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자에게 ‘갈꽃비’는 어린시절(10살 무렵)의 좋은 기억을 안겨주는 물건이다. 특별히 장날이면 작은 체구에 어깨 가득 ‘갈꽃비’를 매고 함박웃음을 웃으며 찾아오곤 했던 ‘고살메 할매’의 기억이 정겹다. 그리고 다른 빗자루보다 컷던 갈꽃비는 빗자루 대를 한 손으로 잡지 못하고 두 손으로 잡고 방안을 쓱쓱 쓸어내렸던 기억이다. 방 청소를 한다기보다는 장난치는 도구였던 것 같다.
‘갈꽃비’는 갈대꽃을 매어 만든 빗자루다. 조사자가 ‘갈꽃비’에 대해 관심을 갖고 빗자루 매는 과정을 기록한 바 있는데(2022년 마을기록 활동집 두 번째_사방팔방 서천이야기 67쪽~71쪽, 고살메 이장 현종규, 고살매 김종덕) 그때 갈꽃비 재료인 갈대꽃을 따는 과정도 기록을 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갈꽃비’를 만드는 재료인 갈대꽃은 7-8월에 가장 더운 때 채취한다고 해서 여름을 기다렸다.
조사자는 갈대꽃이라면 가을 신송리 갈대밭에 갔을 때, 활짝 펴서 솜털 같은 모양으로 있는 것이 ‘갈대꽃’으로 알고 있는 터라 갈대꽃을 채취할 때가 ‘가장 더울 때’, ‘최고로 더울 때’라고 강조했던 그분들의 말에 갈꽃비에 재료로 사용하는 ‘8월의 갈대꽃 모양’이 어떤 모양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분들의 ‘빗자루 매는 모습’만이 아니라, ‘갈꽃비’의 재료가 되는 갈대꽃을 가장 더울 때 채취하는 모습을 기록에 남기고 싶었다. 어느새 8월 하순에 접어들었고, 갈대꽃 채취하는 모습을 기록하기 위해 현종규이장을 만났다.
[갈대 채취에 대하여 - 고살메마을 현종규 이장과의 면담내용]
현종규 이장은 1956년생이며, 고살메 마을에서 태어나서 젊었을 때 잠깐 고향을 떠났던 적은 있으나, 평생을 살고 있고, 현재는 삼산3리 이장을 맡고 있다. 건강상의 이유로 이제는 ‘갈대꽃’ 채취는 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특별히 조사자를 위해 갈대꽃 채취 시범을 보여 주셨다. 구술자와 조사자는 2022년 11월에 ‘갈꽃비’에 대해 면담을 나눈 인연이 있다.
구술자는 조사자에게 갈대꽃을 채취하려면 늪지라 물에 빠질 수도 있으니 장화를 신고 오라고 했다.
갈대 채취 시기
조사자가 갈대꽃 채취시기에 대해 물으니 7월 말부터 9월 초 ‘백로’까지 딴다고 했다. 첫서리가 내린다는 백로 때가 되면 갈대가 꽃이 활짝 피는데 그때 따는 갈대꽃은 빗자루를 매기에 질이 떨어져서 빗자루 맬 수가 없다고 한다.
구술자 : ‘백로’때 쯤 되면 갈대꽃이 펴유. (갈대꽃이) 핀다구혀유. 이것처럼 수술을 보며는 츠음엔 이렇게 방망이처럼(갈대꽃 새순)나오잖여유. 그렇다가 익으면 좌악 펴져유. 그런식으로 8월 말 9월 초 되며는 꽃이펴유. 그때쯤 되며는 갈대꽃 매기가 힘들어유. 질이 떨어져유.
여름철 7월 말부터 9월 초까지 어느 정도 농사일도 한가해졌을 때, 갈꽃을 채취해서 잘 말려 두었다가 농한기 때인 11월부터 빗 자루를 매서 판매한다고 한다.
구술자의 갈대꽃 채취 시작 시기
구술자는 젊은 시절에는 농사도 짓고 직장생활도 하고 하다 보니 빗자루 매는 일은 40세 정도에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갈꽃도 채취하러 다녔다. 특별한 동기가 있어서라기보다 고살메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구술자 : 우리 동네는 집집마다 거의 빗자루를 매유. 고살메 사람이면 거 의 누구나 갈대꽃을 채취하고 또 빗자루를 다 매유. 여자분들도 갈대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도 우리 동네로 시집오면 갈대꽃을 뽑으러 다니구, 빗자루도 매유 자연스럽게. 그때는 우리 동네서 빗자루 하는 사람들이 한 90프로(%)는 다 빗자루를 했기 때문에 너도 나도 다 매유. (그때 허리 굽으신 동네 어르신이 지나갔다) 저 아저씨는 빗자루 많이 매서 허리 꾸부러졌슈. 저 어르신은 빗자루 엄청 많이 맷슈.
갈꽃 채취 시범 – 고살메 뚝방, 개천, 산내리 도로변
조사자에게 갈대꽃을 직접 채취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갈대밭으로 향했다. 고살메 마을 뒤편 뚝방길을 따라 갈대밭이 형성되어 있었다. 마을에서 약 2~3킬로미터쯤 차로 이동한 후, 갈대 채취를 위해 구술자는 뚝방 아래로 내려갔다. 그런데, 갑자기 몸에 무언가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뿌렸는데, 알고 보니 ‘해충기피제’였다. 갈대숲에 해충들 특히 벌집이 있어 벌에 쏘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구술자도 벌집을 건드려 위험했던 순간이 있었다고 한다.
논이 바라보이는 뚝방 아래쪽에서 갈꽃을 채취하던 구술자가 올라왔다. 그곳 갈대가 억셔서 잘 안 뽑아진다고 하천 쪽으로 내려가 봐야겠다고 했다. 조사자가 하천 쪽을 내려다보니 물이 차 있고 또 길도 없어 보였다.
조사자 : 저기로 내려간다는 거예요? 위험하지 않나요? 길도 없어 보이는데...
구술자 : 저렇게 보여 두 논두렁 같은 길이 있슈.
구술자는 내 염려는 아랑곳하지 않고, 하천 쪽으로 성킁 성큼 망설임 없이 내려갔다. ‘아, 이래서 장화를 신고 오라고 했구나’ 나도 따라 내려갔다. 구술자 머리 위로 갈대꽃이 꼿꼿하게 하늘을 향해 서 있다. 구술자는 갈대를 휙 잡아채서 꽃을 뽑는다. 오른손 왼손 오른손 왼손 빠른 손놀림이다. 그런데, 이곳도 갈꽃이 썩 맘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다시 뚝방으로 올라 차를 몰고 산내리 쪽으로 달렸다. 가르메에서 산내리로 가는 도로변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갈꽃을 빠른 손놀림으로 뽑기(채취하기) 시작했다.
8월 말이지만, 오후 햇빛은 강렬했다.
[갈꽃 채취 장소]
갈꽃채취는 일정한 장소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갈꽃 있는 곳이면 다 다닌다. 주로 가까운 전라도 군산·옥구·미면으로 다녔고, 진안이나 청양·대전 쪽으로도 다녔다. 직접 뽑기도 하지만, 갈대지역에 사는 주민들한테 미리 연락을 해서 갈대(갈꽃)를 건조 해 놓으면 값을 치르고 사온다. 멀리는 영산강 쪽과 연천 쪽으로도 다녔다. 타지역에서 사오는 경우는 운반비용 등의 이유로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구매해서 나눈다.
[갈꽃 따는 자세]
구술자는 본인 키보다 훨씬 높이 솟아있는 갈대를 잡고, 쑥쑥 갈꽃을 뽑으면서 갈꽃 따는 자세에 대해 말해 주었다. 갈대가 키가 크기 때문에 갈대꽃을 채취할 때는 자연히 고개가 하늘을 향해 있게 된다. 그래서 눈만 내놓고 얼굴을 다 가린다. 뜨거운 여름 햇볕에 고개를 들어 해를 바라봐야 갈대를 뽑을 수 있으니, 갈꽃채취가 끝나면 동네 사람들 모습이 다른 데는 괜찮은데, 눈 주변만 새까맣게 타서 너도나도 꽹해 보이는 모습이 고살메 풍경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갈꽃을 따러 갈 때 의상]
“이런 옷은 안 돼유.” 구술자는 자신의 체크무늬 상의를 가리켰다. 갈대밭에 갈대는 색깔 있는 옷, 선크림, 화장품, 향수 등은 피해야 한다. 오늘은 일하다 오느라 옷을 갈아입지 않고 왔는데, 갈꽃을 따러 갈 때는 색깔 있는 옷을 입으면 안되고, 화장품이나 썬크림도 바르면 안 된다고 한다. 특히나 향수는 더욱 안 된다. 벌이 밝은색이나, 화장품 냄새를 맏고 달려들기 때문이다.
구술자 : 벌들이 색깔 있는 옷을 입으면 달겨 들어유. 그러구 선크림이나 색깔 있는 옷은 조심혀야 되유. 벌이 달겨들어유.
[갈꽃 채취시 위험요소]
갈대밭은 여러 위험 요소가 많이 있다. 갈대가 무성하여 벌이나, 뱀, 벌레들이 많이 있다. 특히 벌이 많다. 그리고 위만 바라보며 갈대꽃을 뽑기 때문에 발아래 바닥이 보이지 않아 웅덩이나 하수구에 빠지는 일도 다반사다.
벌에 8방 쏘여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약 3년 전 전북 진안군 부기면에서 갈대꽃을 채취하다가 왼쪽 팔에 벌 8군데 쏘이는 사고가 있었다.(구술자 팔에 벌 쏘인 부분 가리키면서 그때의 위험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구술자 : 전북 진안 부기 가가지구 벌을 쐈슈. 여기 왼쪽 여기 벌이 들러 붙드라구유. 벌집이서 벌이 수십 마리가 윙~ 덤벼드니까 갈대꽃 을 뽑은 눔 가꾸 도망 온거유. 도망 왔는데, 팔뚝에 벌이 붙었드 라구. 벌이 붙었는데, 일단 그 자리를 피혀서 부기면 면소재지루 약방을 찾아 갈려구 거기가서 팔둑을 걷구 보니까 벌 쏘인디가 보이잖여유. 빨갛게 부어올르드라구유. 거기서 주는 약 먹구 곧 바로 집으로 귀가했쥬. 죽는 줄 알았슈.
8월이면 벌들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할 때라 갈꽃 따는 사람들은 보통 1년에 1회 이상은 벌에 쏘인다. 구술자 역시 예외는 아니었 는데, 진안 부기면에서는 벌집을 건드렸던 것이다.
함께 갔던 안식구가 배수로에 빠질 뻔한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청양에서 부부가 함께 갈꽃채취를 하는데, 갑자기 “아구~~” 하는 외마디 소리가 들렸다. 구술자의 안식구가 발아래 배수로가 있는 것을 모르고 그곳에 발이 빠진 것이다. 다행히 갈대가 숲처럼 우거져 있었고, 엉키듯이 있어서 발만 빠졌고, 수문 아래로 떨어지지는 않았다.
구술자 : 수문 아래로 떨어졌으믄 살아남지 못혔을 거여유. 다행히 큰 상 처 없이 여기저기 시커멓게 멍만 들었드라구유.
뱀에 물려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산골 밑 하천에 갈밭에는 뱀들이 기어다니는데, 갈꽃채취는 위에만 쳐다보는 작업이라 하늘 향해 갈꽃채취를 하고 있는데, 함께 갔던 아주머니가 종아리가 따끔해서 보니 뱀이 도망가는 것을 보고 뱀에 물린 것을 알았다. 아주머니는 어지럼증이 왔고, 곧바로 인근 동네가서 주사 맞고 약 먹고 다행히 별고 없었다고 한다.
[갈꽃 운반]
지금은 다 차가 있어 자기 차로 운반을 하지만, 차가 없었던 시절에는 대중교통(기차나 버스)을 이용했다. 기차나 버스를 이용하기 쉬운 고장으로 채취하러 다녔다. 구술자는 주로 기차가 다니는 웅천 천으로 다녔고, 군산 옥구 쪽으로도 다녔는데 비행장, 미면 등으로 버스 타고 배 타고 버스 타고 그렇게 여러 번 갈아타면서 다녔다.
운반하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갈꽃채취 양에 한계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것은 관계치 않고 있기만 하면 뽑을 수 있는 만큼 뽑아서 큰 보자기 여러 개에 잘 싸서 덩치가 크니 땅에 끌리지 않게 어깨에 메고 겨드랑이에 끼고, 아줌마들은 머리에 이고 안고 무조건 차에 탄다.
[갈꽃 관리 및 저장]
갈꽃채취는 그해 날씨에 따라 채취 양이 다르다. 비가 많이 오는 때는 홍수로, 폭우로, 갈대가 자빠진다. 그래서 채취량이 적고, 날씨가 좋은 해에는 채취량이 많다.
갈대꽃을 집에 오자마자 뜨지 않게 말린다. 여름에는 해가 좋아서 아침에 널어놓으면 저녁때면 다 마른다. 말리는 것도 넓은 면적에다 하루에 말려야 하는데, 왜냐하면 다음날 뽑아온 것을 말려야 하기 때문이다. 말린 것은 서늘한 곳에 싸놓는데, “특별히 창고가 있느냐”는 질문에 옛날에는 창고랄 것이 없고, 뒷방에다 쌓아 놓았다고 한다.
구술자 : 옛날이는 창고랄 것이 없구 뒷방, 그런디다 쌓아 놓는 거쥬. 보물 은 아니지만 보물에 가까운 거니까 잘 쌓놨슈. 이게 햇빛이 쬐면 말라 비틀어지니까 일단 말린 담에는 햇빛을 쏘이면 안 되유. 서 늘한 곳이다가 잘 보관혀야 되유. 그런 담에 혹시 들 말른 경우 도 있잖여유. 잘 봐야 되유. 떠버려요. 들 말린 것을 사왔을때는 뜨니까, 더러 펴봐야 되유. 펴보면 알아유.
이렇게 정성스럽게 가을 동안 잘 말려 보관해 둔 갈꽃은 겨울 농한기 때 빗자루를 만드는 귀중한 보물같은 재료다.
[갈꽃 채취하면서 기억에 남는 기뻤던 일]
갈대도 품종에 따라 빨리 피는 꽃이 있고 늦게 피는 꽃이 있다. 또 색깔이 붉은색과 파란색이 있는데, 붉은색 보다 파란색이 더 좋은 품종으로 알아준다.
좋은 갈꽃을 채취하기 위해서 갈대밭을 찾아서 헤맨다. 대전 흑석동과 문화동 주변 하천 일대에서 채취하려고 갔는데, 하천을 정비하느라 석축을 쌓고 있어서 갈대꽃은 뽑지도 못했다. 전주 쪽으로 내려와 진안까지 갔는데도 갈꽃은 겨우 20자루 정도 뽑아서 오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몸도 지치고 마음도 힘들다.
갈꽃도 같은 장소여도 일찍 피는 품종이 있고, 늦게 피는 품종이 있는데, 약 200평 되는 곳에 파란빛을 띠는 좋은 갈대꽃이 군락을 이루어 일제히 피어 있는 곳을 만났을 때 “와~ 오늘 일당 했다.” 거기서 자리 잡고 원 없이 뽑았던 기분 좋았던 기쁜 날도 있었다.
현재 현종규는 갈꽃채취를 하지 않는다. 올해 초, 교통사고로 다친 후로 몸이 많이 약해졌고, 그리고 갈꽃비를 찾는 사람들이 현저하게 줄어들어 빗자루 매는 일이 수익성이 없어지기도 한 때문이다.
[갈꽃애환 – 갈대밭 주인들의 갑질]
갈대밭도 주인이 있는 곳이 있다. 아무데서나 갈꽃을 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논 옆에 있는 갈대는 논 주인들이 주인행세를 하였고, 또 어떤 경우는 마을에서 관리한 땅도 있었고, 그 사람들이 관리하면서 갈꽃을 못 따게 제제를 했다. 그래서 밤에 몰래 다니면서 뽑기도 했다. 특히 달밤에 많이 다녔는데, 달이 없을 때는 칠흑같이 깜깜해서 안보이니까 주로 달밤에 뽑았다. 지금 80대 어르신들은 그런 경험들이 있으신 분들이시다.
갈꽃을 따는 아이들도 있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안 살림을 돕기 위해 갈꽃을 따는 아이들이다.
구술자 : 말로하면 눈물나유. 애들, 초등핵교 졸업허구 중핵교 못간애들, 그 애들이 갈꽃 뽑으러 오는디, 옛날이는 밀가루 푸대{포대}에 꺾 어서 담았는데, 논주인들이 밭주인들이 밀가루 푸대{포대}를 뺏 어. 갈꽃을 딸라면 밟았다 꺾었다 허거든유. 밭도 상하게 하기도 허구, 그런애들은 수문에 올려놓고 때리기도 허구 뺏기도 허구 그랬다구 허드라구유. 전라도 저기~ 미군부대 있는 쪽으로 전라 도 옥구 하제 상평 염전 근방으로 가유 뱅장(비행장) 근방서. 옛 날이는 힘들구 애들이 오면.... 농작물 밟기두 허구 손도 대기두 허구 갈대두 자기들이 사용혀야는데 헤친다구혀서 그랬다구 혀 유. 갈대꽃 뽑으러 가믄 애들이 도시락를 싸갖구 다니야잔유. 근 디 안 싸갖구 와유. 그만큼 어려울 때니까. 그러다 보니 간혹 남 이 밭이 가지 같은 거 따먹기두 하구 또 참외나 오이 같은 거 따먹기두 허구 그래서 특히나 농작물을 헤치니까.
[갈대의 쓰임새]
갈대는 갈꽃비를 만드는 용도 외에도 쓰임새가 많았다.
조사자 : 갈대가 쓰임새가 많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사용되었나요?
구술자 : 갈대로 여러 가지 일을 해요. 갈대는 버릴게 없어유. 갈대로 삼발 도 엮고, 63발 엮어서 그늘지게 그늘망을 만들구. 또 갈대를 비 어서(베어서) 팔아요. 갈대는 물을 정화 시키잖어유. 갈대밭에 있 는 물을 아주 말고 깨끗해유. 일 끝나면 그 물에 씻고 옷 갈아 입고 집으로 와유.
※ 이 외에도 어린 순은 나물로도 먹고, 뿌리(노근)는 약재로 쓰인다. 바구니 를 만들기도 했고, 굵은 것은 김 발로 이용했다, 옛날에는 초가지붕을 덮는데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2023년 3월 6일부로 임시우체국(현암리 소재 구,중대본부)으로 이전하고 신축에 들어 가는 판교우체국 공간에 대하여 현직 우체국장과 서천총국 직원을 대상으로 관련 이야기를 듣고 기록함.
신축중인 판교우체국 소재 형암리 일원 22,768㎡(93필지)가 2021년 10월31일 국가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등록되었다.
