 뭔가 꼭 필요한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후회되는 일들이 많아요.
조사자: 제가 이제 마을 주민들 만나면서 얘기를 한참 들어요. 한참 듣다가 어느 정도 친숙해지잖아요. 그러면 그 시점에는 앨범이 나와요 그 전에는 절대 안 나와요. 저 사람이 왜 나한테 이런 관심을, 이런 것들도 있기도 하고, 그다음에 당신이 살아왔던 과거 기억이나 이런 저런 안 좋은 것들까지. 시간이 지나면서 앨범을 꺼내놓으면 그때부터 이야기가 잘 풀려나가더라고요. 짧은 경험이지만 작년 올해 그런 것들을 계속 겪고 있거든요.
구술자: 저희도 내부적으로는 행정 기록물 이런 거는 이제 계속 남겨놔요. 남겨놓는데 사진이라든지 필수 보존 기록물이 아니면 시간이 지나가면….
조사자: 저희들이 하는 활동 영역은 거기에서 이제 시선을 받지 못했던 이야기나 자료들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작업들을 하는 거거든요.
구술자: 아휴 큰일이네요.
조사자: 그래도 1차 작업을 하면 나중에 이제 부족한 부분들이 분명히 있거든요. 지금 현재는 아마추어니까 부족한 것들을 좀 채워주면서…. 지금 1년도 안 돼가지고 사실 이거 뭘 한다고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구술자: 아니에요. 누군가는 해야 될 일 중에 하나인 거는 분명해요. 이제 이 공간이 사라진다든지 더군다나 이전 개축이 이렇게 된다 그러면 지금 현재 원형은 다 사라질 거거든요. 그런데 그 시점에서 내부 안에 있는 사람들이 보는 시선하고요 외부에서 보는 시선하고 좀 다를 수도 있거든요. 저도 완전히 생판 외부인이거든요. 그냥 외부인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도서관일 수 있어요.
조사자: 그러면 지역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거예요. 대신 그런 부분들이 아까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의 과거 기록이나 자료들이 같이 덧입혀지면 외부의 시각으로 봤지만 내부의 기록도 같이 보완이 되는 거니까.
구술자: 좋은 자료가 나와서 저도 봤으면 좋겠어요.
조사자: 제가 잘 해야 될 텐데 걱정되긴 합니다. 그래서 오늘 일단 1차 자료하고 지금 그냥 가지고 계신 자료 중에 제가 미리 공부할 수 있는 게 있으면 좀 미리 주시면….
구술자: 네, 누리집(홈페이지)이 다예요.
조사자: 누리집(홈페이지)은 제가 한 번 보긴 했어요.
구술자: 이게 저희가 가지고 있는 사진이에요. 너무 좋은 거 많더라고요. 그리고 이거 드릴게요. 제가 만든 책인데요. 잘 팔렸어요.
조사자: 오늘 긴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관장님. 11월 16일 초안 나오면 뵙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필요한 사진은 나중에 찍더라도 간단히 공간 안내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구술자: 그럼요. 가시죠.
사진
기록개요
생산자료
서천군 평생학습센터, 예소아카이브,
사방팔방 서천이야기 마을기록단
붙임자료
※ 이 마을기록은 평생교육팀 '마을기록활동가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사방팔방서천이야기 마을기록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마을기록활동가들이 기록한 자료입니다.
※ 본 내용의 저작권은 1차 저작자(기록자)에게 있습니다. 본 기록의 무단 배포와 변형, 활용을 금지합니다.
기록내용
이화미용실 원장 백은화는 서천 문산면이 고향이며, 7남 2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풍정산업(방직공장)에서 3개월 정도 일했으나, 도저히 다닐 수 없어서 그만 두고 미용기술을 배우려고 서울로 갔다. 서울에서 6년 정도 보조 일을 하면서 미용기술을 배웠는데, 호적이 줄어서 미용자격증을 취득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백은화가 미용업에 종사한 49년 중에 문산면에서 미용실을 운영한 기간은 43년이다. 오랫동안 운영한 비결에는 속이지 않고 열심히 일한 거다. 짧게는 7년, 많게는 50년 가까이 된 미용도구들을 보면, 처음 미용기술 배웠을 때가 생각난다.
처음에는 산호다방 자리에서 하다가 지금의 자리(문산면 신농리20-1)로 옮겼다. 초창기에는 파마가 1,300원이었으며, 커트는 공짜 손님이 많았다. 3~4년은 돈을 벌지 못했기에 떠나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6년째부터는 결혼하는 사람들이 찾아와서 불고데를 했고, 불고데 손님이 증가하면서 수입이 늘어났다. 미용 일은 양심적으로 했다. 자신과 손님들의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파마 약은 좋은 것으로 사용해왔으며, 요금도 2만 원 정도 받고 있다. 하루에 많게는 대여섯 사람의 파마를 하지만 오래 몸에 익숙해서 그런지 힘들지 않다.
지금은 100원짜리 희망버스가 운행 중이라 조금은 편하다. 희망버스가 없을 때 는 몸이 불편하거나 먼 거리 노인들은 차로 이동해 파마를 해드렸다. 노인들이 몸이 불편해져서 요양원으로 가거나 돌아가시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가슴이 아프다. 이화미용실을 운영하면서 여러 일을 겪었다. 보람도 있었고, 힘들기도 했다. 힘들게 손주를 키우는 노인에게 학비를 덜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 주고, 면사무소에 문의를 하여 어려움에 처한 노인에게 주택을 포함해서 생활에 필요한 도움을 주었다. 남편이 밖에서 낳은 딸을 지극 정성 키워서 그 딸 결혼식날 불고데를 했던 손님이 있었고, 아들딸이 돈을 잘 번다고 자랑하면서도 파마 비용을 깎는 손님도 있었다. 손님에게 오지 말라고 말한 적도 있었다.