「서천 판교 근대역사문화공간」은 1930년 장항선 판교역 철도개통과 함께 근대기 서천지역 활성화 중심지로 양곡을 비롯한 물자의 수송과 정미, 양곡, 양조산업, 장터가 형성되어 한국 산업화 시기의 번성기를 맞이하였고 2008년 철도역 이전으로 본격적인 쇠퇴의 과정을 거친 근‧현대기 농촌지역 역사 흐름의 흔적들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공간이다. 이러한 생활사적 변화의 모습을 알 수 있는 다양한 문화유산들이 집약적으로 분포하고 있어 면적 공간단위 문화재로서 역사적 가치가 있다.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 -
[ 판교우체국 신축 이유와 신축방향 ]
조사자 : 사전에 협조 요청은 드렸는데, 정신없이 바쁘시네요.
(구,중대본부로 임시이전 준비가 한참이었다.)
구술자1 : 지금 막 짐 정리 중이에요.
구술자2 : 판교우체국은 이 자리에 들어온 지가 40년? 41년인가 됐어요. 당시에는 집 배원 3명이 판교면을 집배를 했었지. 이렇게 하시다가 한 2~3년 전에 광역화로 집배원들이 다 서천으로 떠났고. 여기는 3명이 근무하는 3인 관서로 바뀌었는데, 자세한 기간은 한번 자료를 찾아봐야 알 수 있어요.
구술자2 : 여기가 옛날에 집배원들이 쓰던 공간이에요. (휴게실) 지금은 2명이 근무 하는 2인 관서로 운영되는데, 2인 관서가 된 것은 업무량이 작아지니까 그렇게 바뀌었겠죠. 그리고 지금 새로 신축을 한다는 얘기는 40년 이상이 되어서 노후화 됐다는 거죠.
구술자1 : 81년 8월에 여기 리모델링을 했어요. 40년이 넘었다는 얘기죠.
많이 노후화 됐죠.
조사자 : 그런데 이쪽 오신 게 신축 이전이 아니었잖아요
구술자2 : 81년도에 여기로 지어서 왔겠죠. 저쪽(현대양품)에 있다가 여기 온 거지.
조사자 : 기록을 좀 보니까요. 현대양품 자리가 소유권이 바뀐 게 68년도였더라고요. 그리고 그 공간이 공부상 기록이 현 건축 건물주로 바뀐 시기가 84년이에 요. 그러니까 지금 말씀 주신 81년이 맞는 것 같아요. 신축 이전인 거로 보 이고, 81년도부터 따지면 40년 된 게 맞네요. 그러면 지금 신축을 하려고 하는 이유가 40년 이상 된 건물의 노후 때문에 당장 필요한 거구요.
구술자2 : 노후화 건물 신축인데 우정사업본부에서는 테마가 있는 우체국을 만든다고 해요.
조사자 : 건축 방향이네요.
구술자2 : 그렇죠. 지역 특성과의 연계점 찾아서 하려고 하는데 청 직원들은 잘 모르니까 서천은 무슨 갈대숲우체국 이렇게 내려왔어. 그래서 이제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무슨 여기가 한산이간디 갈대숲이여. 판교하면 도토리 우체국이라고 하든가’ 해야지 했어요.
조사자 : 그 말씀도 나오셨네요.
구술자2 : 판교면 도토리인데 왜 거기가 갈대가 붙어 갖고 와.
조사자 : 어떤 방향으로 될지 아직 결정 안 됐죠. 처음에 얘기만 그렇게 나온 거지. 아직 진행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구술자2 : 이제 진행을 하면 앞에 조형물 같은 것을 도토리 같은 걸 논다든지 아니면 벽면에 이렇게 도토리를 그려 붙인다든지.
조사자 : 근데 아마 본청 본부 차원에서 진행이 되긴 하겠지만 어떤 컨셉으로 설계할 지 공모를 하겠네요.
구술자2 : 그렇지 근데 사업본부에서는 그냥 갈대숲 우체국 뭐 이런 것들로 (우체국 신문에도 나갔어) 우체국을 전국적으로 40여개 테마가 있는 우체국으로 새로 짓는다 그러면서 몇 개의 모델로 했잖아. 한옥으로 짓는 우체국 등... 판교우체국도 포함된 거죠.
조사자 : 그러면 전국에 계획상 몇 개가 되죠?
구술자2 : 지금 대략 40개소, 보령 주산도 이번에 지어요.
조사자 : 저도 한번 기사 자료로 본 거 같아요. 그리고 설계하는 팀이었나 정확하게 모르겠는데 얼마 전에 한분이 다녀가셨어요. 설계하는데 마을의 정서를 좀 확인해 보고자 왔다고 해서 마을의 특성을 잘 반영했으면 좋겠다고 얘기는 했었어요.
구술자2 : 우리 충청청에 이렇게 몇 개 우체국을 지어야 되는데 그냥 급하게 위에서 자료 달라고 하니까 서천하면 신성리 갈대밭 이런 것이 먼저 생각났던 거야.
조사자 : 어떻게 보면 대표성 있는 거를 찾은 거일 수도 있죠?
구술자2 : 그런데 여기 판교우체국 짓는데 무슨 갈대숲을 붙여놓은 거야. 갈대가 왜 판교 와서 붙어 그랬지.
조사자 : 그때 말씀을 주셨어요?
구술자2 : 우리끼리 한 얘기예요. 조사자 : 근데 현지 의견을 듣는 그런 절차는 없어요?
구술자2 : 아니, 그런 것은 문의 오거나 그런 건 없더라고요. 우리끼리 앉아서는 판교 오면 도토리로 하야여. 우리끼리는. 그게 나중에 이제 우리한테 의견을 물어보면 해야죠.
조사자 : 본청에도 그 얘기가 좀 들어갔으면 좋겠네요.
구술자2 : 도면은 안 나왔어도 설계는 들어갔을 텐데, 우리한테는 도면 안 나오지만....
구술자3 : 설계사무소에서 진행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구술자2 : 지금 3월이면 한 4월이면 철거 작업 들어간다고 보고 지금 설계를 하고 있다라는 얘기인데.
조사자 : 혹시 의견을 내실 절차가 있으시면 컨셉은 30년대 70, 80년대 근대역사문화 공간이고, 만약에 그게 어렵다고 하면 외부공간 일부라도 그 컨셉으로 맞춰 주시면 근대역사문화공간이라는 마을의 정체성이 새로 만들어지는 거거든요.
구술자2 : 우리가 이제 그런 것을 의견 타진이 들어오면 그렇게 얘기는 하겠지만 우리보다는 더 전문가님들한테 이게 (전달돼야겠네요).
조사자 : 아마 설계팀이 다녀간 걸 보면 그런 오더가 있긴 있었을 것 같아요. 공개 공모하는 형태로 설계 공모를 했으면 여러 팀이 참여를 할 거 아니에요.
구술자2 : 설계사무소는 정해졌잖아.
구술자1 : 네 정해졌어요.
조사자 : 그러면 최종 심사받는 과정에서 중간에 의견을 내고, 1차 가안을 내고, 그다음에 가안을 몇 개 낼 거 아니에요. 그중에 선정하는 과정이 있겠네요.
구술자2 : 어느 어느 우체국은 설계사무소가 어디, 어느 우체국은 어디, 다 나와 있는 것 같은데.
구술자3 : 그거는 나와 있어요. 그러니까 우정청에서 할 거, 조달센터에서 할 거다 하는데, 우리는 조달센터에서 하는 거 아니에요.
조사자 : 그러면 그때 다녀가신 분이 그 설계사무소 인원 중에 하나였을 것 같고, 그 분한테 이런 마을 얘기들을 해드렸거든요. 그러면 일부 반영이 되긴 하겠네 요.
구술자2 : 외벽을 30년대식으로 해달라고 해야겠구만.
조사자 : 지금 저희가 그런 기록들을 찾는 작업들을 하기는 하거든요. 그런데 좀 아쉽 게 30년대 건물은 사진이 없어요. 사진이 있어서 그런 풍광이면 더 좋을 텐 데. 찾아본 내용들 중에 일제강점기 1933년도 4월 1일자 동아일보에 주민들 이 판교우편소를 세워달라고 했고, 35년도에 세워졌고. 실명 윤재헌이라는 분이 계속 우편에 대한 얘기들을 하니까 그게 신문으로 기사화됐던 그런 자 료들만 남아 있어요.
[ 판교우체국 인력, 시설, 업무 현황 ]
조사자 : 인원 현황은 3인 관서, 2인 관서 그런가요?
구술자1 : 지금은 2인 관서. 옛날에 인원 현황이 좋았어요. 여기가 4인 관서. 지금은 이제 두 명이에요.
조사자 : 그럼 2인 관서, 2인이라고 하는 것은 정원이 2명이네요?
구술자1 : 예.
조사자 : 우체국 시설현황은 이렇게 시설로 보이는 공간 말고 다른 장비들이 있나요? 예를 들어서 집배를 여기서 한다면, 집배용 장비나 설비 등이 장부로 잡혀 있는 건 없나요?
구술자3 : 그렇죠, 보이시는 게 다예요.
조사자 : 그리고 우체국을 주로 이용하시는 분들은 주민들 일거구요?
구술자1 : 근데 제가 와서 보니까 하루 평균 25~30명 정도 고객님들이 오 세요. 우편은 그보다는 적은데 예전에는 좀 소포가 좀 잘 됐는 데.... 지금은 한우마을도 씨제이로 넘어갔어요. 그리고 농협에서도 지금 택배사업을 하다 보니까 우체국 이용이 줄고 사업이 좀 위축 돼 있어요.
조사자 : 그런 상황은 우리 판교 사정만이 아니라 다른 데도 비슷하지 않
을까 싶어요.
구술자2 : 그 말씀이 맞네요.
조사자 : 어떤 사람이 이용하고 있냐는 궁금함도 있지만 우체국에서 취급하는 업무나 서비스도 궁금해요. 국장님 말씀하신 대로 금융업무, 우편업무, 보험업무가 있는데, 보험업무는 어떻게 수요가 좀 있어요?
구술자1 : 없어요. 이제 여기 가입 연령대 자체가 어르신들이 많으니까요. 보험사업은 거의 안 되고, 예금, 정기예금하시고 그런 거죠.
조사자 : 금융이라고 하는 것이 이제 예금 포함인데, 어르신들 뵈면 우체국 통장 하나 씩은 다 가지고 계시더라고요. 그리고 우편업무 중에 소포라고 표현을 하죠. 택배라고 안 하고, 또 일반우편은 뭐라고 그래요?
구술자1 : 등기, 일반우편물.
조사자 : 등기 및 일반우편이요. 또 다른 업무는 없나요?
구술자1 : 이제 다 들어가 있고 끝났네요.
조사자 : 그리고 시설의 변화는 아까 말씀하셨던 것처럼, 81년도 신축해서 왔고 그 뒤로 증축이나 개축 이런 건 없었어요? 81년 이후로.
구술자1 : 중간에 내부만 리모델링 조금 했어요.
조사자 : 나중에 물건 다 비워지면 제가 공간기록은 다시 하겠지만 1층이 있고 2층이 있나요?
구술자1 : 예, 2층은 직원들 관사로 쓰였어요.
조사자 : 직원 관사요. 지금도 쓰세요?
구술자1 : 안 쓰죠. 처음에 관사로 지어진 거죠. 조사자 : 그리고 1층에는 기본적으로 사무기능 이외에 또 다른 기능들이 있나요?
구술자1 : 대부분 사무기능, 창고, 휴게 기능 등이에요.
[ 우체국 운영의 어려움과 앞으로의 바람 ]
조사자 : 앞으로 우체국이 어떻게 바뀔 것 같고, 어떻게 바뀌셨으면 좋겠어요?
구술자2 : 우체국이 새로 집 짓고 들어오면 쾌적한 환경일 테고 일단 노후 환경에서 살다가 새로운 건물로 가면 기분도 좋고 주민들 이용하는 게 좋겠지. 근데 판교우체국이 건물은 새로 짓기는 해도 이게 얼마나 더 유지될 수 있을까 걱정....
구술자3 : 걱정이죠.
구술자2 : 도시 인구가 자꾸 줄음으로서 초등학교 애들 입학생 한 명이니 두 명이니 하는 것처럼 시골도 이제 노인 양반들 돌아가시고 나면 젊은 사람들이 안 들어오고 하면 아마 국가기관이라고 해도 버티는 게 한도가 있으니까 그런 것들이 제일 걱정이고, 고객들이 우체국 예금 사업도 있고 보험 사업도 있고 하니까 그런 사업들이 원만히 이루어져야 유지가 가능한데, 그런 것들이 잘 안 되다 보니까 3인 관서에서 2인 관서로 운영되고 있는 실정인데. 그런 사업들이 계속 유지가 안 된다고 하면 우체국을 새로 지었다고 해도 어느 시점에는....
구술자3 : 어느 시점.... 아이고 이제 그만 하겠죠.
구술자2 : 우리는 서천 사람이니까 서천에 읍, 면마다 다 하나씩 있었으면 좋겠는데.
조사자 : 그렇죠. 그리고 우리 본청 직접사업하고 민간 사설우체국들이 있잖아요. 일 반인들 입장에서는 판교나 문산이나 시초나 다 똑같다고 보는데 좀 다르잖 아요. 우리 관내에 사설 우체국이 어디 어디 있어요?
구술자2 : 문산, 시초, 마산의 명신 우체국, 기산, 마서, 서면 여섯 개
조사자 : 종천도 있지 않아요?
구술자2 : 종천은 폐국됐어요. 작년에.
조사자 : 그러면 서천우체국 총괄국하고, 판교, 그리고 장항도 있구나.
구술자2 : 한산, 비인, 화양. 우체국을 이해하시려면 이렇게 이해를 하셔야 돼요. 일제강점기 뒤로 시장이 형성되는 곳은 나라가 세운 우체국이 있는 거야.
조사자 : 시장, 사람이 있는데?
구술자2 : 그러니까 시장이 잘 형성이 안 되고 산간 오지면 60년대에 민자 유치를 해서 별정국을 세우게 한 거지. 요즘으로 말하면 민자유치여.
조사자 : 여기는 일제강점기에 생겼으니까 직접 나라에서, 여기 판교장이 있었으니까 이해가 돼요.
구술자2 : 그럴 수 있는 게 똑같은 전국적인 현상이에요. 충청도만이 아니고 전국적 으로 이루어져 있거든요. 그래서 일반국(일반우체국)이 있는 곳에는 조금 그래도 경제적 활동 인구가 있고 읍단위라든가 이런 게 좀 규모가 있고, 별정국(별정우체국)이 있는 곳은 제일 처음에 민자를 유치했으니까, 그때 당시 처음에 국장들한테는 급여를 안 주고 무보수였지. 그때 당시에 별정우체국을 세우신 분들은 대부분의 그 지역에서 제일 잘 나가는 유지분들 중에 좀 협조해 달라고 하니까. 그 양반들이 자기 땅에 건물을 직접 짓고, 국장들 급여는 안 주고 등기, 소포 수수료를 받았어요. 경제수준이 어느 정도 올라오니까 직원들 월급도 나아지고 국장들도 주게 되고 했었는데. 지금에 와서 별정우체국을 없애려고 하니까 이상한 거지. 나라가 아쉬울 때 이렇게 해달라고 그래서 그 사람들이 이렇게 해줬는데 지금에 와서 그 돈벌이도 안 되고 그렇게 하니까 그만둬하는 상황이 된 거야. 폐국을 걱정해야하는 상황이... 우정사업본부에서는 인건비도 안 나오고 하니, 뭐 문 닫았으면 좋을 상인데 그 사람들이야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냐하는 거지.
구술자1 : 주민분들이 우체국을 좀 많이 이용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정말
종천우체국이 폐국이 됐잖아요. 그러면서 거기 이용하는 주민들이 이용할 공간이 없어지다 보니까 그분이 이쪽으로 많이 넘어오시고 계시는데 그분들은 불편하시죠.
조사자 : 판교도 폐국에 대한 논의는 있었지만 이런 좋은 사업으로 인해서 새로운 어떤 예쁜 우체국이 만들어질 지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담긴 기록이 되겠네요.
구술자1 : 좋아요. 좋아요. 주민들이 좀 많이 이용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면 사무소 이런데는 일반 회계이기 때문에 세금으로 급여를 받잖아 요. 저희는 사업하는 조직이다 보니 세금으로 급여를 받는 공무원 조직이 아니라 특별회계여가지고 사업성과가 중요해요. 저희는 사 업을 잘해야 돼요. 근데 이제 일반 은행이나 이런 데처럼 활발하 게 영업할 수 있는 구조도 아니고... 그리고 수익성이 안 나면 그 냥 점포를 없애버리잖아요. 저희는 국가기관이다 보니까 보편적 서비스를 또 해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유지를 하기는 하는데 그게 이제 걱정이 되는 거죠.
구동1리 마을의 용수시설은 여러 개이다. 평소 식수로 사용되다가 심한 가뭄 시 농업용수로 사용되기도 했던 우물과 샘 8개소가 있다. 그리고 인근 저수지로부터 농업용수를 끌어오던 관정시설 2개소가 미사용 상태로 남아있다. 아직 소방용수 설비는 갖춰지지 않은 상태다. 우물과 샘 관련해서는 마을주민 강정옥님으로부터 듣고, 농업용 관정 관련해서는 마을이장 김종섭 님으로부터 듣고 기록함.
1. 우물과 샘은 어디에 있나요?
- 마을에는 작두샘이라고 불리는 참삭골 우물, 약물샘이라고 불리는 턱골샘, 그리고 현재 사용하고 있는 샘물로 아랫뜸(고라실)에 하나, 중뜸에 셋, 윗뜸에 하나, 소라티에 한 곳이 있어요.
- 대부분 식수로 사용되지만 가뭄이 들거나 하면 농사용으로도 쓰고 개인 우물로 파서 사용하다가 공동우물 사용되기도 했다고 해요.
2. 우물과 샘과 관련된 이야기를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 위뜸(낡은터) 박옥희님 댁 우물(⑥)이 특이해요. 일 년 내내 산에서 나는 물을 이용하는 거요.
- 절구를 심어놓은 것처럼 웅덩이를 만들고 호수를 연결해서 한번 모으고, 다시 호수를 이용해 집안으로 끌어들여 사용하고, 넘쳐흐르는 물은 밖에서 생활용수로 사용하는 지혜요.
- 중뜸 양희선님 댁 우물(④) 좌측 돌로 쌓인 곳에 굴이 있었어요. 지금은 막혀 있는데, 이곳에 생강저장고로 쓰였다고 해요. 양희선님이 과거에는 농산물 수집 판매를 크게 했거든요.
- 참삭골에 있는 샘(①)을 작두샘이라고 불렸다고 하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참삭골에 사는 다섯 가구가 살았는데, 식수를 길어다 먹고 하는 게 불편하니까 편하게 사용하기 위해 작두(펌프)를 설치하면서 그렇게 불렸다는 것 같아요.
- 턱골에 있는 샘(②)은 약물 샘이라고 부르는데, 마을에서 전해오는 말이 몸에 땀띠, 부스러기들이 나면 이곳에 와서 몸을 씻었다고 해요. 그러면 낫는다고요.
3. 농업용수는 없나요?
- 아래뜸 쪽 고라실 마을 입구에 조그만 관정시설 있어요.
- 농업용수는 농수로를 통해 오는데 봉선지에서 은곡리, 지원리 거쳐 구동리가 마지막이에요.