백은화는 꿈이 있었다. 예식장을 운영해 보고 싶었다. 가족들의 반대로 지금까지 꿈을 이루지 못했다. 몇 년 전에는 건강이 좋지 않았으나, 지금은 좋아지고 있어서 70세까지는 미용실을 운영하고 싶다. 삶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건강이고, 또 있다면 봉사하는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 요즈음 취미로 장구를 배우고 있다. 얼마 전 서천예술축제에 나가 공연도 하고 왔다. 틈틈이 손님이 없을 때에는 농사도 짓고 있다. 고추, 깨, 콩 등 다양한 농사를 지으며 조금은 여유가 있다. 지역을 위해 부녀회장의 역할도 잘하고 있다.
사진
기록개요
생산자료
서천군 평생학습센터, 예소아카이브,
사방팔방 서천이야기 마을기록단
붙임자료
※ 이 마을기록은 평생교육팀 '마을기록활동가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사방팔방서천이야기 마을기록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마을기록활동가들이 기록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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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내용
이전에는 수원에서 자라 홍익대 서양화를 전공하고 입시미술학원을 운영했다. 귀촌 지역으로 서천을 선택하게 된 이유는 학원생 중 서천에 사는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의 권유로 모세의 길이 열린다는 바닷가 중심으로 3박 4일 여행을 왔다가 귀촌을 결심했다. 서천은 열매를 품은 꽃의 향연이 있는 봄, 물 먹은 여름, 5대 영양소를 갖춘 풍성한 가을, 먹을거리가 풍성한 겨울이라는 사계절 환경을 가지고 있는 점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그녀는 어린 시절 엄마의 자연친화적인 삶에 영향으로 나이가 들면 시골에 가서 전원생활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연중무휴로 입시생 중심인 입시학원을 정리하고 나서 여행 기억을 가지고 서천으로 내려왔다. 전원에서 행복하게 살아오신 엄마를 생각하면, 도시에 사는 자신이 용서되지 않았다. 남편이 1년 먼저 내려와 귀촌 준비를 했다. 1년을 주말부부로 보내는 동안 남편의 건강이 염려가 되었다. 그래서 서둘러 학원과 생활을 정리하고 내려왔다.
지금 사는 집(가양길 46번길 23-10)을 받아들이기까지 많은 망설임이 있었다. 리모델링하는 것보다 새로 짓는 게 나을 정도였다. 부부가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계승 발전이다. 자연 그대로 가양리 정서에 맞게 대지 그대로 두고 집을 헐지 않고 살리는 방법을 모색했다. 집과 맞물려 전시관을 소박하게 조성하려고 했다. 마을 정서에 거슬리지 않게 구도를 맞추고 마을 전체를 위한 디자인을 했다. 농촌의 아름다운 정서에 그림과 사람이 살고 있는 전원 전시관으로, 작품 생활을 하는 화가로 스며들기를 상상하고 있다. 돌 하나까지 서천에서 나는 것 으로 건축하고, 타인에게 해를 주지 않는 건축물로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현재 우물이 있는 자리는 국유지이며, 우물은 마을 공동 우물이다. 그래서 전에는 마을 사람들이 그 집을 '샘물집'이라고 불렀다. 마을 사람들이 샘물에서 빨래도 하고 물을 길어 먹는 등 매우 유용하게 사용했다. 샘물에 얽힌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내용은 샘물이 신기한 효험이 있는 치유의 물이라는 것이다. 어느 시대인지는 정확하지 않다. 부여에서 임금이 산을 타고 넘어왔는데 부스럼이 심했다고 한다. 어느 새벽에 마르지 않고 넘쳐 흐르는 샘물로 임금이 몸을 닦아내면서 부스럼이 나았다는 이야기이다.
집 주변에서 땅을 파면 둥근 바위가 많이 나온다. 현재 마당 여기저기 놓여 있는 바위가 그것이다. 아직도 땅을 파면 모나지 않은 바위가 많이 있다. 어떤 연유인지 옛날부터 산에서 바위들이 굴러 내려왔다고 한다. 아주 가파른 산인지라 세월이 흐르면서 돌이 떨어져 내려올 수 있으나, 둥글게 반들반들한 돌이 여러 모양을 보이는 게 신기하다.
사진

<사진 8> 터를 고르면서 땅 속에서 꺼내놓은 둥근 바위기록개요
생산자료
생산 자료 : 사진 10장
서천군 평생학습센터, 예소아카이브,
사방팔방 서천이야기 마을기록단
붙임자료
※ 이 마을기록은 평생교육팀 '마을기록활동가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사방팔방서천이야기 마을기록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마을기록활동가들이 기록한 자료입니다.
※ 본 내용의 저작권은 1차 저작자(기록자)에게 있습니다. 본 기록의 무단 배포와 변형, 활용을 금지합니다.
기록내용
서천읍 군사리와 신송리 간 비인선 철도를 기억하는 주민들(1940~60년대생) 6명을 대상으로 면담한 내용을 글로 정리하고 지도를 작성하였다.
□ 비인선 철도 기공식에 관해 알고 계셨나요?
나의 조부가 한학을 하셨기 때문에 당시 서천면의 기관장들과 많이 교류하셨어요. 모임에서 조부가 가지고 온 ‘비인선 기공식’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는 사진을 본 적이 있어요. 그래서 철도 기공식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 사진을 본 시기는 국민학교 6학년인 1966년경으로 기억돼요.(김OO, 남성, 1954년생)
□ 당시 철도 노반은 어떠했고, 어떻게 이용하셨나요?
당시 철도 노반은 사다리꼴 모양으로 아랫변 길이는 약 5~6m이고, 윗변 길이는 약 2~3m이며, 높이는 약 2m 정도로 기억하고 있어요. 철도 노반이 지나는 좁은 배수로는 '로깡'이라고 하는 콘크리트파이프 배수관, 넓은 배수로는 교각으로 돼 있었어요.
판교천의 경우 지금은 하천 수로가 넓지만, 당시 하천이 좁아서 다리나 교각은 설치하지 않았고, 로깡으로 배수로를 만들어 건널 수 있도록 한 것으로 기억돼요.
신송리 옆 마을 구암리 삼막골에 외갓집이 있었기 때문에 초등학교 6학년 때 철도 노반을 걸었어요. 철도 노반에서 가까운 거리에 도로가 있었지만, 찻길은 위험하고 철도 노반은 한적해서 안전했기 때문에 그 길로 다녔지요.
또한 중학교 때 체육 시간에도 운동하러 걸어갔던 기억이 나요.(김OO, 남성, 1954년생)
□ 철도 노반공사는 왜 중단되었다고 생각하셨나요?
철도 노반공사가 끝난 후, 철로가 놓이지 않고 몇 해 동안 노반이 그대로 유지되었어요. 당시 내가 학생 시절이므로 이해관계가 없어서 그렇게 깊이 있게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그러나 당시 노반이 약해서 단단해지기를 기다린다고 생각했어요.(김OO, 남성, 1954년생)
□ 당시 도보로 걸었던 철도 노반 구간은 어디까지였나요?
당시 나는 서천면 화금리에서 살았는데, 가끔 어머니와 군사리에 있는 서천시장을 보고 구암리 삼막골 외갓집에 갔어요. 그때 서천면 군사리에서 신송리까지 철도 노반 길로 걸어갔어요.
그 철도 노반 길은 신송 들을 지나는데, 곧은 직선 길이었고 어릴 적에 왕복으로 다니면 4km 이상 되어 먼 거리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김OO, 남성, 1954년생)
□ 철도 노반은 왜 놓였다고 알고 있으신가요?
당시에 철도 노반공사는 비인 공단과 관련되어 있는지는 몰랐어요. 철도 노반 길을 걸어 다닐 때가 초등학교 시절이어서 종천, 비인, 서면 사람들이 서천을 오갈 때 편리하도록 철도를 건설하는 것으로 생각했어요. 당시 이미 장항선을 이용하여 서천에서 천안, 서울까지 편리하게 갈 수 있었던 철도가 있었기 때문에 같은 맥락에서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지요. (김OO, 남성, 1954년생)
□ 철도 노반 위에 설치한 구조물이 있었나요?
철도 노반 위에 자갈이나 철로 등 구조물을 본 적이 없어요. 당시 노반 표면은 황토 색깔 흙으로 쌓인 것만 보였어요. 그러니까 철로나 배수를 위한 자갈 등 구조물을 설치하기 전 단계였지요. (김OO, 남성, 1954년생)
□ 비인선 철도 노반이 어디부터 어디까지라고 생각하셨나요?
구 장항선의 경우 종착역이 장항이었었던 것처럼 비인선이니까 종착역이 비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출발역은 서천역에서 분기하였기에 서천이라고 알고 있었어요. (김OO, 남성, 1954년생)
□ 철도 노반 흔적은 언제까지 보셨나요?
1973년 서천고등학교 학생일 때, 현재 서천중학교 뒤쪽에 있는 공원산(인살뫼)에 올라가서 남산 방향으로 바라보면 공원산에서 가까운 곳에 동서 방향으로 철도 노반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어요. (김OO, 남성, 1954년생)
저는 철도 노반 길에서 멀지 않은 서천 재래시장 부근에서 살았기 때문에 친구들과 그 길을 걸었던 기억이 나요. 그때가 1980년대 초쯤으로 겨울이었는데 곧게 뻗은 하얀 노반 길을 걸었던 추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김OO, 여성, 1963년생)
※ 조사자의 의견
'비인공업지구조성사업과 비인선철도기공식'은 1966년 4월 29일 오후 2시 30분 서면 도둔리 서도국민학교 교정에서 당시 정일권 국무총리, 전예용 건설부 장관과 지방 유지 및 주민 다수가 모여 거행되었다.
서천역에서 비인 공단이 건설될 예정이었던 서면 마량리 비인역까지 노선 거리는 22km이었다. 역 구간별로 보면 서천역에서 종천역까지 7.7km, 종천역에서 선동역까지 7.1km, 선동역에서 비인역까지 7.2km였다.
비인선이 지나는 노선은 현재 행정구역으로 서천읍 군사리(구 서천역) → 서천읍 신송리 → 종천면 장구리 → 종천면 당정리 → 종천면 종천리(종천역)→ 비인면 다사리 → 비인면 장포리 → 비인면 선도리(선동역) → 비인면 칠지리(추정) → 서면 월호리(추정) → 서면 신합리(추정) → 서면 도둔리(비인역)였다.