- 지금은 여기저기 개별농가에서 다들 관정 파니까 필요 없죠.
- 또 하나 오얏고개 넘어가기 전 교통 차단봉 서 있는 곳에 대형관정 있어요. 그런데 전기세도 안 내고 관리가 안 되니까 전기 끊겼죠.
4. 소방용수는 없나요?
- 네. 몇 번 건의도 하고 했는데 아직 마을소화전이나 관련 시설들은 없어요.
5. 식수용 상수도는 언제 들어 왔나요?
- 마을 상수도는 올해 들어왔나, 아니다 작년인가? 2023년 5월이예요. [ 강정옥 ]
- 구동1리에 상수도 시설이 마을에 처음 들어온 것은 2019년 8월 금복리~구동리 구간, 2019년 12월 지원리~구동리 구간 관급공사 입찰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실제 설치 시점은 주민의 기억과 다를 수 있어 보임 [ 조사자 기록 ]
제보자는 보령에서 태어나 서천으로 시집왔다. 결혼 후 바쁜 농사일로 장을 간단하게 담가 먹고 있다. 바쁜 일손을 덜기 위해 한 번에 많은 된장을 담았다. 재래식 된장이 아니라, 국과 찌개 양념도 하고, 쌈장과 무침 소스로도 먹을 수 있는 나만의 된장을 만들었다.
■ 된장 만들기
된장을 전통 방법으로 만들다가 간단하게 만들게 된 이야기
재료
메주 5kg, 소금, 물 5L, 엄나무가지, 보리쌀 2kg, 고춧가루 약간, 김
순서
1. 메주를 깨끗하게 닦아 물기를 말린다.
2. 소독한 항아리에 메주를 넣는다.
3. 달걀이 동전 크기만큼 떠오른 소금물을 항아리에 넣고, 깨끗하게 씻은 엄나무 가지를 올린다. 소금물은 최소한 메주가 담길 정도만 넣어야 맛있는 된장이 나온다.
4. 맛있는 된장을 만들기 위해 30일 만에 메주를 건진다.
5. 보리를 충분히 불려 밥을 한 다음에 충분히 식혀둔다.
5. 건진 메주를 손으로 으깨준다.
6. 으깬 메주와 보리밥을 섞는다.
7. 기호에 맞게 소금으로 간을 한다.
8. 고춧가루를 넣고 잘 섞어 간장 물로 농도를 조정한다.
9. 완성된 된장을 항아리에 담고 위에 김으로 덮고 소금을 살짝 뿌린다.
10. 보리밥이 삭는 약 2개월 이후부터 먹을 수 있다.
■ 완성된 된장
제보자의 말 :
현대식 된장은 쓰임새가 많다. 된장국, 된장찌개, 쌈장, 무침 소스. 등으로 음식을 만들 때 밑 양념으로 최고의 장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만의 된장은 맛이 최고다. 아들한테 보내면 맛있다고 전화가 온다. 형제들한테도 나눠 주는데, 맛있다고 연락이 오면 기분이 좋다.
화양면에서 한산면으로 가는 길, 기산리 율리고개 쯤에 ‘갈릴리어구’라는 입간판을 만나게 됩니다. 해안지역에서 볼 수 있는 어구사가 내륙에 있다는 것이 궁금증을 자아내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 어구사를 설립하게 된 배경과 현황을 알아보고자 탐방해보았습니다.
1. 본인 소개를 해주시겠습니까?
최금순 1955년 10월 30일생입니다.
정규인 1950년 3월 1일생입니다.
2. 갈릴리어구의 주소는 어떻게 되는가요?
서천군 화양면 장산로 1646번길 13
3. 갈릴리어구는 주로 어떤 일을 하는가요?
어망(그물)을 제조하고 수입하고 판매를 합니다. 베트남과 중국에 지사가 있어서 거기서 만들어진 어망을 수입하고 판매합니다.
4. 갈릴리어구에서 주로 취급하는 그물은 어떤 것인가요?
주로 꽃게망, 대하망, 숭어망, 도다리망입니다.
5. 판매하는 지역은 어디인가요?
전국이지만 주로 서천,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입니다.
최근에 부산, 거제에도 판매합니다.
6. 갈릴리 어구사를 이곳에 설립하게 된 이야기를 해주시겠습니까?
서울에서 남편과 함께 이곳으로 내려온 것이 1980년도입니다. 귀촌한 후 에 남편(정규인)은 한솔제지 용역회사에 다녔습니다. 저는 생계에 보탬이 되고자 그물 만드는 일을 부업으로 시작했습니다. 장항이나 군산에서 일 거리를 가지고 와서 집에서 작업했습니다. 그때는 추동리에서 살았습니 다. 그러다가 군산의 선구사에 취직을 하고 출퇴근하면서 기술을 배웠습 니다. 시어머니가 편찮으셔서 병간호하게 되어 출퇴근이 어려워져서 다시 집에서 물건을 가져다가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교회(대하성결교회)에서 부흥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강사님으로부터 은혜를 받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다가 세계 결식아동을 돕는 일에 관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서원 기도를 했습니다. 이 아이들을 도울 수 있도록 내 사업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것이 1990년도입니다.
7. 그물 만드는 일을 어떻게 접하게 되었는가요?
시어머니의 친척 권유로 시작했습니다.
8. 처음 물량을 확보하게 된 과정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한 어부가 그물이 필요하다고 해서 만들어 주었습니다. 기술이 부족해서 완전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그물에 고기가 많이 잡혔다고 좋아했 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또 다른 어부를 소개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9. 갈릴리어구의 상호는 어떻게 지었습니까?
어떤 분이 거래하면서 명함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명함을 만들려고 이름을 생각하다가 “화양면 그물조립소”라고 정하고 인쇄소에 맡겼습니 다. 인쇄소에서 잘못해서 ‘조립소’를 ‘조리소’라고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래서 생각하기를 기독교인으로 기왕이면 성경에 나오는 이름으로 하라는 뜻인가 보다 하고 성경에 나오는 지명을 따 “갈릴리어구”라고 이름을 확 정했습니다.
10. 사업을 하면서 얻은 교훈이 있습니까?
‘나누고 베풀수록 풍요로워진다.’라는 것입니다. 좋은 소문이 나서 수요가 늘어나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일거리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남편을 여의고 홀로 3남매를 키우게 된 김향월(75세) 씨는 좋은 동업자이며 거의 생활을 함께했습니다. 그 3남매는 지금 훌륭하게 성장해서 사회 인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나누고 베풀수록 사업이 확장되었고 지금은 베트남과 중국에 지사를 설립해서 가난한 마을 사람들에게 유복 한 삶을 살도록 하게 되었습니다.
11. 사업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무엇인가요?
어려운 일이야 한도 끝도 없지요.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일은 신앙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어촌계장님의 소개로 여기저기 어촌계에서 주문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장사가 잘되어 갈 때였습니다. 어촌계에서 풍어제나 만신제를 지낼 때 찬조를 요청해 왔습니다. 저는 신앙을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사실, 이 사업을 시작한 것도 신앙 때 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앙에 어긋나는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물 제 작과 판매는 어촌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어촌계에서도 그 신앙을 존중한 것인지 더 이상 요구하지 않아요. 대신 다른 친목 활동에 대해서는 후원을 하고 있습니다.
12. 보람이 있었던 일을 한 가지만 이야기 해주신다면요?
베트남 동탑 지역에 현지 공장을 세운 것입니다. 그 지역은 베트남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곳이었습니다. 2013년이었습니다. 그 가난한 마을이 지 금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첫째, 직원들의 집을 지어 주었습니다. 둘째, 매달 월급이 나가서 생활이 안정되고 자녀교육을 할 수 있었습니 다. 셋째, 도시로 나가지 않아서 이혼율이 낮아지고 자녀를 낳게 되었습 니다. 사업을 통해서 마을이 건강하게 변화된 것이 큰 보람이었습니다.
양희선은 1936년생으로 문산면 구동리 마을에 태어나 구동리에서 살았으며, 외지에 나가 산 적이 없다. 소년 가장으로 집안 경제에 보탬이 되고자 15세부터 장사를 시작했고, 생강장사는 31세부터 시작하여 평생을 해왔다. 농업을 생업으로 하는 마을에서 ‘생강농사’가 아닌 ‘생강장사’를 한 점이 특이하여, 1970년대 생강장사 시절의 이야기를 듣고자 요청했는데, 기꺼이 응해 주셨다.
[생강장사 양희선과의 면담 내용]
15세 소년, 장사꾼이 되다
양희선은 15세부터 장사를 시작했다. 경찰관이셨던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한국전쟁 때 공산군에 의해 학살당하셔서 집안 살림을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부양가족은 할아버지, 어머니, 동생들까지 모두 일곱 명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조사자 : 지금까지 주로 무슨 일을 하셨나요?
구술자 : 어려서 이후로 장사를 시작혔슈. 열다섯 살부텀.
조사자 : 주로 무슨 장사를 하셨나요?
구술자 : 처음에 고추장사를 했슈. 그 동기는, 6·25 때 아부지랑 작은아부지가 한날한시에 경찰관들이라 문산면 수암리에서 학살당하셨어유. 형제분이 한날한시에 돌아가셨슈. 그래서 인제 늙으신 할아부지는 예순닷 살 잡수셨는디 학자시고, 서울에 인자 성균관대핵교 공자 맹자 제사 지내는 직원 벼슬을 따셨슈. 왜정 때. 시험 봐서. 그래가지구서 거기서 학자니까 살림이 대해서는 모르시구 동생들 넷인디 나 열닷살 먹어서 어떻게 얘기도 헐 수 없는 거여. 열닷살 먹어서 그래서 인제 가벼운 고추장사를 시작했슈, 고추장사를. 그래가지구서 고생 많이 혔쥬.
조사자 : 장남이셨어요?
구술자 : 예~, 그래가지구 인제 장사를 쪼금이라두 벌어서 생계를 유지할려구. 장사를 허다가 그것이 손해 봤슈. 결과적으로. 손해 봤응게 다른 직업으로 바꿨지. 계란장사로.
조사자 : 계란장사로 바꾸셨을 때는 몇 세셨나요?
구술자 : 열일곱 살 때.
조사자 : 계란장사는 잘 되셨나요?
구술자 : 계란장사도 잘 안 됐슈. 그래서 행상을 혔슈. 그러다가 스물두 살 먹었을 때 군대를 갔쥬.
조사자 : 군입대 하셨을 때 가족들 형편이 많이 어려우셨겠네요?
구술자 : 그렇죠. 어머니는 가정주부여서 사회 경험 두 없으시고, 어려웠쥬, 동행하고 고생 많이 하셨슈.
조사자 : 생강장사는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구술자 : 군대 갔다 와서. 생강장사 허기 전이 생강을 한 해 심어 가지구 그때 돈으로 쌀 250가마 값을 혀가지구 큰돈을 벌은 거지. 그래가지구 쌀장사를 혔는디 실패혀가지구, 그 다음에는 돈이 없으니까 생강장사를 시작혔슈. 서울 염천교 시장에서.
구술자 : 그때는 생강이 귀했고, 비쌌고 마늘도 그때는 귀했고 비쌌고. 그래서 생강을 선택혔지. 인자 돈이 없으니까 장예쌀[장리쌀]이라고 혀서 쌀 한 가마 갖다가 가을이 두 가마니 주는 쌀을 읃어서[빌려서] 생강을 심었슈.
조사자 : 쌀 한 가마니 값이면 생강은 어느 정도 주나요?
구술자 : 생강 한 가마니 값이 쌀 한 가마니 값 갔슈. 그때는. 지금은 더 가쥬. 지금은 쌀 한 가마보담 생강 한 가마니가 비싸쥬. 지금은 생강 한 가마에 쌀 다섯 가마씩 가유.
※ 2023년 9월 14일 현재, 생강값과 쌀값 인터넷 검색 결과
국내산 흙(세척) 생강 20kg 30만 원~60만 원(2022년)
서천 서래야 쌀 20kg 백미 약 10만 원, 일반 백미 약 5만 원(2022년)
생강 수매
조사자 : 생강은 어디서 구했나요?
구술자 : 후암리라는 디서, 거기서 생강도 사다 심었구 물건도 그쪽이서 많이 나왔어유. 풍정리 후암리 그쪽이가.(후암리와 풍정리는 구동리 이웃 동네이다)
조사자 : 생강 수매는 어떻게 하셨나요?
구술자 : (생강 추수 때가 되면) 그 동네 어떤 지역에도 풍정리면 풍정리, 한산이면 한산, 지역적으로 다 연결이 돼 있어유. 그분들(지역중개자)에게 한 푸대[포대] 사는 데 얼마씩 줘, 그려야 할 거 아뉴. 그러니까 이득이 나니까 서로 헐려구 허지. 그 사람으로 하여금 돈을 딱 맽겨놓구 어떤 물건은 얼마 주고 어트게(어떻게) 어트게(어떻게) 작업 허라구 허면, 그 사람이 가서 (생강 포대를) 끌러 보구 생강을 사서 보관하고 있다가 오늘 차 불러라 허믄 싣는 거쥬. 그것두 양심 있는 사람이 선택혀서 선정을 해놓고서 시키지 아무나 안 시켜줘. 왜 그냐믄 물건 살 돈을 미리 주거든. 그 옛날이는 좀 도박이 심했어유. 그 돈 가지구 도박이다 내버리믄 어쩌것서유.
조사자 : 수확하는 시간이 지역마다 다를 텐데 어떻게 하나요?
구술자 : “오늘 캐놔라.” 하면 그 사람들이 캐놔유. 그냥 말로만 하면 소용없응게 열 개가 있으면 다섯 개값을 주고서 (나머지는) “암만암만 할 때 줄틍게(지불 할 테니) 이것을 계약금으로 받아라.” 혀야지. 돈을 받아 놔야 물건이 유실 안 되지.
구술자 : 차는 없슈. 그리구 저희 같은 사람들은 물건을 여기저기 옮겨야 하니까 내가 차 운전하믄 잘못되믄. 그럴 수 있잖유. 남이 차를 이용허면 그런 일이 없쟌어유. 기사한테 어디 어디다 퍼줘라 허믄 퍼주구 오구. 그게 오히려 싸게 맥혀. 위험 부담도 적고.
판매 & 운반
조사자 : 사들인 생강은 어디에 판매했나요?
구술자 : 염천시장에서 팔았지 팔구 용산시장으로 내려왔지, 한 3, 4년 허구 (용산도매시장으로) 내려왔지.
조사자 : 염천시장으로 팔러 간 생강 양은 어느 정도였나요?
구술자 : 대략 많이 가지구 갈 때는 100푸대[포대]. 그때는 가마니가 50키로(kg) 짜리 가마니 100개 정도까지 실었어. 조금 적을 때는 5, 60개. 꼭 균일하지 않으니께
조사자 : 사들인 생강은 어떤 방법으로 운반하셨나요?
구술자 : 차를 불러서 가지. 공주 충남화물이라구 공주에 있었거든. 그 차를 임대해서 쓰는 거여.
조사자 : 화물차에 생강을 실을 때와 내릴 때는 어떻게 하셨나요?
구술자 : 사람을 써야죠 여기서, 실을 때, 나 혼자는 못 허니까. 두엇 데리고 댕기지. 그 사람들 다 실은 다음인 집으로 보내지. 동네 동네 가니까 몇 개 동네 가니까. 여기서만 싣는 게 아니구 마산 한산까지 가서 실으니까유.
조사자 : 일꾼들을 다 집으로 보내셨어요? 그러면, 서울에 싣고 간 생강을 하차 할 때는 어떻게 하나요?
구술자 : 서울에 가서는 상회에서 자유. 자고 상회에서 밥은 해줘. 있을 도막에[동안에]. 상회에서 하차 반이 있지. 시장에 하차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 여기서는 생강을 사 가지구 서울로 보낸다구 넘들이 생각할 때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 당시에 염천교 시장에서 서산에 오수익 씨라는 사람이 있었구 그 사람 허구 나허구 둘이가 염천교 시장 있을 직[적]이 한양상회라는 디[데]서 두 사람 아니믄 상회를 운영 못 한다고 할 정도였슈. 두 사람이 (생강을) 많이 느서[넣어서] 상회를 운영혔다는 거유. 그 정도루 인정을 받은 거유.
생강 수매의 애환
조사자 : 생강 수매할 때와 판매할 때 어려움은 없었나요?
구술자 : (생강수매 할 때) 생강장사가 얼마나 얼마나 야비한지 어떤 사람은 내가 1만원 준다구 혔으믄 1만1000원 준다구 나 달라고 그렇게 야비한 사람이 있다구. 그러믄 밭 임자는 조금이라도 더 주는 사람에게 파는 거여. 그러니까 계약금이란 돈을 주무는 만약에 그것이 잘못될 시는 불응할 시는 법적으로 배상하게 돼 있잖아요. 팔기 싫으면 계약금 배로 만원이면 2만원 내놔라! 그러면 꼼짝 못 허죠.
조사자 : 요즘 국산 생강 씨앗이 찾기 어렵고 중국 생강 씨앗을 많이 심는다는데, 그때 생강 씨앗은 토종이었나요? 중국산이었나요?
구술자 : 지금은 거의 다 90%가 중국산으로 사 심쥬. 옛날에는 중국산이 없고 여기 재래종, 원 재래종.
조사자 : 주로 어느 지역의 생강이 품질이 좋고, 값이 나갔나요?
구술자 : 이 지역에서는 풍증리(시초면 풍정리)가 젤 쳐져유. 거기치가 성헌 것(병이나 탈이 없는 것) 심었구 오랜 세월을 했기 때문에 작업을 잘했슈. 그런디 어쩌다 한 번씩 헌(파는) 사람들은 썩은 것두 늣구 이런 것두 늣구 저런 것두 늣구 서울 가서 팔아보믄 그런 것이 나오네. 그러믄 10만 원 받을 것을 5만 원도 안 나오는 거여~ 그런 때도 아픔이 있슈. 가서 얘기 혀야 소용두 없구. 우리야(우리 것) 아니라고 우깅게. 분명히 그 집 거라는 거 알고 있는디. 인저 생강을 팔믄 가, 나, 다, 라 이렇게 멕여유. 푸대다 써놔. 그러믄 ‘가’라구 쓴 사람은 아무개 꺼, ‘나’라고 쓴 사람은 아무개 꺼 나오잖어 답이, 아니라는 거여~. 양심적이지 않은 그 사람들 껀 다시는 안 사유. 내가 한 번 손해 보구 말아야지 내가 상대하면 상대할수록 손해 보는 거여.
※ 구술자의 지혜 : 구술자는 생강을 여러 지역에서 여러 사람의 밭에서 사들이기 때문에, 그 품질과 포장 상태를 구별하기 위해 생강 포대에 가, 나, 다, 라로 표기한다. 그리고 가=ㅇㅇㅇ, 나=ㅇㅇㅇ이렇게 판매자 이름을 자기 나름대로 기록해 놓는다고 했다.
생강 관리 : 생강 저장 굴
조사자 : 생강 저장은 어떻게 하셨나요?