비인선은 비인 공업단지의 화물 수송을 목적으로 부설하려던 철도였다. 주민들의 제보에 의하면 '비인선은 1966년 4월 29일 착공하였으나 울산 공단에 밀려 자금 부족 등의 이유로 1969년 공단 건설이 취소되면서 그 무렵에 최종 무산되었다.' 라고 알고 있다.
1969년 철도연감에 의하면 '비인선은 서천~비인 간 22km로 비인 임해공업단지의 건설에 따라 장항선 서천역에서 분기하여 비인에 이르는 22km의 산업철도로 1966년 4월 29일 착공하여 1968년 말 현재 전 공정의 11.5%가 진척되었으며, 지속 사업으로 1973년도에 완공 계획이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비인선과 관련된 역은 서천역(舒川驛), 종천역(鍾川驛), 선동역(船東驛), 비인역(庇仁驛)의 4개이고, 3개의 역이 건설될 예정이었다. 역 부지의 위치는 서천역은 구 서천역이 있던 위치이고, 종천역은 마을 주민들의 의견을 토대로 서천역에서 7.7km 거리에 있는 현재 구도로와 신도로가 갈라지는 지점(그림 3)으로 추정하고 있다. 선동역은 종천역에서 7.1km 거리에 있는 선도리 선동마을로 추정되며, 비인역은 선동역에서 7.2km 거리에 있는 비인 공단이 들어설 서면 도둔리로 추정된다.
비인선 철도의 궤간은 1,435mm인 표준궤를 설치할 계획이었다. 철도 공사는 철도건설국에서 지명경쟁입찰로 비인선 1공구(서천~종천)는 삼양공무, 2공구(종천~비인)는 삼부토건에서 맡아 공사를 하였다. 비인선 구간의 철도 노반 흔적은 현재 하부 노반, 배수관, 교각, 터널 등으로 남아 있다. 향후 조사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비인선의 역사가 제대로 복원되기를 바란다.
출처
- 철도건설국, 1969, 철도건설사, 서울:교진사.
- 교통백서, 교통부, 1967.
- 매일경제, 제3면, 1966년 4월 29일.
- 대한 뉴스 제569호-건설의 메아리, 1966.05.07.
사진
<그림 1> 서천읍 신송리 철도 노반 흔적인 교각, 배수관, 제방 위치
*배수관: ①,②,③,④,⑤,⑦,⑧,⑩ 교각: ⑥,⑨,⑪ 제방: ⑫
*철도 노반 위치는 서천읍, 군사리와 신송리 주민들의 제보에 따라 그린 것임
<사진 1> 콘크리트파이프 배수관 (신송 들, 그림1-①)
*하부 노반 없음, 배수관 일부 노출
<사진 2> 콘크리트파이프 배수관 (신송 들, 그림1-②)
*하부 노반 잔존
<사진 3> 콘크리트파이프 배수관 (신송 들, 그림1-③)
*하부 노반 잔존, 배수관 일부 노출
<사진 4> 콘크리트파이프 배수관 (신송 들, 그림1-④)
*하부 노반 없음, 배수관 전부 노출
<사진 5> 콘크리트파이프 배수관 (신송 들, 그림1-⑤)
*하부 노반 잔존
<사진 6> 교각 노반 (신송 들, 그림1-⑥)
<사진 7> 콘크리트파이프 배수관 (신송 들, 그림1-⑦)
*하부 일부 노반 잔존, 배수관 전부 노출
<사진 8> 콘크리트파이프 배수관 (신송리 하송마을, 그림1-⑧)
*하부 노반 잔존, 배수관 일부 파손
<사진 9> 교각 노반 (신송리 하송마을, 그림1-⑨)
<사진 10> 콘크리트파이프 배수관 (신송리 장마루마을, 그림1-⑩)
*하부 노반 일부 잔존, 배수관 전부 노출
<사진 11> 교각 노반 (신송리 장마루마을 회관 옆, 그림1-⑪)
<사진 12> 제방형 철도 노반 (신송리 장마루마을, 그림1-⑫)
<그림 2> 서천읍 군사리 ~ 신송리 철도 노반공사 위치도(적색 선)
※ 적색 선은 주민들의 증언과 자료에 근거하여 노반공사 구간을 추정하여 그려본 것임
※ 지도 출처 : 네이버 지도
<그림 3> 종천역 부지(음영 부분)
※ 하늘색 음영 부분은 종천역 부지로 주민들의 증언과 자료를 토대로 추정해 표시한 것임
※ 지도 출처 : 네이버 지도
기록개요
생산자료
서천군 평생학습센터, 예소아카이브,
사방팔방 서천이야기 마을기록단
붙임자료
※ 이 마을기록은 평생교육팀 '마을기록활동가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사방팔방서천이야기 마을기록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마을기록활동가들이 기록한 자료입니다.
※ 본 내용의 저작권은 1차 저작자(기록자)에게 있습니다. 본 기록의 무단 배포와 변형, 활용을 금지합니다.
기록내용
조사자 : 이름과 출생년도를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구술자 : 신효정이고 1976년생입니다.
조사자 : 관장님께서는 언제 부임하셨나요?
구술자 : 2022년 1월에 부임했습니다.
조사자 : 도서관의 대략적인 현황을 말씀해 주시겠어요?