구술자 : 밭짝이[밭떼기] 헐 적이는 홍산하고 스산[서산] 굴이다가 보관하라구 맽기주. 생강 1000개(20kg짜리) 들어가는 굴이 있슈. 생강 열(10)차 들어가는 굴이 있슈. 전라도서 생강 한 차 싣고, 내가 타구 사람 옆에 하나 싣고, 또 한 대만 가는 게 아닝게. 몇 대가 가니께 딴 차에도 두어 사람 싣고. 기사하고 그러면 사람이 대여섯 명 되잖어. 차를 딱 세우구서 앞차부터 차곡차곡 안에다 집어 느[넣어]. 밀차로 끄셔다가[끌어다가]. 이것을 안 해본 사람은 절차를 모르구 정신 어지러서 못 해. 허는 식(방법)도 모르구.
조사자 : 홍산 저장 굴은 어디쯤 있나요?
구술자 : 홍양리(부여군 홍산면), 농공단지 부근에 거기에 ㅇㅇㅇ라는 사람네여. 지금은 무너져서 없어졌을 거여. 그때두(2000년대) 비가 많이 올 적이 한쪽이 무너졌는디 안에 들어가서 생강을 꺼내니까 쥔네(주인)가 막 소리 지르고 욕지거리 허는 거여. 굴이 무너지면 사람 죽을 깜니 그런 거여. 지금은 저온창고가 다 있응게 그런 일은 없지. 저온창고가 없을 직[적]이는 생강 썩은 것이 많이 나왔어.
생강 1년 판매량
조사자 : 생강 1년 판매 총량은 얼마나 되었나요?
구술자 : 최고 많이 팔 때가 1년이 1톤(t) 차로 40차 20키로(kg) 짜리 5000푸대[포대] 최고 많이 헌 때가. 근래는 안 한게 그렇지 그전이 많이 할 때는 이 앞이 도로가 동네 사방이가 다 우리 생강차였어.
조사자 : 생강장사를 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요?
구술자 : 한 40차 말려가지구 팔었을 때, 그때 돈이루 40년 전 50년 전 1억5천 정도의 돈이라믄 큰 돈이쥬. 많이 들와 가지구 한 달이 1억이구. 5000만원이고 들어왔다구. 그러면은 뭐라구 허냐믄 “워쩌다 한 번 그랬지 언제 돈 들온 일 있냐.” 춤 일(처음일)이라고 그려
조사자 : (웃으며) 돈이 그렇게 많이 들어오면 부인께 옷도 사주고 아이들한테 맛있는 것도 사주고 선물을 하시지 않으셨어요?
구술자 : 옷 같은 건 사준 일 없고 돈으로 몇백씩 준일 있슈.
조사자 : 생강장사 하면서 특별히 어려웠던 기억이 있나요?
구술자 : 있쥬! 실패했을 때는 후회하는 거여. 돈 없을 때는 벌었을 때는 후회를 안 해도. 없을 때는 후회하쥬. 시련을 겪노라면 아픔이라믄 말도 못 혀유.
생강 판매 수입과 경비
조사자 : 1년 수입은 얼마나 되었나요?
구술자 : 한 30년 전이는 하루에 그때 돈으로 100만원 내지 300~400까지 벌으니까. 아이들 프랑스 유학 보내고 공부다 시켰응게
조사자 : 비용이 많이 들었을 것 같은데, 수익은 얼마나 되었나요?
구술자 : 비용이 만만치 않았슈. 그런데, 마진(이윤)이 많지 않은데 쌀보담은 야채가 나서유.
조사자 : 수익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구술자 : 생강이 낫쥬 생강은 웬만하면 20~30% 마진을 보지. 만원이면 2천원 3천원 정도 남아버려. 그렁게 생강이 낫쥬. 쌀은 참~ 박혀(이익이 적어) 솔(서울)가서 인자 쌀 백마흔닷 근을 말로 바꾸믄 한 가마에 서 되가 남는디 그거 가지구 여기 비용 쓰구, 서울 비용 쓰구, 차 운임주구 그러야 되거든, 그러믄 마진이 읍서[없어].
조사자 : 대량으로만 취급하고 소매로 판매는 하지 않으셨나요?
구술자 : 소매도 혔슈. 군산 구시장이두 20~30키로(kg)씩 몇 집 대줬슈.
조사자 : 소매로 판매할 때는 운송 수단은 어떻게 하셨나요?
구술자 : 10키로(kg)까지는 오토바이로 날렀슈. 그 이상은 오토바이로는 못 허구, 20키로(kg)는 차를 불렀지. 운반비를 5만원 주면, 한 포대 만원씩 남으니까 20포대면 20만원이니까 내가 15만원 버는 거지.
조사자 : 도시로 도매로 가져가는 것과 지방에 가게에 도매로 넘기는 것과 수익 차이는 어땠나요?
구술자 : 수익 차이는 지방이 낫쥬, 이런 디[데]는 규모가 적응게, 한 푸대에 만원씩 남기는데, 서울상회에서는 한 푸대[포대]에 5000원 남기기가 어려워유. 또 수수료 띠고, 운반비 많이 맥히고 그러니까 비용으로 한 7, 8천원 떨어져 나가니까 수입이 즉어[적어]. 생강 한 푸대[포대] 내려 붓는 것두 얼마씩 하차비를 받어,
조사자 : 예전에도 하차비가 있었나요?
구술자 : 그럼유. 다 있지. 상회 수수료. 옛날이는 8프로(%) 였는디 지금은 7프로(%)유
생강장사의 현재
조사자 : 생강장사를 그만두신 것은 언제이신가요?
구술자 : 지금도 혀유. 그전이마치(예전만큼) 하지는 않지만 7년 전이 전라도에 가서 마늘 생강 5년 동안 밭 한 만 평씩 사서 사람 사서 5년간 혔슈.
조사자 : 아 그래요? 생강밭이 있던 지역은 어디였나요?
구술자 : 전북 정읍시 강동면 가흥리.
조사자 : 그곳엔 연고가 있으셨나요?
구술자 : 군산사람 소개로 화물차 빌려서
※ 현재는 대량으로는 못하고 소매업으로 삼륜 오토바이를 이용하여 가까운 지역 야채상회에 판매를 하고 있고, 서울 경동시장에도 생강을 보낸다고 한다.
※ 기록을 마치며
조사자는 ‘구동리 생강장사’를 소개를 받았을 때, 1970~80년대의 보따 리 장사를 떠올렸었다. 그런데 구술자는 1960~70년대에 화물차로 서울 대형 도매시장에 생강을 납품하는 대규모 상인이었던 것이다
생강을 저장하는 땅굴이 있다는 말도 처음 들었다. 구동리도 뒤에 산을 끼고 있어서 대부분 집들 뒤에는 굴을 파서 저장고로 사용했다고 한다. 구술자의 집 뒤에도 굴이 있어 동네 아이들이 들어가 놀기도 했다고 한다.
생강세척기도 처음 보았다. 생강뿐 아니라 은행, 당근, 무, 감자 등 야 채를 씻는데도 사용했다고 한다.
고살메 주민들은 갈꽃비를 만들 때에 여러 가지 도구를 사용한다. 갈꽃비 제작 마지막 단계로 ‘코잡기’가 있다. 코잡기는 빗자루의 ‘밥(갈꽃)’부분을 나일론실로 엮는 것을 말하며, 이때 코바늘과 코잡기 틀이 사용된다(사진 9). 코잡기를 하면, 밥의 흐트러짐을 막고 힘을 받아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보통 2줄이나 3줄로 엮는다.
[고살메 마을 김종덕씨의 갈꽃비 제작 도구 ‘코잡기 틀’]
김종덕 씨가 갈꽃비를 처음 만들 때는 코잡기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빗자루를 사용하다 보면 ‘밥’(갈대꽃)이 힘이 없어서 빠지고 또 끊어지곤 하여, 빗자루가 얇아지고 수명도 짧아졌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나일론 실로 한두 줄 코잡기를 해 주었다. 코를 잡아주니 훨씬 짱짱하고 흐트러짐도 적고 밥이 빠지는 정도도 줄어 자연히 수명도 길어졌다. 기왕이면 모양도 내서 보기 좋게 만들어 보려고, 나일론 끈 색도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구입하여 사용했다. 1단은 빨강, 2단은 파랑, 3단은 빨강으로 멋을 내었다.
김종덕 씨는 코잡기 작업을 도구 없이 빗자루를 바닥에 놓고 했었는데, 바닥에 놓고 하니 많이 불편했다고 한다. 작업을 좀 더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하고자 빗자루를 세워놓을 수 있는 도구를 본인이 만들었다고 한다. 일명 ‘코잡기 틀’을 개발한 것이다.
조사자 : 이것(코잡기 틀)도 부모님께로부터 물려받으신 거예요?
구술자 : 아뇨, 바닥이서 하믄 불편하잖유. 그려서 지가 맨들었슈. 이렇게 세워서 험(하면) 훨씬 좋잖유. 속도도 나고.
코잡기 틀에 빗자루를 고정시켜 놓고 코를 잡아 주니 훨씬 수월하고 코잡기도 예쁘게 되어 기분이 좋다고 하였다.
김종덕 씨의 코잡기 틀은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만들어졌다. 빗자루의 모양을 따라 둥글게 코를 잡기 위해 반달 모양으로 만들었고, 또 코잡기 할 때 빗자루가 틀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미끄럼방지 고무판을 붙였으며(사진5, 사진6), 빗자루를 넣고 뺄 수 있도록 고리(사진7, 사진8)도 만들어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게 했다.
능숙한 코바늘 솜씨로 1단, 2단, 3단 모양을 낸 김종덕 씨의 갈꽃비는 단정한 매무새로 모양을 뽐내고 있다.
* 조사자 : 예전부터 사용하며 내려오던 것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용하기 편리하게 도구들을 개조하면서 좀 더 편리하게, 좀 더 효율성 있게 개발해가며 작업하시는 어르신의 자세와 지혜에 감탄하였다.
고살메에서 갈꽃비를 만드는 김종덕 씨의 작업장에는 여러 가지 도구들이 있다. 김종덕 씨는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도구들을 자신이 사용하기 편리하게 개조해서 사용하거나, 자신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다. 그러한 도구들 중 ‘동바’에 대해서 기록하고자 한다. 표준국어사전에는 ‘동바’가 ‘지게에 짐을 얹고 눌러 동여매는 데 쓰는 줄’이라고 나와 있다. 김종덕 씨는 ‘동바’를 ‘동빠’라고 소리내셨다.
<고살메 마을 김종덕 씨의 갈꽃비 제작 도구 ‘동바’>
‘동바’(사진 2)는 50센티미터 가량의 나무에 허리에 두를 수 있는 튼튼한 끈을 맨 것이다(사진 5). 그리고 양 엄지발에 끼우는 20센티미터 가량의 나무가 있는데, 이 둘을 와이어 줄로 연결해 놓았다(사진 3).
동바를 허리에 묶어 고정시키고 양 엄지발에 끼운 나무토막을 밀고 당기면서 와이어 줄을 조절하여 밥을 조인다(사진 6, 7, 8). 이렇게 동바로 조인 밥 7개가 빗자루 1개의 재료가 된다. 동바는 갈꽃비를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도구인 것이다.
동바의 와이어 줄은 일정기간이 지나면 일부분이 끊어져서 손가락을 찌른다. 그러면 줄을 교체해야 한다. 예전에는 와이어가 아닌 못 쓰는 전기줄을 주로 사용했다. 어느 날 김종덕 씨는 자전거포 앞을 지나다가 폐자전거의 브레이크 줄을 발견하고, 주인에게 말하여 브레이크 줄을 얻어서 동바에 사용했다고 한다(사진 4). 그 후에는 기회가 되는 대로 자전거포에 가서 와이어 선을 얻어다 놓고 사용했다고 한다. 폐자전거가 아무 때나 나오는 것이 아니어서 미리미리 구해 놓지 않으면 막상 필요할 때 구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구하기가 쉽지는 않았다고 한다.
기록내용
조사자에게 ‘갈꽃비’는 어린시절(10살 무렵)의 좋은 기억을 안겨주는 물건이다. 특별히 장날이면 작은 체구에 어깨 가득 ‘갈꽃비’를 매고 함박웃음을 웃으며 찾아오곤 했던 ‘고살메 할매’의 기억이 정겹다. 그리고 다른 빗자루보다 컷던 갈꽃비는 빗자루 대를 한 손으로 잡지 못하고 두 손으로 잡고 방안을 쓱쓱 쓸어내렸던 기억이다. 방 청소를 한다기보다는 장난치는 도구였던 것 같다.
‘갈꽃비’는 갈대꽃을 매어 만든 빗자루다. 조사자가 ‘갈꽃비’에 대해 관심을 갖고 빗자루 매는 과정을 기록한 바 있는데(2022년 마을기록 활동집 두 번째_사방팔방 서천이야기 67쪽~71쪽, 고살메 이장 현종규, 고살매 김종덕) 그때 갈꽃비 재료인 갈대꽃을 따는 과정도 기록을 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갈꽃비’를 만드는 재료인 갈대꽃은 7-8월에 가장 더운 때 채취한다고 해서 여름을 기다렸다.
조사자는 갈대꽃이라면 가을 신송리 갈대밭에 갔을 때, 활짝 펴서 솜털 같은 모양으로 있는 것이 ‘갈대꽃’으로 알고 있는 터라 갈대꽃을 채취할 때가 ‘가장 더울 때’, ‘최고로 더울 때’라고 강조했던 그분들의 말에 갈꽃비에 재료로 사용하는 ‘8월의 갈대꽃 모양’이 어떤 모양인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분들의 ‘빗자루 매는 모습’만이 아니라, ‘갈꽃비’의 재료가 되는 갈대꽃을 가장 더울 때 채취하는 모습을 기록에 남기고 싶었다. 어느새 8월 하순에 접어들었고, 갈대꽃 채취하는 모습을 기록하기 위해 현종규이장을 만났다.
[갈대 채취에 대하여 - 고살메마을 현종규 이장과의 면담내용]
현종규 이장은 1956년생이며, 고살메 마을에서 태어나서 젊었을 때 잠깐 고향을 떠났던 적은 있으나, 평생을 살고 있고, 현재는 삼산3리 이장을 맡고 있다. 건강상의 이유로 이제는 ‘갈대꽃’ 채취는 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특별히 조사자를 위해 갈대꽃 채취 시범을 보여 주셨다. 구술자와 조사자는 2022년 11월에 ‘갈꽃비’에 대해 면담을 나눈 인연이 있다.
구술자는 조사자에게 갈대꽃을 채취하려면 늪지라 물에 빠질 수도 있으니 장화를 신고 오라고 했다.
갈대 채취 시기
조사자가 갈대꽃 채취시기에 대해 물으니 7월 말부터 9월 초 ‘백로’까지 딴다고 했다. 첫서리가 내린다는 백로 때가 되면 갈대가 꽃이 활짝 피는데 그때 따는 갈대꽃은 빗자루를 매기에 질이 떨어져서 빗자루 맬 수가 없다고 한다.
구술자 : ‘백로’때 쯤 되면 갈대꽃이 펴유. (갈대꽃이) 핀다구혀유. 이것처럼 수술을 보며는 츠음엔 이렇게 방망이처럼(갈대꽃 새순)나오잖여유. 그렇다가 익으면 좌악 펴져유. 그런식으로 8월 말 9월 초 되며는 꽃이펴유. 그때쯤 되며는 갈대꽃 매기가 힘들어유. 질이 떨어져유.
여름철 7월 말부터 9월 초까지 어느 정도 농사일도 한가해졌을 때, 갈꽃을 채취해서 잘 말려 두었다가 농한기 때인 11월부터 빗 자루를 매서 판매한다고 한다.
구술자의 갈대꽃 채취 시작 시기
구술자는 젊은 시절에는 농사도 짓고 직장생활도 하고 하다 보니 빗자루 매는 일은 40세 정도에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갈꽃도 채취하러 다녔다. 특별한 동기가 있어서라기보다 고살메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일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구술자 : 우리 동네는 집집마다 거의 빗자루를 매유. 고살메 사람이면 거 의 누구나 갈대꽃을 채취하고 또 빗자루를 다 매유. 여자분들도 갈대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도 우리 동네로 시집오면 갈대꽃을 뽑으러 다니구, 빗자루도 매유 자연스럽게. 그때는 우리 동네서 빗자루 하는 사람들이 한 90프로(%)는 다 빗자루를 했기 때문에 너도 나도 다 매유. (그때 허리 굽으신 동네 어르신이 지나갔다) 저 아저씨는 빗자루 많이 매서 허리 꾸부러졌슈. 저 어르신은 빗자루 엄청 많이 맷슈.
갈꽃 채취 시범 – 고살메 뚝방, 개천, 산내리 도로변
조사자에게 갈대꽃을 직접 채취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 위해 갈대밭으로 향했다. 고살메 마을 뒤편 뚝방길을 따라 갈대밭이 형성되어 있었다. 마을에서 약 2~3킬로미터쯤 차로 이동한 후, 갈대 채취를 위해 구술자는 뚝방 아래로 내려갔다. 그런데, 갑자기 몸에 무언가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뿌렸는데, 알고 보니 ‘해충기피제’였다. 갈대숲에 해충들 특히 벌집이 있어 벌에 쏘이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구술자도 벌집을 건드려 위험했던 순간이 있었다고 한다.
논이 바라보이는 뚝방 아래쪽에서 갈꽃을 채취하던 구술자가 올라왔다. 그곳 갈대가 억셔서 잘 안 뽑아진다고 하천 쪽으로 내려가 봐야겠다고 했다. 조사자가 하천 쪽을 내려다보니 물이 차 있고 또 길도 없어 보였다.
조사자 : 저기로 내려간다는 거예요? 위험하지 않나요? 길도 없어 보이는데...
구술자 : 저렇게 보여 두 논두렁 같은 길이 있슈.
구술자는 내 염려는 아랑곳하지 않고, 하천 쪽으로 성킁 성큼 망설임 없이 내려갔다. ‘아, 이래서 장화를 신고 오라고 했구나’ 나도 따라 내려갔다. 구술자 머리 위로 갈대꽃이 꼿꼿하게 하늘을 향해 서 있다. 구술자는 갈대를 휙 잡아채서 꽃을 뽑는다. 오른손 왼손 오른손 왼손 빠른 손놀림이다. 그런데, 이곳도 갈꽃이 썩 맘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다시 뚝방으로 올라 차를 몰고 산내리 쪽으로 달렸다. 가르메에서 산내리로 가는 도로변에 차를 세웠다. 그리고 갈꽃을 빠른 손놀림으로 뽑기(채취하기) 시작했다.
8월 말이지만, 오후 햇빛은 강렬했다.
[갈꽃 채취 장소]
갈꽃채취는 일정한 장소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갈꽃 있는 곳이면 다 다닌다. 주로 가까운 전라도 군산·옥구·미면으로 다녔고, 진안이나 청양·대전 쪽으로도 다녔다. 직접 뽑기도 하지만, 갈대지역에 사는 주민들한테 미리 연락을 해서 갈대(갈꽃)를 건조 해 놓으면 값을 치르고 사온다. 멀리는 영산강 쪽과 연천 쪽으로도 다녔다. 타지역에서 사오는 경우는 운반비용 등의 이유로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구매해서 나눈다.
[갈꽃 따는 자세]
구술자는 본인 키보다 훨씬 높이 솟아있는 갈대를 잡고, 쑥쑥 갈꽃을 뽑으면서 갈꽃 따는 자세에 대해 말해 주었다. 갈대가 키가 크기 때문에 갈대꽃을 채취할 때는 자연히 고개가 하늘을 향해 있게 된다. 그래서 눈만 내놓고 얼굴을 다 가린다. 뜨거운 여름 햇볕에 고개를 들어 해를 바라봐야 갈대를 뽑을 수 있으니, 갈꽃채취가 끝나면 동네 사람들 모습이 다른 데는 괜찮은데, 눈 주변만 새까맣게 타서 너도나도 꽹해 보이는 모습이 고살메 풍경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갈꽃을 따러 갈 때 의상]
“이런 옷은 안 돼유.” 구술자는 자신의 체크무늬 상의를 가리켰다. 갈대밭에 갈대는 색깔 있는 옷, 선크림, 화장품, 향수 등은 피해야 한다. 오늘은 일하다 오느라 옷을 갈아입지 않고 왔는데, 갈꽃을 따러 갈 때는 색깔 있는 옷을 입으면 안되고, 화장품이나 썬크림도 바르면 안 된다고 한다. 특히나 향수는 더욱 안 된다. 벌이 밝은색이나, 화장품 냄새를 맏고 달려들기 때문이다.
구술자 : 벌들이 색깔 있는 옷을 입으면 달겨 들어유. 그러구 선크림이나 색깔 있는 옷은 조심혀야 되유. 벌이 달겨들어유.
[갈꽃 채취시 위험요소]
갈대밭은 여러 위험 요소가 많이 있다. 갈대가 무성하여 벌이나, 뱀, 벌레들이 많이 있다. 특히 벌이 많다. 그리고 위만 바라보며 갈대꽃을 뽑기 때문에 발아래 바닥이 보이지 않아 웅덩이나 하수구에 빠지는 일도 다반사다.
벌에 8방 쏘여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약 3년 전 전북 진안군 부기면에서 갈대꽃을 채취하다가 왼쪽 팔에 벌 8군데 쏘이는 사고가 있었다.(구술자 팔에 벌 쏘인 부분 가리키면서 그때의 위험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구술자 : 전북 진안 부기 가가지구 벌을 쐈슈. 여기 왼쪽 여기 벌이 들러 붙드라구유. 벌집이서 벌이 수십 마리가 윙~ 덤벼드니까 갈대꽃 을 뽑은 눔 가꾸 도망 온거유. 도망 왔는데, 팔뚝에 벌이 붙었드 라구. 벌이 붙었는데, 일단 그 자리를 피혀서 부기면 면소재지루 약방을 찾아 갈려구 거기가서 팔둑을 걷구 보니까 벌 쏘인디가 보이잖여유. 빨갛게 부어올르드라구유. 거기서 주는 약 먹구 곧 바로 집으로 귀가했쥬. 죽는 줄 알았슈.
8월이면 벌들이 가장 왕성하게 활동할 때라 갈꽃 따는 사람들은 보통 1년에 1회 이상은 벌에 쏘인다. 구술자 역시 예외는 아니었 는데, 진안 부기면에서는 벌집을 건드렸던 것이다.
함께 갔던 안식구가 배수로에 빠질 뻔한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청양에서 부부가 함께 갈꽃채취를 하는데, 갑자기 “아구~~” 하는 외마디 소리가 들렸다. 구술자의 안식구가 발아래 배수로가 있는 것을 모르고 그곳에 발이 빠진 것이다. 다행히 갈대가 숲처럼 우거져 있었고, 엉키듯이 있어서 발만 빠졌고, 수문 아래로 떨어지지는 않았다.
구술자 : 수문 아래로 떨어졌으믄 살아남지 못혔을 거여유. 다행히 큰 상 처 없이 여기저기 시커멓게 멍만 들었드라구유.
뱀에 물려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
산골 밑 하천에 갈밭에는 뱀들이 기어다니는데, 갈꽃채취는 위에만 쳐다보는 작업이라 하늘 향해 갈꽃채취를 하고 있는데, 함께 갔던 아주머니가 종아리가 따끔해서 보니 뱀이 도망가는 것을 보고 뱀에 물린 것을 알았다. 아주머니는 어지럼증이 왔고, 곧바로 인근 동네가서 주사 맞고 약 먹고 다행히 별고 없었다고 한다.
[갈꽃 운반]
지금은 다 차가 있어 자기 차로 운반을 하지만, 차가 없었던 시절에는 대중교통(기차나 버스)을 이용했다. 기차나 버스를 이용하기 쉬운 고장으로 채취하러 다녔다. 구술자는 주로 기차가 다니는 웅천 천으로 다녔고, 군산 옥구 쪽으로도 다녔는데 비행장, 미면 등으로 버스 타고 배 타고 버스 타고 그렇게 여러 번 갈아타면서 다녔다.
운반하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갈꽃채취 양에 한계가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런 것은 관계치 않고 있기만 하면 뽑을 수 있는 만큼 뽑아서 큰 보자기 여러 개에 잘 싸서 덩치가 크니 땅에 끌리지 않게 어깨에 메고 겨드랑이에 끼고, 아줌마들은 머리에 이고 안고 무조건 차에 탄다.
[갈꽃 관리 및 저장]
갈꽃채취는 그해 날씨에 따라 채취 양이 다르다. 비가 많이 오는 때는 홍수로, 폭우로, 갈대가 자빠진다. 그래서 채취량이 적고, 날씨가 좋은 해에는 채취량이 많다.
갈대꽃을 집에 오자마자 뜨지 않게 말린다. 여름에는 해가 좋아서 아침에 널어놓으면 저녁때면 다 마른다. 말리는 것도 넓은 면적에다 하루에 말려야 하는데, 왜냐하면 다음날 뽑아온 것을 말려야 하기 때문이다. 말린 것은 서늘한 곳에 싸놓는데, “특별히 창고가 있느냐”는 질문에 옛날에는 창고랄 것이 없고, 뒷방에다 쌓아 놓았다고 한다.
구술자 : 옛날이는 창고랄 것이 없구 뒷방, 그런디다 쌓아 놓는 거쥬. 보물 은 아니지만 보물에 가까운 거니까 잘 쌓놨슈. 이게 햇빛이 쬐면 말라 비틀어지니까 일단 말린 담에는 햇빛을 쏘이면 안 되유. 서 늘한 곳이다가 잘 보관혀야 되유. 그런 담에 혹시 들 말른 경우 도 있잖여유. 잘 봐야 되유. 떠버려요. 들 말린 것을 사왔을때는 뜨니까, 더러 펴봐야 되유. 펴보면 알아유.
이렇게 정성스럽게 가을 동안 잘 말려 보관해 둔 갈꽃은 겨울 농한기 때 빗자루를 만드는 귀중한 보물같은 재료다.
[갈꽃 채취하면서 기억에 남는 기뻤던 일]
갈대도 품종에 따라 빨리 피는 꽃이 있고 늦게 피는 꽃이 있다. 또 색깔이 붉은색과 파란색이 있는데, 붉은색 보다 파란색이 더 좋은 품종으로 알아준다.
좋은 갈꽃을 채취하기 위해서 갈대밭을 찾아서 헤맨다. 대전 흑석동과 문화동 주변 하천 일대에서 채취하려고 갔는데, 하천을 정비하느라 석축을 쌓고 있어서 갈대꽃은 뽑지도 못했다. 전주 쪽으로 내려와 진안까지 갔는데도 갈꽃은 겨우 20자루 정도 뽑아서 오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는 몸도 지치고 마음도 힘들다.
갈꽃도 같은 장소여도 일찍 피는 품종이 있고, 늦게 피는 품종이 있는데, 약 200평 되는 곳에 파란빛을 띠는 좋은 갈대꽃이 군락을 이루어 일제히 피어 있는 곳을 만났을 때 “와~ 오늘 일당 했다.” 거기서 자리 잡고 원 없이 뽑았던 기분 좋았던 기쁜 날도 있었다.
현재 현종규는 갈꽃채취를 하지 않는다. 올해 초, 교통사고로 다친 후로 몸이 많이 약해졌고, 그리고 갈꽃비를 찾는 사람들이 현저하게 줄어들어 빗자루 매는 일이 수익성이 없어지기도 한 때문이다.
[갈꽃애환 – 갈대밭 주인들의 갑질]
갈대밭도 주인이 있는 곳이 있다. 아무데서나 갈꽃을 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논 옆에 있는 갈대는 논 주인들이 주인행세를 하였고, 또 어떤 경우는 마을에서 관리한 땅도 있었고, 그 사람들이 관리하면서 갈꽃을 못 따게 제제를 했다. 그래서 밤에 몰래 다니면서 뽑기도 했다. 특히 달밤에 많이 다녔는데, 달이 없을 때는 칠흑같이 깜깜해서 안보이니까 주로 달밤에 뽑았다. 지금 80대 어르신들은 그런 경험들이 있으신 분들이시다.
갈꽃을 따는 아이들도 있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학교에 가지 못하고 집안 살림을 돕기 위해 갈꽃을 따는 아이들이다.
구술자 : 말로하면 눈물나유. 애들, 초등핵교 졸업허구 중핵교 못간애들, 그 애들이 갈꽃 뽑으러 오는디, 옛날이는 밀가루 푸대{포대}에 꺾 어서 담았는데, 논주인들이 밭주인들이 밀가루 푸대{포대}를 뺏 어. 갈꽃을 딸라면 밟았다 꺾었다 허거든유. 밭도 상하게 하기도 허구, 그런애들은 수문에 올려놓고 때리기도 허구 뺏기도 허구 그랬다구 허드라구유. 전라도 저기~ 미군부대 있는 쪽으로 전라 도 옥구 하제 상평 염전 근방으로 가유 뱅장(비행장) 근방서. 옛 날이는 힘들구 애들이 오면.... 농작물 밟기두 허구 손도 대기두 허구 갈대두 자기들이 사용혀야는데 헤친다구혀서 그랬다구 혀 유. 갈대꽃 뽑으러 가믄 애들이 도시락를 싸갖구 다니야잔유. 근 디 안 싸갖구 와유. 그만큼 어려울 때니까. 그러다 보니 간혹 남 이 밭이 가지 같은 거 따먹기두 하구 또 참외나 오이 같은 거 따먹기두 허구 그래서 특히나 농작물을 헤치니까.
[갈대의 쓰임새]
갈대는 갈꽃비를 만드는 용도 외에도 쓰임새가 많았다.
조사자 : 갈대가 쓰임새가 많다고 하셨는데, 어떻게 사용되었나요?
구술자 : 갈대로 여러 가지 일을 해요. 갈대는 버릴게 없어유. 갈대로 삼발 도 엮고, 63발 엮어서 그늘지게 그늘망을 만들구. 또 갈대를 비 어서(베어서) 팔아요. 갈대는 물을 정화 시키잖어유. 갈대밭에 있 는 물을 아주 말고 깨끗해유. 일 끝나면 그 물에 씻고 옷 갈아 입고 집으로 와유.
※ 이 외에도 어린 순은 나물로도 먹고, 뿌리(노근)는 약재로 쓰인다. 바구니 를 만들기도 했고, 굵은 것은 김 발로 이용했다, 옛날에는 초가지붕을 덮는데 사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사진
<사진1. '갈꽃비' 재료로 쓰이는 '갈꽃'>
<사진2. '꽃이 핀 갈꽃'_비를 매기 부적합>
<사진3. 길산천 갈꽃 채취(고살메 뚝방)>
<사진4. 갈꽃 채취(산내리 길)>
<사진5. 길산천 갈꽃 채취(고살메, 해충기피제)>
<사진6. 길산천 갈꽃 채취(고살메, 물문)>
<사진7. '갈꽃비' 재료, 채취된 갈꽃>
<사진8. '갈꽃비' 재료 '갈꽃 채취'>
<사진9. 말린 갈꽃>
<사진10. 갈꽃비 재료 '밥'>
<사진11. 갈꽃비>
기록개요
생산자료
음성 녹음 : 21개(약 36분 43초)
서천군 평생학습센터, 예소아카이브,
사방팔방 서천이야기 마을기록단
붙임자료
※ 이 마을기록은 평생교육팀 '마을기록활동가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사방팔방서천이야기 마을기록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마을기록활동가들이 기록한 자료입니다.
※ 본 내용의 저작권은 1차 저작자(기록자)에게 있습니다. 본 기록의 무단 배포와 변형, 활용을 금지합니다.
기록내용
구동1리 마을의 주민복지시설 마을회관은 주민회의, 교육, 운동, 휴게 등
마을의 복합문화 공간 기능을 하고 있다. 마을회관 앞에는 2020년 조성 및 설치된 재활용창고, 생활폐기물 분리수거장이 있다.
1. 구동1리 마을회관
1) 언제 지어졌나요?
- 회관이 세워진 건 건축물 관리대장에 보면 2006년으로 되어 있구요. 2020년에 태양열, 지열설비 다 갖췄어요.
붙임사진 : <사진 1참조>
2) 어떤 용도로 사용되고 있나요?
- 마을 관련된 일들은 다 여기서 이루어진다고 보면 돼요.
- 회의도 하고, 교육도 하고, 김장도 하구요.
- 마을 방문하시는 분들도 1년에 한두 번 숙박을 제공하기도 했어요.
붙임사진 : <사진 2,3 참조>
3) 건축물과 관련된 이야기를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 옆에 있는 팔각정, 나무 밑에 휴게 의자들 다 주민들 손으로 한 거구요 동화정이라고 현판도 붙였어요.
붙임사진 : <사진 4,5참조>
4) 형화마을이라는 이름은 언제, 누가, 어떻게 만들어 졌나요?
- 마을 주민들이 만들었어요. 2020년 8월경인가 그래요. 몇 가지 의견이 있었는데 그중에 이게 된 거예요. 그땐 반딧불이 많았었고. ‘환경도 신경 많이 쓰고 동네가 깨끗했으면 좋겠다. 좀 빛났으면 좋겠다. 청정지역으로 만들자.’ 그렇게 결정된 것 같아요.
- 처음에 반딧불이 마을 이야기가 나왔었는데, 사실은 지금 최명규 서천문화원장한테 가서 얘기 나누다가, “구병골이니까 9개월 반짝반짝 빛나게 아홉 구비 형화마을로 하면 어떨까요?” 해서 이렇게 된 거예요.
- 서체도 직접 쓰고 해서 직접 다 만들어서 왔었어요. 마을 주민들이 모여 현판식도 했어요.
- 그런데 지금은 반딧불이가 안 보여요. 농약 등 사유도 있겠지만, 중요한 건 먹이가 없어서 그렇지 않은가 생각해요. 소똥 이런 게 없잖아요.
붙임사진 : <사진 6,7,8,9참조>
2. 재활용창고, 재활용분리수거장은 언제 만들어졌어요?
- 재활용창고와 그 옆에 재활용 분리수거장은 2020년 마을 가꾸기 사업으로 세워졌어요.
<붙임 사진 10, 11>
사진
<그림1. 구동1리 마을회관, 재활용창고, 생활폐기물분리수거장 위치도>
<사진1. 구동1리 마을회관>
<사진2. 마을 주민 건강교실(마을공동체 제공)>
<사진3. 마을 김장(마을공동체 제공)>
<사진4. 구동1리 쉼터, 동화정>
<사진5. 동화정 휴게벤치 설치(마을공동체 제공)>
<사진6. 형화마을 현판(마을공동체 제공)>
<사진7. 형화마을 현판 설치(마을공동체 제공)>
<사진8. 형화마을 현판 설치(마을공동체 제공)>
<사진9. 구동1리 재활용창고>
<사진10. 구동1리 재활용분리수거장>
기록개요
생산자료
생산 자료 : 그림 1점, 사진 4장
서천군 평생학습센터, 예소아카이브,
사방팔방 서천이야기 마을기록단
붙임자료
※ 이 마을기록은 평생교육팀 '마을기록활동가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사방팔방서천이야기 마을기록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마을기록활동가들이 기록한 자료입니다.
※ 본 내용의 저작권은 1차 저작자(기록자)에게 있습니다. 본 기록의 무단 배포와 변형, 활용을 금지합니다.
기록내용
신축중인 판교우체국 소재 형암리 일원 22,768㎡(93필지)가 2021년 10월31일 국가근대역사문화공간으로 등록되었다.
「서천 판교 근대역사문화공간」은 1930년 장항선 판교역 철도개통과 함께 근대기 서천지역 활성화 중심지로 양곡을 비롯한 물자의 수송과 정미, 양곡, 양조산업, 장터가 형성되어 한국 산업화 시기의 번성기를 맞이하였고 2008년 철도역 이전으로 본격적인 쇠퇴의 과정을 거친 근‧현대기 농촌지역 역사 흐름의 흔적들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공간이다. 이러한 생활사적 변화의 모습을 알 수 있는 다양한 문화유산들이 집약적으로 분포하고 있어 면적 공간단위 문화재로서 역사적 가치가 있다.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 -
[ 판교우체국 신축 이유와 신축방향 ]
조사자 : 사전에 협조 요청은 드렸는데, 정신없이 바쁘시네요.
(구,중대본부로 임시이전 준비가 한참이었다.)
구술자1 : 지금 막 짐 정리 중이에요.
구술자2 : 판교우체국은 이 자리에 들어온 지가 40년? 41년인가 됐어요. 당시에는 집 배원 3명이 판교면을 집배를 했었지. 이렇게 하시다가 한 2~3년 전에 광역화로 집배원들이 다 서천으로 떠났고. 여기는 3명이 근무하는 3인 관서로 바뀌었는데, 자세한 기간은 한번 자료를 찾아봐야 알 수 있어요.
구술자2 : 여기가 옛날에 집배원들이 쓰던 공간이에요. (휴게실) 지금은 2명이 근무 하는 2인 관서로 운영되는데, 2인 관서가 된 것은 업무량이 작아지니까 그렇게 바뀌었겠죠. 그리고 지금 새로 신축을 한다는 얘기는 40년 이상이 되어서 노후화 됐다는 거죠.
구술자1 : 81년 8월에 여기 리모델링을 했어요. 40년이 넘었다는 얘기죠.
많이 노후화 됐죠.
조사자 : 그런데 이쪽 오신 게 신축 이전이 아니었잖아요
구술자2 : 81년도에 여기로 지어서 왔겠죠. 저쪽(현대양품)에 있다가 여기 온 거지.
조사자 : 기록을 좀 보니까요. 현대양품 자리가 소유권이 바뀐 게 68년도였더라고요. 그리고 그 공간이 공부상 기록이 현 건축 건물주로 바뀐 시기가 84년이에 요. 그러니까 지금 말씀 주신 81년이 맞는 것 같아요. 신축 이전인 거로 보 이고, 81년도부터 따지면 40년 된 게 맞네요. 그러면 지금 신축을 하려고 하는 이유가 40년 이상 된 건물의 노후 때문에 당장 필요한 거구요.