구술자 : 충남도 14개 시군 소재 도서관 중 건축 당시의 원형이 남아있는 유일한 도서관입니다. 시설이 좁고 노후화 되어서 2019년도 증축계획이 논의되었으나 사업이 진행되지는 못했어요.
[ 2022년11월 현재 서천도서관 현황 ]
연 혁
- 1987. 08. 30. 청사 및 부대시설 준공
- 1987. 09. 30. 서천군 남양도서관 개관
- 1991. 03. 26. 서천도서관으로 명칭 변경
- 2012. 04. 16. RFID 도서관리시스템 구축
* 바코드 도서관리시스템에서 RFID 변환
- 2016. 06. 20. 도서관 모바일앱 서비스 구축
- 2017. 02. 08. 오디오북 서비스 구축
- 2019. 03. 01. 충청남도서천교육지원청서천도서관으로 명칭 변경
* 서천도서관은 남양분교(개교 1971.9.7.~폐교1986.3.1.)터 일부에
1987.9.30. 서천군 남양도서관으로 개관
시설현황
- 소재 : 서천군 서천읍 서천로 14번길 10
- 대지면적 : 2,109㎡
- 연면적 : 866.25㎡(지하1층, 지상2층)
- 구 조 : 철근콘크리트조
구 분
지하
1층
2층
기타
(화장실 등)
계
다목적실
평생학습실
문화사랑방
열람실
사무실
(관장실)
자료실
실 수
1
1
1
1
2
1
4
11
면적(㎡)
70.75
75.6
50.4
50.4
70.56
338.05
210.49
866.25
좌석수
20
30
18
36
10
13
-
127
조사자 : 도서관은 주로 어떤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는가요? 도서관 시설 중 어떤 시설들을 많이 이용하나요?
구술자 : 서천군이 다른 지역에 비해서 대출율이 높다는 것을 체감합니다. 대상층은 학생들보다는 40~60대, 퇴직자분들이 눈에 띕니다. 그리고 함께 모여서 소통하고 나누는 연대문화보다는 혼자서 독자적으로 책을 읽는 형태, 어떻게 보면 은둔형 독자가 많으신 것 같아요.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각종 학습프로그램 참여자들이 있고, 관내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견학차 방문하는 학생들이 있습니다.
조사자 : 도서관에서 진행하고 있는 프로그램들은 어떤 것들이 있나요? 최근 2020년 11월13일 서천고등학교에서 찾아가는 도서관 프로그램도 있더라구요.
구술자 : 찾아오기도 하고, 찾아오게 하기도 하고, 찾아가기도 하고,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모두 시도해보고 있습니다. 매년 도서관 내에서 상반기, 하반기 평생학습 프로그램이 정기적으로 운영되고 있구요. 올해 2022년도 대표적인 프로그램으로는 10세 이하 아동과 부모 10팀이 월 1회 그림책작가와 직접 만나 진행한 ‘2022년 서천그림책학교’, 2022년 책 읽는 서천교육 일환으로 진행된 서천군민 대상 ‘서천독서가치’, 학생 대상 ‘학생독서아카데미’가 있습니다. 이 프로그램 역시 작가님들이 직접 참여자들과 소통하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구요. 지금 몇 년간 굉장히 핫한 트랜드인 그림책 독서회 프로그램도 기획했었는데요. 서천군 내 지원자가 없어서 진행되진 못했습니다.
[1987년 개관이후 2002년경까지 운영되어온 교육프로그램 현황]
본 현황은 구술자제공 사진첩을 토대로 조사자가 정리기록 하였으며, 2011년 7월부터는 도서관홈페이지(https://sclib.cne.go.kr) 사진자료실에서 다양한 교육프로그램 활동기록을 볼 수 있음.
기 간
프로그램명
비고
1989.8.1.~8.11
여름독서교실
여름방학 독서교실*
1990.8.1.~8.11
여름독서교실
1991.7.24.~8.3
여름독서교실
1998.2~4
문화교양강좌
문화이론 및 글쓰기실제
33회 도서관 주간 기념행사 **
1998.2.6
미래사회와 자녀교육
1999.2.5.~7.31
컴퓨터강좌 위탁교육
매주 금요일
1999.8.~10
수지침강좌개강
매주 목요일
1999.11~12
메이크업강좌개설
매주 수요일
2000.2.3.~계속
서예강좌 개설
매주 목요일
2000.2.2.~4.31
신문활용교육(NIE)개설
매주 목요일
2000.3.2.~5.25
수지침강좌 개설
매주 목요일
2000.6.~7
부모교육강좌 개설
매주 수요일
2000.7.24.~7.29
여름독서교실
2000.
시문학강좌 개강
독서의 달 문화행사
2000.9~12
한문교실개강
매주 목요일
2001.7.10.~8.31
수지침강좌 개설
매주 목요일
2001.
풍요한 독서와 개성적인 글쓰기
2001.7.23.~7.28
여름독서교실
2001.8.1.~10.31
문학강좌 개설
2002.05.29
인터넷교실 개강
2002.06.21
서천도서관수지침교실 자원봉사
* 여름독서교실도 최근 2020.8.3.~8.5.까지 다문화독서교실 등 연례화된 프로그램임.
** 도서관주간 문화행사는 2022년 57주년으로 연례화된 문화교양강좌임.
조사자 : 도서관의 개관부터 현재까지 어떤 변화들이 있었나요? 제가 가지고 있는 도서회원증도 1990년도 이후 현재까지 몇 번 바뀌었죠?