구술자2 : 노후화 건물 신축인데 우정사업본부에서는 테마가 있는 우체국을 만든다고 해요.
조사자 : 건축 방향이네요.
구술자2 : 그렇죠. 지역 특성과의 연계점 찾아서 하려고 하는데 청 직원들은 잘 모르니까 서천은 무슨 갈대숲우체국 이렇게 내려왔어. 그래서 이제 우리끼리 우스갯소리로 ‘무슨 여기가 한산이간디 갈대숲이여. 판교하면 도토리 우체국이라고 하든가’ 해야지 했어요.
조사자 : 그 말씀도 나오셨네요.
구술자2 : 판교면 도토리인데 왜 거기가 갈대가 붙어 갖고 와.
조사자 : 어떤 방향으로 될지 아직 결정 안 됐죠. 처음에 얘기만 그렇게 나온 거지. 아직 진행은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구술자2 : 이제 진행을 하면 앞에 조형물 같은 것을 도토리 같은 걸 논다든지 아니면 벽면에 이렇게 도토리를 그려 붙인다든지.
조사자 : 근데 아마 본청 본부 차원에서 진행이 되긴 하겠지만 어떤 컨셉으로 설계할 지 공모를 하겠네요.
구술자2 : 그렇지 근데 사업본부에서는 그냥 갈대숲 우체국 뭐 이런 것들로 (우체국 신문에도 나갔어) 우체국을 전국적으로 40여개 테마가 있는 우체국으로 새로 짓는다 그러면서 몇 개의 모델로 했잖아. 한옥으로 짓는 우체국 등... 판교우체국도 포함된 거죠.
조사자 : 그러면 전국에 계획상 몇 개가 되죠?
구술자2 : 지금 대략 40개소, 보령 주산도 이번에 지어요.
조사자 : 저도 한번 기사 자료로 본 거 같아요. 그리고 설계하는 팀이었나 정확하게 모르겠는데 얼마 전에 한분이 다녀가셨어요. 설계하는데 마을의 정서를 좀 확인해 보고자 왔다고 해서 마을의 특성을 잘 반영했으면 좋겠다고 얘기는 했었어요.
구술자2 : 우리 충청청에 이렇게 몇 개 우체국을 지어야 되는데 그냥 급하게 위에서 자료 달라고 하니까 서천하면 신성리 갈대밭 이런 것이 먼저 생각났던 거야.
조사자 : 어떻게 보면 대표성 있는 거를 찾은 거일 수도 있죠?
구술자2 : 그런데 여기 판교우체국 짓는데 무슨 갈대숲을 붙여놓은 거야. 갈대가 왜 판교 와서 붙어 그랬지.
조사자 : 그때 말씀을 주셨어요?
구술자2 : 우리끼리 한 얘기예요.
조사자 : 근데 현지 의견을 듣는 그런 절차는 없어요?
구술자2 : 아니, 그런 것은 문의 오거나 그런 건 없더라고요. 우리끼리 앉아서는 판교 오면 도토리로 하야여. 우리끼리는. 그게 나중에 이제 우리한테 의견을 물어보면 해야죠.
조사자 : 본청에도 그 얘기가 좀 들어갔으면 좋겠네요.
구술자2 : 도면은 안 나왔어도 설계는 들어갔을 텐데, 우리한테는 도면 안 나오지만....
구술자3 : 설계사무소에서 진행을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구술자2 : 지금 3월이면 한 4월이면 철거 작업 들어간다고 보고 지금 설계를 하고 있다라는 얘기인데.
조사자 : 혹시 의견을 내실 절차가 있으시면 컨셉은 30년대 70, 80년대 근대역사문화 공간이고, 만약에 그게 어렵다고 하면 외부공간 일부라도 그 컨셉으로 맞춰 주시면 근대역사문화공간이라는 마을의 정체성이 새로 만들어지는 거거든요.
구술자2 : 우리가 이제 그런 것을 의견 타진이 들어오면 그렇게 얘기는 하겠지만 우리보다는 더 전문가님들한테 이게 (전달돼야겠네요).
조사자 : 아마 설계팀이 다녀간 걸 보면 그런 오더가 있긴 있었을 것 같아요. 공개 공모하는 형태로 설계 공모를 했으면 여러 팀이 참여를 할 거 아니에요.
구술자2 : 설계사무소는 정해졌잖아.
구술자1 : 네 정해졌어요.
조사자 : 그러면 최종 심사받는 과정에서 중간에 의견을 내고, 1차 가안을 내고, 그다음에 가안을 몇 개 낼 거 아니에요. 그중에 선정하는 과정이 있겠네요.
구술자2 : 어느 어느 우체국은 설계사무소가 어디, 어느 우체국은 어디, 다 나와 있는 것 같은데.
구술자3 : 그거는 나와 있어요. 그러니까 우정청에서 할 거, 조달센터에서 할 거다 하는데, 우리는 조달센터에서 하는 거 아니에요.
조사자 : 그러면 그때 다녀가신 분이 그 설계사무소 인원 중에 하나였을 것 같고, 그 분한테 이런 마을 얘기들을 해드렸거든요. 그러면 일부 반영이 되긴 하겠네 요.
구술자2 : 외벽을 30년대식으로 해달라고 해야겠구만.
조사자 : 지금 저희가 그런 기록들을 찾는 작업들을 하기는 하거든요. 그런데 좀 아쉽 게 30년대 건물은 사진이 없어요. 사진이 있어서 그런 풍광이면 더 좋을 텐 데. 찾아본 내용들 중에 일제강점기 1933년도 4월 1일자 동아일보에 주민들 이 판교우편소를 세워달라고 했고, 35년도에 세워졌고. 실명 윤재헌이라는 분이 계속 우편에 대한 얘기들을 하니까 그게 신문으로 기사화됐던 그런 자 료들만 남아 있어요.
[ 판교우체국 인력, 시설, 업무 현황 ]
조사자 : 인원 현황은 3인 관서, 2인 관서 그런가요?
구술자1 : 지금은 2인 관서. 옛날에 인원 현황이 좋았어요. 여기가 4인 관서. 지금은 이제 두 명이에요.
조사자 : 그럼 2인 관서, 2인이라고 하는 것은 정원이 2명이네요?
구술자1 : 예.
조사자 : 우체국 시설현황은 이렇게 시설로 보이는 공간 말고 다른 장비들이 있나요? 예를 들어서 집배를 여기서 한다면, 집배용 장비나 설비 등이 장부로 잡혀 있는 건 없나요?
구술자3 : 그렇죠, 보이시는 게 다예요.
조사자 : 그리고 우체국을 주로 이용하시는 분들은 주민들 일거구요?
구술자1 : 근데 제가 와서 보니까 하루 평균 25~30명 정도 고객님들이 오 세요. 우편은 그보다는 적은데 예전에는 좀 소포가 좀 잘 됐는 데.... 지금은 한우마을도 씨제이로 넘어갔어요. 그리고 농협에서도 지금 택배사업을 하다 보니까 우체국 이용이 줄고 사업이 좀 위축 돼 있어요.
조사자 : 그런 상황은 우리 판교 사정만이 아니라 다른 데도 비슷하지 않
을까 싶어요.
구술자2 : 그 말씀이 맞네요.
조사자 : 어떤 사람이 이용하고 있냐는 궁금함도 있지만 우체국에서 취급하는 업무나 서비스도 궁금해요. 국장님 말씀하신 대로 금융업무, 우편업무, 보험업무가 있는데, 보험업무는 어떻게 수요가 좀 있어요?
구술자1 : 없어요. 이제 여기 가입 연령대 자체가 어르신들이 많으니까요. 보험사업은 거의 안 되고, 예금, 정기예금하시고 그런 거죠.
조사자 : 금융이라고 하는 것이 이제 예금 포함인데, 어르신들 뵈면 우체국 통장 하나 씩은 다 가지고 계시더라고요. 그리고 우편업무 중에 소포라고 표현을 하죠. 택배라고 안 하고, 또 일반우편은 뭐라고 그래요?
구술자1 : 등기, 일반우편물.
조사자 : 등기 및 일반우편이요. 또 다른 업무는 없나요?
구술자1 : 이제 다 들어가 있고 끝났네요.
조사자 : 그리고 시설의 변화는 아까 말씀하셨던 것처럼, 81년도 신축해서 왔고 그 뒤로 증축이나 개축 이런 건 없었어요? 81년 이후로.
구술자1 : 중간에 내부만 리모델링 조금 했어요.
조사자 : 나중에 물건 다 비워지면 제가 공간기록은 다시 하겠지만 1층이 있고 2층이 있나요?
구술자1 : 예, 2층은 직원들 관사로 쓰였어요.
조사자 : 직원 관사요. 지금도 쓰세요?
구술자1 : 안 쓰죠. 처음에 관사로 지어진 거죠.
조사자 : 그리고 1층에는 기본적으로 사무기능 이외에 또 다른 기능들이 있나요?
구술자1 : 대부분 사무기능, 창고, 휴게 기능 등이에요.
[ 우체국 운영의 어려움과 앞으로의 바람 ]
조사자 : 앞으로 우체국이 어떻게 바뀔 것 같고, 어떻게 바뀌셨으면 좋겠어요?
구술자2 : 우체국이 새로 집 짓고 들어오면 쾌적한 환경일 테고 일단 노후 환경에서 살다가 새로운 건물로 가면 기분도 좋고 주민들 이용하는 게 좋겠지. 근데 판교우체국이 건물은 새로 짓기는 해도 이게 얼마나 더 유지될 수 있을까 걱정....
구술자3 : 걱정이죠.
구술자2 : 도시 인구가 자꾸 줄음으로서 초등학교 애들 입학생 한 명이니 두 명이니 하는 것처럼 시골도 이제 노인 양반들 돌아가시고 나면 젊은 사람들이 안 들어오고 하면 아마 국가기관이라고 해도 버티는 게 한도가 있으니까 그런 것들이 제일 걱정이고, 고객들이 우체국 예금 사업도 있고 보험 사업도 있고 하니까 그런 사업들이 원만히 이루어져야 유지가 가능한데, 그런 것들이 잘 안 되다 보니까 3인 관서에서 2인 관서로 운영되고 있는 실정인데. 그런 사업들이 계속 유지가 안 된다고 하면 우체국을 새로 지었다고 해도 어느 시점에는....
구술자3 : 어느 시점.... 아이고 이제 그만 하겠죠.
구술자2 : 우리는 서천 사람이니까 서천에 읍, 면마다 다 하나씩 있었으면 좋겠는데.
조사자 : 그렇죠. 그리고 우리 본청 직접사업하고 민간 사설우체국들이 있잖아요. 일 반인들 입장에서는 판교나 문산이나 시초나 다 똑같다고 보는데 좀 다르잖 아요. 우리 관내에 사설 우체국이 어디 어디 있어요?
구술자2 : 문산, 시초, 마산의 명신 우체국, 기산, 마서, 서면 여섯 개
조사자 : 종천도 있지 않아요?
구술자2 : 종천은 폐국됐어요. 작년에.
조사자 : 그러면 서천우체국 총괄국하고, 판교, 그리고 장항도 있구나.
구술자2 : 한산, 비인, 화양. 우체국을 이해하시려면 이렇게 이해를 하셔야 돼요. 일제강점기 뒤로 시장이 형성되는 곳은 나라가 세운 우체국이 있는 거야.
조사자 : 시장, 사람이 있는데?
구술자2 : 그러니까 시장이 잘 형성이 안 되고 산간 오지면 60년대에 민자 유치를 해서 별정국을 세우게 한 거지. 요즘으로 말하면 민자유치여.
조사자 : 여기는 일제강점기에 생겼으니까 직접 나라에서, 여기 판교장이 있었으니까 이해가 돼요.
구술자2 : 그럴 수 있는 게 똑같은 전국적인 현상이에요. 충청도만이 아니고 전국적 으로 이루어져 있거든요. 그래서 일반국(일반우체국)이 있는 곳에는 조금 그래도 경제적 활동 인구가 있고 읍단위라든가 이런 게 좀 규모가 있고, 별정국(별정우체국)이 있는 곳은 제일 처음에 민자를 유치했으니까, 그때 당시 처음에 국장들한테는 급여를 안 주고 무보수였지. 그때 당시에 별정우체국을 세우신 분들은 대부분의 그 지역에서 제일 잘 나가는 유지분들 중에 좀 협조해 달라고 하니까. 그 양반들이 자기 땅에 건물을 직접 짓고, 국장들 급여는 안 주고 등기, 소포 수수료를 받았어요. 경제수준이 어느 정도 올라오니까 직원들 월급도 나아지고 국장들도 주게 되고 했었는데. 지금에 와서 별정우체국을 없애려고 하니까 이상한 거지. 나라가 아쉬울 때 이렇게 해달라고 그래서 그 사람들이 이렇게 해줬는데 지금에 와서 그 돈벌이도 안 되고 그렇게 하니까 그만둬하는 상황이 된 거야. 폐국을 걱정해야하는 상황이... 우정사업본부에서는 인건비도 안 나오고 하니, 뭐 문 닫았으면 좋을 상인데 그 사람들이야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냐하는 거지.
구술자1 : 주민분들이 우체국을 좀 많이 이용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정말
종천우체국이 폐국이 됐잖아요. 그러면서 거기 이용하는 주민들이 이용할 공간이 없어지다 보니까 그분이 이쪽으로 많이 넘어오시고 계시는데 그분들은 불편하시죠.
조사자 : 판교도 폐국에 대한 논의는 있었지만 이런 좋은 사업으로 인해서 새로운 어떤 예쁜 우체국이 만들어질 지는 희망적인 이야기를 담긴 기록이 되겠네요.
구술자1 : 좋아요. 좋아요. 주민들이 좀 많이 이용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면 사무소 이런데는 일반 회계이기 때문에 세금으로 급여를 받잖아 요. 저희는 사업하는 조직이다 보니 세금으로 급여를 받는 공무원 조직이 아니라 특별회계여가지고 사업성과가 중요해요. 저희는 사 업을 잘해야 돼요. 근데 이제 일반 은행이나 이런 데처럼 활발하 게 영업할 수 있는 구조도 아니고... 그리고 수익성이 안 나면 그 냥 점포를 없애버리잖아요. 저희는 국가기관이다 보니까 보편적 서비스를 또 해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이제 유지를 하기는 하는데 그게 이제 걱정이 되는 거죠.
조사자 : 그러시겠네요. 오늘 정말 고맙습니다.
사진
<그림1> A. 신축 중인 판교우체국(2023.6 철거전 _ 종판로901번길5)
B. 임시 판교우체국(.2023.3.6. 이전,구,중대본부_ 종판로881-2)
C. 구,판교우체국 (1981. 현,현대양품_종판로83-1)
<그림2> 국가등록문화재 판교근대역사문화공간(2021.10.13.)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
<사진1> 판교우체국 외부 전경
<사진2> 판교우체국 내부_카운터
<사진3> 판교우체국 내부_대기실
<사진4> 판교우체국 내부_자율포장대 자동현금지급기
<사진5> 판교우체국 철거_시작(2023.06.09.)
<사진6> 판교우체국 1층 평면도/ 판교우체국 제공
<사진7> 판교우체국 철거_완료(2023.06.26.)
<사진8> 임시 판교우체국(구,중대본부(2023.03.06.))
<사진9> 판교국 시외 집배구획도
(1993.09.23.) / 판교우체국 제공
<사진10> 판교우체국 신축 건축허가표지판(2023.07.14.)
기록개요
생산자료
서천군 평생학습센터, 예소아카이브,
사방팔방 서천이야기 마을기록단
붙임자료
※ 이 마을기록은 평생교육팀 '마을기록활동가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사방팔방서천이야기 마을기록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마을기록활동가들이 기록한 자료입니다.
※ 본 내용의 저작권은 1차 저작자(기록자)에게 있습니다. 본 기록의 무단 배포와 변형, 활용을 금지합니다.
기록내용
1. 우물과 샘은 어디에 있나요?
- 마을에는 작두샘이라고 불리는 참삭골 우물, 약물샘이라고 불리는 턱골샘, 그리고 현재 사용하고 있는 샘물로 아랫뜸(고라실)에 하나, 중뜸에 셋, 윗뜸에 하나, 소라티에 한 곳이 있어요.
- 대부분 식수로 사용되지만 가뭄이 들거나 하면 농사용으로도 쓰고 개인 우물로 파서 사용하다가 공동우물 사용되기도 했다고 해요.
2. 우물과 샘과 관련된 이야기를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 위뜸(낡은터) 박옥희님 댁 우물(⑥)이 특이해요. 일 년 내내 산에서 나는 물을 이용하는 거요.
- 절구를 심어놓은 것처럼 웅덩이를 만들고 호수를 연결해서 한번 모으고, 다시 호수를 이용해 집안으로 끌어들여 사용하고, 넘쳐흐르는 물은 밖에서 생활용수로 사용하는 지혜요.
- 중뜸 양희선님 댁 우물(④) 좌측 돌로 쌓인 곳에 굴이 있었어요. 지금은 막혀 있는데, 이곳에 생강저장고로 쓰였다고 해요. 양희선님이 과거에는 농산물 수집 판매를 크게 했거든요.
- 참삭골에 있는 샘(①)을 작두샘이라고 불렸다고 하는데 나중에 알아보니, 참삭골에 사는 다섯 가구가 살았는데, 식수를 길어다 먹고 하는 게 불편하니까 편하게 사용하기 위해 작두(펌프)를 설치하면서 그렇게 불렸다는 것 같아요.
- 턱골에 있는 샘(②)은 약물 샘이라고 부르는데, 마을에서 전해오는 말이 몸에 땀띠, 부스러기들이 나면 이곳에 와서 몸을 씻었다고 해요. 그러면 낫는다고요.
3. 농업용수는 없나요?
- 아래뜸 쪽 고라실 마을 입구에 조그만 관정시설 있어요.
- 농업용수는 농수로를 통해 오는데 봉선지에서 은곡리, 지원리 거쳐 구동리가 마지막이에요.
- 지금은 여기저기 개별농가에서 다들 관정 파니까 필요 없죠.
- 또 하나 오얏고개 넘어가기 전 교통 차단봉 서 있는 곳에 대형관정 있어요. 그런데 전기세도 안 내고 관리가 안 되니까 전기 끊겼죠.
4. 소방용수는 없나요?
- 네. 몇 번 건의도 하고 했는데 아직 마을소화전이나 관련 시설들은 없어요.
5. 식수용 상수도는 언제 들어 왔나요?
- 마을 상수도는 올해 들어왔나, 아니다 작년인가? 2023년 5월이예요. [ 강정옥 ]
- 구동1리에 상수도 시설이 마을에 처음 들어온 것은 2019년 8월 금복리~구동리 구간, 2019년 12월 지원리~구동리 구간 관급공사 입찰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실제 설치 시점은 주민의 기억과 다를 수 있어 보임 [ 조사자 기록 ]
* 입찰공고1. 서천군맑은물사업소 공고 제2019-22호, 2019.8.9,
문산면 금복리~구동리 지방상수도 확장공사
* 입찰공고2. 서천군맑은물사업소 공고 제2019-32호, 2019.11.28.
문산면 지원리~구동리 지방상수도 확장공사
사진
<그림1. 구동1리 용수시설(우물, 샘, 농업용 관정) 위치도>
<그림2. 우물, 샘 사진 좌측으로부터(강정옥 제공)>
①참삿골 우물(식수, 작두샘 별칭) / ②턱골 우물(땀띠, 두드러기 효험) /
③아랫뜸 공동우물(식수, 현재 농사용) / ④중뜸 우물(양희선, 식수, 농사용)
<그림3. 우물, 샘 사진 좌측으로부터(강정옥 제공)>
⑤중뜸 공동우물(故백윤정, 식수, 농사용) / ⑥낡은터 우물(박옥희, 식수) /
⑦윗뜸 우물(장옥자, 식수, 농사용) / ⑧소라티 우물(신동엽, 식수, 농사용)
<사진1. ⑨오앗고개입구 관정(현재 미사용)>
<사진2. ⑩아랫뜸 관정(현재 미사용)>
기록개요
생산자료
서천군 평생학습센터, 예소아카이브,
사방팔방 서천이야기 마을기록단
붙임자료
※ 이 마을기록은 평생교육팀 '마을기록활동가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사방팔방서천이야기 마을기록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마을기록활동가들이 기록한 자료입니다.
※ 본 내용의 저작권은 1차 저작자(기록자)에게 있습니다. 본 기록의 무단 배포와 변형, 활용을 금지합니다.
기록내용
구동1리 마을은 서천읍(시초면) 방면과 판교면 방면에서 접근할 수 있고,인접 생활권인 부여군 홍산-문산을 잇는 버스노선을 통해서 접근할 수 있다.
서천읍(시초면) 방면에서는 시초면과 문산면중심지를 잇는 서문로 상, 문산면 지원리 소재 평화주유소 가기 전 마을진입을 알리는 도로교통표지판과 마을안내판이 있고, 마을로 진입해서 약400m 가다보면 구병골을 알리는 낮은 높이의 입석이 있다.
판교면에서는 판교면과 문산면을 잇는 판문로 상, 판교면으로부터 약7km지점 좌측에 금복2리 원당마을을 알리는 표지석이 구동1리를 접근을 알리는 안내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1. 구동1리 도로안내표지판
서문로 상 평화주유소(문산면 구동리 43번지 소재)로부터 약250m 지점
에 설치되어 있음.
붙임사진 : <사진2>참조
2. 구동1리 마을표지판
도로안내표지판 지나 바로 80cm폭 360cm 높이의 철재구조로 된 마을
표지판 설치되어 있음.
* 마을표지판은 2020년 마을만들기 선행사업으로 세워졌다함.(김종섭)
붙임사진 : <사진3>참조
3. 지명 관련 마을표지석
구동1리 마을표지판으로부터 마을방향 400m지점에 가로50cm☓높이60
cm의 오석입석이 설치되어 있음.
* 1982년경 도로정비하면서 세워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함.(김종섭)
붙임사진 : <사진4>참조
사진
<그림1. 구동1리 마을접근경로 및 공간기록 분류>
<그림2. 마을안내시설 위치도>
<사진1. 금복2리 원당마을 표지석(판문포, 판교면에서 문산 방향)>
<사진2. 도로안내표지판(서문로, 문산면 지원리에서 신농리 방향)>
<사진3. 구동1리 마을안내표지판(서문로, 문산면 신농리에서 지원리 방향)>
<사진4. 구병골 오석입석(서문로에서 마을 진입 후 400m 지점 좌측)>
기록개요
생산자료
서천군 평생학습센터, 예소아카이브,
사방팔방 서천이야기 마을기록단
붙임자료
※ 이 마을기록은 평생교육팀 '마을기록활동가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사방팔방서천이야기 마을기록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마을기록활동가들이 기록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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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내용
■ 된장 만들기
된장을 전통 방법으로 만들다가 간단하게 만들게 된 이야기
재료
메주 5kg, 소금, 물 5L, 엄나무가지, 보리쌀 2kg, 고춧가루 약간, 김
순서
1. 메주를 깨끗하게 닦아 물기를 말린다.
2. 소독한 항아리에 메주를 넣는다.
3. 달걀이 동전 크기만큼 떠오른 소금물을 항아리에 넣고, 깨끗하게 씻은 엄나무 가지를 올린다. 소금물은 최소한 메주가 담길 정도만 넣어야 맛있는 된장이 나온다.
4. 맛있는 된장을 만들기 위해 30일 만에 메주를 건진다.
5. 보리를 충분히 불려 밥을 한 다음에 충분히 식혀둔다.
5. 건진 메주를 손으로 으깨준다.
6. 으깬 메주와 보리밥을 섞는다.
7. 기호에 맞게 소금으로 간을 한다.
8. 고춧가루를 넣고 잘 섞어 간장 물로 농도를 조정한다.
9. 완성된 된장을 항아리에 담고 위에 김으로 덮고 소금을 살짝 뿌린다.
10. 보리밥이 삭는 약 2개월 이후부터 먹을 수 있다.
■ 완성된 된장
제보자의 말 :
현대식 된장은 쓰임새가 많다. 된장국, 된장찌개, 쌈장, 무침 소스. 등으로 음식을 만들 때 밑 양념으로 최고의 장이다. 다른 사람들은 어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나만의 된장은 맛이 최고다. 아들한테 보내면 맛있다고 전화가 온다. 형제들한테도 나눠 주는데, 맛있다고 연락이 오면 기분이 좋다.
사진
<메주를 깨끗하게 세척한다.>
<메주를 담고 소금물을 최소한 양만 부어주고 엄나무 가지를 올려준다.>
<30일 만에 메주를 건져 으깨준다.>
<보리밥을 식혀준다.>
<으깬 메주에 보리밥을 넣고 고춧가루와 소금을 넣고 비벼준다.>
<골고루 비벼주고 간장물을 부어 농도를 조정한다.>
<완성된 된장>
<완성된 된장을 항아리에 담는다.>
<된장 위에 김으로 덮고 소금을 뿌린다.>
기록개요
생산자료
서천군 평생학습센터, 예소아카이브,
사방팔방 서천이야기 마을기록단
붙임자료
※ 이 마을기록은 평생교육팀 '마을기록활동가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사방팔방서천이야기 마을기록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마을기록활동가들이 기록한 자료입니다.
※ 본 내용의 저작권은 1차 저작자(기록자)에게 있습니다. 본 기록의 무단 배포와 변형, 활용을 금지합니다.
기록내용
1. 본인 소개를 해주시겠습니까?
최금순 1955년 10월 30일생입니다.
정규인 1950년 3월 1일생입니다.
2. 갈릴리어구의 주소는 어떻게 되는가요?
서천군 화양면 장산로 1646번길 13
3. 갈릴리어구는 주로 어떤 일을 하는가요?
어망(그물)을 제조하고 수입하고 판매를 합니다. 베트남과 중국에 지사가 있어서 거기서 만들어진 어망을 수입하고 판매합니다.
4. 갈릴리어구에서 주로 취급하는 그물은 어떤 것인가요?
주로 꽃게망, 대하망, 숭어망, 도다리망입니다.
5. 판매하는 지역은 어디인가요?
전국이지만 주로 서천,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입니다.
최근에 부산, 거제에도 판매합니다.
6. 갈릴리 어구사를 이곳에 설립하게 된 이야기를 해주시겠습니까?
서울에서 남편과 함께 이곳으로 내려온 것이 1980년도입니다. 귀촌한 후 에 남편(정규인)은 한솔제지 용역회사에 다녔습니다. 저는 생계에 보탬이 되고자 그물 만드는 일을 부업으로 시작했습니다. 장항이나 군산에서 일 거리를 가지고 와서 집에서 작업했습니다. 그때는 추동리에서 살았습니 다. 그러다가 군산의 선구사에 취직을 하고 출퇴근하면서 기술을 배웠습 니다. 시어머니가 편찮으셔서 병간호하게 되어 출퇴근이 어려워져서 다시 집에서 물건을 가져다가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교회(대하성결교회)에서 부흥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강사님으로부터 은혜를 받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다가 세계 결식아동을 돕는 일에 관해 들었습니다. 그래서 서원 기도를 했습니다. 이 아이들을 도울 수 있도록 내 사업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것이 1990년도입니다.
7. 그물 만드는 일을 어떻게 접하게 되었는가요?
시어머니의 친척 권유로 시작했습니다.
8. 처음 물량을 확보하게 된 과정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한 어부가 그물이 필요하다고 해서 만들어 주었습니다. 기술이 부족해서 완전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 그물에 고기가 많이 잡혔다고 좋아했 습니다. 그리고 그분이 또 다른 어부를 소개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소문을 듣고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9. 갈릴리어구의 상호는 어떻게 지었습니까?
어떤 분이 거래하면서 명함을 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명함을 만들려고 이름을 생각하다가 “화양면 그물조립소”라고 정하고 인쇄소에 맡겼습니 다. 인쇄소에서 잘못해서 ‘조립소’를 ‘조리소’라고 만들어 주었습니다. 그 래서 생각하기를 기독교인으로 기왕이면 성경에 나오는 이름으로 하라는 뜻인가 보다 하고 성경에 나오는 지명을 따 “갈릴리어구”라고 이름을 확 정했습니다.
10. 사업을 하면서 얻은 교훈이 있습니까?
‘나누고 베풀수록 풍요로워진다.’라는 것입니다. 좋은 소문이 나서 수요가 늘어나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일거리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남편을 여의고 홀로 3남매를 키우게 된 김향월(75세) 씨는 좋은 동업자이며 거의 생활을 함께했습니다. 그 3남매는 지금 훌륭하게 성장해서 사회 인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나누고 베풀수록 사업이 확장되었고 지금은 베트남과 중국에 지사를 설립해서 가난한 마을 사람들에게 유복 한 삶을 살도록 하게 되었습니다.
11. 사업을 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일은 무엇인가요?
어려운 일이야 한도 끝도 없지요. 그중에서도 가장 힘들었던 일은 신앙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어촌계장님의 소개로 여기저기 어촌계에서 주문이 많이 들어왔습니다. 장사가 잘되어 갈 때였습니다. 어촌계에서 풍어제나 만신제를 지낼 때 찬조를 요청해 왔습니다. 저는 신앙을 이유로 거절했습니다. 사실, 이 사업을 시작한 것도 신앙 때 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신앙에 어긋나는 일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물 제 작과 판매는 어촌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어촌계에서도 그 신앙을 존중한 것인지 더 이상 요구하지 않아요. 대신 다른 친목 활동에 대해서는 후원을 하고 있습니다.
12. 보람이 있었던 일을 한 가지만 이야기 해주신다면요?
베트남 동탑 지역에 현지 공장을 세운 것입니다. 그 지역은 베트남에서 두 번째로 가난한 곳이었습니다. 2013년이었습니다. 그 가난한 마을이 지 금은 많은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첫째, 직원들의 집을 지어 주었습니다. 둘째, 매달 월급이 나가서 생활이 안정되고 자녀교육을 할 수 있었습니 다. 셋째, 도시로 나가지 않아서 이혼율이 낮아지고 자녀를 낳게 되었습 니다. 사업을 통해서 마을이 건강하게 변화된 것이 큰 보람이었습니다.
사진
<갈릴리어구 김향월 씨(오른쪽)>
<갈릴리어구 추>
<갈릴리어구 로프>
<갈릴리어구 숭어망>
<꽃게망 리필 작업>
기록개요
생산자료
서천군 평생학습센터, 예소아카이브,
사방팔방 서천이야기 마을기록단
붙임자료
※ 이 마을기록은 평생교육팀 '마을기록활동가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사방팔방서천이야기 마을기록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마을기록활동가들이 기록한 자료입니다.
※ 본 내용의 저작권은 1차 저작자(기록자)에게 있습니다. 본 기록의 무단 배포와 변형, 활용을 금지합니다.
기록내용
양희선은 1936년생으로 문산면 구동리 마을에 태어나 구동리에서 살았으며, 외지에 나가 산 적이 없다. 소년 가장으로 집안 경제에 보탬이 되고자 15세부터 장사를 시작했고, 생강장사는 31세부터 시작하여 평생을 해왔다. 농업을 생업으로 하는 마을에서 ‘생강농사’가 아닌 ‘생강장사’를 한 점이 특이하여, 1970년대 생강장사 시절의 이야기를 듣고자 요청했는데, 기꺼이 응해 주셨다.
[생강장사 양희선과의 면담 내용]
15세 소년, 장사꾼이 되다
양희선은 15세부터 장사를 시작했다. 경찰관이셨던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한국전쟁 때 공산군에 의해 학살당하셔서 집안 살림을 책임져야 했기 때문이다. 부양가족은 할아버지, 어머니, 동생들까지 모두 일곱 명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조사자 : 지금까지 주로 무슨 일을 하셨나요?
구술자 : 어려서 이후로 장사를 시작혔슈. 열다섯 살부텀.
조사자 : 주로 무슨 장사를 하셨나요?
구술자 : 처음에 고추장사를 했슈. 그 동기는, 6·25 때 아부지랑 작은아부지가 한날한시에 경찰관들이라 문산면 수암리에서 학살당하셨어유. 형제분이 한날한시에 돌아가셨슈. 그래서 인제 늙으신 할아부지는 예순닷 살 잡수셨는디 학자시고, 서울에 인자 성균관대핵교 공자 맹자 제사 지내는 직원 벼슬을 따셨슈. 왜정 때. 시험 봐서. 그래가지구서 거기서 학자니까 살림이 대해서는 모르시구 동생들 넷인디 나 열닷살 먹어서 어떻게 얘기도 헐 수 없는 거여. 열닷살 먹어서 그래서 인제 가벼운 고추장사를 시작했슈, 고추장사를. 그래가지구서 고생 많이 혔쥬.
조사자 : 장남이셨어요?
구술자 : 예~, 그래가지구 인제 장사를 쪼금이라두 벌어서 생계를 유지할려구. 장사를 허다가 그것이 손해 봤슈. 결과적으로. 손해 봤응게 다른 직업으로 바꿨지. 계란장사로.
조사자 : 계란장사로 바꾸셨을 때는 몇 세셨나요?
구술자 : 열일곱 살 때.
조사자 : 계란장사는 잘 되셨나요?
구술자 : 계란장사도 잘 안 됐슈. 그래서 행상을 혔슈. 그러다가 스물두 살 먹었을 때 군대를 갔쥬.
조사자 : 군입대 하셨을 때 가족들 형편이 많이 어려우셨겠네요?
구술자 : 그렇죠. 어머니는 가정주부여서 사회 경험 두 없으시고, 어려웠쥬, 동행하고 고생 많이 하셨슈.
조사자 : 생강장사는 언제부터 시작하셨나요?
구술자 : 군대 갔다 와서. 생강장사 허기 전이 생강을 한 해 심어 가지구 그때 돈으로 쌀 250가마 값을 혀가지구 큰돈을 벌은 거지. 그래가지구 쌀장사를 혔는디 실패혀가지구, 그 다음에는 돈이 없으니까 생강장사를 시작혔슈. 서울 염천교 시장에서.
조사자 : 서울 염천교 시장에서요, 서울역 앞 염천교 시장요?
구술자 : 염천교 시장, 서울역 뒤. 지금은 없어졌쥬. 도매시장은 용산으로 나갔쥬. 용산에서 가락동으로 나가구.
생강장사를 선택한 이유
조사자 : 생강장사 하신 지는 몇 년 되셨나요?
구술자 : 생강장사를 31살 땐 게 57년 됐네.
조사자 : 다른 품목들도 많았을 텐데 생강을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구술자 : 그때는 생강이 귀했고, 비쌌고 마늘도 그때는 귀했고 비쌌고. 그래서 생강을 선택혔지. 인자 돈이 없으니까 장예쌀[장리쌀]이라고 혀서 쌀 한 가마 갖다가 가을이 두 가마니 주는 쌀을 읃어서[빌려서] 생강을 심었슈.
조사자 : 쌀 한 가마니 값이면 생강은 어느 정도 주나요?
구술자 : 생강 한 가마니 값이 쌀 한 가마니 값 갔슈. 그때는. 지금은 더 가쥬. 지금은 쌀 한 가마보담 생강 한 가마니가 비싸쥬. 지금은 생강 한 가마에 쌀 다섯 가마씩 가유.
※ 2023년 9월 14일 현재, 생강값과 쌀값 인터넷 검색 결과
국내산 흙(세척) 생강 20kg 30만 원~60만 원(2022년)
서천 서래야 쌀 20kg 백미 약 10만 원, 일반 백미 약 5만 원(2022년)
생강 수매
조사자 : 생강은 어디서 구했나요?
구술자 : 후암리라는 디서, 거기서 생강도 사다 심었구 물건도 그쪽이서 많이 나왔어유. 풍정리 후암리 그쪽이가.(후암리와 풍정리는 구동리 이웃 동네이다)
조사자 : 생강 수매는 어떻게 하셨나요?
구술자 : (생강 추수 때가 되면) 그 동네 어떤 지역에도 풍정리면 풍정리, 한산이면 한산, 지역적으로 다 연결이 돼 있어유. 그분들(지역중개자)에게 한 푸대[포대] 사는 데 얼마씩 줘, 그려야 할 거 아뉴. 그러니까 이득이 나니까 서로 헐려구 허지. 그 사람으로 하여금 돈을 딱 맽겨놓구 어떤 물건은 얼마 주고 어트게(어떻게) 어트게(어떻게) 작업 허라구 허면, 그 사람이 가서 (생강 포대를) 끌러 보구 생강을 사서 보관하고 있다가 오늘 차 불러라 허믄 싣는 거쥬. 그것두 양심 있는 사람이 선택혀서 선정을 해놓고서 시키지 아무나 안 시켜줘. 왜 그냐믄 물건 살 돈을 미리 주거든. 그 옛날이는 좀 도박이 심했어유. 그 돈 가지구 도박이다 내버리믄 어쩌것서유.
조사자 : 수확하는 시간이 지역마다 다를 텐데 어떻게 하나요?
구술자 : “오늘 캐놔라.” 하면 그 사람들이 캐놔유. 그냥 말로만 하면 소용없응게 열 개가 있으면 다섯 개값을 주고서 (나머지는) “암만암만 할 때 줄틍게(지불 할 테니) 이것을 계약금으로 받아라.” 혀야지. 돈을 받아 놔야 물건이 유실 안 되지.
조사자 : 이쪽 지역 외에 다른 지역에서 수매하지는 않으셨나요?
구술자 : 후암, 문산, 한산, 마산, 보령 미산까지는 가쥬. 판교, 서면, 부여 홍산, 남면 충화 그쪽까지 가쥬. 이 근방이 20키로(km) 안쪽은 다 댕겼슈.
조사자 : 차는 없으셨나요?
구술자 : 차는 없슈. 그리구 저희 같은 사람들은 물건을 여기저기 옮겨야 하니까 내가 차 운전하믄 잘못되믄. 그럴 수 있잖유. 남이 차를 이용허면 그런 일이 없쟌어유. 기사한테 어디 어디다 퍼줘라 허믄 퍼주구 오구. 그게 오히려 싸게 맥혀. 위험 부담도 적고.