구술자 : 개관 이후 냉난방 설비의 변화, 창호 교체, 디지털 자료실 설치 등과 연계한 변화 이외에는 외관의 변화는 거의 없다고 보시면 돼요. 도서관 운영 환경의 변화에 따른 지하층 매점이 다목적실로 바뀐 점, 근무 방식의 변화에 따라 1층 당직실이 창고로 이용되고 있는 점, 2층에 부족한 공간 해결을 위해 경량 구조로 보존서고를 증축한 점 등은 큰 변화로 볼 수 있어요. 기타 시설 이외 도서대출관리시스템( 수기방식 → 바코드 → RFID )이 바뀌거나 화재예방을 위한 목재 서가의 철재 서가 일부 도입 등의 변화가 있기도 했구요.1층 출입구 우측 사무실 쪽으로 창호가 하나 있어요. 개관 당시 폐가식 도서관으로 운영되었는데, 당시 도서관 이용료(당시 근무하신 분 기억으로 100원) 징수를 위한 개찰구예요. 이와 함께 건축물 원형의 대표적인 구조물로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목재 난간대, 열람실의 목재 서가도 그대로 있어요. 출입구에 설치된 장애인 편의시설인 촉지도, 도서 도난 방지 시설, 도서 소독기, 도서 자동반납기, 외부 도서반납기 등 추가된 설비 등이 있습니다.
조사자 : 도서관의 현재 역할과 앞으로의 역할에 대해서 희망하시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구술자 : 도서관이 교육지원청 평생학습프로그램에 관한 요구도가 강한 것이 사실이지만, 도서관의 전문적 연구와 지역주민에 대한 자료 제공이라는 도서관 본연의 기능이 회복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당연히 부족한 편의시설도 보강되었으면 좋겠구요. 이를 위해선 도서관 근무 인력의 3년 단위 순환보직 체계로 인한 직무안정성 부족 문제 해결과 함께, 무엇보다도 부족하고 노후된 시설문제의 빠른 해결이 절실하구요. 2019년도 있었던 중장기 발전 방안 연구용역 등 도서관 재구조화 논의가 이제 다시 시작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조사자 : 바쁘신 시간 흔쾌히 내주셔 고맙습니다. 관장님 잘 기록해보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내부시설 한 번 안내해주실 수 있나요?
구술자 : 그럼요. 천천히 둘러보시죠. 꼭 해야 할 일을 대신해 주시는 것 같아 감사드립니다. 고맙습니다.
사진
<사진 1>도서관진입도로표지판(2001년 추정)
<사진 2>도서관진입 도로표지판(2022년)
<사진 3> 남양도서관 개관식(1987.9.30.)
<사진 17> 도서관 출입문(1987년)
<사진 23> 1층 로비 – 2층계단, 다목적실 방향(2022년)
<사진 24> 1층 로비 - 사무실, 문화사랑방 방향(2022년)
<사진 27> 1층 평생학습실(2022년)
<사진 33> 2층 종합자료실 입구(2022년)
<사진 35> 2층 종합자료실(2022년)
<사진 38> 2층 멀티미디어 휴게공간(2022년)
<사진 39> 목재 서가를 대체한 철재 서가(2층 종합자료실, 2022년)
<사진 40> 사서가 추천하는 이달의 책 코너(2층 디지털자료실, 2022년)
<사진 43> 지금은 사라진 1층 책나눔 서가(2016년)
<사진 44> 지금은 사라진 1층 자판기(2013년 설치)
<사진 45> 숙직실이었던 1층 창고
<사진 47> 부족한 공간해소 위해 증축한 2층 보존서고(2022년)
기록개요
생산자료
생산 자료 : 그림 2점, 사진 27장
서천군 평생학습센터, 예소아카이브,
사방팔방 서천이야기 마을기록단
붙임자료
※ 이 마을기록은 평생교육팀 '마을기록활동가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사방팔방서천이야기 마을기록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마을기록활동가들이 기록한 자료입니다.
※ 본 내용의 저작권은 1차 저작자(기록자)에게 있습니다. 본 기록의 무단 배포와 변형, 활용을 금지합니다.
기록내용
□ 구)비인시장은 어디에서 섰나요?
□ 구)비인시장이 중학교 부근으로 이전한 것은 언제인가요?
□ 구)비인시장은 왜 이전했나요?
□ 구)비인시장에서 거래된 주요 품목은 무엇인가요?
□ 구)비인시장이 3․8일 장에서 4․9일 장으로 바뀐 이유를 아시나요?
□ 장꾼들은 어느 지역에서 왔었나요?
□ 구)비인시장의 상인 수는 몇 명 정도 되었나요?
□ 구)비인시장에 하루 이용객은 몇 명 정도 모였나요?
□ 구)비인시장 주변에 있던 주요 건물은 무엇이 있나요?
□ 서천의 다른 시장과 비교하여 40~50년대 구,비인시장의 규모는 어떠했는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 당시 여관이 구)비인시장에 한 역할은 무엇입니까?
□ 당시 구)비인시장에서 사셨던 물건은 무엇입니까?
□ 장을 통해서 혼인도 이루어졌는지요?
□ 장은 개장부터 파장까지 어떻게 열렸는지요?
□ 장에서 도난 등이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까?
□ 구)비인시장에서 구하지 못한 물건은 어디에서 사셨습니까?
사진
<중앙여관 터>
<지장천과 청석교>
기록개요
생산자료
서천군 평생학습센터, 예소아카이브,
사방팔방 서천이야기 마을기록단
붙임자료
※ 이 마을기록은 평생교육팀 '마을기록활동가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사방팔방서천이야기 마을기록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마을기록활동가들이 기록한 자료입니다.
※ 본 내용의 저작권은 1차 저작자(기록자)에게 있습니다. 본 기록의 무단 배포와 변형, 활용을 금지합니다.
기록내용
산천리 마을은 전형전인 농촌마을로 방앗간, 농산물간이집하장, 마을주민이 운영하는 메주공장이 있고, 국립희리산해송자연휴양림 조성과 함께 도로가 정비되었고, 나름의 입지가 만들어지면서 두 곳의 김공장이 들어섰고, 해양쓰레기처리업을 하고 있는 사업체 한 곳이 있다.
지금은 운영하고 있지 않는 시설로, 산천1리에는 방앗간 터가 있고, 산천2리에는 마을 입구에 농협창고와 그 창고와 함께 운영되었던 산천리정미소 한 곳이 있다.
1. 산천리 농산물 간이집하장 터
1) 위치 : 충청남도 서천군 종천면 산천리 571
2) 건축물은 언제 지어졌고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나요?
몇 년도인지 잘 모르지만 정부지원유통시설 간이집하장인데 노후되고, 용도가 없어서 한 5년 전에 헐리고 지금은 밭으로 쓰고 있어요.
2. 정미소, 방앗간 터 각 1개소
1) 산천2리 마을입구 산천리 정미소 (장밭방앗간, 산천정미소 )
- 위치 : 충남 서천군 종천면 산천리 143-2
- 건축물은 언제 지어졌나요?
미상
- 건축물은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고, 현재상황은 어떤가요?
한○근, 한○우, 한○국이 운영하다가 지금은 운영되지 않고 있어요. 방앗간 앞에 있는 창고도 같이 썼구요.
2) 산천1리 방앗간( 미륵방앗간 ) 터
- 위치 : 충남 서천군 종천면 산천리 372-2
- 건축물은 언제 지어졌나요?
2017.7.27./ 농업용창고 / 경량철골조 / 판넬지붕
- 건축물은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고, 현재상황은 어떤가요?
기억엔 7~8살 이전부터 20살 때까지 운영(김○현)되었던 것 같은데 돌아가시고 나서 삼형제가 있었는데도 방앗간 헐고 밭으로 한참 썻어요. 그러다가 부인이 나한테 팔고 서울로 이사갔어요. 4~5년 전에 창고 짓고 보관창고, 건조장으로 쓰고 있어요? 저기 미륵바위가 있어서 미륵방앗간이라고 불렀어요.(김영봉, 남, 1955년생, 농업인)
산천리 미륵바위산천리 335-7번지 내에 미륵형상의 바위가 있다. 미륵 알림판에 “산천리 미륵은 전쟁이 일어났을 때, 가뭄이 발생하였을 때, 염병이 돌았을 때도 우리 마을 사람들을 지켜주는 역할을 하였다고 믿었으며, 오래 전부터 미륵의 영험을 믿고 보존하여 왔다”고 적혀 있다. [조사자기록]
3. 산천리 메주공장
1) 위치 : 충청남도 서천군 종천면 산천리 580-28
2) 건축물은 언제 지어졌나요?
2013.9.16./ 2층 / 1층 메주작업장, 발효장, 장독대, 2층 건조장 /
3) 건축물은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나요?
농업기술센터 장수마을 지원사업으로 시작한 산천장수메주사업장으로 사용되었는데, 한동안 잘 운영되다가 전년도 이후에 지금은 손 놓고 있어요. 사람이 없어서… 주로 메주, 간장, 된장을 위주로 하셨어요.
4. 김공장 2개소
1) 바다로21
- 위치 : 충남 서천군 종천면 산천리 580-4
- 건축물은 언제 지어졌나요?
2006.2.3. 신축, 2009.3.12. 증축 / 식품공장2동, 창고 / 일반철골조, 판넬지붕
- 건축물은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나요?
사업은 한 15~20년 되나 그렇죠. 조미김 공장이죠.
[ 바다로21 현황 : 조사자기록 ]
ㅇ 1996년회사 설립
ㅇ 각종인증 및 지정
- 서천군특산품지정(2001)
- 수산전통식품품질인증업체 지정(2002)
- ISO9001품질경영시스템인증
- 유망중소기업지정(충넟남도,2004)
- 80만불 수출탑수상(충청남도,2005)
- 클린사업장지정(2006)
- 농수산물수출탑 수상(2008)
- HACCP인증(2013)
ㅇ 제품군 : 전장김, 식탁김, 도시락김, 돌김, 마른김, 김밥용구운김,
김자반볶음, 올리브향 프리미엄김
(출처 : http://badaro21.com )
2) 명품 김 사업단_ 어업회사법인 명품김(주)
- 위치 : 충남 서천군 종천면 산천리 580-15
- 건축물은 언제 지어졌나요?
2005.12.29. 신축, 2013.12.18. 증축 / 2층, 김가공공장, 사무실 일반철골조 / 샌드위치판넬 지붕
- 건축물은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나요?
사업은 10년 됐을 거예요. 조미김 공장인데 해외로 수출도 하는데 김스넥이라는게 특이하고 잘 되나 봐요.