판매 & 운반
조사자 : 사들인 생강은 어디에 판매했나요?
구술자 : 염천시장에서 팔았지 팔구 용산시장으로 내려왔지, 한 3, 4년 허구 (용산도매시장으로) 내려왔지.
조사자 : 염천시장으로 팔러 간 생강 양은 어느 정도였나요?
구술자 : 대략 많이 가지구 갈 때는 100푸대[포대]. 그때는 가마니가 50키로(kg) 짜리 가마니 100개 정도까지 실었어. 조금 적을 때는 5, 60개. 꼭 균일하지 않으니께
조사자 : 사들인 생강은 어떤 방법으로 운반하셨나요?
구술자 : 차를 불러서 가지. 공주 충남화물이라구 공주에 있었거든. 그 차를 임대해서 쓰는 거여.
조사자 : 화물차에 생강을 실을 때와 내릴 때는 어떻게 하셨나요?
구술자 : 사람을 써야죠 여기서, 실을 때, 나 혼자는 못 허니까. 두엇 데리고 댕기지. 그 사람들 다 실은 다음인 집으로 보내지. 동네 동네 가니까 몇 개 동네 가니까. 여기서만 싣는 게 아니구 마산 한산까지 가서 실으니까유.
조사자 : 일꾼들을 다 집으로 보내셨어요? 그러면, 서울에 싣고 간 생강을 하차 할 때는 어떻게 하나요?
구술자 : 서울에 가서는 상회에서 자유. 자고 상회에서 밥은 해줘. 있을 도막에[동안에]. 상회에서 하차 반이 있지. 시장에 하차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지. 여기서는 생강을 사 가지구 서울로 보낸다구 넘들이 생각할 때는 그렇게 생각하지만, 그 당시에 염천교 시장에서 서산에 오수익 씨라는 사람이 있었구 그 사람 허구 나허구 둘이가 염천교 시장 있을 직[적]이 한양상회라는 디[데]서 두 사람 아니믄 상회를 운영 못 한다고 할 정도였슈. 두 사람이 (생강을) 많이 느서[넣어서] 상회를 운영혔다는 거유. 그 정도루 인정을 받은 거유.
생강 수매의 애환
조사자 : 생강 수매할 때와 판매할 때 어려움은 없었나요?
구술자 : (생강수매 할 때) 생강장사가 얼마나 얼마나 야비한지 어떤 사람은 내가 1만원 준다구 혔으믄 1만1000원 준다구 나 달라고 그렇게 야비한 사람이 있다구. 그러믄 밭 임자는 조금이라도 더 주는 사람에게 파는 거여. 그러니까 계약금이란 돈을 주무는 만약에 그것이 잘못될 시는 불응할 시는 법적으로 배상하게 돼 있잖아요. 팔기 싫으면 계약금 배로 만원이면 2만원 내놔라! 그러면 꼼짝 못 허죠.
조사자 : 요즘 국산 생강 씨앗이 찾기 어렵고 중국 생강 씨앗을 많이 심는다는데, 그때 생강 씨앗은 토종이었나요? 중국산이었나요?
구술자 : 지금은 거의 다 90%가 중국산으로 사 심쥬. 옛날에는 중국산이 없고 여기 재래종, 원 재래종.
조사자 : 주로 어느 지역의 생강이 품질이 좋고, 값이 나갔나요?
구술자 : 이 지역에서는 풍증리(시초면 풍정리)가 젤 쳐져유. 거기치가 성헌 것(병이나 탈이 없는 것) 심었구 오랜 세월을 했기 때문에 작업을 잘했슈. 그런디 어쩌다 한 번씩 헌(파는) 사람들은 썩은 것두 늣구 이런 것두 늣구 저런 것두 늣구 서울 가서 팔아보믄 그런 것이 나오네. 그러믄 10만 원 받을 것을 5만 원도 안 나오는 거여~ 그런 때도 아픔이 있슈. 가서 얘기 혀야 소용두 없구. 우리야(우리 것) 아니라고 우깅게. 분명히 그 집 거라는 거 알고 있는디. 인저 생강을 팔믄 가, 나, 다, 라 이렇게 멕여유. 푸대다 써놔. 그러믄 ‘가’라구 쓴 사람은 아무개 꺼, ‘나’라고 쓴 사람은 아무개 꺼 나오잖어 답이, 아니라는 거여~. 양심적이지 않은 그 사람들 껀 다시는 안 사유. 내가 한 번 손해 보구 말아야지 내가 상대하면 상대할수록 손해 보는 거여.
※ 구술자의 지혜 : 구술자는 생강을 여러 지역에서 여러 사람의 밭에서 사들이기 때문에, 그 품질과 포장 상태를 구별하기 위해 생강 포대에 가, 나, 다, 라로 표기한다. 그리고 가=ㅇㅇㅇ, 나=ㅇㅇㅇ이렇게 판매자 이름을 자기 나름대로 기록해 놓는다고 했다.
생강 관리 : 생강 저장 굴
조사자 : 생강 저장은 어떻게 하셨나요?
구술자 : 밭짝이[밭떼기] 헐 적이는 홍산하고 스산[서산] 굴이다가 보관하라구 맽기주. 생강 1000개(20kg짜리) 들어가는 굴이 있슈. 생강 열(10)차 들어가는 굴이 있슈. 전라도서 생강 한 차 싣고, 내가 타구 사람 옆에 하나 싣고, 또 한 대만 가는 게 아닝게. 몇 대가 가니께 딴 차에도 두어 사람 싣고. 기사하고 그러면 사람이 대여섯 명 되잖어. 차를 딱 세우구서 앞차부터 차곡차곡 안에다 집어 느[넣어]. 밀차로 끄셔다가[끌어다가]. 이것을 안 해본 사람은 절차를 모르구 정신 어지러서 못 해. 허는 식(방법)도 모르구.
조사자 : 홍산 저장 굴은 어디쯤 있나요?
구술자 : 홍양리(부여군 홍산면), 농공단지 부근에 거기에 ㅇㅇㅇ라는 사람네여. 지금은 무너져서 없어졌을 거여. 그때두(2000년대) 비가 많이 올 적이 한쪽이 무너졌는디 안에 들어가서 생강을 꺼내니까 쥔네(주인)가 막 소리 지르고 욕지거리 허는 거여. 굴이 무너지면 사람 죽을 깜니 그런 거여. 지금은 저온창고가 다 있응게 그런 일은 없지. 저온창고가 없을 직[적]이는 생강 썩은 것이 많이 나왔어.
생강 1년 판매량
조사자 : 생강 1년 판매 총량은 얼마나 되었나요?
구술자 : 최고 많이 팔 때가 1년이 1톤(t) 차로 40차 20키로(kg) 짜리 5000푸대[포대] 최고 많이 헌 때가. 근래는 안 한게 그렇지 그전이 많이 할 때는 이 앞이 도로가 동네 사방이가 다 우리 생강차였어.
조사자 : 생강장사를 하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나요?
구술자 : 한 40차 말려가지구 팔었을 때, 그때 돈이루 40년 전 50년 전 1억5천 정도의 돈이라믄 큰 돈이쥬. 많이 들와 가지구 한 달이 1억이구. 5000만원이고 들어왔다구. 그러면은 뭐라구 허냐믄 “워쩌다 한 번 그랬지 언제 돈 들온 일 있냐.” 춤 일(처음일)이라고 그려
조사자 : (웃으며) 돈이 그렇게 많이 들어오면 부인께 옷도 사주고 아이들한테 맛있는 것도 사주고 선물을 하시지 않으셨어요?
구술자 : 옷 같은 건 사준 일 없고 돈으로 몇백씩 준일 있슈.
조사자 : 생강장사 하면서 특별히 어려웠던 기억이 있나요?
구술자 : 있쥬! 실패했을 때는 후회하는 거여. 돈 없을 때는 벌었을 때는 후회를 안 해도. 없을 때는 후회하쥬. 시련을 겪노라면 아픔이라믄 말도 못 혀유.
생강 판매 수입과 경비
조사자 : 1년 수입은 얼마나 되었나요?
구술자 : 한 30년 전이는 하루에 그때 돈으로 100만원 내지 300~400까지 벌으니까. 아이들 프랑스 유학 보내고 공부다 시켰응게
조사자 : 비용이 많이 들었을 것 같은데, 수익은 얼마나 되었나요?
구술자 : 비용이 만만치 않았슈. 그런데, 마진(이윤)이 많지 않은데 쌀보담은 야채가 나서유.
조사자 : 수익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어요?
구술자 : 생강이 낫쥬 생강은 웬만하면 20~30% 마진을 보지. 만원이면 2천원 3천원 정도 남아버려. 그렁게 생강이 낫쥬. 쌀은 참~ 박혀(이익이 적어) 솔(서울)가서 인자 쌀 백마흔닷 근을 말로 바꾸믄 한 가마에 서 되가 남는디 그거 가지구 여기 비용 쓰구, 서울 비용 쓰구, 차 운임주구 그러야 되거든, 그러믄 마진이 읍서[없어].
조사자 : 대량으로만 취급하고 소매로 판매는 하지 않으셨나요?
구술자 : 소매도 혔슈. 군산 구시장이두 20~30키로(kg)씩 몇 집 대줬슈.
조사자 : 소매로 판매할 때는 운송 수단은 어떻게 하셨나요?
구술자 : 10키로(kg)까지는 오토바이로 날렀슈. 그 이상은 오토바이로는 못 허구, 20키로(kg)는 차를 불렀지. 운반비를 5만원 주면, 한 포대 만원씩 남으니까 20포대면 20만원이니까 내가 15만원 버는 거지.
조사자 : 도시로 도매로 가져가는 것과 지방에 가게에 도매로 넘기는 것과 수익 차이는 어땠나요?
구술자 : 수익 차이는 지방이 낫쥬, 이런 디[데]는 규모가 적응게, 한 푸대에 만원씩 남기는데, 서울상회에서는 한 푸대[포대]에 5000원 남기기가 어려워유. 또 수수료 띠고, 운반비 많이 맥히고 그러니까 비용으로 한 7, 8천원 떨어져 나가니까 수입이 즉어[적어]. 생강 한 푸대[포대] 내려 붓는 것두 얼마씩 하차비를 받어,
조사자 : 예전에도 하차비가 있었나요?
구술자 : 그럼유. 다 있지. 상회 수수료. 옛날이는 8프로(%) 였는디 지금은 7프로(%)유
생강장사의 현재
조사자 : 생강장사를 그만두신 것은 언제이신가요?
구술자 : 지금도 혀유. 그전이마치(예전만큼) 하지는 않지만 7년 전이 전라도에 가서 마늘 생강 5년 동안 밭 한 만 평씩 사서 사람 사서 5년간 혔슈.
조사자 : 아 그래요? 생강밭이 있던 지역은 어디였나요?
구술자 : 전북 정읍시 강동면 가흥리.
조사자 : 그곳엔 연고가 있으셨나요?
구술자 : 군산사람 소개로 화물차 빌려서
※ 현재는 대량으로는 못하고 소매업으로 삼륜 오토바이를 이용하여 가까운 지역 야채상회에 판매를 하고 있고, 서울 경동시장에도 생강을 보낸다고 한다.
※ 기록을 마치며
조사자는 ‘구동리 생강장사’를 소개를 받았을 때, 1970~80년대의 보따 리 장사를 떠올렸었다. 그런데 구술자는 1960~70년대에 화물차로 서울 대형 도매시장에 생강을 납품하는 대규모 상인이었던 것이다
생강을 저장하는 땅굴이 있다는 말도 처음 들었다. 구동리도 뒤에 산을 끼고 있어서 대부분 집들 뒤에는 굴을 파서 저장고로 사용했다고 한다. 구술자의 집 뒤에도 굴이 있어 동네 아이들이 들어가 놀기도 했다고 한다.
생강세척기도 처음 보았다. 생강뿐 아니라 은행, 당근, 무, 감자 등 야 채를 씻는데도 사용했다고 한다.
“시련을 겪노라면 아픔이라믄 말도 못 혀유.”
이 한마디 말에 생강장사의 인생이 스며있는 것 같다.
올해 88세인 구동1리 생강장사 아저씨! 귀한 만남에 감사드립니다.
사진
<양희선 면담(구동1리 마을회관)>
<양희선의 운송수단인 삼륜 오토바이(생강 20kg X 10개까지 싣는다)>
<생강 세척 기계>
<갈무리 : 생강 저장 굴(서산)>
(사진 출처 : http://blog.naver.com/seosandaon/220965592649)
<생강 말리는 건조기>
<생강 말리는 건조기(1990년대 구입)>
<구동1리 양희선 자택>
기록개요
생산자료
생산 자료 : 녹음 파일(33분 30초), 사진 7장
서천군 평생학습센터, 예소아카이브,
사방팔방 서천이야기 마을기록단
붙임자료
※ 이 마을기록은 평생교육팀 '마을기록활동가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사방팔방서천이야기 마을기록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마을기록활동가들이 기록한 자료입니다.
※ 본 내용의 저작권은 1차 저작자(기록자)에게 있습니다. 본 기록의 무단 배포와 변형, 활용을 금지합니다.
기록내용
고살메 주민들은 갈꽃비를 만들 때에 여러 가지 도구를 사용한다. 갈꽃비 제작 마지막 단계로 ‘코잡기’가 있다. 코잡기는 빗자루의 ‘밥(갈꽃)’부분을 나일론실로 엮는 것을 말하며, 이때 코바늘과 코잡기 틀이 사용된다(사진 9). 코잡기를 하면, 밥의 흐트러짐을 막고 힘을 받아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 보통 2줄이나 3줄로 엮는다.
[고살메 마을 김종덕씨의 갈꽃비 제작 도구 ‘코잡기 틀’]
김종덕 씨가 갈꽃비를 처음 만들 때는 코잡기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빗자루를 사용하다 보면 ‘밥’(갈대꽃)이 힘이 없어서 빠지고 또 끊어지곤 하여, 빗자루가 얇아지고 수명도 짧아졌다. 이런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나일론 실로 한두 줄 코잡기를 해 주었다. 코를 잡아주니 훨씬 짱짱하고 흐트러짐도 적고 밥이 빠지는 정도도 줄어 자연히 수명도 길어졌다. 기왕이면 모양도 내서 보기 좋게 만들어 보려고, 나일론 끈 색도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구입하여 사용했다. 1단은 빨강, 2단은 파랑, 3단은 빨강으로 멋을 내었다.
김종덕 씨는 코잡기 작업을 도구 없이 빗자루를 바닥에 놓고 했었는데, 바닥에 놓고 하니 많이 불편했다고 한다. 작업을 좀 더 편리하고 효율적으로 하고자 빗자루를 세워놓을 수 있는 도구를 본인이 만들었다고 한다. 일명 ‘코잡기 틀’을 개발한 것이다.
조사자 : 이것(코잡기 틀)도 부모님께로부터 물려받으신 거예요?
구술자 : 아뇨, 바닥이서 하믄 불편하잖유. 그려서 지가 맨들었슈. 이렇게 세워서 험(하면) 훨씬 좋잖유. 속도도 나고.
코잡기 틀에 빗자루를 고정시켜 놓고 코를 잡아 주니 훨씬 수월하고 코잡기도 예쁘게 되어 기분이 좋다고 하였다.
김종덕 씨의 코잡기 틀은 사용하기 편리하도록 만들어졌다. 빗자루의 모양을 따라 둥글게 코를 잡기 위해 반달 모양으로 만들었고, 또 코잡기 할 때 빗자루가 틀에서 미끄러지지 않도록 미끄럼방지 고무판을 붙였으며(사진5, 사진6), 빗자루를 넣고 뺄 수 있도록 고리(사진7, 사진8)도 만들어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게 했다.
능숙한 코바늘 솜씨로 1단, 2단, 3단 모양을 낸 김종덕 씨의 갈꽃비는 단정한 매무새로 모양을 뽐내고 있다.
* 조사자 : 예전부터 사용하며 내려오던 것을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사용하기 편리하게 도구들을 개조하면서 좀 더 편리하게, 좀 더 효율성 있게 개발해가며 작업하시는 어르신의 자세와 지혜에 감탄하였다.
사진
기록개요
생산자료
서천군 평생학습센터, 예소아카이브,
사방팔방 서천이야기 마을기록단
붙임자료
※ 이 마을기록은 평생교육팀 '마을기록활동가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사방팔방서천이야기 마을기록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마을기록활동가들이 기록한 자료입니다.
※ 본 내용의 저작권은 1차 저작자(기록자)에게 있습니다. 본 기록의 무단 배포와 변형, 활용을 금지합니다.
기록내용
고살메에서 갈꽃비를 만드는 김종덕 씨의 작업장에는 여러 가지 도구들이 있다. 김종덕 씨는 부모님에게 물려받은 도구들을 자신이 사용하기 편리하게 개조해서 사용하거나, 자신의 아이디어로 만들어서 사용하고 있다. 그러한 도구들 중 ‘동바’에 대해서 기록하고자 한다. 표준국어사전에는 ‘동바’가 ‘지게에 짐을 얹고 눌러 동여매는 데 쓰는 줄’이라고 나와 있다. 김종덕 씨는 ‘동바’를 ‘동빠’라고 소리내셨다.
<고살메 마을 김종덕 씨의 갈꽃비 제작 도구 ‘동바’>
‘동바’(사진 2)는 50센티미터 가량의 나무에 허리에 두를 수 있는 튼튼한 끈을 맨 것이다(사진 5). 그리고 양 엄지발에 끼우는 20센티미터 가량의 나무가 있는데, 이 둘을 와이어 줄로 연결해 놓았다(사진 3).
동바를 허리에 묶어 고정시키고 양 엄지발에 끼운 나무토막을 밀고 당기면서 와이어 줄을 조절하여 밥을 조인다(사진 6, 7, 8). 이렇게 동바로 조인 밥 7개가 빗자루 1개의 재료가 된다. 동바는 갈꽃비를 만드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도구인 것이다.
동바의 와이어 줄은 일정기간이 지나면 일부분이 끊어져서 손가락을 찌른다. 그러면 줄을 교체해야 한다. 예전에는 와이어가 아닌 못 쓰는 전기줄을 주로 사용했다. 어느 날 김종덕 씨는 자전거포 앞을 지나다가 폐자전거의 브레이크 줄을 발견하고, 주인에게 말하여 브레이크 줄을 얻어서 동바에 사용했다고 한다(사진 4). 그 후에는 기회가 되는 대로 자전거포에 가서 와이어 선을 얻어다 놓고 사용했다고 한다. 폐자전거가 아무 때나 나오는 것이 아니어서 미리미리 구해 놓지 않으면 막상 필요할 때 구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구하기가 쉽지는 않았다고 한다.
지금은 철물점에 가면 와이어를 쉽게 구할 수 있어서 걱정이 없다고 한다.
사진
기록개요
생산자료
생산 자료 : 사진 8장
서천군 평생학습센터, 예소아카이브,
사방팔방 서천이야기 마을기록단
붙임자료
※ 이 마을기록은 평생교육팀 '마을기록활동가 양성과정'을 수료하고, '사방팔방서천이야기 마을기록단'으로 활동하고 있는 마을기록활동가들이 기록한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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