[어업회사법인 명품김(주) 제품군 : 조사자기록 ]
ㅇ 바삭바삭김스넥(아몬드,코코넛,치즈,멸치,통곡물,참깨등)
ㅇ 엄마사랑김과자(당근,비트)
ㅇ 서천김(조미김)
(출처 : www.marochip.com )
5. ㈜장군산업
1)위치 : 충청남도 서천군 종천면 산천리 580-5
2)건축물은 언제 지어졌나요?
2005.3.3. / 공장2동, 창고 / 일반철골조 / 샌드위치 판넬지붕
3)건축물은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나요?
해양쓰레기처리업(2003년 설립, 기타환경정화 및 복원업)이라고 하는데 사무실 있고, '정부물품재활용센터'라고 붙어있는 창고도 함께 있는데 자세한 건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사진
<그림 1> 농수산물, 수집, 가공, 판매, 관련 시설 위치도
<사진 1> 산천1리 방앗간 터 (미륵방앗간)
<사진 2, 3, 4> 산천1리 미륵바위
<사진 5, 6> 농산물 간이 집하장(터) (산천1리)
기록개요
생산자료
서천군 평생학습센터, 예소아카이브,
사방팔방 서천이야기 마을기록단
붙임자료
※ 이 마을기록은 평생교육팀 '마을기록활동가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사방팔방서천이야기 마을기록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마을기록활동가들이 기록한 자료입니다.
※ 본 내용의 저작권은 1차 저작자(기록자)에게 있습니다. 본 기록의 무단 배포와 변형, 활용을 금지합니다.
기록내용
산천1리 느티나무 쉼터 앞에는 5곳 정도의 우물이 있었는데 현재는 '공동우물(탑샘)'이 보존되어 있고, 옛날에 연못처럼 큰 우물이 있었다는 흔적을 보여주는 '못치레' 지명이 전해오고 있다. 위치는 산천2리 입구의 '장밭' 인근일 것으로 기억하는 주민이 있으나 구체적인 장소는 알 수 없다. 그리고 산천1리와 2리에 각각 소화전이 설치되어 있고, 산천2리에 지금은 가동되지 않고 있는 서천읍상수도취수장 건물이 그대로 남아 있다.
1. 마을 공동우물(탑샘)
1) 위치 : 충남 서천군 종천면 산천리 333번지 (느티나무 쉼터 아래)
2) 마을 공동우물은 어떤 용도로 사용되었나요?
- 마을 식수였죠.
3) 마을 공동우물과 관련된 이야기를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 우물 위에 탑이 세 개 있어서 '탑샘'이라고 했어요. 그리고 마을에 우물이 더 있었는데, 애가 살고 있는 집에서 한 200미터 떨어진 어머니집 가는 쪽으로 '암샘(솟대는 남자, 우물은 여자라고 해서인 듯함)'이 10년 전까지도 있었어요. 정자나무도 큰 게 있었는데 나무 밑을 지날 때는 음침했어요. 뱀소린가 귀신소린가 웅 소리가 들리기도 했어요. 그리고 이름은 기억 못하지만 우물이 한 세 개 정도 더 있었던 것 같아요. (김영봉, 남, 1955년생)
2. 못치레
1) 위치 : 충남 서천군 종천면 산천리 (구체적인 장소는 알 수 없음)
2) '못치레'라고 불리게 된 이유와 관련 이야기를 알고 계신가요?
- 옛날에는 1리, 2리 이렇게 해서 '못치레'라고 했다고 그래요. 옛날 저 밑에 연못처럼 큰 못이 있어서 '못치레'라고 했다고 하는데 정확한 위치는 잘 몰라요. (김병래, 남, 1961년생)
- 못치레는 아마 장밭 근처로 알고 있어요. (김영봉, 남, 1955년생)
3. 마을소화전
1) 위치
충남 서천군 종천면 산천리 520-3
* 산천1리 경로당 옆
충남 서천군 종천면 산천리 234번지
* 산천2리 마을회관 옆 재활용분리수거장
2) 소화전은 언제 만들어졌나요?
- 미상
3) 소화전은 어떤 용도로 설치되었으며, 관련된 이야기를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 소화전은 마을화재 시 스스로 진화할 수 있도록 설치된 시설로 최근에 소방훈련을 한 적은 없고 119에서 가끔 나와서 작동점검도 하고 확인해요.
4. 서천읍 상수도 취수장
1) 위치 : 충남 서천군 종천면 산천리 72-2번지 일원
2) 서천읍 상수도 취수장은 언제부터 언제까지 가동되었나요?
- 만들어진 시기나 가동 중단된 시기는 잘 모르겠어요.
3) 서천읍 상수도 취수장의 용도는 무엇인가요?
- 서천읍 식수원이었죠. 판교저수지에서 내려오는 물을 유도하고 양수 펌핑을 해서 서천보건소 앞 정수장으로 보냈고 나중에는 문산저수지, 용담댐에서 받아 썼나 그랬을걸요.
사진
<그림 1> 용수시설 위치도
<사진 1> 산천1리 느티나무 쉼터 아래 공동우물
<사진 5> 서천읍 상수도 취수장
<사진 6> 서천읍 상수도 취수장
기록개요
생산자료
서천군 평생학습센터, 예소아카이브,
사방팔방 서천이야기 마을기록단
붙임자료
※ 이 마을기록은 평생교육팀 '마을기록활동가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사방팔방서천이야기 마을기록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마을기록활동가들이 기록한 자료입니다.
※ 본 내용의 저작권은 1차 저작자(기록자)에게 있습니다. 본 기록의 무단 배포와 변형, 활용을 금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